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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09 15:24 수정 : 2013.08.09 19:39

CJ그룹 측에서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수억 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는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으로 출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토요판/뉴스분석 왜?] 국세청장 잔혹사
전·현직 청장 20명 중 9명이 ‘금품 로비’ 물의
권력과 돈 없인 클 수 없는 시스템의 실패

▶ 납세는 국민의 의무다. 신성한 의무라고 하지만, 모두가 원치 않기 때문에 ‘신성’과 ‘의무’를 동시에 부여해 놓았다. 병역과 마찬가지다. 이 의무 이행을 촉진하고 지키도록 해야 할 사람이 자꾸 감옥에 간다. 감색 호송복을 입고 얼굴을 가린 국세청장의 모습이 더이상 낯설지 않다. 세번째 스캔들에 휘말린 국세청장까지 등장했다. 그동안 국세청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얼마전 전군표씨가 구속됐다
전·현직 청장 20명 중 9명이
금품 비리로 물의를 빚었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관장’
국세청장에게 붙은 오명이다

군사정부 때 대통령 최측근인
국세청장은 정치자금 모아주고
장관·국회의원으로 영전했다
DJ 정부 이후 사회가 투명해지자
개인 비리가 하나씩 터져나왔다

또다시 국세청이다. 지난 4일 국세청 17대 수장이었던 전군표씨가 청장 재직 시절 돈을 받고 세금을 줄여준 혐의로 두번째 구속됐다. 2007년 ‘현직 국세청장으로서 첫 구속’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던 전씨는 이번 구속으로 ‘두번 구속된 첫 국세청장’이라는 기록까지 갖게 됐다. 당시 국세청 국장이었던 허병익 전 국세청 차장도 같은 혐의로 구속됐고, 현직 서울지방국세청장도 과거 비위 사실이 드러나 청장직을 사임했다. 깨끗하고 공정하게 국세청을 이끌어야 할 이들이 되레 국세청을 흔들고 있다.

이회창 대선후보에게 주려 166억 모은 임채주

19명의 전·현직 국세청장 가운데 금품 관련 비리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은 무려 8명에 이른다. 직무대행 국세청장까지 포함하면 20명 중 9명이다. 국세청장을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관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 가운데는 실형을 산 이도 있고, 재판을 받고 무죄로 풀려난 이도 있다. 비리의 정황만 남긴 채 끝내 어떤 잘못을 했는지 밝혀지지 않은 이도 있다. 오죽했으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에서 기관장이 가장 감옥에 많이 가는 데가 농협중앙회와 국세청”이라고 했을까.

국세청은 박정희 정부 때인 1966년 재무부 사세국에서 독립해 설립됐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앞두고 대규모 자금을 필요로 했던 정부는 외자 유치와 함께 세수 증대를 추진했다. 설립 첫해 국세청의 세수 목표액은 700억원이었다. 전년 420억원보다 66.5% 늘어난 금액이었다. 당시 국세청장은 관용차 번호를 ‘700’으로 달고, 전화번호도 ‘700’으로 다는 등 700억 달성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그해 국세청은 세무사찰 위주의 밀어붙이기식 징수로 700억 목표를 달성했다. 재밌는 것은 설립 당시 국세청 슬로건으로 ‘세수 증대’와 함께 ‘오명 불식’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당시에도 세금 징수는 국민들에게 매우 큰 불신의 대상이었다. <실록 국세청-영욕의 세월>이라는 책을 쓴 이철성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목표 달성에 일부 편법이 동원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국세청장의 역할은 디제이 정부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안창남 강남대 교수·세무학)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 국세청장의 주된 역할 중 하나는 기업을 쥐어짜 정치자금을 모으는 것이었다. 군 출신이 주를 이룬 대통령의 최측근이 국세청장이 되고, 정권 유지의 종잣돈인 정치자금을 착실하게 조달한 뒤 안기부장이나 장관, 국회의원 등으로 영전해 갔다. 정권의 명운과 본인의 운명이 서로 일치했다. 같은 뿌리의 정권이 지속되는 한 비리가 드러날 가능성도 낮았다.

이들의 비리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정치적 변화와 관련이 깊다.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과거사 청산을 위한 ‘12·12 및 5·18 사건 특별수사본부’를 차린 것이 계기가 됐다.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의 비리를 쫓는 과정에서 1987년 첫 직선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저질러진 불법 대선자금 모금 행위가 드러나게 된다.

첫 타자는 전두환 정부 때 국세청장을 지낸 안무혁(5대)과 성용욱(6대)이었다. 둘은 ‘노태우-김영삼-김대중’이 맞붙은 1987년 대선을 앞두고 한패로 움직였다. 당시 안무혁은 안기부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성용욱이 국세청장을 맡고 있었다. 그해 9월 안기부장은 국세청장에게 “대선자금 지원금을 걷으라”고 지시했고 지시를 받은 국세청장은 10월 한일시멘트·동아제약·㈜삼천리 등 11개 기업 대표로부터 54억5000만원을 거둬 안기부장에게 전달했다. 국세청장의 그릇된 충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탈세와 관련해 내사를 진행하던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으로 하여금 50억원을 전두환에게 제공하도록 하는 등 모두 60억원을 전두환에게 주도록 알선했다.

두 사람의 비리 사실은 1996년 1월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다. 결국 두 사람은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씩을 선고받았다. 국세청장으로서 첫 사법조치를 받는 순간이었다. 특히 성용욱은 집안 단속에도 실패해, 부인이 기업체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재임 9개월 만에 물러나기도 했다.

노태우 정부 이래 군 출신이 자취를 감추고 내부 직원 가운데서 국세청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1988년부터 현재까지 13명의 국세청장 중 내부 출신 청장이 10명에 이른다. 그러나 과거의 악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 때 국세청장을 지낸 임채주(10대)는 국세청 최대 비리 사건으로 기억되는 이른바 ‘세풍사건’의 주역 중 한명이다. ‘김대중-이회창-이인제’의 대결로 치러진 1997년 대선 직전,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의 동생 이회성씨가 임채주와 이석희(국세청 차장) 등과 공모해, 대우그룹 등 24개 기업으로부터 166억7000만원의 대선자금을 불법 모금했다. 임채주는 1998년 재판에서 “대기업 임원들을 청장실로 불러 선거자금을 내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안창남 교수는 “군사정부 시절 국세청장은 정치자금 조달 창구를 했다. 그걸 못할 것 같으면 그 자리에 앉히지도 않았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 당시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이 그 수준이었다. 감옥에 가지 않은 국세청장도 그들이 청렴해서라기보다 걸리지 않아서일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 즈음부터 국세청장의 역할이 바뀌기 시작한다. 사회가 투명해지고 선거제도가 바뀌면서 정권 차원의 정치자금 모금 행위가 점점 어렵게 됐다. 여전히 정권과 가까운 인사가 청장이 되었지만 이들은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던 이전 낙하산 청장들과는 처지가 달랐다. 퇴로가 보장됐던 이전 청장들과 달리 이들은 본인의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비리 양상이 개인의 치부 차원으로 바뀌고, 스스로의 정치를 위해 뇌물을 받는 국세청장이 등장했다. 심지어 현직 청장이 부하직원에게 돈을 받고 매관매직을 하는 양상으로까지 치닫게 된다.

17대 국세청장 전군표씨는 4일 구속됐다. 이로써 그는 2007년 ‘현직 국세청장으로서 첫 구속’에 이어 ‘두 번 구속된 첫 국세청장’이라는 불명예 2관왕에 올랐다. 사진은 2006년 신임 국세청장 당시의 전군표씨.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국세청 안에서 1만달러 뇌물 받은 전군표

김대중 정부의 두번째 국세청장인 안정남(12대)은 국세청장직을 마치고 건설교통부 장관으로 영전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서슬 퍼런 언론사 세무조사를 진두지휘한 데 대한 보상 차원이었다. 그러나 장관이 된 뒤 기다렸다는 듯 각종 비리 의혹이 터져나왔다. 동생의 납품 특혜 의혹부터 부동산 투기와 뇌물수수 등 ‘5대 의혹’으로 번져나갔다. 결국 그는 장관에 임명된 지 23일 만에 지병을 이유로 물러나게 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걸쳐 국세청장을 지낸 손영래(13대)는 2002년 썬앤문그룹 특별세무조사에서 부하직원으로부터 ‘최소 추징세액’이 71억원이라는 보고를 받고 25억원 미만으로 줄이도록 지시한 혐의와 에스케이(SK)그룹 전 본부장으로부터 2000여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추징금 1949만원을 선고받았다. 세무조사 과정에 국세청장이 부당하게 개입했다가 처벌받은 첫 사례이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이전 국세청장 비리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최근 다시 물의를 빚고 있는 전군표(16대)의 뇌물수수 사건이다. 그는 당시 부산지방국세청장이었던 정상곤으로부터 인사청탁과 함께 1만달러와 7000만원을 받았다. 수뢰 장소는 국세청 내부였다. 현직 국세청장으로 첫 구속이었다. “머리를 쪼개고 가슴을 열어 결백을 보여주고 싶다”는 전군표의 주장에, 법원은 징역 3년6월에 추징금 7900만원을 선고했다. 국세청이 세무조사 등 외부업무뿐만 아니라 내부의 자리를 놓고도 청탁과 뇌물이 오가는 조직임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국세청 직원들은 당시를 “국세청 40년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순간”으로 기억한다. 한 국세청 직원은 “전군표 청장은 악명이 높았다. 부하 간부들에게 상납 압박이 심했다”고 말했다.

직원평가 1위를 하는 등 전도유망했던 전군표는 왜 몰락했을까? 익명을 요구한 한 세무사는 “전군표는 능력있고 인정받는 직원이었다. 뛰어난 관료였다. 그러나 정치를 알고 나서 생각이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그가 노무현 당선인 인수위원회에 파견을 다녀온 뒤 잘못된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한다. 이 세무사는 “국세청에만 머물렀던 시야가 청와대를 다녀온 뒤 넓은 세상으로 열렸다. 결국 본인의 정치를 준비하게 되고 이를 위한 자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원도 삼척 출신인 전군표는 퇴임 뒤 총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비리와 담을 쌓고는 제대로 조직생활을 하기 힘든 분위기도 한몫한다. 국세청은 일상적으로 돈의 유혹에 노출돼 있다. 기업들은 국세청을 구워삶으려 노력한다. 100억원의 세금을 10억원으로 줄일 수 있다면, 수십억원의 비용이라도 기꺼이 치른다. 이 과정에 정치가 개입한다. 정치권은 국세청의 아킬레스건인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치권(힘)-국세청(조직)-기업(돈)’이라는 트라이앵글이 끈끈한 관계를 맺고 도움을 주고받는다. 이 끈에 속하지 않으면 국세청 안에서 커 나가기 어렵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는 “크게 보아 조직 구성원 중에 3분의 2 정도는 부패, 3분의 1은 청렴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3분의 2가 3분의 1의 존재 때문에 부패한 일을 저지를 수 없는 구조여야 한다. 그러나 국세청에서는 3분의 2가 마음대로 하고, 3분의 1은 승진도 안 되고 눈치 보며 어렵게 숨죽이고 사는 구조다. 시스템의 실패이다”라고 말했다.

청장 임기제 등 대안 늘 쏟아지지만…

전군표의 충격이 채 가라앉기도 전인 2008년 전임 국세청장이었던 이주성(15대)의 뇌물 사건이 발생한다. 2005년 프라임그룹이 대우건설 인수를 시도하던 때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으로부터 인수에 힘써달라는 청탁과 함께 20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받은 것이다. 당시 국세청장이었던 이주성은 재판 과정에서 눈물을 흘리며 비리 사실을 부인했지만 법원은 그의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 때 청장을 지낸 한상률(17대)은 2009년 이른바 ‘그림 로비’ 사건으로 기소됐으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인사청탁 명목으로 전군표 전 청장에게 그림을 상납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면죄부를 받은 것이다. 한상률을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태광실업 기획 세무조사’의 주역이라는 의혹이 남아 있고, 그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산 관계 등을 파악한 이른바 ‘엠비(MB) 파일’을 들고 있다는 의혹도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현재의 국세청은 어떨까? 한상률 이후 3명의 국세청장, 백용호(18대)·이현동(19대)·김덕중(20대)은 아직 드러난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인사 문제 등 누적된 문제들이 적지 않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티케이(TK, 대구·경북) 편중 인사가 지속됐다. 현재 국세청 최고위급 자리인 1급 4자리 가운데 3명이 대구·경북 출신이다. 그나마 서울 출신으로 1급이었던 송광조 서울지방국세청장이 최근 씨제이 관련 비위 사실이 드러나 낙마했다. 이를 두고 “상대적으로 깨끗했던 송 청장이 희생양이 되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실 여부를 떠나, 티케이 독주에 대한 반발이 이런 해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서울역 노숙자 이름으로 개설된 대포통장 기록까지 알 수 있다.” 한 국세청 간부가 농반진반으로 던진 얘기다. 국세청은 검찰·경찰·국정원 등과 함께 4대 권력기관으로 분류된다. 특히 국세청은 합법적으로 국민의 경제활동을 들여다보고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거대 기업의 거래 기록부터 서민의 소득 정보까지 엄청난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이 정보가 어떻게 처리되고 활용되는지, 일반인은 물론 국회의원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경제활동을 하는 다수 사람들이 가슴 한켠에 국세청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이유이다. 정보 비대칭이 심각한 상황이다.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전문가들은 다양한 대안을 내놓는다. 국세청장의 인사권한을 줄이고 국세청장 임기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부 권한을 줄이고 외부 맷집은 키우자는 것이다. 또 국세청장이 세무조사에 관여할 수 없도록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문제는 실행이다. 이런 방안은 10~20년 전 국세청에 문제가 터질 때마다 제시됐다. 어느 정부도 국세청을 햇볕 아래로 꺼내고 정치로부터 독립시키지 않았다. 생선을 지키는 고양이에게 방울을 달 자는 누구인가?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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