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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13 20:09 수정 : 2013.12.16 13:50

지난 8일 장하나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대선 부정선거 불복을 선언하고 대통령 사퇴를 촉구했다. 10일 장 의원이 서울 중구 명동 가톨릭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출범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토요판] 뉴스분석 왜? / ‘대통령 사퇴 요구’ 장하나 의원
“대통령 자진사퇴 촉구한 것, 끌어내리자는 것 아냐”
“노조없는 노동자 등 소외된 목소리 알리는게 내역할”

▶ 장하나 민주당 의원이 지난 8일 현역 국회의원으로서는 처음으로 대통령 사퇴를 주장하고 나서 정치권에 파문이 일었던 한 주였습니다. 새누리당은 국회의원의 자격이 없다며 의원직 제명안을 제출했습니다. 장 의원을 만나 그의 심경을 들어보았습니다. 표정은 심각했지만 조금도 물러설 기세는 없어 보였습니다. 대통령 사퇴를 주장하면 국회의원 자격이 없는 것일까요.

지난 10일 오전 9시30분. 장하나 민주당 의원은 서울 마포구 자신의 전셋집에서 출근 준비를 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가 오전 10시에 열릴 예정이었다. 평소 늘 밝은 모습의 장 의원이었지만 이날은 표정이 굳어 있었다. 아침 라디오방송 출연만 세개였다. 갑자기 전국적으로 관심을 받는 의원이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게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킬 줄은 장 의원 스스로도 생각하지 못했다. 새누리당은 장 의원의 국회의원직 제명안을 들고나왔다. 장 의원은 이날 한 방송에서 “내가 제명당할 확률은 박 대통령 사퇴 확률보다 낮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 사퇴’ 발언으로 갑자기 유명해졌지만 기자들 사이에서는 부지런하게 일하는 국회의원으로 이미 익숙한 의원이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문제, 전자 산업에 근무하는 청년 노동자들의 문제, 제주 해군기지 문제, 밀양 송전탑 갈등, 성 소수자 인권 문제, 야생동물 보호 등 우리 사회 각종 현안과 관련해 거의 매일같이 보도자료를 쏟아냈다. 장하나 의원은 지난 1년6개월 동안 공동법안 발의만 584건, 대표법안 발의만 28건을 했다.

장 의원은 10일 점심도 거른 채 일하고 있었다. 오후 2시 장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가방에는 장 의원이 빨간 매직펜으로 ‘박근혜 대통령 사퇴하라’고 쓴 <한겨레> 한 부를 담았다. 지난 6일 한겨레신문 1면 제목은 ‘국정원 트위터글 2091만건 더 있다’였다. 장 의원은 이 기사를 본 뒤 박근혜 대통령 사퇴가 필요하다고 마음을 굳혔다.

본회의장 앞에서 같은 당 우상호 의원과 마주쳤다. 우 의원은 “기죽지 마”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이 장 의원을 불러세웠다. 그는 “조금도 물러서지 말라”며 장 의원에게 충고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도 마주쳤다. 심 의원은 “잘했어, 잘했어”라며 격려했다.

이날 오전 새누리당은 국정원개혁특별위원회 일정을 포함한 모든 국회 의사일정을 중단했다. 장 의원의 박 대통령 사퇴 요구가 발단이었다. 장 의원과의 인터뷰는 저녁 7시가 다 되어서야 진행됐다.

다른 정책 차질빚을까 걱정된다

-힘들어 보인다. 하루 종일 표정이 굳어 있는데.

“안 힘들다. 그냥 심각할 뿐이다. 언론에서 나를 많이 다뤄주는 것은 좋은데 이번 일 때문에 우리 방(의원실)에서 하던 다른 여러 정책사업들이 차질을 빚는 것 같아서 그게 걱정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하는 예산을 추진중인데 불안불안하다. 이런 예산은 여야 구분 없이 공감하는 것들이었는데 박근혜 대통령 사퇴 요구 발언으로 새누리당이 뭔가 트집 잡아 무산될까 봐 걱정도 되고….”

-새누리당이 오전까지만 해도 국회 의사일정을 전면 중단했는데.

“오후 들어서 다시 국회 정상화 하기로 여야가 합의했다. 국회 중단하는 게 자신들에게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역풍이 불 것을 계산한 것 같다.”

-박 대통령 사퇴 요구를 꼭 했어야 했나?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자진 사퇴를 촉구한 것이지 박 대통령을 끌어내리자고 한 것이 아니다. 새누리당은 자꾸 그런 식으로 몰고 가고 있다. 국민의 동의 없이는 함부로 대통령을 사퇴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내가 사퇴 요구까지 한 데에는 부정선거 문제에 무관심한 국민들에게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새누리당은 검찰의 수사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 본다.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달 말 검찰의 2차 공소장 변경 내용을 미리 알고 언론에 보도되기도 전에 상세한 내용을 브리핑하기도 했다. 국정원 트위터글이 2091만건이라는 것도 보고받았을 것인데 새누리당은 특검 요구는 수용하지 않았다. 이제 새누리당이 뭔가 해명하고 박근혜 대통령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정원 트위터 글이 2091만건
이 정도면 개인적 일탈 아닌
총체적 부정선거라 볼 수밖에
이 문제 무관심한 국민들에게
사태의 심각성 알리고 싶었다

국민들이 부정선거 용인 않는데
‘재판 결과 지켜보겠다’는 게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이라면
국론분열 방치하는 이기적 자세

-어느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인가?

“지난주 금요일 아침 한겨레신문을 봤다. 1면에 국정원이 남긴 트위터글이 2091만건이라는 검찰 수사 결과 보도가 실렸다. 검찰이 지난달 공소장 변경하면서 120만건 트위터글을 추가했는데 그것보다 훨씬 많은 여론조작 글이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면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총체적인 부정선거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게 내 판단이다.”

-국가기관 대선 개입 문제는 이명박 정부 때 벌어진 일이다. 부정선거에 대한 책임은 전임 이명박 대통령에게 먼저 묻는 게 옳다는 의견도 있다.

“부정선거의 법적 책임을 묻는 게 아니다. 부정선거의 수혜자로서 정치적 책임을 묻는 거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새누리당 정권의 연속선상에 있는데 명분 없는 선긋기, 무책임한 자기부정에 일침을 가하고 싶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를 적극 옹호하고 선거 개입이 사실무근이라면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한 장본인인 만큼 ‘책임’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부정선거 결과를 용인할 수 없다는 국민의 요구는 점차 증폭되고 있는데, 정작 대통령은 ‘재판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라면 국론 분열을 방치하겠다는 이기적인 자세다. 올바른 정치지도자, 민주주의자라면 대승적 관점에서 자진사퇴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다.”

국민적 요구 있다면 사퇴가 불가능하지는 않다

-박 대통령의 사퇴가 현실성이 있냐는 반론도 있다.

“비뚤어진 정권과 경직된 언론 환경 때문에 부정선거 수사 결과가 국민들께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나의 대통령 사퇴촉구 발언을 통해 국정원장의 지시로 국정원 직원들이 트위터 계정 2300개를 만들어서 유포시킨 글이 2000만건 이상이라는 검찰 수사 결과가 국민들께 좀더 전달되기를 바란다. 최종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청와대가 야당 국회의원의 주장은 무시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국민적 요구마저 모른 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 사퇴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에서는 ‘사퇴 요구 선언’에 유감을 표했다. 당내에서 먼저 의견을 밝히는 게 더 좋지 않았나?

“지금까지 의원 총회를 통해 여러 회의를 해왔다. 박 대통령 사퇴 요구가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일부 있었지만 다들 아직은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당 지도부에서는 내 행동을 서운하게 생각할 거라고 예상은 했다. 민주당원의 한 사람으로서는 송구스럽지만 국민의 대리인인 국회의원으로서는 할 말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 대통령 사퇴 요구가 정치적 소신에 따른 행동이었다면, 곧바로 원내 부대표직 사퇴를 한 이유는 뭔가?

“당론과 상이한 정치적 소신을 발표한 것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내 목적은 당론 분열이 아니라 소수 의견의 개진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당론과 합의정신을 존중한다. 다수결의 원칙과 소수의견 존중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민주당의 기풍 덕분에 나의 소신 발언이 가능했다.”

-의원실로 항의 전화가 빗발치더라. 국회의원으로서 다양한 국민의 생각을 고려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와 정치적 입장이 다른 국민들의 생각도 존중해야 하지만 그들을 대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국민 다수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르더라도 내 의견을 밝히고 국민을 설득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9일 제이티비시(jtbc) 여론조사를 보니까, 대통령 사퇴 촉구 ‘적절했다’는 비율이 24.6%나 나오더라. 놀라운 수치다. 새누리당도 놀랐을 것이다.”

장하나 의원이 어떻게 정치계에 입문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가 국회 입문하기 전 눈에 띄는 경력은 민주당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열린우리당 창당준비위원회 간사와 제주해군기지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제주시대책위원회 사무처장 정도였다.

-2003년 12월부터 열린우리당 창당준비위원회 간사 활동을 했던데.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지켜보면서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그렇게 함부로 쫓아낼 수 있다는 것에 국민으로서 모욕감을 느꼈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지역에서 열린우리당 준비하는 곳을 찾아갔었다. 그냥 자원봉사 했다. 사람들 찾아오면 커피 타주고 사무실 쓰레기 청소하는 일이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이거라도 하는 게 의미있을 것 같아서 한 것이다.”

-연세대학교 인문학부를 졸업했던데 원래 꿈이 뭐였나?

“방송국 피디가 되고 싶었다. 문화방송(MBC)에서 매주 월요일 방송하던 ‘인간시대’라는 다큐를 정말 좋아했다. 그런 것을 만들고 싶었다. 영화진흥공사가 주최한 ‘1회 대학생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 받고 필름 영화도 찍은 적 있다. 제목이 ‘비’였다. 인간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개인의 괴로움, 자살 충동, 그러다 새로운 인간관계가 생기면서 또 살아가고 하는 그런 추상적이고 모호한 내용의 영화였다.”

노조 없는 노동자들 지켜주는 게 목표

-학생운동은 안 했나?

“어떤 조직에 가입된 적은 없었으니 운동권은 아니었다고 봐야겠다. 다만 운동하는 친구들과 정서적으로는 가까웠다. 대학교 3학년 때 연세대 동아리연합회에 찾아가서 문화홍보국장 6개월 한 게 학생운동의 전부다. 학생운동을 바깥에서 비판만 해왔는데, 아무것도 모른 채 비판만 하는 것 같아 그냥 찾아가서 뭐 하나 시켜달라고 한 거였다.”

-직장은 안 다녔나?

“2005년부터 2년간 제약회사에 근무하기도 했는데 의사들 상대로 리베이트 영업을 해야 했다. 그런 게 싫어 얼마 못하고 그만두었다. 제일 마지막 직업은 목수라고 봐야겠다. 국가공인 자격증만 5개다. 2010년 제주도로 귀향하기까지 원목 가구를 제작하는 공장에서 가구를 만들었다.”

장 의원은 이날 저녁 8시께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출범식 참석을 위해 국회 의원회관을 떠나 서울 중구 명동 가톨릭회관으로 향했다. 의원실을 나서기 전 장 의원이 늦게까지 일하고 있는 보좌관들에게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했다. 보좌관들은 익숙한 듯 “다녀오십시오”라고 답했다.

-보좌관들이랑 잘 어울리는 모습이 늘 인상적이다.

“나 때문에 다들 고생이다. (매일 늦게까지 일하느라)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다.(웃음) 국회의원과 국민들이 평등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좌관이 아니라 그냥 내 동료들이다. 나는 어디 가서 이분들을 내 보좌관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늘 동료라고 얘기한다. 이분들 없으면 일 못 한다.”

-재선 욕심은 없나?

“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막상 국회에 들어오니 할 일이 정말 많다. 민주당이 밖에서는 맨날 비판받지만 그래도 서민복지 예산 챙기려고 안에서 노력 많이 한다. 그런데 재선을 하려면 미리부터 지역구를 챙겨야 하는데 그러자니 정책연구에 신경쓸 시간이 부족해진다. 의정활동에 영향을 주면서 재선을 준비할 수는 없다.”

장 의원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소속돼 활동하고 있다. 굵직한 정책과 예산을 만지는 곳이 아니라 국회의원들에게 그리 인기있는 부서는 아니다. 하지만 환경과 노동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장 의원은 이곳이 좋다. 명동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장 의원에게 남은 임기 동안 무엇에 집중할 것인지 물었다.

“노조도 제대로 없는 곳의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지켜주고 싶다. 부지불식간에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소외된 목소리들을 발굴해 국회에 알리는 게 제 역할 같다. ‘박근혜 대통령 사퇴’만이 제 목표가 아니다.”

새누리당은 10일 새누리 의원 155명 전원 명의로 장하나 의원의 의원직 제명안을 제출했다. 11일 장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어 이렇게 밝혔다. “대선에 불복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선거에 불복하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국회의원 제명안 제출해 제 입을 막으려 해도 18대 대선이 부정선거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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