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금융비리, 교황 암살 기도설 등
바티칸 내부문서 폭로 잇따라
테데스키 은행장 전격 해임에
교황의 집사 가브리엘레 체포도
누가 왜 흘렸나에 시선 쏠려
“베르토네 국무원장
미국 마피아의 대부 마이클 콜레오네는 자신의 검은 사업체를 완전한 합법사업체로 바꾸려고 바티칸에 접근한다. 재정난을 겪는 바티칸에 재정적 후원을 하며 바티칸은행이 최대 주주로 있는 유럽의 한 부동산업체를 인수하려 한다. 그는 이를 방해하는 바티칸 내부세력과 다른 마피아 패밀리를 제거한다. 자신을 지지하는 추기경이 교황에 오르자 새 사업 인수 승인을 받는다. 하지만 마피아들과의 쟁패 과정에서 사랑하는 딸을 잃고, 신임 교황도 한달 만에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영화 <대부 3>은 마피아와 로마가톨릭교회의 본산인 바티칸의 검은 커넥션을 다룬다. 그 모티브는 1970년대 마피아의 검은돈이 연관된 바티칸의 금융스캔들이다. 대표적인 갱스터 영화의 소재로 쓰일 정도로 극적이었던 이 사건의 파장이 40여년이 지나 다시 일고 있다.
비가노 대주교가 교황에게 보낸 편지
바티칸 당국은 지난 26일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집사인 파올로 가브리엘레(46)를 교황청 비밀문서 불법소지 혐의로 체포해 기소했다. 올해 초 불거진 이른바 ‘바티리크스’ 사건의 연장이다. ‘위키리크스’의 이름을 딴 바티리크스는 바티칸 비밀문서의 유출 및 폭로 사건을 가리킨다. 교황이 외출할 때 우산을 받쳐주는 등 교황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던 가브리엘레의 체포는 이 사건이 바티칸 권력 핵심부와 관련된 것임을 시사한다.
지난 1월26일 이탈리아 텔레비전 <라세테>(La7)는 미국 주재 바티칸대사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가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보낸 서한을 폭로했다. 이 서한은 비가노 대주교가 바티칸 부행정처장으로 재직할 당시 겪었던 부패상을 밝히며, 자신이 이 부패를 청소하려다 주미대사로 강제로 전출됐다는 내용이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부행정처장을 지낸 그는 바티칸 당국이 부풀린 가격으로 외부 회사들과 특혜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부패와 족벌주의, 연고주의의 고리에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바티칸 자금의 투자관리에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바티칸 투자자금 일부가 자신들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이탈리아 은행가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관리하는 두 개의 펀드에 신탁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회는 2009년 12월에 단 한번의 금융거래로 바티칸에 250만달러의 손해를 끼쳤다고 폭로했다.
비가노 대주교는 자신이 이런 부패를 청소하려다 교황의 오른팔이자 바티칸 행정수장인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국무원장에 의해 임기를 2년이나 남기고 주미대사로 전출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편지에서 “교황 성하, 나의 전출은 바티칸의 많은 부처에 뿌리내린 부패상과 권력남용을 청소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좌절과 혼란을 부르고 있습니다”라고 하소연했다.
바티칸 쪽은 ‘내부 문서를 공개한 것에 대해 슬픔’을 느낀다며 보도 방식을 비판했으나, 이 서한이 허위가 아님을 인정했다. 내부문서 폭로는 2탄으로 이어졌다. 2월 초 이탈리아의 한 신문은 이른바 ‘독 펜 메모’라는 것을 폭로했다. 이는 현 교황에 대한 암살 기도가 향후 12개월 내에 있을 가능성을 얘기하며 다음 교황이 누가 돼야 하는지를 공개적으로 추측하던 한 추기경에 대해 불평하던 다른 추기경의 메모이다.
내부문서의 내용도 문제지만, 그 문서의 폭로 시점과 주체에 더 관심이 갔다. 내부문서 폭로는 바티칸이 추기경 22명을 새로 임명하는 추기경단 회의 직전이었다. 2월18일 열린 추기경단 회의에서 임명된 신임 추기경 22명 중 교황 선출권을 가진 80살 이하의 추기경은 18명이었다. 이 중 7명이 이탈리아 출신이었다. 또 그 7명 중 6명은 국무원장인 베르토네 추기경 밑에서 일했던 측근들이다. 교황 선출권을 가진 추기경 120명 중 이탈리아 출신이 25% 이상 됐다. 베르토네는 교황의 신임 추기경 임명에서 핵심적 구실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차기 교황은 베르토네의 주도 아래 이탈리아 출신에게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바티칸 내부에서 추측과 불만들이 터져나왔다. 교황직은 독일 출신인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전임 교황인 폴란드 출신 요한 바오로 2세를 제외하고는 지난 450년 동안 이탈리아 출신들이 독점했다.
이탈리아 언론들은 내부문서 유출은 베르토네를 반대하는 추기경과 대주교들의 반란의 일환이라고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가 2006년에 오른 국무원장직은 전통적으로 외교관 출신 사제들이 임명됐다. 베르토네는 외교 경력이 없고, 영어와 불어도 못하는데도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임명됐다. 그는 현 교황이 바티칸의 교리담당 추기경으로 있을 때 밑에서 일했던 최측근이다. 베르토네의 국무원 쪽에 동정적인 핵심 인사는 <로이터> 통신에 “그들이 베르토네를 제거하기를 원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통신은 베르토네에 대한 반란은 전 국무원장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에 대한 암묵적 지지라며, 그를 이번 문서 유출의 배후로 시사했다. 소다노 추기경은 전임 요한 바오로 2세 밑에서 15년간 봉직했던 베테랑 외교관 출신이다. 베르토네 추기경 쪽의 인사는 “외교통들은 자신들이 바티칸의 적합한 주인이라고 느끼고 있다”고 비꼬았다.
바티칸은행은 마피아 돈세탁 창구였다
내부문서 유출은 국제통 사제 대 국내파 사제들의 권력투쟁에 이어, 바티칸 현대사의 최대 추문인 1970~80년대 마피아 관련 돈세탁 스캔들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도 다시 열었다.
이탈리아 기자 잔루이지 누치는 지난 4월 이 유출된 편지 등을 토대로 교황청 내부의 권력투쟁과 부정비리를 묘사한 <성하>(His Holiness)를 출판해 파문을 키웠다. 바티칸 당국은 지난 3월 유출자 색출을 위한 이례적 조사에 착수했다. 불똥은 바티칸은행으로까지 튀었다. 5월24일 바티칸은행으로 흔히 불리는 종교업무소(IOR) 소장인 에토레 고티 테데스키가 업무 해태를 이유로 전격 해임됐다. 교황의 집사를 문서 유출과 관련해 체포하기 이틀 전이다.
과거 수차례의 금융 스캔들에 휩싸인 바티칸은 6월에 유럽연합의 금융투명성 기준을 충족하는 명단에 들어가기 위해 바티칸은행의 금융투명성 제고작업을 벌이고 있던 시기에 은행장을 전격 해임한 것이다. 그는 즉각 자신은 희생양이라며, 논란을 키웠다. 그는 언론에 “나는 나의 투명성을 위해 대가를 치렀다”며, 자신이 바티칸은행의 금융투명성 제고를 위한 작업을 주도했으나 오히려 희생양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이코노미스트>는 그가 금융투명성 제고를 강하게 밀어붙인 사람으로 평가를 받고 있으며, 국무원장인 베르토네 추기경과의 이견이 있다는 보도는 국무원 쪽이 여전히 금융개선 작업에 소극적이라는 의혹을 양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그는 바티칸은행의 불투명한 금융관행의 중심으로, 그동안 이 은행의 금융투명성 제고작업이 미흡한 배후로 지목되기도 한다. 그는 2009년 바티칸은행장으로 부임했으나, 이 은행은 2010년 이탈리아 당국으로부터 돈세탁 혐의를 받고 3300만달러가 동결되기도 했다. 이 자금 동결은 지난해 풀렸으나, 수사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의 해임이 바티칸 권력투쟁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의견이 상반된다. 베르토네로 대표되는 기존 국무원 쪽의 반격이라는 해석도 있는 반면 반국무원 쪽의 승리라는 견해도 있다. 관측통들은 테데스키가 평소 바티칸은행의 투명성 제고를 추진해 온 것에 대해 이사회가 제동을 건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반면, 테데스키는 베르토네가 데리고 온 사람이고, 베르토네 반대파에서 바티칸은행의 금융관행을 공격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베르토네의 국무원 쪽이 타격을 받았다는 해석도 나온다. 국무원 쪽이 반대세력의 공격을 끊고, 유럽연합의 금융투명성 충족 명단에 가입하려는 개혁의지를 보이기 위해 서둘러 그를 잘랐다는 것이다. 자신은 희생양이라는 테데스키의 주장은 이런 측면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바티칸은행은 1942년 로마가톨릭교회의 재산을 관리하고자 설립됐다. 1990년대에 이르면 해외 전역에 100억달러를 투자한 큰손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마피아, 프리메이슨 등이 결탁되어 돈세탁과 의문의 살인이 줄을 잇는 엄청난 스캔들을 거쳤다. 바티칸은행의 자산 축적은 주로 1968년 미켈레 신도나라는 이탈리아 은행가를 자금운용책으로 고용하면서 본격화됐다. 그는 서양의 오래된 비밀결사인 프리메이슨의 비밀조직 중 하나인 ‘프로파간다 두에’ 혹은 ‘피투’(P2)의 회원이다. 이탈리아 마피아와도 연관을 가진 그는 미국의 최대 마피아인 감비노 패밀리의 마약자금 세탁을 도와주며 바티칸은행에 엄청난 자금을 유입시켰다.
요한 바오로 1세 등 의문의 죽음들
감비노 패밀리는 미국 뉴욕 5대 마피아 패밀리의 하나이자 나중에 마피아 패권을 장악한 갱 조직이다. 영화 <대부>에 나오는 주인공 콜레오네 패밀리의 모델이기도 하다. 신도나는 ‘마부시’라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감비노 패밀리의 마약자금을 세탁해주며, 무려 50%의 수수료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돈세탁은 당시 이탈리아의 최대 민간은행인 방코암브로시아노의 은행장인 로베르토 칼비의 도움을 받았다. 칼비 역시 신도나와 같은 피투 회원이다.
바티칸은행의 돈세탁은 1978년 요한 바오로 1세의 취임으로 드러나며, 바티칸과 이탈리아 당국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 요한 바오로 1세는 취임 33일 만에 급서했다. 그의 돌연사는 암살설을 떠돌게 했다. 공식 사인은 심장마비였으나, 일부 의학전문가들은 폐색전증이나 그가 먹던 약의 부작용이라는 주장도 제기했다. 돈세탁을 도운 방코암브로시아노는 1982년 35억달러 상당의 손실을 보며 파산을 했다. 이 은행의 최대 주주인 바티칸은행의 수장인 폴 마싱커스 추기경은 기소됐다. 방코암브로시아노의 돈세탁은 피투 회원인 필리포 바르발리의 주도로 이뤄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 피투와 그 수장인 리초 젤리는 1970년대 이탈리아의 우익 테러단체에 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싱커스 추기경은 면책특권으로 기소를 면했다. ‘신의 은행가’라고 불리던 로베르토 칼비 방코암브로시아 은행장은 수사가 절정에 오르던 1982년 6월 이탈리아에서 실종됐다. 8일 뒤 런던 금융가의 한 다리 밑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다. 그의 죽음은 애초 자살로 처리됐다가 나중에 런던 경찰에 의해 타살로 다시 수사됐으나, 아직까지도 정확한 사인은 불명이다. 바티칸은행에서 마피아 자금 세탁을 주도했던 신도나는 이 사건이 불거지자 1979년 그 돈세탁의 하수인인 자신의 변호사 조르조 암브로솔리의 살해를 명령했다. 그는 미국 마피아 자금을 세탁한 혐의로 미국 수사당국에 기소되자, 위장 납치극을 벌이며 도피하다가 결국 체포돼 미국으로 압송되어 연방교도소에서 복역했다. 신도나는 다시 살인 혐의로 이탈리아로 송환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커피에 탄 독약을 마시고 독살됐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영향력이 큰 13억 신도의 로마가톨릭교회의 총본산인 바티칸은 2천년의 역사 동안 극단적인 두 얼굴을 보여왔다. 예수의 가르침인 사랑과 화해를 실천하고 전파하는 신성한 교회로서의 모습과 인류 역사의 부패와 암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최고권력기관으로서의 모습이다. 바티칸은 중세와 종교개혁기를 거치면서 극단적인 부패와 암투를 보이면서도, 언제나 사랑과 화해라는 본연의 사명을 위한 자정과 개혁도 이뤄왔다. 이번 문서 유출로 촉발된 바티칸의 내부 분쟁이 갱스터 영화의 또다른 소재를 주는 데 그칠지, 아니면 교회의 더 높은 자정과 개혁으로 도약할지는 아직 진행형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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