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지요다구 총리 관저로 방사성 물질이 매달린 드론을 날려보낸 뒤 야마모토 야스오(가운데)는 후쿠이현 오바마 경찰서에 24일 자수했다. 그는 “원전 반대를 호소하기 위해 드론을 날려보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경찰은 밝혔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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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체 게바라처럼 또는 김기종처럼
▶ 이념은 있는데 강령은 없습니다. 행동은 있으나 조직은 없습니다. 과거 혁명가들과 달리 숨지 않고 공명심을 드러냅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공격했던 김기종씨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총리 관저 옥상에 방사능에 오염된 흙을 실은 소형 무인비행기 ‘드론’을 날려보낸 한 일본 젊은이가 지난 24일 자수했습니다. 전형적인 ‘외로운 늑대’(lone wolf)로 보입니다. 그의 블로그 글을 살폈습니다.
그가 언제부터 그 공격을 생각했는지 명확하지 않다. 야마모토 야스오(40)의 블로그 ‘게릴라블로그 셋, 테러라든지’의 첫 글은 지난해 7월14일 월요일 밤 11시48분에 작성됐다. 부호, 표현 등을 살려 직역해보면,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들이 엿보인다.
“활동한계: 조깅하던 도중 생긴 부어오른 곳이 두달째 아프다… 아직 편치 않은 느낌이 남아 있다. 39살… 생각대로 신체를 움직일 수 있는 기간은 앞으로 얼마쯤일까… ‘게릴라 전사에 적절한 연령은 25살에서 35살까지다’(체 게바라). 이미 지나버렸나???”
우선 1인 활동…‘외로운 늑대’처럼
일본 도쿄 지요다구에 아베 신조 총리 관저가 있다. 지난 22일 오전 10시 반께 관저 직원이 옥상에서 버려진 드론(무인비행기)을 발견했다. <산케이신문>을 보면, 네개의 헬리콥터 날개가 달린 모양이었다. 원래 흰색인데 검은색으로 도색된 것으로 알려졌다. 드론에 흙이 담긴 플라스틱 통이 있었다.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해 방사능에 오염된 후쿠시마의 ‘귀환곤란지역’ 오염토였다. 사람들이 놀랐다. 총리 관저는 경계가 삼엄하다. 소형 무인비행기를 이용해 간단히 경계를 무력화한 것이다. 사람이 직접 침입하지 않았으니 수사 흔적도 찾기 어려웠다. 24일 저녁 8시께 범인이 자수했다. 후쿠이현 오바마 경찰서에 출두한 40살의 무직자는 자신의 이름이 야마모토 야스오라 했다. 일본 언론들은 야마모토가 현재 도쿄 지요다구 고지마치 경찰서로 이송돼 조사를 받고 있으며 “원전 반대를 호소하기 위해 드론을 날려보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야마모토는 9일 오전 3시 반 관저에서 서쪽으로 200m쯤 떨어진 아카사카의 한 주차장에서 드론을 날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곧장 체포돼 수사를 받고 있다. 혐의는 일본 형법 234조 ‘위력업무방해’다. ‘위력을 써서 다른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만엔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이다.
<요미우리신문>을 보면, 야마모토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스스로를 ‘외로운 늑대’라 불렀다. ‘외로운 늑대’(lone wolf)는 미국의 백인우월주의 활동가 앨릭스 커티스가 1990년대에 자신들을 묘사하며 쓴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개인적이거나 작은 세포 규모의 지하활동가’를 의미했다. 미국 수사기관과 언론이 이 표현을 따라 쓰며 널리 알려졌다. ‘지휘체계 없이 테러리즘 활동을 하는 개인’을 의미했다. 1995년 불특정 다수에게 폭탄 메일을 보낸 ‘유나바머’ 시어도어 카진스키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인터넷 시대에 외로운 늑대가 더 늘었다고 분석된다. 20세기 초의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강한 규율과 질서를 가진 전위정당을 통해 활동했다. 1960년대 일본, 미국, 유럽의 신좌파들은 정당은 부정했지만 철저히 조직적으로 활동했다. ‘외로운 늑대’는 조직이 없다.
야마모토 야스오의 블로그 화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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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아베 총리 관저 옥상에
9일 드론 날리고 24일 블로그를
공개전환한 뒤 자수한 그의
블로그 글을 분석해 봤다 글에선 반핵활동가 냄새 나지만
학생운동이나 노조활동 통해
진보활동가 된 흔적은 안 보여
‘원자력 사고와 동급생 죽음’의
동기는 아직 사실로 확인 안돼 <요미우리신문>, <산케이신문>, <마이니치신문>, <아사히신문>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야마모토는 지난해 10월 원전 폭발 사고가 난 후쿠오카를 방문해 오염된 흙을 채집했다. 지난해 12월24일 아베 3차 내각이 들어섰다. 이때 총리 관저를 답사하며 드론을 날릴 계획을 세웠으나 단념했다. 올해 4월7일 오전 1시 후쿠이현 오바마시에서 차로 출발했다. 오염된 흙 100g을 실었다. 8일 도쿄에 도착했고 9일 드론을 날렸다. 총리 관저 직원이 드론을 발견한 것은 22일 오전 8시께였다. 야마모토의 공명심, 혹은 주목받고 싶어하는 욕망이 눈에 띈다. 김기종씨를 떠올리게 한다. 야마모토는 드론을 날린 9일 새벽부터 자수한 24일 오전 8시께까지 주기적으로 블로그 글을 올렸다. 22일 드론이 발견되자 모든 언론이 일제히 사건을 보도하던 때였다. 경찰은 피의자를 찾지 못해 난처한 상태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매일 블로그에 기록을 남긴 것이다. “(후쿠이현) 지사 선거 결과. 현직 니시카와 잇세이(가즈미)씨가 가네모토 유키에씨를 큰 차이로 이기고 4선에 성공했다. 투표율은 48.59%로 역대 최저….”(4월13일 월요일 22시32분) 니시카와 잇세이는 무소속 정치인으로 자민당, 민주당, 공명당, 국민신당 등 4개 정당 추천으로 지사 후보가 됐고 당선됐다. 야마모토가 애석해하는 가네모토 유키에는 일본 공산당 소속의 여성 정치인이다. 야마모토는 일본의 정치만큼 제도언론을 강하게 불신했다. “일본의 매스컴 레벨 저하가 이상하다… (반원전을 위해) 싸우지 않기로 한 사람밖에 출현하지 못하는 텔레비전… 중요한 것은 전하지 않는 텔레비전… 떨쳐일어나려는 사람이… 싸우려는 사람이 매스컴의 린치에 의해 살해당하고… 당연히 지켜야 마땅한 입장인데… 화려하고 고수입을 올리는 매스컴에 취직하고 싶은 것 외에 하고 싶은 게 없는 노예인가… 확실히 한국(언론) 이하… 이미 중국처럼 변해가는 건가….”(4월16일 수요일 8시46분)
총리 관저 옥상에 떨어진 드론을 파란 천으로 덮은 채 주변을 조사하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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