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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6.08 20:18 수정 : 2012.06.09 11:59

서울 성동구 응봉동에서 피시 39대를 놓고 피시방 영업을 하는 이천희씨는 하루 14시간씩 직접 가게 일을 본다. 아르바이트 직원을 쓰려면 시간당 5000원씩은 줘야 하는데, 그만한 인건비를 지출할 형편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뉴스분석 왜?
어느 피시방 사장의 한숨
1000원 벌면 넥슨이 266원 챙겨가

▶ 넥슨은 국내 1위의 게임업체다.(매출액 기준) 올해 1분기 실적을 보면 넥슨은 매출액 4361억원, 영업이익 2496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의 절반 이상을 이익으로 가져간다는 뜻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매출액은 46%, 영업이익은 85% 늘었다. 2위인 엔에이치엔 한게임(1972억원)과의 매출액 격차는 2389억원이었다. 넥슨이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하는 사이, 피시방 업주인 ‘응봉동 이씨’와 ‘전농동 최씨’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낮 최고기온이 29도까지 오른 지난 6일 오후 2시, 서울 성동구 응봉동 씨앤에이(C&A) 피시방 내부는 바깥 날씨만큼이나 더웠다. 에어컨은 ‘희망온도 18도’를 향해 냉각팬을 맹렬히 돌렸지만 피시 39대가 내뿜는 열과 이용자 39명의 체온을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피시방은 이미 만석인데도 빈자리를 찾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피시방 ‘사장님’ 이천희(39)씨는 카운터에 놓인 컴퓨터를 두드리며 “이제 곧 자리가 난다”고 손님을 에어컨 앞에 붙잡아뒀다. 이씨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짧은 머리의 중학생 한 명이 하던 게임을 멈추고 이씨 앞으로 다가왔다.

“사장님, 이따가 한가할 때 저 아이스티 한 잔…, 에이 아니에요. 그냥 이거 마실게요.”

중학생이 목격한 것은 땀을 뻘뻘 흘리는 이씨의 모습이었다. 그는 ‘서빙’이 필요한 1000원짜리 아이스티가 사치였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는 듯, 냉장고 문을 열어 포도맛 웰치스를 꺼냈다. 아르바이트 학생 하나 없이 오가는 손님을 혼자 상대하던 이씨가 손사래를 쳤다. “○○아! 아저씨가 아이스티 곧 갖다 줄게, 자리에 가서 조금만 기다려봐.”

경험치, 아이템 덤으로 주는
프리미엄 서비스 이용요금
1000원 벌면 266원 떼가
남은 돈은 인건비, 임대료, 세금

버스 대신 걷고 도시락 싸고
휴일은 1년에 딱 하루이틀
알바 없이 나홀로 하루 14시간

‘고객을 친구처럼, 손님을 가족처럼.’ 응봉동 현대아파트 맞은편 건물 지하 1층의 일부를 빌려 14년째 피시방을 운영해온 이씨가 얻은 교훈이었다.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구름과자’(담배)를 먹는 청소년은 발도 못 붙이게 했고, 총싸움 게임 ‘서든어택’ 등을 하며 욕설을 내뱉거나 괴성을 지르는 고등학생에게는 컴퓨터 전원을 꺼 강제종료라는 최고 레벨의 응징을 가했다. 온라인게임 이용자에게 ‘경험치’ 상실과 전적 피해 등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강제종료는 가장 뼈아픈 순간이다.

“여기는 단골장사예요. 주택가잖아요. 우리가 아마도 성동구에서 가장 작은 피시방일 텐데, 살아남으려면 찾아오는 꼬맹이들과 그냥 친구처럼, 때로는 선생님 역할을 해주며 함께 지내는 거예요.”

응봉동 피시방 4곳의 서바이벌 게임

1990년 현대아파트가 들어선 뒤 이 일대에도 피시방이 하나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터를 닦은 것은 1998년 씨앤에이 피시방이었다.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사태로 서울 강남구 한 백화점 인사교육부에서 내쫓긴 이씨가 피시방을 차리자, 뒤를 이어 피시 40~50대 규모의 네오피시방과 새롬피시방이 생겼다. 2008년에는 락피시방도 개업했다. 자그마한 상권 하나를 놓고 크고 작은 피시방 4곳이 경쟁하는 양상이었다. 네오피시방은 현대아파트 상가 1층이라는 목 좋은 곳을 차지했지만 2005년께 가장 먼저 문을 닫았다. 2009년에는 건물주가 직접 운영하던 새롬도 폐업을 신고했다. 최후까지 살아남은 락피시방은 과연 강자였다. 피시방 요금을 시간당 500원까지 ‘후려치기’ 시작하더니 프린터 사용료 무한공짜라는 파격적 서비스도 제공했다. 제살 깎아먹기였다.

“악착같이 버텼어요. 저는 응봉동에서 태어나 자랐거든요. 피시방 이용료를 안 내리는 대신 출퇴근 교통비에 돈을 쓰지 않았고 점심은 도시락으로 때웠습니다. 아르바이트 학생 인건비(시간당 5000원)도 아꼈어요. 하루 14시간씩, 1년에 하루이틀 쉬고 일했습니다. 그냥 오래 버티는 놈이 살아남는다는 심정이었어요.”

‘응봉동 피시방 서바이벌 게임’의 생존자는 이씨였다. 그는 지난해 6월23일 락피시방을 7800만원에 인수했다. 보증금으로 3000만원을 묻었고, 나머지 4800만원은 피시 55대와 에어컨 등을 넘겨받는 대가로 자신과 경쟁하던 전 주인에게 건넸다. 그게 권리금이었다. 현대아파트 인근 피시방 시장을 독점하게 된 이씨는 부자가 됐을까?

영세 자영업자에 관한 사연이 대개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듯, 이씨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게임계의 ‘블록버스터’라 할 수 있는 ‘디아블로3’이 나오기 전까지는 적자를 겨우 면하는 수준이었다. 이번달에는 디아블로3의 인기에 힘입어 300만원 남짓의 순이익을 얻을 것으로 이씨는 기대하고 있다.

“자영업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1억원 안팎의 자본금 투자해서 매달 300만원 벌면 적다고 할 수 없잖아요. 그런데 저는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피시방에 매달려 있어요. 또 14년간 피시방을 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겨 웬만한 컴퓨터 본체나 주변기기 수리는 직접 합니다.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주는 것처럼 시간당 5000원씩 인건비를 계산하거나 컴퓨터 등 수리비를 별도의 비용으로 잡으면 피시방 장사는 정말 답 안 나오는 거죠.”

피시방 손익계산서만 들여다보면 한숨부터 나오는 이씨다. 버스비 1000원을 아끼려 걸어다니는 그가 줄이지 못하는 지출항목이 있다. ‘프리미엄 서비스 이용요금’이다. 이 돈은 피시방 업주가 넥슨이나 엔씨소프트, 네오위즈게임즈, 엔에이치엔(NHN) 한게임 등 대형 게임업체에 다달이 내야 하는 돈이다. 프리미엄 서비스 요금은 이씨의 ‘분노 게이지’를 올리는 원흉이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넥슨은 ‘슈퍼갑’…한해 영업이익만 3395억원

“우리 피시방 요금표 보셨죠. 기준 이용요금은 시간당 1000원이지만 청소년 요금제를 적용하면 2000원에 3시간을 줍니다. 시간당 667원꼴이에요. 그런데 여기 보세요. 39명 가운데 프린터 쓰려고 온 여자 손님 한 명을 뺀 나머지 38명이 ‘서든어택’이나 ‘디아블로3’, ‘슬러거’ 등 프리미엄 서비스 게임을 하고 있잖아요.”

이씨는 카운터 모니터를 가리켰다. 모니터는 프리미엄 서비스 이용 피시를 빨간색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프리미엄 서비스는 많은 게임 이용자를 피시방으로 유혹하는 ‘미끼’다. 넥슨이 서비스하는 서든어택의 경우 피시방 프리미엄 서비스를 적용받으면 게임 캐릭터의 경험치를 최대 2.5배 더 받을 수 있다. 또한 피시방 전용 고급형 총기와 섬광탄, 연막탄, 예비 탄창 등 추가 아이템도 사용할 수 있다. 네오위즈의 야구게임 ‘슬러거’도 마찬가지다. 자신만의 야구팀을 꾸려 다른 이용자와 맞붙는 슬러거는 프리미엄 서비스 혜택을 활용하면 추가로 선수를 선발할 수 있는 ‘보너스 드래프트권’을 얻을 수 있고, 경기에서 타자와 투수의 능력치를 끌어올려주는 장비도 지급받는다. ‘집에도 초고속 인터넷이 설치돼 있는데 왜 굳이 피시방을 찾느냐’는 이야기는 프리미엄 서비스의 맛을 모르는 소리인 것이다.

문제는 각 게임사가 피시방 업주에게 선불로 받아가는 프리미엄 서비스 이용요금이다. 넥슨의 게임별 정량제 요금표를 보면 최소 판매단위인 300시간에 8만원, 최대 4000시간에 92만6000원이다. 엔씨소프트나 네오위즈 등 대다수 게임사의 프리미엄 서비스 요금도 비슷하다. 넥슨의 300시간 요금제를 쓰는 피시방의 경우 시간당 266원을 게임업체에 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금 보시면 알겠지만 피시방의 손님 대다수가 2000원 내고 3시간을 이용하는 청소년입니다. 손님에게 시간당 667원을 받아 이 가운데 넥슨에 266원을 주는 거예요. 내 손에 남는 건 시간당 400원꼴입니다. 하루 14시간씩 일해서 400원 벌면 여기서 임대료 내야죠, 전기세 나가죠, 인터넷 전용선 요금에 장비 교체비용까지 댑니다. 그런데 게임사는 게임 하나 만들어놓고 1년이든 10년이든 전국 약 2만개 피시방에서 시간당 266원을 가져간다, 이 말입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발간한 <2011 대한민국 게임백서>(2010년 통계)를 보면 전국 1만9014개 피시방의 주간 평균 시간당 이용요금은 900원이 조금 넘었다(913.4원·표 참조). 게임업체의 프리미엄 서비스 요금은 구매량에 따라 시간당 220~299원에 이른다. 피시방의 고정비용 가운데 프리미엄 서비스 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개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도 있다. 피시방 업주의 모임인 한국인터넷문화컨텐츠협동조합이 전국 7000여개 회원 피시방을 상대로 자체 조사한 결과를 보면(피시방 이용요금을 시간당 1000원으로 표준화했을 때), 게임사에 치르는 프리미엄 서비스 비용(22~30%)은 임대료(15%)와 인건비(20%), 각종 세금(15%)은 물론 경우에 따라 업주 순이익(20~25%)을 뛰어넘었다.

서든어택 이외에도 ‘메이플스토리’와 ‘던전 앤 파이터’, ‘카트라이더’ 등 유명 게임을 서비스하는 국내 최대의 게임업체 넥슨이 지난해 피시방과 게임 이용자를 상대로 프리미엄 서비스나 아이템을 팔아 얻은 매출액은 모두 8770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영업이익만 3395억원에 이르렀다(2011년 감사보고서 기준). 갑을관계로 따지면 프리미엄 서비스 구매자인 피시방이 갑이라야 맞는데, 매출 규모의 엄청난 격차는 이 둘의 권력관계를 역전시켰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ㅋ피시방을 운영하는 최아무개씨는 지난 6일 넥슨을 가리켜 ‘슈퍼갑’이라고 불렀다.

“프리미엄 서비스라는 게 가치에 견줘볼 때 턱없이 비싼 거죠. 게임사는 피시방이 돈 낸 시간만큼 아이피(IP) 열어주고 안 내면 차단하고, 그게 전부잖아요. 지금까지 그렇게 쉽게 돈을 벌었으면 이제 요금 좀 내려야 합니다. 피시방의 불만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고요.”

실시간 공개 안하는 사용시간…오과금 사례도

최씨가 말한 ‘불만’은 최근 피시방 업계와 넥슨 사이의 프리미엄 서비스 이용요금 분쟁을 통해 알려졌다. 피시방 업주들은 국내 게임업체 가운데 가장 많은 게임을 서비스하는 넥슨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피시방 쪽에 프리미엄 서비스 이용 내역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프리미엄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집이나 사무실 등에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게임조차 피시방에서는 할 수 없도록 차단했다며 넥슨의 불공정 행위를 문제삼았다. 지난달 30일에는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넥슨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삭발식까지 치렀다.

최승재 한국인터넷문화컨텐츠협동조합 이사장은 지난 7일 “엔씨소프트나 네오위즈 등 다른 업체의 경우 피시방 업주가 온라인을 통해 어느 피시가 어떤 게임의 프리미엄 서비스를 얼마 동안 쓰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반면, 넥슨은 이런 구체적 사용내역을 그때그때 제공하지 않는다”며 “지난해부터 많은 회원 피시방에서 넥슨의 프리미엄 서비스 이용시간이 지나치게 빨리 차감된다는 민원이 접수돼 피시방 폐쇄회로티브이(CCTV) 등을 통해 확인해본 결과 잘못된 과금 사례가 많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6일 전농동 ㅋ피시방의 최씨가 보여준 넥슨의 프리미엄 서비스 사용내역 확인 프로그램인 ‘마이 피시방’ 누리집을 보면, 사용 현황 및 사용량 조회는 하루가 지나야 가능했다. 피시방 업계에서는 넥슨의 이런 태도가 게임업체에 대한 기본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여기에 실제 사용량보다 과다하게 시간이 차감된 사례가 발견됐으니, 넥슨에 대한 피시방의 불만을 전혀 근거 없다고 하기 어려웠다.

넥슨 쪽에서는 피시방 업계의 불만에 좀더 귀를 기울이겠다는 태도다. 이수현 넥슨 피아르(PR)기획팀장은 7일 “잘못된 과금 사례에 대해서는 이미 보상을 했다”며 “사용내역 확인시스템도 피시방 업계의 불만을 최대한 수렴해 바꿔나갈 부분이 있다면 신속히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프리미엄 서비스 이용요금의 책정 기준과 관련해서도 이 팀장은 “넥슨은 지난 2005년 이후 프리미엄 서비스 요금을 한번도 올리지 않았다”며 “피시방 업계의 경영이 과거와 달리 어렵다는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프리미엄 서비스의 내용을 좀더 강화해 더 많은 이용자가 피시방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프리미엄 서비스 이용요금의 책정 기준을 두고서는 “게임 콘텐츠 이용요금이라 할 수 있는 프리미엄 서비스 가격의 결정요인, 곧 원가를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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