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극우에 대처하는 유럽의 자세
▶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가 논란이다. 무한경쟁의 쳇바퀴를 돌아도 안정은 보장되지 않는 시대, 한국의 젊은이들은 약자에 대한 언어폭력을 통해 존재감을 찾는다. 극우주의가 뿌리깊은 유럽에서는 이미 익숙한 현상이다. 유럽 각국은 특히, 교묘해지는 극우의 온라인·소셜미디어 활용을 막기 위해 따로 또 같이 머리를 맞댄다. 언어폭력도 ‘범죄’로 처벌하고, 물리적 폭력엔 ‘단체 해산’으로 맞서는 ‘극우에 대처하는 유럽의 자세’를 알아본다. 극우세력의 온라인 언어폭력에구속·해산으로 맞서는 독일
극우단체 회원 출신 수감자들의
재사회화 프로그램에도 적극적
출소 전후 가족들에게도 도움 줘 ‘톨레랑스’로 유명한 프랑스
극우 폭력에 대해선 불관용
좌파청년 폭행치사 사건 이후
‘제3의 길’ 등 극우단체 해산
1958년 이래 60개 단체 해체 “우리는 인종 현실주의자와 이상주의자들입니다. 수천개의 조직이 비백인 소수자들의 이익과 가치와 유산을 진작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것을 촉진합니다. 우리는 궁지에 몰린 백인 소수자를 위한 목소리입니다! 첫 방문이라면 사이트 소개를 확인해주세요. 900만개 게시물을 읽겠다면 환영이지만, 회원 가입이 필요합니다.” 13일(현지시각) 미국과 유럽 극우세력의 소통 공간 ‘스톰프런트’의 누리집은 비교적 점잖은 글로 정체성을 밝히고 있었다. 백인 우월주의와, 비백인 소수자에 대한 과도한 피해 의식이 엿보인다. 민족주의·인종주의·반민주주의·국가주의를 표방하는 유럽 극우세력의 최근 성향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먼저 회원 가입을 해야 ‘비밀번호 잠금’을 통해 단단히 감춰져 있는 그 ‘속살’을 읽거나 글쓰기로 동참할 수 있다. 전직 케이케이케이(KKK, Ku Klux Klan) 단원이 만든 이 백인 우월주의 누리집은 비공개로 이념을 공유한다. 서방 극우세력의 또다른 주요 소통, 모집, 선전 사이트인 ‘레지옹88’도 회원 가입과 로그인은 필수다. 누리집 ‘티아치 포럼’ 4명을 체포하다 이 두 극우 누리집은 그나마 주소가 공개돼 있어 외부인들의 눈에 띄는 경우다. 다른 극우조직들은 온라인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점점 더 복잡하고 교묘하고 은밀하게 세를 불리고 있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유럽 싱크탱크인 ‘전략대화기구’(ISD)도 보고서를 통해 유럽 극우세력의 이 ‘새로운 경향’을 짚었다. 그들은 자국의 법적 제재를 피하기 위해 외국에 서버를 둔다. 정체성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 언어로 누리집을 포장하기도 한다. 특히 젊은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고 쉬운 언어와 구호, 상징들을 차용해 자연스럽게 신세대의 삶 속으로 스며든다. 온라인은 ‘백인우월주의 음악’의 음원 판매를 수월하게 만들기도 했다. 콘서트 같은 고전적인 오프라인 방식보다 극우세력의 자금 모금이 한결 쉬워졌다. 전략대화기구는 이를 “유럽 극우세력의 온라인·소셜미디어 활용이 확산 및 전문화·상업화 되고 있다”는 말로 표현했다. 전략대화기구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유럽연합(EU) 극우세력의 경향과 각국 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역내 10개국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범유럽 극우 대처·예방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이미 극우정당들마저 자리를 잡은 스웨덴·네덜란드·노르웨이·핀란드·덴마크·독일·영국·폴란드·헝가리·슬로바키아가 참여하고 있다. 주요 관심사는 극우세력의 온라인·소셜미디어 활용과 주류 정당화, 그리고 범유럽화다. 역사적 뿌리가 깊은 유럽의 극우는 한국 극우보다 한참 더 진화한 상태다. 그들의 전략 속에서 최근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논란의 중심에 선 한국 극우의 미래가 어른거린다. 역으로 극우의 확산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유럽연합의 정책들은 ‘일베 표현의 자유’ 논쟁이 현재진행형인 한국 사회에 하나의 참고가 될 수 있다. 유럽연합 회원국의 대처는 하드웨어적인 것과 소프트웨어적인 것을 망라한다. 극우 누리집 폐쇄와 극우단체 해산은 물론, 극우에 현혹되기 쉬운 취약 지역 청소년 교육과 청년 취업 지원, 극우주의자 가족 지원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독일 북동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로스토크시 검찰은 지난달 극우 누리집 ‘티아치 포럼’ 운영자 4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가장 중요한 독일어 극우 포럼으로 지목된 누리집이다. 운영자는 30살 교사와 전업주부 등이었다. 이 누리집에 대한 접근도 차단됐다. 유대인과 외국인, 비백인에 대한 증오와 폭력을 조장하는 게시물 100만여개를 올린 혐의다. 홀로코스트를 부인하고 나치를 미화한 혐의도 추가됐다. ‘티아치 포럼’은 서버를 국외에 뒀지만, 검찰의 집요한 추적에 덜미가 잡혔다. 로스토크 검찰은 경찰과 특수부대의 지원을 받아 독일 11개주에서 ‘티아치 포럼’의 사무실 등 24곳을 압수수색했다. 독일 연방범죄수사국(BKA) 외르크 치르케 국장은 “수사당국의 조처는 비슷한 온라인 포럼의 운영자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은 법 위에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인터넷에서 활개치는 극우와의 전쟁에 더욱 속도를 낼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독일 사회가 극우세력의 온라인 언어폭력을 ‘표현의 자유’ 문제가 아닌 ‘범죄’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독일 형법 제130조는 국민선동 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행동은 물론 글로 국민을 선동하는 것도 금한다. ‘일부 주민, 민족적·인종적·종교적 집단 또는 민족성에 의하여 분류된 집단에 대한 증오심을 선동하거나 모욕 또는 악의로 비방하거나 허위사실에 의하여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문서를 반포, 전시, 게시, 상영하는 행위’를 3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벌금형으로 처벌하고 있다. 18살 미만에게 이런 문서를 제공하거나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것도 똑같이 처벌한다. 청소년보호법을 근거로 극우 누리집을 폐쇄할 수도 있다. 검은 옷 입고 문신한 근육질의 스킨헤드… 독일은 시민들의 ‘극우 내러티브’에 대한 면역력을 높이는 문화·교육 정책도 병행하고 있다. 정체성, 시민권리, 빈곤, 차별, 역사에 대한 전통적인 교육을 통해,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에 대한 공감대를 넓힌다. 또 외곽 지역 청소년들에게는 새로운 교육으로 극우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킨다. 스케이트보드, 랩, 춤, 그라피티, 만화 그리기 등이 극우 예방 커리큘럼에 포함돼 있다. 한때 극우단체 회원이었던 수감자들의 재사회화에도 적극적이다. 독일은 수감중인 극우주의자들에게 지원을 받아 23주간의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되돌아보고 극우주의와 폭력에 몰입했던 원인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목표다. 교육을 이수한 재소자가 출소하면 1년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출소 전후로 재소자의 가족들에게도 각종 지원이 이뤄진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독일에는 ‘극우주의자’로 분류되는 인구가 3만여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4800명은 160개 지역연합을 지지하고 있는 ‘조직된 네오나치(신나치)’로 파악된다. 서독보다는 경제사정이 열악한 동독 지역에 극우주의가 더 많이 퍼져 있다. 극우 네오나치 세력의 배후로 추정되는 민족민주당(NPD)은 가장 논쟁적이다. 네오나치를 포함한 다른 그룹들이 동맹해 설립됐는데, 테러에도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합법 정당이다. 독일 16개 지방정부는 민족민주당의 활동을 금지시키기 위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하지만 10년 전 증거 불충분 등으로 이미 좌절된 적이 있어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도 최근 극우 폭력에 대한 ‘불관용’을 선언했다. 동성결혼 합법화 반대 등을 빌미로 반동성애·반이슬람을 주장하는 극우세력의 폭력이 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장마르크 에로 프랑스 총리는 11일 “프랑스 정부가 극우조직을 뿌리뽑기 위한 행동에 나서기로 결정했다”고 선언했다. 하원에 출석해 극우단체들에 대한 해산 방침을 밝힌 것이다. <국제라디오프랑스>(RFI) 방송은 앞서 8일 해산 명령이 내려진 ‘혁명적 민족주의 청년’(JNR)과 관련된 ‘제3의 길’을 비롯해 극우단체 가운데 최소한 2곳이 해산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르면 6월 말, 늦어도 7월 초까지는 해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달 초 한 좌파 청년이 극우단체 회원들에 의해 숨지면서 프랑수아 올랑드 정권의 ‘결단’이 이뤄졌다. 명문 파리정치대(시앙스포) 학생인 클레망 메리크(18)는 지난 5일 파리에서 ‘혁명적 민족주의 청년’ 회원들에게 구타를 당해 숨졌다. 목격자들은 용의자가 손가락 관절에 끼우는 금속 무기를 착용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검찰은 범행을 시인한 20살 청년 에스테반 등 5명을 기소됐다. 프랑스 정부는 사건 사흘 뒤 이 단체를 해산시켰고, 이를 다른 단체에도 확대했다. 우파지 <르피가로>를 보면, 1987년 창립된 이 단체엔 40살 전후의 회원 30명이 속해 있다. ‘검은 옷을 입고 몸에 문신을 한 근육질의 스킨헤드’는 회원들의 전형이다. 이들은 ‘탐욕적인 자본주의와 멍청한 좌파’ 사이에서 제3의 길을 가겠다며 반미·반공·반유대주의를 표방한다. 프랑스는 1936년 제정된 국토안보법을 근거로 이런 단체들을 해산할 수 있다. 전투조직과 민병대는 물론, 인종·종교에 따라 차별과 증오와 폭력을 부추기는 조직을 해산할 수 있다. <국제라디오프랑스>는 1958년 이래 60여개 단체가 이 법을 근거로 해산됐다고 전했다. 테러 희생자 수 263명, 극우범죄 사망자 수 249명 프랑스 제도권 극우의 중심은 국민전선이다. 2002년 대선에서 결선투표에 진출하면서 프랑스 사회에 충격을 안기기도 했으나, 2007년 이후 극우 정책 등으로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러다 지난해 마린 르펜 당수를 후보로 내세워 대선에서 17.9%를 득표하며 제3당의 위엄을 되찾았다. 유럽의회 사법위원회는 지난 1일 르펜의 유럽의회 의원 면책특권을 박탈하는 등 제재에 나섰다. 그는 2010년 12월 리옹에서 열린 당대회에서 무슬림을 나치에 비유했다. 그러고도 2004년과 2009년 유럽의원에 당선되면서 면책특권으로 처벌을 피해왔다. 다음 회기 때 본회의를 통과하면 기소가 가능해진다.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에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극우의 명맥이 유지돼왔다. 그러나 파시즘과 민족주의로 격렬한 전쟁을 치른 기억 탓에, 유럽 각국은 극우주의에 대한 경계심이 더 많았다. 1990년대 극우정당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고, 2000년대 들어 두 건의 ‘미국발 악재’가 유럽 극우주의 확산에 불을 댕겼다. 2001년 9·11 테러와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비롯된 유럽 경제위기다. 지난달 유럽연합의 청년 실업률은 23%이며, 긴축재정으로 인한 사회복지의 축소는 취약 계층을 강타했다. 이는 외국인·이슬람·유럽통합을 혐오하는 극우주의의 안정적인 토대가 되고 있다. 특히 “2050년 무슬림이 유럽연합 인구 5분의 1을 차지할 것”(벨기에 정부) 같은 불안한 전망치들은 무슬림 혐오에 공포를 덧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이민·망명 보고서를 보면, 2011년 27개 회원국의 전체 인구는 5억250만명이다. 이 가운데 합법적인 비유럽 출신 이민자만 해도 2020만명에 이른다. 불법이민자에 대한 신뢰할 만한 통계는 없다. 다만 최소한 200만은 넘고, 450만명이 가장 자주 언급된다고 유럽연합 집행위는 전했다. 800만명이 넘는다는 추산도 있다. 이민·망명·불법체류자의 상당수는 무슬림이다. 유럽 문화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무슬림 인구의 확산은 이들에 대한 극우 범죄로도 이어지고 있다. 국제반테러리즘센터(ICCT)는 1990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유럽에서 극우 범죄로 인한 사망자가 249명이라고 밝혔다. 같은 기간 유럽에서 지하디스트에 의한 사망자는 263명이었다. 유럽 각국이 극우단체를 강경 이슬람 무장단체만큼이나 위험한 세력으로 관리하는 이유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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