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뉴스분석 왜?]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의 힘
대통령의 마음,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윤상현(50·인천 남구 을) 의원은 재선이지만 힘이 세다. 지난 여름 엔엘엘(NLL) 정국에서는 ‘새누리당은 윤상현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국을 주도했다. 최근에도 그는 각종 정국 현안에 대해 발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틀리긴 했지만 공석인 보건복지부 장관 후임에 최원영 청와대 고용복지수석보다는 안종범 의원이 더 가능성이 높다고 예언하는가 하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검찰의 내부적인 수사 내용까지 공개했다. 또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의혹과 관련해서는 “개인활동이었다는 중간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그의 기자간담회 예고가 그대로 적중했다. 야당에서는 이런 그를 두고 ‘차기 대통령’이라고 비꼬아 부를 정도다.
여권발 뉴스를 독점하다시피 하는 그의 당직은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다. 원내대표를 보좌해 국회 운영을 실무적으로 총괄하는 위치다. 원내 비중이 높아져 수석부대표의 실질적인 역할이 중요해지긴 했지만 당 직위표에 따른 서열로는 37위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뿐 아니라 수십개에 이르는 각종 위원장과 본부장 등보다도 뒤다. 이 때문에 역대 어느 수석부대표도 그처럼 뉴스의 중심 인물이 된 적이 없다.
“국정원 트위터 건수, 이리저리해서 안 거다”
윤 의원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그의 기본적인 생각이 뭔지 궁금했다. 24일 늦은 오후 의원회관 사무실에 머무르고 있는 그를 찾아갔다. 그는 자신에 관한 기사가 나오는 일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등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윤 의원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말해야 한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 표명에 대해서는 “지금은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여전히 거침없었다.
-최근 한 이틀간 아침회의 때 발언을 하지 않던데 자중하는 건가?
“언론에 너무 이것저것 나와서 일부러 호흡 조절을 하고 있다. 이번주 말 언론 브리핑도 내가 하지 않을 것이다. 돌아가면서 해야지.”
그는 지난 5월 원내수석부대표가 된 뒤 매주 일요일 당사에 나와 브리핑을 도맡아왔다. 과거에는 최고위원과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대변인 등이 돌아가면서 브리핑했다.
-지난 주말 브리핑 때 언급한 게 화제다. 국정원의 트위터 글 5만여건 가운데 국정원 직원이 직접 쓴 것은 2233건밖에 안 된다고 했는데, 이 정보는 검찰의 내부보고서에만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고위층한테 받은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
“아니다. 내가 이리저리해서 안 거다.”
청와대에서 받은 정보냐는 물음에도 똑같이 대답했다. ‘이리저리’가 뭔지를 추궁해도 더는 답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그가 소수만 아는 정보를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점이다.
-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해서는 국방부의 중간발표 내용까지 미리 맞혔다. 그건 어떻게 알았나?
“그건 신문에 나온 것을 얘기한 거다. 내가 모든 정보를 쥐고 있는 것처럼 얘기들을 하는데 대부분 신문을 보고 분석해서 말한다.”
-지난주 브리핑 이후 정치권에서는 역시 윤상현 의원의 힘이 세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 나는 힘센 게 아니라 실무적으로 열심히 일한다. 보통 아침 5시에 사무실에 출근해서 혼자 신문 등 각종 자료를 읽고 공부한다. 아침도 매일 사무실에서 간단하게 때운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누구한테든 솔직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언론에 얘기할 때도 나는 에둘러 얘기하지 않는다. 이처럼 솔직하게 말하다 보니 사람들이 오해하는 듯하다.”
-하지만 윤 의원이 하자는 대로 결국 당이 따라가는 경우가 많던데?
“나는 혼자서 전략도 짜는 등 남들보다 연구를 더 많이 한다. 여권 내부의 소통도 열심히 해서 흐름을 아는 것이다. 다른 것은 없다. 나는 일로 승부를 보려고 할 뿐이다. 박 대통령과의 오랜 인연 속에서 신의를 다해 모시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한테 말씀드릴 부분은 말을 한다.”
당 직위표에 따른 서열 37위지만 역대 어느 원내수석부대표도
그처럼 뉴스 중심에 선 적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친분에다
뛰어난 사교성·마당발이 힘이다 “힘센 게 아니라 열심히 일한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는 것이다
대통령을 만나지 않아도
무슨 생각 하는지 다 안다” -박 대통령한테 정국 운영과 관련해 ‘아니오’라고 말한 적이 있나? “5·16이 문제 됐을 때가 내가 공보단장이던 시절이었다. 나는 당시 박 후보한테 5·16은 혁명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했고 혁명적인 경제 변화를 가져왔지만, 정치 변동 행태로서는 쿠데타라고 얘기했다.” 최근 국정원 댓글사건 등에 대해 다른 의견을 건의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가타부타 대답 없이 “지금이야 수사와 재판중이니까 좀 지나면 말씀할 것”이라고만 말했다. 이어 국정원 사건을 어떻게 풀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말해야 한다고 본다. 그게 지난 정부의 국정원에서 일어난 일이니 지난 정부 수장이었던 이 전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처음에는 물론 대북 심리전 차원에서 시작한 거지만, 이런 식으로 논란이 되고 의혹을 샀고 수사를 해서 법원까지 갔으니 총체적으로 말씀을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건 이 전 대통령이 마땅히 할 부분이다. 그러나 국정 최고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도 국가기구의 일탈에 대해 사과 등 입장 표명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재판 결과가 나오면 대통령도 말씀을 하시겠지. 이러저러하게 지난 국정원에서 논란이 된 게 안타깝다, 그러나 나는 대통령으로서 내가 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정치개입 못하게 하겠다, 국정원 개혁하겠다고 하겠지.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어떻게 보는가? “국민들이 더 잘 아는 것 아닌가. 대통령 지지율을 봐라. 하하.” -지지율이 높으니 잘하고 있다는 얘기인데, 당에서 너무 정부와 대통령을 견제하기는커녕 청와대 눈치와 기류만 살피는 것 아닌가? “총체적으로 대통령이 잘해야 나라가 잘되고 국민이 좋은 것이다. (당은) 대통령이 잘하도록 뒷받침하는 거다. 대통령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그때는 우리가 말씀을 드린다.” 사적인 자리선 “누나”…‘레이저빔’ 한번도 안 맞아 짧은 인터뷰만으로도 윤 의원이 얼마나 박 대통령과 호흡이 잘 맞는지를 알 것 같았다. 그는 심지어 “대통령을 만나거나 전화 통화를 하지 않아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고 말했다. 중하위 당직자 중 한명에 불과한 그가 여권의 실세로 자리잡은 가장 큰 이유다. 윤 의원이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8월 경기도 하남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가려고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다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위(1985년 전 전 대통령의 딸인 효선씨와 결혼해서 2005년 이혼)라는 점 등에 부담을 느낀 당 지도부의 판단 때문에 막판에 탈락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 이어 두번째 공천 낙마였다. 낙심하고 있던 그를 박 대통령이 불러 점심을 샀다. 국제정치학 박사(조지워싱턴대)였던 그는 이후 박 대통령을 만나 남북관계와 외교문제에 대해 조언을 하면서 좀더 가까워졌다. 2005년 인천 남을의 원외위원장 시절 그가 낸 자전적 에세이 <희망으로 가는 푸른 새벽길>의 추천사를 박 대통령이 썼다. 2007년 당내 대통령후보 경선을 앞두고는 이명박 후보 쪽에서 함께하자는 제안이 여러 차례 왔지만, 그는 박 대통령과의 의리를 내세워 거절했다. 대신 2007년 박근혜 대선 캠프의 조직단장으로 일했다. 그가 지역구를 맡고 있던 인천의 12개 지구당 가운데 박 후보 쪽을 지지하는 곳은 3곳에 불과했지만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근소하게 이겼다. 당시 박 대통령은 그에게 “인천에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고 한다. 2012년 대선 때는 공보단장과 후보 수행단장을 맡아, 선거 기간 내내 박 대통령 지근거리에 머물렀다. 그만큼 박 대통령이 그를 편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실제로 윤 의원은 박 대통령을 사적인 전화 통화 때 ‘누나’라고 불렀을 정도로 두 사람은 인간적으로 가깝다. 그는 “이분이 참 바른 분이다. 그러면서도 자식이 있는 것도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맨날 일과 나라 걱정만 하신다. 일반인과 같은 즐거움을 가지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다. 이런 점에서 나는 대통령에 대해 연민의 정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박 대통령의 그 유명한 ‘레이저빔’을 한번도 맞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친박 인사들이 박 대통령에게 할 얘기가 있을 경우에 그를 내세우기도 한다는 후문이다. 대통령과의 친분 못지않게 그의 사교성과 마당발도 정치인 윤상현의 힘이다. 그는 젊었을 시절부터 인간관계를 넓히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박사과정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지워싱턴대의 신화를 창조한다, 누구도 못 깰 신화를 창조한다, 한국인으로 신화를 창조한다는 계획은 공부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인간관계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때는 이십여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유학생을 데리고 집에 와서 밥을 먹였다”(<희망으로 가는 푸른 새벽길>)고 회고했다. 정치권 입문 과정이나 이후에도 인맥쌓기는 계속됐다. 2000년 한나라당 입당을 전후해서는 이회창 당시 총재의 사위였던 최명석 변호사와 친구처럼 지냈으며, 박 대통령을 만난 이후로는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씨와도 매우 가까운 관계가 됐다. 그는 “지만이 형과는 박 대통령과 다른 경로로 만나서 친해졌다. 대선 이후로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는 화통한 사람이다. 모든 계급을 초월하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무엇이든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아무런 연고가 없던 인천 남을에 정치적으로 뿌리내리는 과정도 그가 얼마나 사교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윤 의원은 2003년 7월 안영근 당시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하자, 한번도 가보지 않은 인천 남을 지역으로 곧바로 이사를 갔다. 이때부터 지역을 훑고 다녔다. 1년 만에 당협위원장 선출 선거에서 당내 경쟁자들을 물리쳤다. 탄핵 역풍 때문에 2004년 총선에서 424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패배의 쓴잔을 마셨지만, 그는 인천에서 입지를 다졌다. “매일 밤 폭탄주를 마시면서 사람들과 사귀었다. 그러다 보니까 광주에 가도 살아올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 그런 점에서 지난 4월 재보궐선거 때 안철수 의원이 서울 노원병에 나오는 것을 보고 저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 같으면 부산 영도에 내려가서 정면 승부했을 것이다”고 그는 말했다. 윤 의원은 어린 시절부터 집념이 유달리 강했으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쉼없이 노력하는 스타일이었다.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그는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평택 등에 거주하면서 초등학교를 3곳이나 다녔다. 하지만 성적은 매우 좋아서 중학교 때는 줄곧 전교 수석을 했다. 비결은 명석함 이외에 노력이 반이었다. “공부해야겠다는 그것도 아주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심은 무엇이든 잘해야 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의 싸움이었으며 나 자신과의 투쟁이었다. (중학교 때) 새벽 2시까지 공부하고 잠이 들 때면 전깃불 줄을 당길 힘만 남았다. …고교(영등포고) 때도 나와 투쟁하며 살았다. 나 자신과의 투쟁은 힘들었지만 성취의 기쁨이 이를 보상했다.”(<희망으로 가는 푸른 새벽길>) 민주화 투쟁으로 대학이 몸살을 앓을 때인 1981년 서울대(경제학과)에 입학했지만, 그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그는 학원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를 갈고닦거나, 사교모임인 ‘서울대 걸레 클럽’(서걸클)에서 술을 마시면서 친구들을 사귀었다. 프랑스어 학원에서 만난 ‘독재자의 딸’인 전효선씨와 꾸준히 연애해서 결혼에 성공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학생 시위가 격화되던 1985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다. 전씨와 이혼한 뒤 그는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막냇동생인 신준호 ㈜푸르밀(옛 롯데우유) 회장의 딸 신경아(41)씨와 2010년 재혼했다. 친박 핵심에 지역활동까지 열심히 하는 그의 정치적 기반은 탄탄해 보인다. 그가 꿈꾸는 정치가 뭔지, 정치를 통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궁금했다. “내가 주말마다 언론 브리핑을 하는 것은 야당 입장을 공박하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하나의 게임일 뿐이다. 내 위치에서 논리와 지식을 갖고 게임을 하는 것이지 그 사람들이 싫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미다. 정치라고 하면 매일 이해관계를 따지는데 나는 최고의 정치는 휴머니티라고 본다. 인간성이 곡진하고 인간성에 호소할 때 최고의 정치가 될 수 있다. 인간미 넘치는 정치를 실현해서 정치의 정의를 새롭게 하고 싶다.” 그러나 게임의 정치와 인간적인 정치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정치를 하는지는 다음에 허리띠 풀고 얘기하자”는 그의 말을 뒤로하고 짧은 만남을 끝냈다. 김종철 기자 phillkim@hani.co.kr [시사게이트] 박근혜 ‘댓통령’ 만든 ‘댓글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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