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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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하종강-공지영 ‘의자놀이’ 논쟁
▶ 공지영 작가는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명이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문제를 다룬 그의 ‘첫 르포르타주’ <의자놀이>가 출간과 함께 뜻하지 않은 논란에 휩싸였다. 본문에서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의 칼럼을 다소 ‘부주의하게’(혹은 책의 일반적 인용 사례와 달리) 인용한 것이 문제였다. 8월 한달간 트위터의 타임라인을 지배한 ‘의자놀이 논란’을 재구성했다.
당신은 공지영 작가나 진중권 동양대 교수(교양학부)의 팬이다. 노동문제, 특히 쌍용자동차 파업 사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일 수 있고, 어떤 식으로든 출판업계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일지 모른다. 그 어느 쪽도 아니라면 그냥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 이상 스마트폰을 ‘톡’ 두드려 파랑새를 호출하는 사람, 세상 돌아가는 일에 남다른 관심을 지닌 뉴스 소비자라고 치자.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의자놀이 논란’에 대해 한번쯤 들어봤을 가능성이 높다. ‘공지영-하종강 논란’으로도 불리고, 그냥 ‘공지영 표절 시비’로 불리기도 한다.
8월 한달 내내 트위터를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 사건, 곧 의자놀이 논란의 시작은 이달 초 출판사 휴머니스트에 도착한 한통의 전자우편에서 비롯했다. 아니,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공지영 작가의 ‘첫 르포르타주’ <의자놀이> 출간에서 시작됐다고 보는 게 맞다. <의자놀이>는 ‘쌍용자동차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2009년 4월8일 쌍용자동차 사쪽의 대규모 정리해고와 뒤이은 노조의 옥쇄파업, 경찰의 폭력진압 문제를 다룬 르포 성격의 에세이다.
하종강-이선옥의 문제제기로 시작<의자놀이>는 지난 6일 출간과 동시에 화제를 모았다.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도가니> 등을 통해 모두 1000만권 이상의 책을 판 공지영 작가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게다가 그 책이 소설이 아니라 공 작가가 직접 취재한 쌍용자동차 현장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랬다. <의자놀이>는 출간과 동시에 각 서점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24일 현재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는 베스트셀러 전체 1위를 기록중이다. 전체 길이 171쪽(본문) 분량의 얇은 책 <의자놀이>가 대중적 관심을 받은 또다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책 제작 및 판매가 곧 공지영 작가 등의 ‘재능기부’라는 사실에 있었다. 공 작가와 출판사 휴머니스트는 책 표지의 안쪽 날개면 등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 책은 여러 사람의 자발적인 재능기부로 만들어졌으며, 인세와 판매 수익금 전액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후원금으로 기부됩니다.” 여기서 첫번째 논란이 시작된다. 바로 ‘표절이냐, 아니냐’다. 저자와 출판사의 안내글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공 작가는 <의자놀이>를 집필하며 쌍용자동차 파업 사태와 관련한 많은 신문 기사와 칼럼, 방송 인터뷰 등을 ‘참고’하거나 ‘인용’했다. 그중에는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의 신문 칼럼도 있었다. 하종강 학장은 지난 4월26일치 <경향신문>에 기고한 ‘고통을 외면한 사회는 불행하다’ 제목의 칼럼에서 이선옥 르포 작가의 동의 아래 그의 글을 일부 ‘차용’했다. 그러니까 공 작가는, 이 작가의 르포를 차용한 하 학장의 칼럼을 인용한 것이다. 해당 부분은 책 22~24쪽이다. <의자놀이>(1쇄)를 찬찬히 뜯어본 사람이라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 책 22~24쪽에는 인용 표시가 없다. 책의 맨 뒷면 ‘출처 및 참고자료’ 페이지에 밝힌 것이 전부다. 반면 32~35쪽에 옮겨놓은 정혜신 박사, 정관용 시사평론가 인터뷰, 58~59쪽에 소개된 쌍용자동차 노동자 출신 이창근씨의 <경향신문> 칼럼, 71~72쪽의 <조선일보> 기사 등은 한눈에 보더라도 인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들여쓰기와 함께 인용 대목 앞이나 뒤에 상세 출처를 소개했다. 당사자인 하종강 학장과 이선옥 작가는 이 부분을 문제 삼았다. 하 학장 등은 지난 7일 밤 휴머니스트 쪽에 항의의 뜻을 담은 전자우편을 보냈다. 그들은 여기서 “(공지영 작가는) 다른 글들을 인용할 때와 달리 하종강의 칼럼 중 적지 않은 분량을 인용하면서 본문에는 출처를 명기하지 않고 책 맨 뒤에 간단히 언급했는데, 본문과 출처를 꼼꼼하게 대조해가며 읽지 않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 글을 공지영씨의 글이라고 오해할 수밖에 없다”며 “공지영씨는 책을 쓰기 전 쌍용차와 관련된 자료들을 광범위하게 섭렵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자신이 인용한 적지 않은 분량의 글이 (하종강이 차용한) 이선옥의 글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몰랐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그는 출판사 쪽에 △책에서 문제가 된 하종강의 글과 이선옥의 글을 삭제해 줄 것 △제작된 책의 배포는 중지할 것 △이미 배포된 책은 가능한 한 회수할 것 등을 요구했다.
‘의자놀이 논란’의 두 당사자인 공지영 작가(왼쪽)와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된 공 작가의 신간 <의자놀이>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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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놀이’ 인용방식 논란
트위터 논객들이 총동원돼
‘문화권력 vs 무명 창작 노동자’
‘노동없는 노동운동 폐해’ 등의
논쟁으로까지 커지고 말았다 ‘소꿉장난’ 이야기 들은 고종석
인세문제를 제기한 주호민
진중권에게 블록당한 한윤형 등
유탄을 맞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출판사쪽의 사과, 공지영의 반격
여기까지만 보면 논란의 맥락은 사실 간단했다. 하나가 공지영 작가의 하종강 학장 칼럼 인용 방식에 대한 문제라면, 다른 하나는 하 학장 쪽 요구 수준의 적절성 여부였다. 공 작가가 의도적으로 인용 표시를 하지 않았다면 이는 ‘법적 책임’을 따져야 할 문제였고, 부주의에서 비롯한 단순 실수였다면 ‘사과’로 끝낼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양쪽 당사자끼리 전화통화로든 아니면 직접 만나서든 풀어야 할, 또 충분히 풀 수 있을 만한 사안이었던 이 문제는 이튿날인 8일부터 공지영 작가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반격’을 시도하면서부터 커졌다. 양쪽의 문제만이 아니라 트위터를 찾는 불특정 다수의 관심사가 된 것이다. 공 작가의 트위터는 이런 내용이었다. “언제나 적은 우리 내부에 있다. 내가 너무 단순한가? 정말 무섭다. 겉으로는 위선을 떨고 다니겠지…. 내면으로는 온갖 명예욕과 영웅심 그리고 시기심에 사로잡혀 있는 그들은 남의 헌신을 믿지 않는다. 자신들이 진심인 적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헐!!” 같은 날, 그러니까 공 작가의 트위터 발언 직후, 하종강 학장 쪽은 이와 별개로 휴머니스트 쪽과 만나 ‘사과’를 들었다. 대신 자신들의 요구 수준도 낮췄다. 양쪽이 최종적으로 합의한 내용은 “배포된 책을 회수·수정하지 않되, 그러한 문제제기가 있었다는 것에 대해 저자나 출판사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새로 제작하는 책에서는 문제가 된 글을 삭제하고 그 사정을 설명하는 문구를 명기한다”는 것이었다. 하 학장 쪽이 이런 내용의 두번째 메일을 출판사에 보낸 것이 이날 자정께, 출판사 쪽으로부터 “어려운 결정 내려주셔서 고맙다”는 답장을 받은 것은 9일 오전이었다. 그사이에도 공 작가의 트위터 활동은 이어졌다. 그는 ‘내부의 적’을 비판한 의자놀이 논란 관련 첫 트위트 글에 이어 연이어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냈다. “오늘(8일) <의자놀이> 멘션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따스한 마음들이 모이니 저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들의 이런 진심으로 사소한 방해들쯤 뻥!! 차버리겠습니다.” “어제 밤을 새워 교정한 원고 방금 출판사로 보냈습니다. 오늘 수정작업을 거쳐 e북은 내일 나올 것이고 오늘 교정은 2쇄부터 반영됩니다. (크게 바뀐 것은 없으니 안심하셔요…인용문만 제 글로 대치했어요. 제 생각엔 제 글이 더 나은 듯 쓩 ==33)” 9일부터는 하종강 학장 쪽에서도 트위트 글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하종강 학장은 공 작가의 연이은 트위트 반격에 맞서 “거대한 문화권력에 맞서, 힘없는 르포 작가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할 듯”이라고 맞받았다. 그때부터 논란은 트위터에서 활동하는 지식인, 언론인, 논객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문화권력 vs 힘없는 창작 노동자’, ‘노동 없는 노동운동의 폐해’에 관한 논쟁으로까지 차츰 커졌다. 우선 고종석 언론인은 지난 9일 “공지영의 첫 트위트는 제3자가 봐도 무례하고 도발적”이라며 “공지영의 단점 하나는 자신의 힘을, 자신의 발언이 지닌 힘을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공 작가에게 하종강·이선옥에 대한 사과를 촉구했다가 공 작가의 “싫습니다. 선배” 멘션에 가로막혀 “공지영-하종강 케이스에 대한 본 법정의 판결을 무효화(한다)”며 퇴장했다. 공 작가의 “싫습니다. 선배”는 이후 트위터 유행어로 자리잡았다. 대신 고종석 언론인은 트위터 이용자한테서 “공지영하고 소꿉장난하나”라며 비난을 받았다. 글자수 압박, 감정싸움 비화될 가능성 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같은 날 “당사자들끼리 해결할 문제도 일단 트위터에 올라오면 해프닝이 되어버린다”면서도 “두 사람 사이에는 묵인되는 일이 하필 쌍차(쌍용자동차) 문제 널리 알리려는 작가의 자원봉사 글쓰기에 트집을 잡는다는 것은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공 작가에게는 “좋은 일 하셨으니 작은 일은 잘 처리해서 넘기시길. 언제나 진심은 누군가 알아주는 법”이라며 응원의 트위트 글을 보냈다. 이 교수의 이런 논리도 역풍을 몰고 왔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를 도와야 한다는 ‘(공지영의) 대의’를 위해서라면, 또다른 노동자인 이름 없는 르포 작가(이선옥)의 권리는 배제해도 상관없냐는 반격이었다. 의자놀이 논란의 유탄을 맞는 사람도 생겼다. 웹툰 작가 주호민씨다. 트위터에서 의자놀이 논란이 한창 뜨겁던 지난 21일 주씨는 휴머니스트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휴머니스트는 책 잘 팔리면 삽화 작업한 아내에게 고료 좀 지급했으면 좋겠는데. 원고는 작년에 넘겼는데 아직도 안 주는군.” “노동자를 위한 책을 내려면 자신이 쓰는 노동자부터 돌아봅시다.” 트위터에서 주씨의 멘션이 퍼지자 공지영 작가는 주씨에게 “이 글을 쓰신 분도 리트위트한 분도 너무들 한다”며 “<의자놀이> 발간했다고 출판사까지 곤혹을 당하면 이제 앞으로 누가 이런 일을 하겠나”라며 불편한 트위트를 날렸다. 심지어 “내가 (대신) 받아들이겠다”고까지 했다. 진중권 교수도 “휴머니스트에서 저자 인세 떼어먹었다는 이야기는 한번도 들어본 적 없다”며 “도대체 이런거 아르티(RT)해가며 정의감을 불태우는 그 사람들의 성욕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주씨는 결국 “내가 깊은 고민 없이 글을 올렸다”며 사과로 소동을 끝냈다. 진중권 교수는 각종 이슈와 담론 관련 비평을 싣는 팀블로그 ‘리트머스’에서 함께 활동해온 인터넷 논객 한윤형씨(<미디어스> 기자)와 주씨의 트위트 글을 놓고 출판계 관행에 대한 논쟁을 벌이다 갈등을 빚어 한씨를 트위터에서 차단하기도 했다. 이것이 ‘진중권, 한윤형 블록 사건’이다. 의자놀이 논란은 24일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논란의 핵심 당사자로 ‘활약’한 진중권 교수는 23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공지영-하종강-이선옥을 둘러싼 에스엔에스(SNS) 패싸움의 바탕에도 ‘쌍용차’ 문제에 접근하는 시각의 차이랄까, 관점의 차이랄까… 하는 게 깔려 있죠. 그 개싸움 속에서도 그나마 살릴 가치가 있는 유일한 논점이랄까”라고 정리했다. 물론 그가 유일한 논점이라고 밝힌 쌍용차 문제에 대한 토론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의자놀이 논란이 남긴 결과가 있다면 ‘진 교수의 한윤형 블록’과 ‘주호민 작가의 뜬금없는 사과’, 공지영 작가가 남긴 ‘싫습니다. 선배’라는 유행어가 전부였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애초부터 의자놀이 논란에 참여한 각 주체가 출판계 현실이나 노동운동의 방향에 대한 논쟁 등에 관한 깊이있는 토론을 하고자 했다면 트위터가 아니라 세미나 등 공적인 토론 공간으로 나왔어야 했다”며 “140자라는 글자 수의 압박이 있는 트위터란 공간은 링과 같아서 논쟁을 시작하면 과격하거나 자극적 표현이 난무하는 감정싸움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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