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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13 19:54 수정 : 2013.12.15 15:37

[토요판] 뉴스분석 왜? / 미-중 통신장비 전쟁

▶ 최근 ‘화웨이’(華爲)라는 중국 통신장비업체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중국 기업이, 그것도 국내에서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비투비(B2B·기업간 거래) 업체가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일은 흔치 않다. 화웨이는 어떤 회사길래, 또 어떤 사정이 있기에 이렇듯 논란이 되고 있을까?

지난 10월 엘지유플러스(LGU+)가 2.6㎓ 광대역 엘티이(LTE) 장비 공급업체로 삼성전자·노키아솔루션스앤네트웍스(NSN)와 함께 화웨이를 선정했다. 기존 운용중인 800㎒, 2.1㎓ 대역 엘티이 장비는 삼성전자·NSN·에릭슨엘지 세 회사에서 납품받았는데, 화웨이가 에릭슨엘지의 자리를 꿰찼다. 화웨이는 2000년대 중반 국내 시장에 진출해 유선장비들을 납품했지만 엘티이 장비 시장에 발을 딛기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얼마 뒤 <조선일보>가 화웨이 제품의 보안 문제를 거론하고 나섰다. ‘중국 정부로 통신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미국 등에서 사용을 금지한 화웨이 제품을 한국 업체가 쓰기로 해 논란’이라는 내용이었다. 엘지유플러스는 서울 상암사옥 데이터센터를 기자들에게 공개하고 “이동전화망은 폐쇄망으로 외부 접근이 불가능하고, 미국 등은 장비업체에 망 운용을 맡기지만 한국과 일본은 이동통신사가 직접 운용해 장비업체가 정보를 빼돌리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엘지유플러스가 광대역 엘티이
장비 공급업체 중 하나로
중국 회사 화웨이 선정하자
중국으로 정보 유출될 수 있다는
보안 문제가 언론에서 제기됐다 

서구 업체가 독점한 통신장비
시장에 가격·기술 경쟁력 내세워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 화웨이
미국은 ‘정체가 의심스럽다’며
화웨이 제재를 정당화하고 있다

일주일 뒤인 11월7일엔 화웨이가 국내 언론, 중소 통신업체 대표들과 공개 간담회를 열었다. 기존 업체들이 공개를 거부해오던 공공무선인터페이스(CPRI) 규격을 공개해 중소기업들의 제품 개발을 돕고 함께 해외로 진출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내 중소업체들에 시공작업을 맡기는 등 상생 방안을 마련하고 국내에 연구개발(R&D) 조직을 두겠다는 나름 파격적인 계획도 내놨다.

10여년 만에 ‘부동의 1위’ 에릭슨 밀어내

잠잠해지는 듯하던 ‘화웨이 논란’은 이달 초 다시 불거졌다. <월스트리트 저널> 등 미국 언론들은 로버트 메넨데즈 미 상원 외교위원장이 존 케리 국무장관, 척 헤이글 국방장관,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한테 엘지유플러스의 화웨이 장비 도입을 우려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편지에서도 보안 문제가 거론됐다. “화웨이가 한국의 엘티이 통신망 장비 공급업체로 선정됐는데, 잠재적 안보 우려가 있다. 통신망 보안은 (두 나라) 안보동맹에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에 엘지유플러스는 8일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국제적으로 공인된 인증기관에서 화웨이 장비의 보안성 공인 인증을 받겠다”며 논란에 쐐기를 박고 나섰다. 그렇다면 정말로 화웨이 제품을 쓰면 통신 내용이 도감청돼 중국 정부로 흘러갈까?

일단 화웨이를 중국 정부의 스파이로 의심하는 미국 쪽에서 확실한 물증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이에 반해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정부 산하 보안 인증기관의 인증을 받았지만, 또다시 받겠다. 통신망 정보를 정부에 넘기는 것은 글로벌 기업으로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화웨이 쪽 설명이 좀더 와 닿는다. 검증을 자처한데다 발각될 경우 시장에서 퇴출당할 수 있는 행위를 매출 수십조원에 이르는 글로벌 기업이 쉽사리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 가능성을 100%라고 장담할 수 없고, 기술적으로 도감청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하기도 어려울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도 중국 업체에만 유독 다른 기준을 들이댈 이유는 없다. 더군다나 최근 자국민 수백만명의 전자우편·메신저 등을 감청하고 30여개국 정상급 인사의 통화 내용을 도청해 물의를 일으킨 나라는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결국 순수하게 보안 문제라고 보기엔 뭔가 좀 어색한 상황이다. 실제 겉으로 드러난 ‘보안성 논란’의 바탕에는 좀더 큰 차원의 밑그림이 있다.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서는 통신장비 시장의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은 오랜 기간 서구 업체들의 독무대였다. 2004년 통신장비 업체들의 매출 현황을 보면, 독일계인 지멘스와 스웨덴의 에릭슨이 각각 20억달러가량의 매출로 선두 다툼을 벌였고, 일본전기(NEC)와 후지쓰가 15억~18억달러, 프랑스 알카텔과 캐나다 노텔, 미국의 루슨트 등이 10억달러 안팎의 매출을 올려 중위권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그다음으로 화웨이와 또다른 중국계 기업인 중싱(ZTE) 등이 2억달러 안팎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최근 10여년간 통신장비 시장에서는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그 핵심에는 화웨이가 있다. 화웨이는 1900년대 말부터 통신 인프라가 낙후된 러시아·아프리카·동남아시아 등 틈새시장을 슬슬 공략하더니, 2005년 유럽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고 뒤이어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공략에도 성공했다. 처음엔 가격경쟁력으로 승부하다 차츰 기술력을 높여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방식은 중국계 기업의 일반적인 전략이지만 화웨이는 그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2000년 1억달러 남짓이던 매출은 지난해 350억달러 수준으로 뛰었고 ‘부동의 1위’ 에릭슨을 정상에서 밀어냈다.

자국 네트워크 사업에 참여 금지시킨 미국

화웨이는 지난해 전체 매출의 13%인 48억달러를 연구개발에 쏟아붓고, 전체 임직원 15만명 가운데 7만명이 기술인력일 정도로 기술력을 중시한다. ‘조직원 20%는 핵심정예, 70%는 중간층, 10%는 하위’로 구분하고 하위 10%는 상시 정리하는 제너럴일렉트릭(GE)의 ‘활력곡선 시스템’을 본떠 매년 5%가량 직원을 내보내되 직원 평균 봉급은 중국 평균의 2~3배 수준이라고 한다. 조직도 젊고 역동적이다. 엘지유플러스 이창우 네트워크본부장(부사장)은 “한국에 오는 화웨이 사람들을 보면, 부서장들도 40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젊다. 20~30대였던 1980년대 물건을 팔기 위해 50대 일본인 중역들을 열심히 쫓아다니던 금성사 시절이 생각나더라”고 말했다.

게다가 통신 관련 장비라는 한우물을 파왔고, 총수(오너)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임원그룹을 만들고 이들이 몇개월씩 번갈아가며 최고경영자(CEO)를 맡는 ‘순환 최고경영자’ 제도를 시행중이기도 하다.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 지인 등이 집필한 <화웨이의 위대한 늑대문화>(스타리치북스)란 책은 화웨이의 성공 요인으로 “개인적 재능과 집단적 능력을 결합한 ‘늑대정신’”을 꼽기도 했다.

화웨이가 승승장구할수록 서구의 전통적인 강자들은 위축돼 갔다. 2006~2007년 프랑스 알카텔과 미국의 루슨트(알카텔-루슨트)가, 핀란드의 노키아와 독일의 지멘스(노키아지멘스네트웍스)가 각각 화웨이에 맞서려 연합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한때 글로벌 순위 5위권 안에 들었던 노텔은 2009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일본 업체들도 자취를 감췄다. 모토롤라도 사업부를 알카텔-루슨트에 매각하고 시장을 떠났다.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에릭슨은 영입이익률이 줄어드는 추세고, 합병 뒤에도 매년 적자에 허우적대던 알카텔-루슨트는 지난해 말 지급불능 사태에 직면해 2만9000여개의 특허자산을 담보로 20억유로를 빌려 급한 불을 끄기도 했다. 올해 4월 ‘기업회생을 위한 3개년 계획’이라는 최후의 승부수를 던졌지만 생존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노키아지멘스네트웍스도 휴대전화 부문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한 노키아가 지멘스의 지분을 전량 인수해 노키아솔루션스앤네트웍스로 거듭났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미국 등 서방이 지켜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화웨이가 2008년 미 장비업체 스리컴(3Com) 인수를 추진하자 미국 정부는 “핵심 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될 수 있다”며 막았다. 이후 화웨이의 모토롤라·투와이어·스리리프 등에 대한 인수 시도도 비슷한 이유로 무산됐다.

미국은 ‘정체가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화웨이 제재를 정당화하고 있다. 1988년 화웨이를 설립한 런정페이(70) 회장의 인민해방군 복무 경험을 들어 중국 군부와의 연관성을 의심하는 게 대표적이다. 또 화웨이 지분은 런 회장이 1.4%를, 공회(노조)에 가입한 직원 7만여명이 98.6%를 소유하고 있다고 밝힐 뿐 상세한 지분구조가 공개되지 않는 점이 의심거리로 작용한다. 어느 정도 규모가 커지면 기업공개를 통해 소유구조를 명확히 하는 서구와는 명백히 다른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실제 화웨이의 성장은 중국 정부의 도움 덕이 컸다는 게 외부의 대체적인 평가다. 통신장비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정부는 (안보와 자원 등을 이유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진출해 많은 원조를 해줬는데, 각종 인프라를 만들어주면서 대신 중국 인력이 중국 제품을 사용하도록 했다. 통신장비 분야도 마찬가지”라며 “한국에서 개발독재 시절 정부가 온갖 특혜를 제공해가며 재벌들을 키워준 것과 같다”고 말했다.

화웨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견제는 갈수록 심해져 2011년엔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자국 내 네트워크 사업에 화웨이의 참여를 금지했다. 지난해에는 하원 정보위원회도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어 화웨이·중싱과 사업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이들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합병을 막고, 정부는 이들 기업 장비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이를 계기로 시스컴이 5년째 이어오던 중싱과의 협력관계를 청산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광대역 구축 사업에 화웨이의 참여가 배제됐다.

통신장비 글로벌 벤처 못 만드는 한국

상황을 종합해보면, 통신장비 시장에서 중국 기업의 부상과 서구 기업들의 몰락이 매우 빠른 시간 안에 진행되면서 미국(을 필두로 한 서구진영)과 중국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중이다. 미국과 중국, 양대 패권국가가 사안마다 대립하곤 하는 국제정치의 현실이 통신장비 시장에서 고스란히 재현되는 셈이다. 나라의 신경망이라는 제품 특성에, 화웨이가 워낙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는 점까지 겹쳐 총성만 없을 뿐 원수처럼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다. 유선장비 업체인 다산네트웍스 남민우 사장(청년위원장·벤처기업협회장)은 “통신장비 시장에서 ‘경제판 지투(G2) 대전’이 진행중이다. 화웨이가 유럽까지 석권하자 미국이 본토 상륙을 막는 중인데 이제 한국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통신장비 시장의 비중은 1~2%에 불과하지만 지금까지 미국의 우산 아래에 있던 한국마저 중국(화웨이)이 가져간다면 그 상징적인 의미는 꽤 크다. 통신업체의 한 관계자는 “화웨이는 엘지 쪽에 기존 엘티이 장비와의 연동에 문제가 된다면 에릭슨엘지가 800㎒, 2.1㎓ 대역에 구축한 장비를 뜯어내고 자기네 제품을 무상으로 깔아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돈을 얼마를 쓰건 한국 시장에 꼭 진출하겠다는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고 전했다. 물론 미국은 미국대로 ‘안보’를 내세워 자신들의 앞마당이었던 한국을 고수하려는 중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국은 양쪽의 경쟁을 적당히 즐기며 실속을 챙기면 된다.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면 운신하기가 쉽지 않은 국제정치와 달리 경제에서는 이를 역이용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화웨이는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신흥강자로 무섭게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웨이는 6월 두께가 6.18㎜인 세계에서 가장 얇은 스마트폰 ‘어센드 P6’을 내놓는 등 기술력을 과시하더니 삼성·애플에 이어 시장 점유율 3위를 달리고 있다. 장비업계 한 관계자는 “단말기에서 시작해 장비로 나아가는 삼성과 장비에서 시작해 단말기로 넓혀가는 화웨이와의 일전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는 근본적인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왜 한국에서는 화웨이 같은 글로벌 벤처가 나오지 못했을까?

2011년 산업통상자원부(옛 지식경제부)는 2006~2008년 공공기관의 장비구매제안서(RFP) 211건을 분석한 결과, 25%가 외국사에 유리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신장비 국산화에 관심을 두기는커녕 정부가 앞장서 외국산을 선호해왔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부당한 거래 관행이다. 통신장비를 구축한 뒤에는 유지보수 업무가 뒤따르는데, 국내 이동통신사들은 국내 업체엔 외국 업체에 비해 턱없이 적은 대가를 지급해왔다. 유지보수 요율 현실화는 장비업계의 숙원 사업이고, 정부에서도 안전행정부와 산업부 등이 개선을 약속했지만 공염불이었다. 지난해에는 통신장비 업체들이 “전체 계약금의 1%에도 못 미치는 연간 유지보수비를 현실화해달라”며 방송통신위원회에 시정 건의서를 내기도 했다. 한 장비업체 사장은 “몇년 전 어렵게 (통신사) 회장님을 만나 5%는커녕 딱 2%로만 올려달라고 애원을 했다. 말로는 검토하겠다고 하더니 변한 것은 없다. 납품하기 싫으면 관두라는 얘기다. 상황이 이런데 잘되는 업체가 나온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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