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 측에서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수억 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는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으로 출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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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뉴스분석 왜?] 국세청장 잔혹사
전·현직 청장 20명 중 9명이 ‘금품 로비’ 물의
권력과 돈 없인 클 수 없는 시스템의 실패
▶ 납세는 국민의 의무다. 신성한 의무라고 하지만, 모두가 원치 않기 때문에 ‘신성’과 ‘의무’를 동시에 부여해 놓았다. 병역과 마찬가지다. 이 의무 이행을 촉진하고 지키도록 해야 할 사람이 자꾸 감옥에 간다. 감색 호송복을 입고 얼굴을 가린 국세청장의 모습이 더이상 낯설지 않다. 세번째 스캔들에 휘말린 국세청장까지 등장했다. 그동안 국세청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얼마전 전군표씨가 구속됐다 전·현직 청장 20명 중 9명이
금품 비리로 물의를 빚었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관장’
국세청장에게 붙은 오명이다
군사정부 때 대통령 최측근인
국세청장은 정치자금 모아주고
장관·국회의원으로 영전했다
DJ 정부 이후 사회가 투명해지자
개인 비리가 하나씩 터져나왔다 또다시 국세청이다. 지난 4일 국세청 17대 수장이었던 전군표씨가 청장 재직 시절 돈을 받고 세금을 줄여준 혐의로 두번째 구속됐다. 2007년 ‘현직 국세청장으로서 첫 구속’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던 전씨는 이번 구속으로 ‘두번 구속된 첫 국세청장’이라는 기록까지 갖게 됐다. 당시 국세청 국장이었던 허병익 전 국세청 차장도 같은 혐의로 구속됐고, 현직 서울지방국세청장도 과거 비위 사실이 드러나 청장직을 사임했다. 깨끗하고 공정하게 국세청을 이끌어야 할 이들이 되레 국세청을 흔들고 있다. 이회창 대선후보에게 주려 166억 모은 임채주 19명의 전·현직 국세청장 가운데 금품 관련 비리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은 무려 8명에 이른다. 직무대행 국세청장까지 포함하면 20명 중 9명이다. 국세청장을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관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 가운데는 실형을 산 이도 있고, 재판을 받고 무죄로 풀려난 이도 있다. 비리의 정황만 남긴 채 끝내 어떤 잘못을 했는지 밝혀지지 않은 이도 있다. 오죽했으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에서 기관장이 가장 감옥에 많이 가는 데가 농협중앙회와 국세청”이라고 했을까. 국세청은 박정희 정부 때인 1966년 재무부 사세국에서 독립해 설립됐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앞두고 대규모 자금을 필요로 했던 정부는 외자 유치와 함께 세수 증대를 추진했다. 설립 첫해 국세청의 세수 목표액은 700억원이었다. 전년 420억원보다 66.5% 늘어난 금액이었다. 당시 국세청장은 관용차 번호를 ‘700’으로 달고, 전화번호도 ‘700’으로 다는 등 700억 달성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그해 국세청은 세무사찰 위주의 밀어붙이기식 징수로 700억 목표를 달성했다. 재밌는 것은 설립 당시 국세청 슬로건으로 ‘세수 증대’와 함께 ‘오명 불식’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당시에도 세금 징수는 국민들에게 매우 큰 불신의 대상이었다. <실록 국세청-영욕의 세월>이라는 책을 쓴 이철성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목표 달성에 일부 편법이 동원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국세청장의 역할은 디제이 정부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안창남 강남대 교수·세무학)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 국세청장의 주된 역할 중 하나는 기업을 쥐어짜 정치자금을 모으는 것이었다. 군 출신이 주를 이룬 대통령의 최측근이 국세청장이 되고, 정권 유지의 종잣돈인 정치자금을 착실하게 조달한 뒤 안기부장이나 장관, 국회의원 등으로 영전해 갔다. 정권의 명운과 본인의 운명이 서로 일치했다. 같은 뿌리의 정권이 지속되는 한 비리가 드러날 가능성도 낮았다. 이들의 비리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정치적 변화와 관련이 깊다.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과거사 청산을 위한 ‘12·12 및 5·18 사건 특별수사본부’를 차린 것이 계기가 됐다.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의 비리를 쫓는 과정에서 1987년 첫 직선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저질러진 불법 대선자금 모금 행위가 드러나게 된다. 첫 타자는 전두환 정부 때 국세청장을 지낸 안무혁(5대)과 성용욱(6대)이었다. 둘은 ‘노태우-김영삼-김대중’이 맞붙은 1987년 대선을 앞두고 한패로 움직였다. 당시 안무혁은 안기부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성용욱이 국세청장을 맡고 있었다. 그해 9월 안기부장은 국세청장에게 “대선자금 지원금을 걷으라”고 지시했고 지시를 받은 국세청장은 10월 한일시멘트·동아제약·㈜삼천리 등 11개 기업 대표로부터 54억5000만원을 거둬 안기부장에게 전달했다. 국세청장의 그릇된 충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탈세와 관련해 내사를 진행하던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으로 하여금 50억원을 전두환에게 제공하도록 하는 등 모두 60억원을 전두환에게 주도록 알선했다. 두 사람의 비리 사실은 1996년 1월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다. 결국 두 사람은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씩을 선고받았다. 국세청장으로서 첫 사법조치를 받는 순간이었다. 특히 성용욱은 집안 단속에도 실패해, 부인이 기업체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재임 9개월 만에 물러나기도 했다. 노태우 정부 이래 군 출신이 자취를 감추고 내부 직원 가운데서 국세청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1988년부터 현재까지 13명의 국세청장 중 내부 출신 청장이 10명에 이른다. 그러나 과거의 악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 때 국세청장을 지낸 임채주(10대)는 국세청 최대 비리 사건으로 기억되는 이른바 ‘세풍사건’의 주역 중 한명이다. ‘김대중-이회창-이인제’의 대결로 치러진 1997년 대선 직전,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의 동생 이회성씨가 임채주와 이석희(국세청 차장) 등과 공모해, 대우그룹 등 24개 기업으로부터 166억7000만원의 대선자금을 불법 모금했다. 임채주는 1998년 재판에서 “대기업 임원들을 청장실로 불러 선거자금을 내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안창남 교수는 “군사정부 시절 국세청장은 정치자금 조달 창구를 했다. 그걸 못할 것 같으면 그 자리에 앉히지도 않았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 당시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이 그 수준이었다. 감옥에 가지 않은 국세청장도 그들이 청렴해서라기보다 걸리지 않아서일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 즈음부터 국세청장의 역할이 바뀌기 시작한다. 사회가 투명해지고 선거제도가 바뀌면서 정권 차원의 정치자금 모금 행위가 점점 어렵게 됐다. 여전히 정권과 가까운 인사가 청장이 되었지만 이들은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던 이전 낙하산 청장들과는 처지가 달랐다. 퇴로가 보장됐던 이전 청장들과 달리 이들은 본인의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비리 양상이 개인의 치부 차원으로 바뀌고, 스스로의 정치를 위해 뇌물을 받는 국세청장이 등장했다. 심지어 현직 청장이 부하직원에게 돈을 받고 매관매직을 하는 양상으로까지 치닫게 된다.
17대 국세청장 전군표씨는 4일 구속됐다. 이로써 그는 2007년 ‘현직 국세청장으로서 첫 구속’에 이어 ‘두 번 구속된 첫 국세청장’이라는 불명예 2관왕에 올랐다. 사진은 2006년 신임 국세청장 당시의 전군표씨.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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