지난 2010년 법무부가 교도소 내 자살 방지를 위해 창문에 촘촘한 철망을 설치하자 재소자들은 일조권과 조망권을 빼앗겨 피해를 봤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사진은 철망을 설치하기 전 한 교도소 내부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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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재소자들의 ‘일조권 투쟁’
영화 <올드보이>의 한 장면.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으며 갇혀 지내던 주인공 오대수(최민식)는 어느날 큰 가방에 담겨 아파트 옥상에 버려진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자살 직전의 남자가 그에게 애절히 묻는다. “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놈이어도,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닌가요?” 영화가 친딸과의 ‘결합’이라는 비극의 꼭짓점에 이른 때 오대수는 똑같은 대사를 관객을 향해 던진다. 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놈이어도 살 권리는 있는 것 아니냐고….여기 이 질문을 비틀어 국가를 향해 던지는 이들이 있다.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국가에 의해 죄를 인정받아 교도소에 갇혀 지내는 재소자들이다. 이들의 주장을 정리하면 이런 거다. “아무리 죄지은 놈이어도 한 줌의 햇살과 한 줄기 바람을 쐴 권리는 있는 것 아닌가요?”
이들은 국가의 방해로 일조권과 조망권을 빼앗겨 피해를 봤다며 배상을 해달라는 소송까지 냈다. 그깟 햇살이 무엇이기에, 혹은 그깟 햇살 한 줌 쐬게 해주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기에 재소자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하게 됐을까? 시계를 거꾸로 돌려, 2010년으로 가보자. 당시 법무부의 최대 고민 가운데 하나는 ‘교도소에서의 자살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였다. 재소자들은 툭하면 스스로 목을 매어 숨졌다. 2000년 1월부터 6년10개월 동안 교도소에서 7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이 가운데 1명을 뺀 나머지 74명이 목을 맸다. 주로 사용된 장소는 감시의 눈길이 소홀한 화장실이었다. 화장실 창문 쇠창살에 수건이나 내의를 두른 뒤 자신의 목을 갖다댔다. 교도관이 복도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감시하기 위해 감방문에 뚫린 조그마한 시찰구의 쇠창살도 우울한 목적에 가끔 이용됐다. 이를 막고자 법무부가 내놓은 해답은 간단했다. 재소자들이 쇠창살에 손을 댈 수 없도록 하면 된다. 그해 4월 이귀남 법무부 장관의 특별지시가 떨어졌다. 두 달 만에 전국의 50여개 교도소와 구치소의 창문과 시찰구에는 쇠창살 안쪽으로 철망이 설치됐다. 철망은 두께 0.6㎜짜리 고강도 스테인리스 철사를 가로세로 2.54㎝ 안에 16가닥씩 격자 모양으로 붙인 뒤 그 위에 법랑을 특수코팅한 형태다. 사실상 창문 사라져, 바깥구경은 운동시간뿐
튼튼하고 촘촘한 철망에 법무부가 거는 기대는 컸다. 이제 내의나 수건은 결코 이 좁은 철망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일심회 사건(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대전교도소에 수감중인 장민호씨는 지난달 23일 <한겨레> 기자의 면회 때 “철망 구멍이 바늘은 통과하지만 이쑤시개는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작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뒤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일어났다. 철망은 내의와 수건의 통과만 가로막은 게 아니었다. 뜻하지 않게 감방의 안팎을 넘나드는 햇볕과 바람에도 장애물로 작용했다. 감방 안의 먼지는 촘촘한 철망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덕지덕지 들러붙어 작은 구멍을 더 좁히기 일쑤다. 비 오는 날 빗소리가 들려도 정작 비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시야를 가린다. 하루 30분~1시간가량의 운동시간 빼고는 종일 좁은 감방에 갇혀 지내는 재소자들에게 창살을 통한 바깥세상 구경은 소중한 기회였다. 재소자들은 답답함 못지않게 건강도 걱정한다. 용산참사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받아 대구교도소에 수감중인 천주석씨는 “창살에 막혀 못 나가는 먼지 때문에 병 걸릴까봐 두렵다”며 “여기 있는 사람들은 잘 때 (먼지를 마시지 않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잔다”고 말했다. 천씨는 2009년 1월 용산참사 때 심하게 다친 발목을 여태껏 치료받지 못하다 얼마 전 가까스로 자기 돈 내고 외부 병원에 진료받으러 나갔는데 의사가 자신에게는 물어보지도 않은 채 교도관 말만 듣고 엉덩이 부위만 컴퓨터 단층촬영(CT)을 했다며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투쟁 중 투옥(업무방해 등)돼 지난해 5월 춘천교도소에서 출소한 이동우씨도 “철망은 폐쇄감과 공포감을 주고, 바깥 환경과의 교감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며 “독서나 티브이 시청을 하다 바깥을 쳐다보면 시야가 콱 막혀버리기 일쑤”라고 말했다. 참다못한 재소자 16명이 지난해 5월 “건강이 악화하고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며 국가가 1인당 200만원씩 손해배상을 하라는 소송을 냈다. 구속노동자후원회와 편지를 주고받던 몇몇 재소자가 철망 설치 직후부터 이 문제를 지적하자 후원회 쪽이 나서 연락이 닿는 재소자들을 모았다. 장씨와 천씨, 이씨도 원고인단에 참여했다. 이들은 철망과 함께 교도소 안의 각종 불만사안을 외부에 알리려는 편지를 수시로 검열해 못 내보내게 하고, 속옷이나 의약품 등 바깥에서 들여오는 영치품을 교도소가 과다하게 제한했다는 사실도 배상 청구의 이유로 소장에 적었다. “쇠창살에 목매는 자살 막아라”
이쑤시개도 안 들어가는
촘촘한 철망을 설치했다
어둡고 우울하고 숨막힌다
되레 자살을 부추긴다 창살에 막혀 먼지가 못 나가
마스크를 쓰고 자기도 한다
참다못한 재소자 16명
1인당 200만원씩 손배소송 교도관들도 “어두워서 시찰에 방해”
재소자들은 철망 설치로 나타난 결과가 국내법과 유엔 피구금자 처우에 관한 최저기준규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 처우에 관한 법은 “(교정시설의) 거실은 수용자가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적정한 수준의 공간과 채광·통풍·난방을 위한 시설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엔 규칙도 “창문은 피구금자가 자연광선으로 독서하거나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큼 넓어야 하며, 인공적인 통풍설비의 유무에도 불구하고 신선한 공기가 들어올 수 있도록 설치돼야 한다”고 기준을 제시한다. 반면 법무부는 최저기준규칙은 강제력 없는 권고안에 불과하며 “안전방충망 설치로 독거수용실 수용자의 자살 기도를 원천적으로 방지해 교정사고를 미연에 예방함으로써 수용자의 생명권을 보장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법 위반이 아님을 주장한다. 양쪽의 지루한 공방만 이어지던 재판은 지난달 30일 재판부가 조만간 원주교도소에 현장검증을 가기로 결정함으로써 전환점을 맞았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464호 법정에서 열린 6차 공판에서 정석원 판사는 “원고들이 불편하다고 억지를 쓰는 것 같지는 않다”며 “의문이 계속 꼬리를 무느니 차라리 내가 직접 가서 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법무부의 주장과는 달리, 자살 방지용 철망이 재소자들에게 많은 불편을 주면서 실제로 자살 방지에 효과가 있는지는 미지수다. 숫자는 ‘아니오’라고 답한다. 법무부 자료를 보면, 철망이 설치되기 전인 2009년 교도소 자살자는 10명이었는데 철망을 설치한 2010년에는 9명이었다가 지난해에는 11명이었다. 3년 동안의 자살자 30명 가운데 지난해 1명을 빼고는 모두 목을 맸다. 일선 교도관들조차 자살 방지용 철망 때문에 되레 어두워진 감방을 시찰하기가 힘들다고 토로한다. 한 일선 교도관은 “감방보다 밝은 복도에서 시찰구를 통해 감방을 들여다보면 어두워서 내부가 잘 보이지 않아 한참을 들여다봐야 해 불편하다”고 말했다. 자살방지용 철망이 재소자 자살을 감시하는 교도관의 업무를 방해하는 역설적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부 교도소는 소장이 직권으로 시찰구 쪽의 철망을 떼어내기도 했다. 법무부는 여전히 철망이 자살 방지에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장복익 법무부 보안과장은 “2008년 16명이던 자살자가 이듬해 10명으로 줄어든 것은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설치와 함께 2009년 전국 6개 교도소에 자살 방지용 철망을 시범운용한 것 등의 효과가 발휘된 것”이라며 “자살률이 사회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우리는 상당히 방어를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울하지 않은 환경이 최고의 자살 예방책
자살 방지용 철망은 지나치게 사고 방지에만 매몰된 법무부 교도행정의 문제점을 있는 그대로 웅변한다. 한국의 교도소는 감방문 경첩에 줄을 걸쳐 누군가 자살을 하면 다른 문의 경첩까지 떼어내고, 나무밥상은 줄을 맬 때 올라가는 용도로 사용된다며 두꺼운 종이로 만든 밥상으로 대체하는 식으로 대응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해남교도소에 수감중인 강의석씨는 지난달 24일 <한겨레> 기자 면회 때 서울구치소에 있던 시절 몸의 무게를 싣기 어려운 종이밥상에서 공부하다 허리 디스크에 걸렸다며 “외부 진료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재소자들과 인권단체 관계자들은 사회와 격리돼 좁은 공간에서 머물러야 하는 자유형의 기본 속성을 고려할 때, 재소자들이 더이상 우울하지 않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최고의 자살 예방책이라고 생각한다.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은 “전국 교정시설에 재소자 299명당 1명의 의사가 있는데 정신과 전문의는 하나도 없다”며 “감옥은 우울증이나 심리적 박탈감을 느끼기 쉬운 환경이니만큼 적극적인 의료대책과 재소자에 대한 인간적 처우, 상담 확대 등 근본적 자살방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과 전문의조차 자살 방지용 철망이 되레 자살을 부추기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경고한다. 상당수 자살의 사전 징후인 우울증 환자에게 강력한 빛을 쪼이는 게 효과가 있음은 학계에서도 입증된 사실이다. 미국 정신의학회는 2005년 광선치료가 우울증 치료의 첫째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광선치료가 기존의 항우울제를 완전히 대체하거나, 적어도 같은 비중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한신경정신과학회 이민수 이사장(고려대 교수)은 일반론임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좁은 공간 내에서 자유를 박탈당하고 구속된 삶을 사는 재소자들의 경우, 갑작스러운 생활환경의 변화, 동료 재소자 및 교도관과의 갈등,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죄책감 또는 억울함 등 많은 요인으로 인해 우울증 등의 기분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태에 덧붙여 충분한 조도가 확보되지 못하는 경우 기존의 기분증상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충분한 빛을 받지 못하는 상황 자체도 우울증, 조울증 등의 기분증상을 발생시킬 수 있다. 기분증상 환자의 자살률은 일반인 자살률에 비해 유의하게 높으므로, 재소자들의 자살 예방을 위해 철망을 통해 빛을 박탈하는 것은 재소자들의 자살 예방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 이번 소송은 한국의 교도행정에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재소자들이 자살을 결심할 때까지 방치한 뒤 마지막 순간에 수건이나 내의를 매달 곳을 찾지 못하도록 하는 게 옳은지, 아니면 자살을 마음먹지 않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좋은지를. 법무부는 철망 설치 사업에 12억3000만원을 썼다고 밝혔다. 대구 대전 해남/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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