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까지 2.89석이면 살고 5.31석이면 죽는다?
[토요판] 뉴스분석 왜?
<3> 비행기 사고 생존지침
▶ 공항은 지상과 하늘, 삶과 죽음, 승천 등의 이분법적인 이미지의 경계 위에 서 있다. 출경 허가를 받고, 우리 몸은 스캔을 받고, 미지의 세계를 기다린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떠오르는 행위는 죽음에 대한 무릅씀, 다른 세상으로의 이동, 일종의 승천을 은유한다. 알랭 드 보통은 “비행기를 타는 것은 우리 자신의 해체를 앞둔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가장 잘 보내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곤 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항공사고는 근원적인 공포에 가깝다.
비행기는 지상에서의 탈주를 꿈꾼다. 하늘에 올랐다가 내려온다. 시간대를 넘나들고 공간을 축약한다. 물리적 시공간을 압축하는 급진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인간은 공포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최초의 항공사고는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에서 발생했다. 1908년 9월17일, 미국 버지니아주의 포트 메이어(Fort Myer)에서 오빌 라이트(Orville Wright)의 비행기가 이륙해 활주로 주변을 돌다가 추락했다. 1905년 세계 최초의 실용비행기인 ‘플라이어 Ⅲ’로 약 30분 이상의 공중비행을 마친 오빌 라이트가 군용비행기 계약을 위해 미군에 시험비행을 보여주던 중이었다. 다섯번 째 활주로를 돌던 중 오른쪽 프로펠러가 부서졌고 기체는 추진력을 잃었다. 오빌은 부상을 당했지만, 시험비행 참관을 위해 동승한 토마스 셀프리지(Thomas Selfridge) 소위는 숨졌다.
그때만 해도 항공여행은 미지의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지금의 비행기는 누구나 탈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이다. 2000년대에는 저가항공의 대중화로 하늘의 문턱은 더 낮아졌다. 항공권 구입을 위해 부지런을 떨면 서울에서 제주까지 3만~4만원대, 일본 도쿄까지 10만원대에도 갈 수 있는 시대다. 외국인을 포함해 지난해 우리나라 국제항공 이용객은 4770만명, 국내항공 이용객은 2160만명에 이른다. 한해 우리나라 인구보다 더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 영공을 날아다닌다.
항공여행의 대중화 시대에도 공포는 수반된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어떤 이는 흥분하지만, 어떤 이는 심한 고소공포증을 겪는다. 비행기는 우주선을 제외하곤 최첨단의 기술 집약체다. 대형 항공사고는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온다. 비행기가 산산조각 나는 스펙터클, 사고의 ‘판도라 상자’ 같은 블랙박스의 행방, 사고 항공기의 소재국과 사고 발생국의 신경전 등 미스터리적 요소가 가득 차 있다.
작년 국내사고 3건·준사고 7건·안전장애 948건
일반적으로 항공사고는 ‘사고’(accident)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사건인 ‘준사고’(incident)로 분류한다. 이에 덧붙여 항공기 운항 및 항행 안전시설과 관련해 안전에 영향을 미치거나 미칠 우려가 있었던 일을 ‘안전장애’라고 부른다.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내 사고는 3건(사망 1명)이었으며, 준사고는 7건, 안전장애는 948건으로 나타났다.
대중매체에 보도될 정도의 사건이 아니라면 항공사고는 사전에 결함이 발견돼 긴급조처를 취함으로써 끝난다. 연료탱크에서 기름이 새서 바로 회항한다거나, 계기판의 오작동을 발견하고 조종사의 판단에 따라 착륙하는 식이다.
부상·사상자가 발생하거나 기체의 손실로 이어지는 사고는 많지는 않지만 양상은 다양하다. 이 중에서도 비교적 흔한 활주로
이탈, 이착륙 도중 지형지물과 충돌, 흔치 않지만 비행기끼리 부딪히는 경우도 있다.
비행기에 오르는 승객들은 ‘어떤 좌석에 타는 게 안전한가’라고 묻는다. 과연 이런 물음이 타당할까? 국내에 취항하는 한 항공사의 기장은 “항공사고의 유형은 활주로 이탈, 다른 물체와 충돌 등 다양하고 그 양상도 다르기 때문에 특별히 어떤 좌석이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안전도는 사고에 따라 달라진다. 비행기에 탄 승객은 이 비행기에 사고가 날지도 모르고, 설사 사고가 나더라도 어떤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한 좌석을 달라’는 승객의 요구는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비상구석 앉으면 유리하지만다른 승객 탈출 도와야 한다
비상구에 가까운 자리일수록
생존율 높다는 분석 있지만
기체 앞·중앙·뒤 비상구가
다 열릴 확률은 50%뿐이다 기체 앞부분 생존율은 65%
뒷부분의 생존율은 53%이나
사고 유형별로 차이가 크다
복도 쪽의 생존율은 64%
창가 쪽의 생존율은 58%
역시 아주 미세한 차이다 그래도 호기심은 어쩔 수 없다. 흔히 비행기의 기체 뒷부분이 안전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말은 맞을까? 대부분의 추락이나 충돌 사고는 기체의 앞부분이 다른 물체(산이나 건물) 등에 충돌하면서 벌어진다. 이런 측면에서 논리적으로 옳은 주장이다. 하지만 장애물을 발견한 기장은 이를 피하기 위해 비행기를 조작한다. 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난 아시아나항공 사고의 경우는 활주로에 접근하다가 꼬리 부분이 방파제에 부딪혀 발생했다. 고도가 너무 낮다는 사실을 인지한 기장이 기체를 들어올리면서 꼬리 부분이 지상에 닿았다. 기체 뒷부분이 동강나 떨어졌고, 두 명의 사망자도 그곳에 타고 있었다. 활주로 이탈은 비교적 자주 발생하는 사고다. 충돌사고와 달리 사상자 없이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론적으로 본다면 활주로 이탈사고 때에는 앞좌석이 불리하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벗어나며 랜딩기어는 파손된다. 그러면서 기체 앞부분이 주변 잔디밭을 쓸고 지나간다. 기체 앞좌석에 충격이 집중되기 마련이다. 충돌 부위 따라 비상구 못 여는 경우 흔해 그러나 자신이 탈 비행기에 어떤 사고가 날지 알 수 없지 않은가? 다른 식으로 접근해보면 어떨까? 핵심은 비상구에 있다. 대형사고의 경우 승객들은 비상구를 통해 탈출하게 된다. 보잉747 등 대형기종에 따라서는 비상구가 10개가 넘는 경우도 있다. 보잉737 등 단거리를 운항하는 중형기종은 비상구가 4개 안팎이다. 비상구 옆에는 사고 때 승객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을 마련해 좌석을 배치한다. 그러나 이 비상구석에 앉는다고 탈출이 빠른 건 아니다. 항공사는 영어가 능통하고 젊고 건장한 젊은이를 중심으로 비상구석을 배분한다. 노약자나 어린이를 동반한 승객 등은 제외된다. 비상구석 승객이 먼저 탈출하면 안 된다. 비상구를 열고 비상대피 도구를 설치하는 등 승무원을 도와야 한다. 최근 저가항공 등 일부 항공사는 비상구석에 웃돈을 얹어 팔고 있지만, 사고 수습부담을 져야 하는 책임을 따져보면 바람직한 건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비상구는 아니지만 비상구에 가까운 자리가 더 유리하다. 영국 민간항공관리국(CAA)은 2006년 승객의 위치 등 여러 조건에 따른 생존율을 분석한 흥미로운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니치대학의 에드 갤리 (Ed Galea) 박사 등이 연구해 민간항공관리국에 제출한 ‘항공사고 대피 때 인간 경험 데이터베이스’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좌석 위치가 생존율에 일부나마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갤리 박사는 보고서에서 “일반적으로 항공사고 생존자 좌석의 비상구까지의 거리가 사망자보다 가까웠다”며 “좌석의 위치가 생존률과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영국 항공사고 통계 및 지식 데이터베이스’(AASK) 가운데 1~4시간 거리의 단거리를 운항하는 중형기종인 보잉 737-300, 236과 디시(DC)-9-20과 32 등 네 기종의 사고를 대상으로 생존율과 사망률을 분석했다. 네 항공기는 가운데 복도가 한 줄인 이른바 ‘내로우 보디’로, 앞쪽의 출입구를 제외한 비상구는 2~4개다.(반면 복도가 두 줄 이상인 보잉747, 보잉777 등 장거리용 대형여객기는 ’와이드 보디’라고 부른다) 이 보고서를 보면, 생존자의 경우 자기 자리에서 비상구까지의 평균 거리가 좌석 2.89개(좌석과 좌석 사이의 거리가 1개)였다. 반면 사망자는 비상구까지 가기 위해선 좌석 5.31개를 지나쳐야 했다. 보고서는 좌석과 비상구까지의 거리를 토대로 세 구역으로 나눴다. 가장 안전한 구역은 비상구나 비상구 바로 앞뒤 자리로, 생존자보다 사망자보다 월등히 높았다. 두 번째 안전한 구역은 좌석 2~5개를 지나쳐야 하는 구역으로 사망할 확률보다 생존할 확률이 높긴 했지만,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비상구까지의 거리가 이보다 먼 세 번째 구역은 사망률이 생존률을 넘어섰다. 이 결과를 토대로 한다면, 항공사고 때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선 ‘비상구나 비상구석 앞뒤에 앉으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고가 나고 아수라장으로 변한 상황에서 비행기의 모든 비상구가 열리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사고 유형도 비상구 개폐에 영향을 미친다. 충돌 부위에 따라 비상구를 열 수 없는 경우가 흔하다. 일반적으로 기체 앞부분, 중앙, 뒷부분에 위치한 비상구 양쪽이 다 이용되는 경우는 50% 밖에 되지 않는다. ‘2013년 블랙리스트 항공사’는 어디인가 창가와 복도 중에는 어디가 안전할지도 흥미거리다. 이 보고서는 같은 네 항공기 사고 자료를 분석한 결과, “미진한 차이이긴 하지만 복도쪽에 있는 승객이 창가에 앉은 승객보다 높은 생존율를 보였다”고 밝혔다. 네 항공기 사고 가운데 DC-9-32 기종을 제외하곤 세 항공기의 복도석 생존율이 창가석보다 1~25% 높았다. 전체 평균을 내보면, 복도석의 생존률은 64%, 창가석의 생존률은 58%다. 아주 미세한 차이다. 그렇다면 기체 앞부분과 뒷부분 중 어디가 생존율이 높았을까? 앞부분과 뒷부분의 생존율은 제각각이었다. 평균을 내보면 기체 앞부분의 생존율이 65%로, 뒷부분의 생존율 53%보다 약간 높지만, 각 데이터의 진폭이 커서 사고유형의 영향을 더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떻게 사고 났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결론을 내리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충돌 가능성이 뒤보다 앞이 큰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사고 직전 기장의 대처에 따라 충돌부위가 달라질 수 있다. 최악의 항공사고로 기록된 1977년 스페인 로스로데오스에 사고는 이륙 중인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이동 중인 비행기의 중앙부위를 치고 올라가 583명이 사망했다. 기체 중앙도 완전한 안전구역은 아니다. 또 하나의 변수가 있다. 어떤 항공사를 선택하느냐다. 유럽연합은 매년 안전성 평가를 실시해 ‘블랙리스트’ 항공사를 발표한다. 블랙리스트 항공사에 대해선 유럽 역내로 운항을 금지시킨다. 유럽연합이 10일 발표한 ‘2013년 블랙리스트 항공사’를 보면, 저개발국가의 소형항공사로 채워져 있다. 한국과 운항이 빈번한 나라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카자흐스탄은 한국에 취항하는 에어아스타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내선 중심의 소형항공사가 등재돼 있고, 인도네시아의 경우도 가루다인도네시아 등 5개 항공사를 제외한 소형항공사가 올라 있다. 필리핀의 경우 모든 항공사가 등재되어 있었으나, 메이저항공사인 필리핀항공은 운항금지 3년 만에 해제됐다. 한국에서 해당 나라까지 메이저항공을 타고 가는 것은 안전하지만, 현지의 소형항공사를 이용해 국내 이동할 때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비행기는 생각보다 안전하다. 마이클 플러너간 등 미국 미시간대 연구팀은 2003년 <아메리칸 사이언티스트>에 자동차를 타고 갈 때 사고가 나서 숨질 확률이 비행기보다 65배나 높다고 밝혔다. 비행기의 경우 이·착륙 횟수, 자동차는 시골 국도에서의 사고 발생 자료를 활용해 표준화시켜 나온 결과다. 안전하게 항공여행을 하는 것은 모범을 지키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비행기에 오르면 자기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비상구를 미리 점찍어두고 예상경로를 머리 속에 그려본다. 모니터를 통해 나오는 산소마스크를 쓰는 방법, 구명조끼를 착용하는 방법, 비상탈출 슬라이드 사용방법 등을 제대로 숙지해야 한다. 운항 중에 사고 위험이 있다는 기장의 경보방송이 울리면 앞자리에 두 손을 깍지 쥐고 머리를 숙이는 ‘안전자세’를 취해야 한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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