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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01 20:27 수정 : 2015.05.02 10:57

도쿄 지요다구 총리 관저로 방사성 물질이 매달린 드론을 날려보낸 뒤 야마모토 야스오(가운데)는 후쿠이현 오바마 경찰서에 24일 자수했다. 그는 “원전 반대를 호소하기 위해 드론을 날려보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경찰은 밝혔다. AP 연합뉴스

[토요판] 뉴스분석, 왜?
체 게바라처럼 또는 김기종처럼

▶ 이념은 있는데 강령은 없습니다. 행동은 있으나 조직은 없습니다. 과거 혁명가들과 달리 숨지 않고 공명심을 드러냅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공격했던 김기종씨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총리 관저 옥상에 방사능에 오염된 흙을 실은 소형 무인비행기 ‘드론’을 날려보낸 한 일본 젊은이가 지난 24일 자수했습니다. 전형적인 ‘외로운 늑대’(lone wolf)로 보입니다. 그의 블로그 글을 살폈습니다.

그가 언제부터 그 공격을 생각했는지 명확하지 않다. 야마모토 야스오(40)의 블로그 ‘게릴라블로그 셋, 테러라든지’의 첫 글은 지난해 7월14일 월요일 밤 11시48분에 작성됐다. 부호, 표현 등을 살려 직역해보면,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들이 엿보인다.

“활동한계: 조깅하던 도중 생긴 부어오른 곳이 두달째 아프다… 아직 편치 않은 느낌이 남아 있다. 39살… 생각대로 신체를 움직일 수 있는 기간은 앞으로 얼마쯤일까… ‘게릴라 전사에 적절한 연령은 25살에서 35살까지다’(체 게바라). 이미 지나버렸나???”

우선 1인 활동…‘외로운 늑대’처럼

일본 도쿄 지요다구에 아베 신조 총리 관저가 있다. 지난 22일 오전 10시 반께 관저 직원이 옥상에서 버려진 드론(무인비행기)을 발견했다. <산케이신문>을 보면, 네개의 헬리콥터 날개가 달린 모양이었다. 원래 흰색인데 검은색으로 도색된 것으로 알려졌다. 드론에 흙이 담긴 플라스틱 통이 있었다.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해 방사능에 오염된 후쿠시마의 ‘귀환곤란지역’ 오염토였다. 사람들이 놀랐다. 총리 관저는 경계가 삼엄하다. 소형 무인비행기를 이용해 간단히 경계를 무력화한 것이다. 사람이 직접 침입하지 않았으니 수사 흔적도 찾기 어려웠다. 24일 저녁 8시께 범인이 자수했다. 후쿠이현 오바마 경찰서에 출두한 40살의 무직자는 자신의 이름이 야마모토 야스오라 했다. 일본 언론들은 야마모토가 현재 도쿄 지요다구 고지마치 경찰서로 이송돼 조사를 받고 있으며 “원전 반대를 호소하기 위해 드론을 날려보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야마모토는 9일 오전 3시 반 관저에서 서쪽으로 200m쯤 떨어진 아카사카의 한 주차장에서 드론을 날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곧장 체포돼 수사를 받고 있다. 혐의는 일본 형법 234조 ‘위력업무방해’다. ‘위력을 써서 다른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만엔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이다.

<요미우리신문>을 보면, 야마모토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스스로를 ‘외로운 늑대’라 불렀다. ‘외로운 늑대’(lone wolf)는 미국의 백인우월주의 활동가 앨릭스 커티스가 1990년대에 자신들을 묘사하며 쓴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개인적이거나 작은 세포 규모의 지하활동가’를 의미했다. 미국 수사기관과 언론이 이 표현을 따라 쓰며 널리 알려졌다. ‘지휘체계 없이 테러리즘 활동을 하는 개인’을 의미했다. 1995년 불특정 다수에게 폭탄 메일을 보낸 ‘유나바머’ 시어도어 카진스키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인터넷 시대에 외로운 늑대가 더 늘었다고 분석된다. 20세기 초의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강한 규율과 질서를 가진 전위정당을 통해 활동했다. 1960년대 일본, 미국, 유럽의 신좌파들은 정당은 부정했지만 철저히 조직적으로 활동했다. ‘외로운 늑대’는 조직이 없다.

야마모토 야스오의 블로그 화면 사진.

“게릴라전. 우선 1인활동… ‘론 울프’다. ‘혁명적인 고도의 파괴활동과 무차별적 테러리즘은 구별되어야 한다’(체 게바라). 파괴활동과 테러의 구별… 어렵다… 지금은 덮어놓고 테러 취급이니까… 살상 없이 무엇을 파괴… 데모(시위) 이상 테러 미만… 아… (원전) 재가동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테러도 불사한다. 재가동을 하면 가해자… 재가동을 멈추는 게 가해자 쪽에도 좋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까… 무엇이 가능할까.”(지난해 7월19일 토요일 18:39)

글만 보면, 그는 급진적인 반핵활동가로 보인다. <요미우리신문>은 ‘이웃 사람’의 발언을 근거로, 야마모토가 일본 후쿠이현에서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고 전했다. 철공소를 경영하던 아버지는 고등학교 때 숨졌다. 이후 어머니와 다른 두 형제와 함께 살았다. 현립고교 전자기계과를 졸업한 뒤 항공자위대에 입대했다. 훈련이 엄격하다며 몇년 뒤 그만뒀다고 알려졌다. 그 뒤 파견노동자로 일하거나 도쿄에서 경비회사를 다니는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통해 활동가가 된 한국의 ‘486’이나 일본 전공투와는 다르다. 그렇다고 야마모토가 노동조합 활동이나 임금투쟁 등을 경험하며 진보적 활동가 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마이니치신문>은 “반원전운동에 관계한 사람이 아니다. 모르겠다”는 어느 시의원의 발언을 전했다. 또 이 신문은 “(야마모토가) 사물을 파고드는 타입이고 선호하는 것이 강했지만, 원전을 화제로 입에 올린 적이 없다”는 그의 고교 동급생 발언도 소개했다. 이 동급생은 약 10년 전까지 야마모토와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야마모토는 적어도 20대 후반까지는 원전 문제에 관심이 없었던 셈이다. 어쨌든 블로그에 처음 제 모습을 드러낸 39살의 야마모토는 급진적인 반원전활동가다.

“사린 액체 또는 탄저균 분말 우송… 폭탄 우송… 날계란을 깨어 가운데를 빼내고 가운데에 취두부 따위를 넣고 테이프로 덮어 던진다… 안 되겠다… 발상이 김샌다… 지능이 부족하다.”(지난해 7월19일 블로그 글)

사린 가스는 1995년 옴진리교 테러 당시 사용된 독가스다. 무엇이 한 평범한 남자를 ‘외로운 늑대’로 만들었는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 <마이니치신문>은 야마모토의 또 다른 고교 동급생의 발언을 소개했다. 2004년 미하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때 야마모토의 동급생이 죽었는데 이 사건이 그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블로그에는 이 사건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아 이 고교 동창의 증언이 얼마나 신빙성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후쿠이현엔 미하마 원전, 오이 원전, 다카하마 원전 등 10여기의 원자로가 집중돼 있어 일본에서 원전 집중도가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토 담아
도쿄 아베 총리 관저 옥상에
9일 드론 날리고 24일 블로그를
공개전환한 뒤 자수한 그의
블로그 글을 분석해 봤다

글에선 반핵활동가 냄새 나지만
학생운동이나 노조활동 통해
진보활동가 된 흔적은 안 보여
‘원자력 사고와 동급생 죽음’의
동기는 아직 사실로 확인 안돼

<요미우리신문>, <산케이신문>, <마이니치신문>, <아사히신문>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야마모토는 지난해 10월 원전 폭발 사고가 난 후쿠오카를 방문해 오염된 흙을 채집했다. 지난해 12월24일 아베 3차 내각이 들어섰다. 이때 총리 관저를 답사하며 드론을 날릴 계획을 세웠으나 단념했다. 올해 4월7일 오전 1시 후쿠이현 오바마시에서 차로 출발했다. 오염된 흙 100g을 실었다. 8일 도쿄에 도착했고 9일 드론을 날렸다. 총리 관저 직원이 드론을 발견한 것은 22일 오전 8시께였다.

야마모토의 공명심, 혹은 주목받고 싶어하는 욕망이 눈에 띈다. 김기종씨를 떠올리게 한다. 야마모토는 드론을 날린 9일 새벽부터 자수한 24일 오전 8시께까지 주기적으로 블로그 글을 올렸다. 22일 드론이 발견되자 모든 언론이 일제히 사건을 보도하던 때였다. 경찰은 피의자를 찾지 못해 난처한 상태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매일 블로그에 기록을 남긴 것이다.

“(후쿠이현) 지사 선거 결과. 현직 니시카와 잇세이(가즈미)씨가 가네모토 유키에씨를 큰 차이로 이기고 4선에 성공했다. 투표율은 48.59%로 역대 최저….”(4월13일 월요일 22시32분) 니시카와 잇세이는 무소속 정치인으로 자민당, 민주당, 공명당, 국민신당 등 4개 정당 추천으로 지사 후보가 됐고 당선됐다. 야마모토가 애석해하는 가네모토 유키에는 일본 공산당 소속의 여성 정치인이다. 야마모토는 일본의 정치만큼 제도언론을 강하게 불신했다. “일본의 매스컴 레벨 저하가 이상하다… (반원전을 위해) 싸우지 않기로 한 사람밖에 출현하지 못하는 텔레비전… 중요한 것은 전하지 않는 텔레비전… 떨쳐일어나려는 사람이… 싸우려는 사람이 매스컴의 린치에 의해 살해당하고… 당연히 지켜야 마땅한 입장인데… 화려하고 고수입을 올리는 매스컴에 취직하고 싶은 것 외에 하고 싶은 게 없는 노예인가… 확실히 한국(언론) 이하… 이미 중국처럼 변해가는 건가….”(4월16일 수요일 8시46분)

총리 관저 옥상에 떨어진 드론을 파란 천으로 덮은 채 주변을 조사하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그의 ‘참고서’ 목록을 보니…

이 모든 블로그 글은 2014년 7월14일부터 24일 저녁 7시30분께까지 비공개였다. 야마모토는 일본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인터넷 게시판 ‘니찬네루’(2채널)에 ‘관저 산타(산타클로스)’라는 필명으로 자신의 블로그 주소를 올리고 블로그 글을 비공개에서 공개로 전환했다. <아사히신문>을 보면, 야마모토는 자신의 블로그를 대중에게 공개하고 30분쯤 뒤 경찰서에 출석했다. 일종의 선언을 한 셈이다. 그가 경찰 출석 전 올린 마지막 글 제목은 ‘참고서’다.

“게릴라 전쟁. 체 게바라. 원전의 윤리학. 고가 시게아키. 일본은 왜 기지와 원전을 멈추지 못하는 것인가. 야베코지. 원전 화이트아웃 도쿄 블랙아웃. 와카스기 레쓰. 기동경찰 페트레이버 2-더 무비. 오시이 마모루. 원전의 거짓말. 고이데 히로아키. 관저붕괴. 우에스기 다카시. 천공의 벌. 히가시노 게이고. 역전력. 사시하라리노. 넘버1 멘탈트레이닝. 니시다 후미오. 청년노예시대. 야마노샤린. 간사이전력 반원전읍장 암살지령. 사이토 마코토”(4월24일 금요일 11:04)

체 게바라는 쿠바 혁명을 이끈 아르헨티나 혁명가다. 1967년 볼리비아에서 게릴라전을 벌이다 사살됐다. 나머지는 대부분 원전 관련 저서들이다. 진보적 정치, 경제 사상을 담은 책이 많다. 오시이 마모루는 애니메이션·영화감독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한국에도 많은 책이 번역된 소설가다. ‘천공의 벌’은 원격조종 헬리콥터의 공격이 소재로 등장한다. 경시청 공안부는 26일 야마모토의 차와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등 계속 조사중이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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