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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7.27 20:16 수정 : 2012.07.27 21:45

지난 24일 부산 해운대에서 촬영한 사진(왼쪽). 원으로 표시한 부분이 19일치 <조선일보> 1면에 실렸던 사진과 다르다. <조선일보> 사진에는 철거되기 전의 아파트가 남아 있고 새로 짓고 있는 고층 빌딩은 보이지 않는다.

[토요판] 뉴스분석 왜?〈조선일보〉1면 사진조작

▶ <조선일보> 1면에 실린 사진이 조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보인 사진기자들의 반응은 비슷했습니다. “황당하고 부끄럽다.” 그동안 진실하지 못한 사진을 보도해온 관행이 있어왔던 것도 사실이라며 자성하는 목소리도 흘러 나왔습니다. <조선일보>만의 문제가 아니겠지요. 역사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언론의 생명이 진실보도라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사진 조작에 무감각하다면 이미 언론이 아닙니다.

2면에 실은 사과문에는
‘정식 기자 아니다’ 강조
조선일보쪽 해명은
“개인 윤리의식 가장 문제”

평소 자사 기자처럼 다루다가
회사가 책임 회피하면
언론 공신력 포기하는 꼴

신문에서 1면은 뉴스 전쟁터의 최전선이다. 하루에 쏟아지는 수많은 기사 중 가장 중요한 뉴스를 담은 기사 몇 개만 실린다. 신문사는 독자의 시선이 가장 먼저 머무는 왼쪽 상단, 1면 머리(톱)에 그날의 뉴스 중 가장 독자가 관심 가질 만한 기사를 배치한다. 편집국 기자들을 대표하는 간부들은 다음날 지면에 어떤 기사를 쓸 것인지, 기사를 지면 어디에 배치할지를 두고 치열한 ‘판단’의 절차를 거친다.

지난 18일 태풍 ‘카눈’은 한반도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튿날인 19일 아침 <조선일보>는 1면 왼쪽 상단에 ‘해운대의 성난 파도…오늘 태풍 ‘카눈’ 수도권 상륙’이라는 제목으로 18일 오후 부산 해운대 앞바다 사진을 실었다. 부산 주재 김아무개 기자의 단독사진이었다. <경향신문>과 <한국일보>도 통신사인 <연합뉴스>에서 받아 제주도 바다 사진을 실었지만 주목도는 떨어졌다. 그날 아침 신문 1면의 승자는 <조선일보>였다.

부산의 동료 기자들이 격하게 반응한 이유

그러나 이날 오후부터 상황은 반전되기 시작했다. 부산에 사는 한 독자가 <동아일보>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전날 부산 해운대에 <조선일보> 사진만큼 파도가 높게 일지 않았고, 심지어 물에서 노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소속의 사진부 기자가 사진의 촬영 정보가 담긴 메타데이터를 확인했다. 그가 말했다. “조선닷컴에 신문용으로 자르기 전의 사진이 올라가 있길래 내려받아 사진 편집 프로그램으로 메타정보를 봤다. 보통 사진은 그렇게 해도 정보가 안 나오는데 이 사진은 다 나오더라.”

메타데이터에 이 사진은 2009년 8월9일 오후 2시16분에 니콘 디(D)3카메라로 찍힌 것으로 표시돼 있었다. <동아일보>는 즉시 인터넷을 통해 <조선일보> 사진이 조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기사를 냈다.

이튿날인 20일 <조선일보> 2면에는 ‘어제 실린 A1면 사진 독자들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1단 기사가 실렸다. “사진을 촬영한 김아무개 기자는 프리랜서로서 보수를 지급받고 있습니다…자신이 3년 전 같은 장소에서 찍었던 사진을 본사에 전송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사진설명 역시 18일 촬영한 것처럼 허위로 작성해 보냈습니다.”

20일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 기자는 이런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사진기자로서 욕심이 있었다. 직접 가서 사진을 찍긴 했지만, 사진 초점이 맞지 않아 노트북에 저장해 둔 3년 전 사진을 꺼내 의도적으로 사진설명을 허위로 작성해 보냈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조선일보>의 최순호 사진부장은 끝까지 김 기자의 말을 믿었다고 했다. “어떤 데스크가 메타데이터를 일일이 확인하나? 기사가 나간 날 아침부터 이런저런 말이 들리길래 김 기자에게 전화해 물어봤다. 서너 차례 통화했는데 카메라 세팅값이 잘못돼서 (메타정보가) 그렇다며 당일 찍은 거라고 하더라. 그러다가 (김 기자가) 밤늦게 (잘못을) 인정하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사진 조작이 사실로 드러나자 김 기자와 함께 일하던 타사의 부산 주재 동료 사진기자들도 당혹스러워했다. 특히 <조선일보>의 사과문에 쓰인 ‘프리랜서’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들은 모두 김 기자를 ‘<조선일보> 기자’로 불렀다. 24일 부산에서 만난 한 통신사 주재 기자의 말이다. “김 선배를 프리랜서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김 선배는 <조선일보> 스티커를 붙인 카메라를 들고 <조선일보> 차량을 타고 다녔다. 19일에도 김 선배와 부산 남구 여성회관에 왔던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 취재 현장에 같이 있었다.”

부산사진기자협회장인 <국제신문>의 강덕철 사진부장은 김 기자를 ‘동료기자’라고 못박았다. 다른 기자들이 그렇듯 제한된 취재처에서 다른 언론사를 대신해 대표로 사진을 찍는 ‘풀’을 하고, 부산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사건·사고 현장에 그가 항상 함께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중앙일간지의 한 주재 기자는 “울산 자동차 집회 때 같이 다니곤 했는데 보통 자기 차를 타고 다니지만 조선일보사 차량도 이용했다”며 “발품 팔아서 사진을 많이 찍던 기자였다”고 말했다.

사진가들 “기자와 데스크 양쪽 모두 책임”

지난 20일 〈조선일보〉 2면에 실린 사과기사.
김 기자는 <조선일보>에서만 15년을 일했다. 1997년부터 2007년까지는 <조선일보> 연봉계약직 기자로, 2007년부터는 <조선일보>에만 보도사진을 공급하는 ‘전속계약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김 기자는 24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2007년 회사에서 조선영상미디어(출판사진을 담당하는 자회사)에 갈지 아니면 프리랜서를 할지 묻길래 프리랜서를 선택했다”며 “(실적에 따라 급여를 받는) 프리랜서는 뛴 만큼 받으니까 근무할 때보다 (보수가) 나았다”고 말했다.

고용 형태로만 보면 김 기자는 <조선일보> 직원이 아니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평소 김 기자를 정식 사진기자인 것처럼 지면에서 다루다가 정작 문제가 터지자 프리랜서임을 내세우며 개인의 잘못 뒤에 숨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세계적인 다큐 사진 그룹 ‘매그넘’의 한국 대행사인 ‘한국매그넘에이전트’의 이기명 디렉터의 말이다.

“그는 프리랜서지만 <조선일보>를 대신해서 취재를 해왔고, 그의 사진 역시 조선일보 편집시스템을 통해 보도됐다. 기자와 조선일보 데스크 양쪽 모두의 책임이 있다. 최종 책임자인 편집국장도 책임져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23일 한국사진기자협회는 ‘조선일보 사진조작에 대한 협회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냈다. 이 협회는 프리랜서 기자의 확대나 아웃소싱 등의 고용 구조가 진실 보도를 생명으로 하는 사진기자의 윤리의식, 책임감 등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2월 일간지 가운데 최초로 사진부 전체를 <티브이조선>의 자회사인 조선영상비전으로 아웃소싱했다. 협회는 아웃소싱 직후 조선일보 사진기자들을 한국사진기자협회에서 제명했다.

<조선일보>는 외국 언론사도 정식 스태프 외에 프리랜서, 스트링어(비상근 지방통신원) 등 기자들과 다양한 고용관계를 맺고 있다며, 이번 사건은 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 기자 개인의 윤리문제가 더 앞서 있다고 반박했다. 고용 형태는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각 회사가 결정하는 문제이지, 이번 사진 조작과는 상관없는 비판이라는 것이다. 최순호 사진부장이 말했다.

“우리는 이 문제가 중대한 사안이자 기자 윤리 차원에서 도저히 발생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 고백(사과)했다. (과거) 모든 언론이 잘못한 것에 대해 반성이 있었나?”

<조선일보> 인사부 관계자는 편집 간부에 대한 징계 논의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경영기획실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현재 진상을 조사중이며 책임에 따라 후속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의 메타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데스크와 편집자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아사히> 산호초 사진 조작 사건에서 배울 점

외국에서는 사진 조작 사건으로 인해 사장이 사임하고 편집국장이 경질되기도 했다. 1989년 4월20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1면에 ‘산호를 오염시킨 케이(K)·와이(Y)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사진을 게재했다. 이 신문의 혼다 기자는 세계 최대 산호군락이 자라는 오키나와 이시가키섬 수중산호를 촬영하기 위해 바닷속으로 들어갔더니 산호초에는 케이, 와이 등의 낙서가 그려져 있었다며 그는 신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동안 말을 잃었다. 후세 사람들이 볼 때 1980년대 일본인의 기념비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정신의 빈곤, 황폐한 마음… 도대체 케이·와이는 누구인가?”

하지만 취재 당시 산호초를 안내한 현지 다이버가 기자가 인위적으로 케이와 와이를 산호초에 새긴 사실을 증언하면서 조작 사실이 드러났다. <아사히신문>은 5월19일치 1면과 사설에 사과문을 싣고 3면을 털어 조작 사진과 함께 자체 조사 결과를 설명했다. 히토쓰야나기 도이치로 사장이 사임했고, 전무 등 4명은 감봉 1개월, 도쿄 본사 편집국장 이토 구니오는 경질됐다. 사진기자 혼다에게는 퇴사 처분이 내려졌고 동행 취재한 무라노 기자도 정직 3개월을 받았다.

“김 기자가 민형사상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한 결과겠지만, 신문사가 이번 사건에 책임이 없다는 건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것이다.”

오승환 경성대 교수(사진학)는 변화하는 사진기자 고용형태에 대한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기자는 원고료로 보수를 받는 만큼 돈만 추구할 우려가 큰 게 당연하다. 그래서 프리랜서가 많은 외국에선 역설적으로 기자 윤리를 강조한다. 회사 차원에서 기자 윤리를 교육할 책임이 있는 거다. 프리랜서 기자에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기자 개인에게 책임을 지운다면 언론으로서 어떻게 공신력을 갖겠나?”

24일 김 기자는 사진 관련한 생각을 아예 잊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조선일보>는 그를 회사 직원이 아닌 프리랜서라며 법적인 책임을 묻겠다고 몰아붙였지만, 그는 <조선일보>에 대해서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나 때문에 회사가 큰 피해를 입었다. 조선일보와 독자께 백배사죄해야 할 일이다. 다시 먹고살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다. 전라도 산에 들어와 있으니 찾지 마라….”

부산/글·사진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 사진 조작의 과거

멋진 합성, 결과는 대망신

사진 조작은 언론의 ‘불편한 진실’이자 ‘오래된 역사’다. 사진 조작은 연출 사진, 사진 조작, 사진 설명 조작 등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사진을 찍기 전에 고의로 연출해 촬영하는 경우도 조작에 해당한다. 2008년 7월5일 <중앙일보>는 ‘미국산 쇠고기 1인분에 1700원’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 식당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 2명의 여성 사진을 보도했다. 하지만 이 사진이 자사 기자와 인턴기자가 고기를 먹는 장면을 연출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미 찍힌 사진에 다른 이미지를 합성하거나 추가하는 경우도 있다. 1996년 5월23일 <조선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는 북한 공군 이철수 대위가 미그19 공군기를 조종해 수원공항에 귀순한 흑백 사진에 푸른 배경을 넣거나 흰 구름을 넣었다. 비행기와 귀순 북한 장교도 컬러로 처리했다. 1994년 6월2일치 <한겨레21>도 편집장 칼럼에 덧붙인 작은 사진에 시베리아 벌목장 전경과 현장 취재기자의 모습을 합성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2010년 11월23일 <조선일보>는 북한의 공격으로 인천시 연평도에 포탄이 피어오르는 장면을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인 포토샵으로 손을 봐 내보냈다. 사태의 긴박성을 강조하기 위해 연기를 심할 정도로 검게 표현한 것이다. 디지털카메라 시대가 되면서 색 보정 등은 인쇄 전 필수 작업으로 자리잡았다.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을 어느 정도 사용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해서 논란이 지속중이다.

이번 <조선일보> 사건처럼 사건의 실체와 다른 설명을 달아 왜곡하는 것도 조작이다. 1994년 5월30일 <한국일보>는 북한 벌목공들의 러시아 벌목 현장을 보도하면서, 사진 속 인물을 ‘북한 벌목공’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들은 기자들을 현지로 안내한 고려인 안내원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설명은 제목만큼 기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사진설명을 잘못하는 것 역시 결과적으로 사진을 직접 왜곡한 것과 같은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설명은 이미지가 주지 않는 정보를 전달해 사진의 이해를 완성시키는 것이 원칙이다.

통신사 제공 사진이나 사진기자들끼리 공동사진단을 구성해 찍은 사진도 자사 기자가 찍은 것처럼 출처를 달아 보도해선 안 된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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