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용산구청 옥상에서 바라본 용산 미군기지. 이곳에서 끝에 보이는 한강로 용산국제업무지구의 초고층 건물까지 폭 1.5㎞, 남북 방향으론 남산에서 이촌동까지 3㎞ 정도가 용산국가공원으로 조성된다.
|
[토요판 / 뉴스분석 왜?] 용산의 봄은 오는가
▶ “급속한 개발로 땅이 모두 잠식당하기 전에 대규모 공원 부지를 설정해 놓아야 한다.” 1850년대 미국 뉴욕에서 공원 캠페인을 벌인 윌리엄 브라이언트 <뉴욕 이브닝포스트> 편집장의 말처럼, 공원은 도시의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다. 이런 철학에 기대 뉴욕 센트럴파크, 런던의 하이드파크, 밴쿠버의 스탠리파크 등 도심의 대형 공원은 수백년 동안 도시의 더러움과 삭막함을 몸으로 막아왔다. 이제 우리에게도 용산공원이 생긴다. 국토부 “용산기지 터는 공원캠프 킴 등 산재부지 3곳은
상업지역으로 용도변경” 주장
서울시는“빌딩 숲 부적절”
미국대사관 이전 놓고도
시민단체 “외국군대 주둔지를
온전한 한국땅으로 돌려야”
신분당선 공원 관통에도
향후 추가개발 우려 목소리 서울에는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 못지않은 거대한 공원이 숨어 있다. 남산에 올라가면 용산에서 한강 쪽으로 243만㎡의 녹지대가 펼쳐진다. 드문드문 낮은 건물이 보인다. 용산 미군기지다. 전시작전통제권을 쥔 한미연합사가 자리잡은 군 본부이기도 하지만 드넓은 녹색 땅은 조금만 손을 보면 공원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남산과 연결되면 340만㎡의 센트럴파크에 크게 뒤지지 않는 규모다. 이곳은 정말로 공원이 된다. 미군기지가 2016년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하면(이전 시기는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한민국 ‘제1호 국가공원’으로 재탄생한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경주 등 기왕의 자연·문화유적에 지정한 ‘국립공원’이 아니라 국가가 직접 계획해 조성하는 ‘국가공원’이다. 용산국가공원, 주변 개발 여부 논란
용산국가공원을 어떻게 만들지를 두고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10년 동안 논란 끝에 용산기지를 전면 공원화하는 데 합의했지만, 이제는 용산공원을 무엇으로 채우느냐를 두고 이견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용산기지 문제는 미군이 평택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논의됐다. 국방부는 용산기지의 땅을 팔아 미군기지 이전비용을 충당하는 큰 그림을 그렸다. 공원의 일부를 민간에 넘겨 땅값을 받고 이를 이용해 평택기지 조성비용을 대는 식이다. 이는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반발을 불렀다. 이들은 용산기지가 서울 도심 한가운데 위치했고 장기간 미군에 점유되어 온 만큼 국민과 서울시민의 땅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란 끝에 2007년 국회에서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이 통과된다. 미군기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본체 부지를 용산공원으로 조성하고 공원 외의 용도변경과 매각도 금지하는 등 시민단체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다만 캠프 킴, 유엔사, 수송부 등 산재 부지엔 이런 원칙을 적용하지 않아 개발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 법에 따라 국토해양부는 지난해 10월 ‘용산공원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을 발표했다. 본체 부지를 생태축·문화유산·관문 공원 등 6개의 단위공원으로 조성해 남산과 한강의 녹지축을 연결하기로 했다. 다만 캠프 킴 등 산재 부지 3곳 18만㎡는 일반 상업지역으로 용도를 변경해 최대 40~50층 높이(용적률 최대 800%)의 상업 건물을 짓겠다고 밝혔다. 논란은 크게 세가지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첫째, 이미 용산공원 주변이 ‘초고층 병풍’으로 둘러싸인 이상 산재 부지 3곳의 추가 고밀도 개발은 부적절하다는 주장이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이곳엔 초고층 주상복합건물과 대형 지하쇼핑몰이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자투리땅이지만 도시 한복판에 있어 부동산업계에서는 마지막 남은 도심 개발부지로 눈독을 들이는 곳이다. 지난 4일 이세걸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이곳을 도심 속 녹지로 남겨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캠프 킴 옆의 용산국제업무단지, 유엔사·수송부 옆의 한남뉴타운에 이미 고층 건물이 조성됐거나 조성될 예정입니다. 이미 개발이 이뤄진 곳인데 여기에 덧붙여 부유층이 사는 주상복합 건물을 세울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용산공원(본체 부지)으로 연결되는 완충녹지로 쓰는 게 바람직하죠.” 용산공원 기본계획을 만들 때 협의 주체로 참여했던 서울시도 박원순 시장이 들어서면서 입장을 바꿨다. 서울시는 21일 부시장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용산공원 추진위원회에 나가 고밀도 개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관계자는 13일 “유엔사·수송부 주변은 주거지역이어서 이를 상업지역으로 바꾸면 주변과의 조화가 깨진다”며 “서울시와 협의사항이기 때문에 이런 입장을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토해양부는 미군기지 이전을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 여기서 마련돼야 한다고 반박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평택기지 건물을 지어주는 대신 용산기지 산재 부지의 땅을 받기로 했다. 두번째 문제는 미국대사관이다. 여기에는 용산의 역사성이 결부된다. 시민단체는 용산이 구한말 이후 외국 군대의 주둔지가 되어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고 1904년 러일전쟁 때에는 일본군이 군용지로 활용했다. 이들은 일제 때에는 일본군이, 해방 이후에는 미군이 주둔했던 용산이 100년여 만에 온전한 한국 땅으로 돌아온다는 역사적 의미를 강조한다. 황평우 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한 세기 외세의 점유지였던 용산에 미국대사관이 들어서는 것은 용산공원의 역사적 성격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미국대사관이 들어설 기지 북쪽 캠프 코이너에는 조선시대 제천행사를 열던 남단 터가 발견되는 등 문화재가 많습니다. 제대로 된 문화재 조사도 없이 공원 계획이 이뤄지고 개발이 시도되고 있어요.” 미국대사관 이전 문제는 한국과 미국 정부의 합의로 외교적 차원에선 일단락된 상태이지만, 평택기지 이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릴 예정이어서 다른 대안을 찾아볼 시간은 충분하다고 시민단체는 주장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미국대사관은 이미 한-미 간에 합의된 사항이기 때문에 서울시로선 이의 제기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번째 쟁점은 신분당선이 용산공원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문제다. 국토해양부는 국립중앙박물관 뒤편에 지하철역을 설치해 동빙고역과 용산역에 잇는다는 계획이지만, 주변 이촌동 주민들은 서울지하철 4호선과 중앙선(국철)이 만나는 공원 밖의 이촌역 통과를 주장하고 있다. 시민단체는 국립중앙박물관역 설치는 차후 공원의 추가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며 공원 밖 노선에 호의적이다. 평택기지 이전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004년 국회에서 용산기지 이전 협정이 비준될 때 추산된 이전비용은 5조5900억원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국방부 주한미군이전기지사업단은 기지 이전 지연에 따른 금융비용 발생 등으로 8조8600억원을 총사업비용으로 추산했다. 정부가 평택기지 이전비용 조달을 위해 본체 부지 일부를 곶감 빼먹듯 야금야금 팔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용산에 지역구를 둔 진영 의원(새누리당)은 정부가 추가 개발 의도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진영 의원이 14일 공개한 2009년 용산공원 특별법 시행령 제정 직후 작성된 국방부 문서를 보면, 용산공원 본체 부지 10만㎡(국방부 남쪽 땅)가 ‘추가 확보 예정부지’로 표시되어 있다. 이곳은 용산기지 가장자리이긴 하지만 본체 부지이기 때문에 법에 따라 공원으로 남겨둬야 한다. 진영 의원실 쪽은 “시행령을 개정해 본체 부지를 최종 고시할 권한이 국토해양부 장관에게 있다”며 “평택기지 이전비용 마련을 명분으로 용산공원 본체 부지 가장자리부터 하나씩 쪼개 팔 가능성을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도심 금싸라기 땅이 ‘공짜로’ 주어진 것이다 보니, 여러 방면의 개발 압력이 드센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서울도 뉴욕의 센트럴파크, 런던의 하이드파크처럼 훌륭한 도심 공원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반면 용산공원이 도시 소음과 무질서한 마천루, 이질적인 건축물로 둘러싸인 ‘누더기 공원’이 될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 진영 의원은 “캐나다 밴쿠버는 영국군이 철수한 400만㎡에 스탠리파크를 조성했다”며 “용산공원을 울창한 숲과 호수, 잔디밭이 어우러지는 서울의 허파 역할을 할 수 있는 생태공원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