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4대 중증질환 관련 사업은 보건복지부 정책과 상관없이 자체 마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려던 사업과 예산 규모, 집행 시기, 대행기관까지 일치해 복지부의 압력을 받거나 협의 아래 추진한 것은 아닌지 의혹이 인다. 사진은 지난 17일 서울시 중구에 있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현판.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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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뉴스분석 왜?] 공동모금회 4대 중증질환 지원 논란
▶ 빨간 열매 모양의 모금함. 많이들 보셨지요?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성금을 마련하려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곳곳에 설치한 모금함입니다. 한해 모금액이 4000억원에 이릅니다. 국민들이 한푼 두푼 모은 성금이 엉뚱한 데 쓰이면 안 되겠지요. 그런데 최근 공동모금회가 박근혜 정부 핵심 공약 사업인 ‘4대 중증질환 환자 지원 예산’을마련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국민의 성금이 정권의 쌈짓돈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2010년 11월21일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 출입기자실은 복지부가 내놓은 보도자료로 시끄러웠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이하 공동모금회)의 감사 결과를 담은 자료였다. 한두장짜리 자료가 아니라 감사보고서가 거의 통째로 기자들에게 공급됐다. 피감 기관인 공동모금회의 비리를 복지부가 작심하고 폭로하는 듯 보였다.
복지부를 출입하는 한 기자는 “복지부가 피감 기관의 감사 내용을 기자들에게 그렇게 자세히 알려주는 일은 지금도 잘 없다. 국정감사를 통해 감사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날은 여러 감사 내용들을 자료로 공개해 이상했다”고 말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공동모금회가 2006년 이후 5년간 예산 7억5453만원을 부당하게 집행했다는 것이었다. 보도자료 첫장에는 굵은 글씨로 ‘단란주점, 노래방 등에서 업무용 법인카드를 사용했다’고 강조돼 있었고 ‘공공기관 최근 3년간 인건비 인상률이 3%였는데 공동모금회 사무총장은 7.9%, 직원은 9% 인상했다’고 지적했다.
여론은 들끓었다. ‘사랑의 열매가 아니라 비리의 열매’라는 비판이 일었다.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고 국민이 한푼 두푼 맡긴 성금을 유흥업소에 탕진하고 자신들 월급 올리는 데 썼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윤병철 회장 등 모금회 이사진은 전격 사퇴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 여성부 장관 후보자였던 이춘호 이사만 유임됐다.
5년간 부당 집행한 금액, 실제로는 1300만원
그해 12월 이동건 회장이 취임했다. 이 회장은 국제로타리 회장을 역임한 경력이 있어 회장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이 회장은 엠비(MB)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긴 했지만 엠비 측근이라 해서 공동모금회장으로 취임하지 못할 법도 없었다. 이 회장은 2009년 국제로타리 회장 재직 때 청와대를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국제로타리 영예의 상’을 수여한 바 있다.
이 회장 취임 뒤 공동모금회에는 조직 쇄신의 명분으로 ‘대학살’이 벌어졌다. 취임 1년 만에 직원의 절반이 넘는 124명을 생활 근거지에서 떨어진 곳으로 전보 발령했다. 조직 쇄신은 필요했지만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여론은 공동모금회 직원들의 ‘부당 전보’ 주장에 귀 기울일 마음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게 공동모금회 사건은 잊혀지는 듯했다. 그러다 2011년 국정감사에서 뜻밖의 지적이 나왔다. 2010년 복지부의 감사 발표 내용이 과장됐다는 것이다.
이낙연 민주당 의원의 당시 지적을 종합하면, ‘부당 집행금’ 7억5453만원 중 5억9000만원은 어린이집을 지으려다 부지를 확보하지 못해 사업이 취소된 금액이었다. 게다가 사업이 취소되면서 전액 공동모금회가 회수했기 때문에 부당 집행으로 보기 어려웠다.
역시 부당 집행금으로 분류된 전세 주택자금 미회수액 1억4000만원도 부당 집행금으로 보기 힘들었다. 공동모금회는 지방자치단체와 절반씩 부담해 저소득층에 전세자금을 빌려주는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대출자가 돈을 갚으면 지자체가 대신 받아 모금회에 전달해야 하는데 이것이 종종 지연됐다. 하지만 복지부는 이 돈을 부당 집행금으로 분류했다. 이외에도 중간에 사업이 중지된 저소득층 주민 교육장 건립금으로 배분된 1000만원 등도 부당 집행금으로 잡혔다.
결국 공동모금회가 5년간 노래방·술집 등에서 부당하게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금액은 1300만원 정도라는 게 이낙연 의원의 주장이다. 월 21만원 규모다. 복지부의 2010년 감사 발표 내용에는 7억5453만원의 부당 집행금 세부 내역이 쓰여 있지 않았다.
국민의 성금이 단돈 1원이라도 부당하게 사용되었다면 큰 문제이기에 공동모금회에 대한 사회적 지탄은 타당하지만, 이사진이 총사퇴할 정도의 문제였는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2011년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진수희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부풀려진 감사 발표 내용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이 사과를 기억하는 국민은 별로 없다.
보건복지부는 왜 그랬을까. 18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국회의원실에서 일했던 한 보좌관은 최근 <한겨레>와 만나 “참여정부 인사 물갈이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고 폭로했다.
국민 성금을 부당하게 썼다는 감사 결과 발표 뒤 쏟아진 비난
그러나 감사 내용은 과장됐고
‘참여정부 인사 물갈이용’이란
전 한나라당 보좌관의 폭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국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난 7월엔 박 대통령 핵심 공약인
‘4대 중증질환’ 지원 사업에
예산 300억원을 책정했다 그는 “(2010년 당시) 한나라당은 공동모금회 이사진 등 지도부 물갈이에 골몰하고 있었다. 이들이 쉽게 물러나지 않자 방법을 찾아냈다. 공동모금회가 그해 봄 자체 감사를 벌여 직원들이 공금을 유흥비로 쓴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어 이 사실을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애주 의원에게 흘렸다. 이 의원은 국정감사 때 이것을 폭로했고, 이어 보건복지부가 감사에 착수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의원 보좌관들 사이에는 이러한 프로젝트가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어떻게 하면 공동모금회 지도부를 바꿀 것인지 국회 의원회관 휴게실에서 고민을 나누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뒤 코드에 맞지 않는 기관장 물갈이에 박차를 가해 당시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 임기가 남아 있던 기관장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공동모금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8년 12월 갑자기 사퇴한 신필균 공동모금회 사무총장은 대놓고 쫓아낸 경우로 분류된다.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을 지낸 인물이다. 신 전 사무총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복지부 고위 관계자가 공동모금회 회장(이세중)을 찾아와 ‘신필균을 내보내야 한다’고 말하고 돌아갔다. 내가 물러나지 않자 직간접적으로 사퇴 압력을 계속 받아 스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신 전 사무총장은 원충연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사무관의 사찰수첩 사본에도 이름이 올랐다. 진수희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공동모금회 경쟁 체제를 도입하려 했다. 핵심은 의료구제모금회의 출범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인 의료안전망기금 조성과 일맥상통하는 정책이었다. 공동모금회 쪽은 반대했고, 시민단체들도 순수 모금기구인 공동모금회가 정권에 길들여질 수 있다며 반대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보건복지부는 2010년 공동모금회 감사에 착수했고, 공동모금회 지도부가 물갈이된 그해 말 의료구제모금회를 2011년 상반기 안에 출범한다고 공식화했다. ‘모금기구 관치화 프로젝트’가 정말 존재했다면, 화룡점정을 이룩한 셈이었다. 다만 국회의 반대로 의료구제모금회 출범은 현실화하지 못했다. 보건복지부·공동모금회의 수상한 300억원 공동모금회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의 관리를 받는 독특한 민간 기구다. 1990년대 초반까지 복지부의 주도 아래 이웃돕기중앙운동추진협의회가 성금을 모아왔는데 1993년 감사원의 감사로 이 돈을 행정부와 단체장들이 자기 돈처럼 써온 것이 드러났다. 국회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을 만들어 공동모금회를 독립 민간 모금기구로 만들었다. 정부의 각종 지원은 받되 모금의 운영은 철저히 민간에 맡긴다는 것이 모금회법의 취지다. 다만 3년에 한번 복지부의 감사를 받도록 했다. 그런데 2010년 사건에서 보듯 공동모금회가 국가의 입김에서 온전히 자유로운지 우려스러울 때가 많다. 이 우려는 2013년 복지부 국정감사에서도 제기됐다. 남윤인순 민주당 의원은 지난 14일 복지부 국정감사에서 공동모금회가 4대 중증질환과 관련해 저소득층 의료지원 예산을 마련한 것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4대 중증질환(암, 심장 질환, 뇌혈관 질환, 희귀성·난치성 질환) 관련 의료비 지원을 강화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 공약이다. 민간 모금기구가 정부 정책을 지원하는 예산을 마련한 것은 여러모로 정치적 시빗거리를 낳을 수 있다. 남윤인순 의원의 설명과 <한겨레>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공동모금회는 지난 7월 이사회를 열어 약 300억원의 의료비 지원 사업 금액을 책정했다. 3년간 비슷한 지원금이 투입돼 1000억원가량이 4대 중증질환 관련 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공동모금회의 지난해 모금액은 4159억원이다. 전국 단위 사업으로 한해 300억원 규모의 성금이 투입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 때문에 각 지역에 투입될 성금 액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공동모금회는 사실상 돈만 댈 뿐 대부분의 행정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맡는다. 공동모금회가 건강보험공단과 8월29일 맺은 협약 내용을 보면, 건강보험공단이 지원자를 심사하도록 돼 있다. 공교롭게도 복지부는 6월 말 4대 중증질환 관련 저소득층 의료비 지원 사업을 발표한 바 있다. 예산 규모도 300억원으로 공동모금회와 일치하고, 예산 투입 기간도 2~3년 예정으로 역시 공동모금회와 유사하다. 지원자 선정도 건강보험공단이 맡는다. 복지부와 공동모금회가 각각 300억원씩 부담해 총 600억원 규모의 정부 정책 사업을 추진하기로 사전 협의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공동모금회는 복지부의 압력을 받아 이번 사업을 계획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공동모금회 나눔사업본부 관계자는 15일 <한겨레>와 만나 “6월께 공동모금회 안에 전국기획사업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자체적으로 계획한 사업”이라고 해명했다. ‘이동건 회장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절대 아니다”라고 이 관계자는 대답했다. 그러나 ‘아이디어를 최초로 기안한 직원이 누구냐’는 질문에는 “태스크포스팀 차원에서 나온 아이디어”라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다만 공동모금회가 복지부 비급여개선팀을 만나 이와 관련한 협의를 한 것은 인정했다. 이 관계자는 “5월20일 복지부에서 4대 중증질환 관련 저소득층 지원 사업과 관련해 업무상 자문을 받을 게 있다고 해 찾아간 적은 있으나, 공동모금회가 4대 중증질환 관련 사업을 확정한 것은 우리 스스로의 결정이다. 공동모금회가 정부와 유사한 사업을 하면 안 되는가. 정부가 다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은 민간 기구가 담당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 성금을 정부의 쌈짓돈처럼 활용? 그러나 이는 공동모금회의 성격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신필균 전 사무총장은 “정부의 정책을 민간이 보완하기 위해 모금회를 둔 것이 아니다. 정부가 미리 손 뻗지 못한 곳에 민간이 먼저 들어가 구제 활동을 펴고, 정부가 나중에 그 영역을 커버하게 되면 민간은 다른 지원 영역을 찾아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정부의 예산으로 해야지 국민의 성금을 투입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신 전 사무총장은 또 “이명박 정부 이후 복지부가 공동모금회에 사업 제안을 계속적으로 하고 있다. 이전 정부에서는 없던 일”이라고 우려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공동모금회가 우리와 똑같이 예산 300억원을 마련해 4대 중증질환 관련 지원 사업을 벌이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 여러 의구심이 들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그러나 복지부가 공동모금회에 압력을 넣어 같은 사업을 하게 한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국민의 성금이 정부의 쌈짓돈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는 공동모금회 내부에서도 제기됐지만 묵살된 것으로 확인됐다. 공동모금회 이사회에서 일부가 ‘4대 중증질환 관련 지원 사업을 모금회 기금으로 하게 되면 모금회가 정권의 쌈짓돈으로 전락하게 된다’고 주장했지만 이동건 회장의 설득과 다수 이사의 의견에 밀려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익명을 요청한 공동모금회 관계자는 “2010년 천안함 희생자 보상금을 위한 모금도 문제가 많았다. 이사회 내부에서 ‘국가가 해야 할 희생자 보상을 왜 공동모금회가 해야 하느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소수에 그쳤다. 공동모금회가 정권의 하부 기구처럼 전락하는 것에 대한 모금회 내부의 자성 분위기가 사라져가고 있다. 이번 4대 중증질환 관련 사업이 이렇게 쉽게 통과될 수 있었던 것도 이동건 회장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내부 견제장치가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내부 견제장치가 무너진 흔적은 올해 5억6000만원을 투입한 ‘명예의 전당’ 확장과 공동모금회 회장실·사무총장실 인테리어 공사 관련 계획이 내부의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추진된 데서도 살펴볼 수 있다. 공동모금회는 고액 기부자의 자부심 증대를 위해 서울시 중구 공동모금회 본부 6층에 명예의 전당을 확장하기로 했는데, 이런 공간이 있어야만 고액 기부가 늘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 공동모금회가 채택한 공사 업체의 사업제안서를 보면, 회장실 안에 별도로 화장실을 설치하도록 돼 있다. 회장실이 있는 층에 공용 화장실이 있는데 굳이 회장실 안에 화장실이 필요한지 의문이다. 또 사업제안서에는 ‘회장실·사무총장실 격에 맞는 인테리어 설계’를 하도록 돼 있는데 국민 성금으로 호화 사무실을 꾸미려 했다는 비판을 살 수 있는 대목이다. 익명을 요청한 공동모금회 관계자는 “2010년 이동건 회장이 취임한 뒤 개혁 명분으로 직원들이 전보 등의 징계를 받으면서 조직의 부당한 결정을 공개적으로 지적하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다. 남윤인순 의원은 “공동모금회가 설립 목적에 맞게 공정하고 자율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데 정권의 쌈짓돈 기구처럼 전락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공동모금회의 사업 목적과 관련 없는 무리한 계획을 추진한 것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동모금회는 남윤인순 의원실이 공사 내용과 관련해 최근 자료를 요청하자 회장실 인테리어 공사 계획은 빼고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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