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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03 20:15 수정 : 2013.05.07 16:18

국내 한 원자력발전소의 임시저장 수조에 폐연료봉이 보관되어 있다. 사용후 핵연료의 중간저장시설이나 영구처분시설 입지를 서둘러 정해 공사에 들어가지 않으면, 각 원전의 임시저장 공간은 2020년대에 포화상태를 맞는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토요판] 뉴스분석 왜? 사용후 핵연료 처리 방안 논란

▶ 한국이 자체 핵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을 요구한 ‘한-미 원자력협정’이 협정 만료 시한을 2016년 3월까지 2년 연장하는 것으로 결론 났습니다. 한국이 핵보유국처럼 스스로 핵처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고, 파이로프로세싱 등 신기술이 언론에 본격적으로 소개되면서 원자력이 미래 에너지로 포장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차세대 원자로의 전도사’인 빌 게이츠가 한국에 왔습니다.

사용후 핵연료에서 우라늄 회수해
새로운 핵연료로 가공한 뒤
고속증식로에 넣어 전기 만드는
핵 재처리 기술 ‘파이로프로세싱’
원자력 에너지의 재앙 씻을
천사의 기술로 주목받는데…

일본의 고속증식로 ‘몬주’
잦은 사고에 상용화 못 되고
건설비용 9032억엔 달해
안전성과 경제성 매우 낮지만
핵 마피아는 공론화 통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부정적인 여론 돌리려 노력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면 쓰레기가 나온다. 쉽게 없어지는 쓰레기가 아니다. 처리가 곤란한 방사성 물질이다. 방사성 물질은 종류에 따라 최대 50만년이 지나야 사라진다.

‘핵쓰레기’에는 중저준위 폐기물과 고준위 폐기물 등이 있다. 중저준위 폐기물은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된 드럼통, 장갑, 작업복 등 방사능이 거의 없거나 방사능의 세기가 낮은 물질이고, 고준위 폐기물은 원자로에서 핵분열 뒤 남은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핵연료봉 등 ‘사용후 핵연료’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고준위 폐기물, 즉 사용후 핵연료다. 여전히 높은 수준의 방사능이 남아 있어, 가까이에서 노출되는 사람은 숨진다. 원자력발전소의 딜레마는 바로 여기에 있다. 위험하고도 골치 아픈 쓰레기를 남기는 것이다.

2020년대, 23곳 원전의 임시저장소가 가득차

그렇다면 일찍이 원전을 가동한 나라들은 고준위 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해왔을까? 1956년 영국에서 세계 최초의 상업용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된 이래 인류는 아직 고준위 폐기물을 완벽히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고준위 폐기물의 처리 방식은 임시저장, 중간저장, 영구처분 등으로 나뉜다. 임시저장은 원전 수조에 임시로 두는 것이고, 중간저장은 특정 입지를 선정해 일정 기간 보관하는 것이고, 영구처분은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한 장소에 영구적으로 폐기하는 것이다.

미국, 영국 등 대부분 나라들은 고준위 폐기물을 영구 폐기를 미룬 채 특정 장소에 모아 ‘중간저장’하고 있다. 사고 위험 ‘제로’에 가깝게 영구처분을 결정하고 실행하고 있는 나라는 핀란드가 유일하다. 핀란드는 자국 내에서 발생한 핵폐기물은 자국 내에서 처리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지진에도 안전한 깊은 암반층에 영구처분장을 짓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아직도 중간저장 시설의 입지조차 정하지 못했다.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상태에서 핵폐기장 부지 선정을 성급하게 밀어붙이다 보니, 충남 태안, 인천 굴업도 등 주민들의 반발만 사고 실패했다. 결국 정부는 중저준위 및 고준위 처리를 한곳에서 한다는 방침을 바꿔 우선 중저준위부터 처리하기로 했고, 경북 경주가 선정돼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이 건설되고 있다.

그럼 사용후 핵연료는 어디에 있을까? 1978년 고리 1호기가 국내 최초로 상업용 운전을 시작한 이래 전국 원전 23곳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는 해당 원전의 수조 속에 임시 보관되어 있다. 고리 원전은 2016년, 월성 원전은 2018년, 영광 원전은 2019년, 울진 원전은 2021년에 저장 공간이 포화 상태를 맞는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 작업에 나서겠다고 밝혀왔다. 사용후 핵연료를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다소 빠듯한 일정표도 제시됐다. 다음달 안에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내년까지 사용후 핵연료의 처리 방침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최근 연장된 한-미 원자력협정이 만료되는 2016년 3월 이전까지는 최소한 결정한다는 목표다. 강성천 산업통상자원부 원전산업정책관은 지난달 22일 “공론화위원회를 일방적으로 구성하지 않고 시민단체, 학계, 지역주민 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추천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환경단체인 에너지정의행동의 이헌석 대표는 “정부 쪽에서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에 대해 설명을 하겠다는 의사를 공식·비공식적으로 전해왔다”며 “원칙적으로 참석해야 한다고 보지만, 자칫 들러리만 설 것이라는 우려 또한 있는 게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한-미 원자력협정과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 담론이 맞물리면서, 최근 들어선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중인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 공법)이라는 핵 재처리 기술이 자주 거론된다. 일부 언론과 학계는 파이로프로세싱을 ‘꿈의 기술’로 부르며, 차세대 원자로가 미래 에너지 기술의 총아로 묘사된다.

쉽게 말해, 파이로프로세싱은 핵쓰레기를 ‘재활용’하는 기술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을 통해 사용후 핵연료에 포함된 우라늄을 회수해 새로운 ‘핵연료’로 가공한 뒤 이를 새로 건설한 ‘고속증식로’에 넣게 된다. 이렇게 하면 버려진 사용후 핵연료로 다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이른바 ‘순환 핵주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위험한 쓰레기를 다시 원전(고속증식로)에 집어넣고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한국원자력연구원에는 파이로프로세싱 연구팀이 있고, ‘프라이드’라는 이름의 파이로 일관공정 시험시설의 완성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2일 이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이한수 박사가 말했다.

“9월이나 10월쯤 완공됩니다. 파이로프로세싱 전 공정을 시험하는 세계 최초의 시설입니다. 다만 국내에서 실제 사용후핵연료를 사용하는 실험은 어려우니까 모의물질을 통해 실험합니다.”

무서운 흑연, 그보다 더 무서운 소듐

파이로프로세싱을 거치면 사용후 핵연료의 부피는 20분의 1, 발열량은 100분의 1, 방사능 독성은 1000분의 1로 줄어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 규모를 100분의 1로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 기술은 원자력에너지에 내재된 ‘재앙성’을 씻어주는 천사의 기술로 미화되곤 한다. 하지만 23기의 원전이 운영되는 한국의 현실상 이런 효과를 거두려면 원전보다 훨씬 많은 파이로프로세싱 시설과 고속증식로가 필요하다. 한때 미국에서 고속증식로를 연구하기도 했던 서균렬 서울대 교수(원자핵공학)는 “고속증식로 100기 정도가 사고 없이 돌아간다는 전제에서나 가능한 얘기”라고 주장했다.

서균렬 교수는 파이로프로세싱이 과장돼 있다고 말한다. 경제성과 안전성 문제 때문에 이미 미국에서도 포기한 사업이라는 것이다. 우선 파이로프로세싱을 성공적으로 마치더라도 재활용한 핵원료를 사용할 수 있는 ‘안전한’ 고속증식로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1946년 최초의 실험 고속로가 만들어진 이래 일본의 ‘몬주’, 프랑스의 ‘페닉스’ 등이 세워졌지만 잦은 사고 탓에 상용화되지는 못하고 있다.

일본의 원전 전문가인 장정욱 마쓰야마대 교수의 추산에 따르면, 몬주의 애초 건설비용은 360억엔으로 제시됐으나 2009년 말 9032억엔으로 늘어났다. 조만간 재가동될 예정인데, 최소 200억~300억엔의 연간 유지·보수비가 들었다고 분석했다. 서균렬 교수도 “일본도 20여년 전에 몬주를 지었지만 다섯달밖에 못 돌렸다. 유지·보수비 또한 천문학적이다”라고 말했다.

일부 언론에서 소개된 것처럼 파이로프로세싱과 고속증식로가 경제성이 높다는 주장도 검증되지 않았다. 파이로프로세싱을 연구하는 이한수 박사도 “(현재 기술적 수준에서 볼 때) 아주 저렴하지는 않다. 사용후 핵연료 영구 폐기의 선택지에 비해 오차 범위 안에서 경제성이 있는 정도”라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고속증식로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속증식로는 실험 단계에서도 사고가 빈발해 제대로 가동된 적이 없다. 특히 핵분열 속도를 줄이는 데 필요한 감속재 ‘소듐’(나트륨)은 ‘핵 재난’의 잠재 원인으로 꼽힌다. 소듐은 물과 공기와 닿으면 폭발한다.

“옛소련 체르노빌 원전에서 핵분열 속도를 줄이는 감속재로 흑연을 썼습니다. 흑연 때문에 피해가 커졌죠. 원전에서는 폭발하는 물질을 쓰면 안 됩니다. 흑연보다 더 무서운 게 소듐입니다. 소듐 냉각로는 운전을 할 수 없는 원자로입니다. 이건 윤리의 문제입니다.”

옛소련 원전의 상당수는 흑연을 감속재로 썼다. 흑연은 감속재로서 능력이 탁월하지만 불이 붙기 쉽다. 일촉즉발의 사고가 터졌을 때 거대한 폭발로 이어진다. 국내 대부분의 원자로인 경수로는 물을 사용한다. 서 교수는 “경수로가 다루기 쉬운 양이라면, 고속증식로는 늑대다. 일부 전문가와 산업계의 주장에 의해 잘못된 정보가 전달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원자력 비즈니스’로 한국 찾은 빌 게이츠

일부에서는 새 정부 들어 박근혜 대통령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교육과학분과 위원이었던 장순흥 카이스트 교수,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의 묘한 인연과 최근의 움직임을 주목한다. 국내 대표적인 원자력 전문가인 장순흥 교수의 아버지는 장우주 한미경영원 이사장이다. 장우주 이사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육군사관학교 한 기수 후배로, 1971년 남북적십자회담 사무국 사무총장을 맡는 등 박 전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였다. 빌 게이츠는 지난해 장순흥 교수를 만난 데 이어 올해 한국을 방문해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차세대 원자로를 논의했다. 4월22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창조경제와 원자로 공동개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빌 게이츠가 한국에 온 이유는 자선사업가로서가 아니다. 이헌석 대표는 “그는 미국 원자력 벤처회사인 ‘테라파워’를 이끌고 있으며, 방사성 물질의 일종인 열화우라늄을 원료로 하는 진행파 원자로(TWR) 개발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며 “한국에서 펀딩을 받는 게 그의 목표일 것”이라고 말했다. 빌 게이츠가 사활을 걸고 있는 진행파 원자로 역시 상용화가 쉽지 않고 위험성이 높은 고속증식로의 일종이다.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 뒤에는 숨은 욕망들이 존재한다. 이명박 정부 때는 원자력이 ‘녹색에너지’로 포장되면서 신규 원전 대거 건설 등 ‘원전 르네상스’가 열리는 듯 보였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선 신규 원전 건설은 일단 보류된 상태다. 원자력 학계, 산업계, 건설업계 등의 이른바 ‘핵 마피아’는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를 통해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부정적인 여론을 돌리는 기회로 삼고 싶어한다. 특히 파이로프로세싱 등에 ‘장밋빛 미래’를 덧씌우면서 원자력이 미래 기술로 포장되고 있다고 비판론자들은 지적한다.

정치적으로는 우리나라의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2011년부터 ‘자체 핵무장’을 주장하고 있다. 4월16일 서울 정동 배재학당에서 한반도선진화포럼이 주최한 북한 핵 위협 토론회에서도 그는 “미국의 핵우산은 필요하지만 이것이 북핵 폐기 수단이 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송영선 전 의원(새누리당)도 2011년 “미국 전술핵 배치가 안 되면 스스로 능력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핵 재처리를 통해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 한국은 그동안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핵 재처리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파이로프로세싱을 이용하면 플루토늄을 직접 추출하지 않고 핵 재처리가 가능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최근 2년 연장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 한-미 원자력협정 협상에서 미국을 안심시키기 위해 파이로프로세싱을 통해 핵을 재처리하겠다는 카드를 내놓았다. 하지만 파이로프로세싱 이후 추가 작업을 통해서 플루토늄을 뽑아낼 수 있다는 데에는 재처리 찬반 진영도 모두 인정한다.

환경단체는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를 하면서 신규 원전 건설 여부 등 ‘탈핵 일정’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헌석 대표는 “사용후 핵연료가 문제가 되는 것은 현재 가동중인 원전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신규 원전 문제를 이야기 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계획으로는 국내 가동원전은 2013년 23기에서 2024년 34기로 11기 늘어나게 된다. 단위면적당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 국가가 된다.

신규 원전 건설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쪽에 대해선 일종의 ‘게임의 룰’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를테면 영국처럼 추가로 발생하는 고준위 폐기물 발생량에 대한 처리 계획이 나오지 않는 한 새로 원전을 짓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핵쓰레기 처리 계획이 나와야 원전을 지을 수 있다는 논리다. 이 대표는 “사용후 핵연료를 어떤 방식으로든 재처리하는 것은 핵 확산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사용후 핵연료를 영구 폐기 처분하는 것이 환경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낫다”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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