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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29 16:33 수정 : 2015.05.29 19:27

이재명 성남시장의 집무실은 느닷없이 방문하는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룰 때가 많다. 아이들에게만큼은 이 시장의 집무실은 상시 개방된다. 22일 오전 이 시장이 찾아온 성남시 아이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성남/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토요판] 뉴스분석 왜?

▶ 이재명 성남시장의 ‘에스엔에스(SNS) 정치’가 연일 화제입니다.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핵직구’ 독설이 누리꾼의 주목을 받았는데 최근엔 가수 유승준 귀국 문제를 두고도 목소리를 높여 연예매체의 주목까지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에스엔에스상에서만 눈에 띄는 것도 아닙니다. 이달 한국갤럽 조사에서 이 시장은 대선 주자로 분류되기 시작했는데요. 이 시장의 어떤 점이 대중의 주목을 끄는 걸까요. 그는 어떤 철학으로 에스엔에스를 할까요. 이 시장과 대화를 나누어보았습니다.

이재명(51) 성남시장은 요즈음 가장 주목받는 기초자치단체장이다.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한 도시의 시장이 이렇게 입길에 오르기란 쉽지 않다. 그는 트위터에서 12만7000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이른바 ‘에스엔에스(SNS) 스타’다. 다양한 사회 이슈에 직접 ‘돌직구’ 발언을 던지고, 연예매체까지 발언을 중계하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은 이달 초 문재인, 박원순, 안철수와 함께 그를 대선후보로 분류했다. 야권 정치인 중 4위권에 늘 오르내리던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제치고 그가 그 자리에 올라섰다. 국회의원 역임 경력이 없는 기초자치단체장이 대선 후보로 분류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이재명 시장은 가정 형편상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공장에서 일하다 독학으로 대학에 입학(82학번)했고 사법시험까지 합격했다.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다 별다른 당내 기반 없이 2005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2014년에는 재선에 성공했다. 최근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복지 논쟁을 벌이며 더욱 주목을 받았다. 2010년 당시 재정 파탄 직전이던 성남시를 정상화해 지자체장으로서의 능력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대선 주자? 사양하는 것도 쑥스럽다”

“퀴즈 하나 내줄게. 이 나라 주인이 누구야?” 22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성남시청 이 시장의 집무실은 성남시의 유치원·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견학 장소로 개방되고 있었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이 시장은 업무를 중단하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대통령”, “예수님” 아이들은 이 시장의 질문에 답했다. 이 시장이 말했다. “나라의 주인은 바로 세금을 내는 너희들이란다. 너희들도 세금을 내. 과자와 아이스크림 값에 다 세금이 붙어 있거든. 기억하세요. 나라의 주인은 대통령이 아니에요. 세금을 내는 사람, 그리고 투표하는 사람. 알겠지?” 아이들은 “네” 하고 대답했다. ‘까르르’ 웃는 아이들 소리에 집무실이 북적였다. 이재명 시장과의 인터뷰는 오전 10시15분께 집무실에서 두시간 동안 진행됐다.

-요즘 가장 주목받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이 시장의 이름이 실시간 인터넷 검색어 상위권에 오른다.

“2014년 재선한 뒤 발언의 영향력이 커진 것 같다. 공평하고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고 싶은 정치인으로서의 나의 유용성이 커졌다는 건 좋은 거다. 다만 다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지는 것 같아 우려스럽기도 하다.”

-이달 초 한국갤럽 조사에서, 이 시장이 대통령 후보군으로 분류됐다.(한국 갤럽은 매월 초 시민들에게 전화로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를 벌여 여야에서 각 4명씩 추린다. 이달 초 이 시장은 처음으로 야권 대선 후보 네 명 안에 포함됐다. 갤럽은 이를 바탕으로 2차 조사를 벌였고, 이 시장의 지지율은 1%가 나왔다.)

“미국 출장 중 지인에게 문자가 와서 알았다. 처음엔 장난치는 건 줄 알았다. 귀국 뒤 기사를 찾아보니 진짜더라. 좀 당황스러웠다.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생각한다.”

-유권자가 계속 대통령 후보로 생각한다면?

“거부할 이유는 없다. 대통령 역할이든 시장 역할이든 나로서는 큰 차이 없다. 다만 나는 변방에 있는 잔챙이일 뿐이다. 대선 후보를 사양하겠다고 밝히는 것조차 쑥스럽다.”

-이 시장이 가장 주목받는 부분 중 하나는 성남시 재정을 건전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다. 반면, 2010년 모라토리엄 선언을 너무 성급하게 했다는 지적도 있는데.

“취임 당시 판교특별회계 부당 전입금 5400억원과 미편성 법적 의무금 1885억원 등 부채가 7285억원 수준이었다. 이후 예산을 삭감하고 지방채 발행하고 성남시 자산 매각하고 해서 3년6개월 만에 5731억원을 갚았다. 모라토리엄 선언이 정치쇼였단 지적이 있는 건 안다. 하지만 재정감축과 구조조정을 하려면 시민들에게 성남시의 재정상황을 충격적인 방식으로라도 알려야 했다. 나더러 쇼했다고 하면 전혀 틀린 말도 아니지만 그 덕에 시민들이 크게 반발하지 않고 재정감축에 동의해줬다. 송영길 전 인천시장이 이걸 잘 못해서 곳곳에서 저항에 부닥쳤던 것으로 안다.”

-에스엔에스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거 왜 시작했나?

“부당한 공격에 맞서는 도구가 필요했다. 2012년 한 종합일간지가 ‘성남시가 청소용역업체 나눔환경에 특혜를 줬고 이게 통합진보당과 관련 있다’는 식으로 기사를 썼다. 그 뒤 나는 ‘종북주의자’로 공격당했다. 기자회견을 열어 해명을 해도 언론이 보도를 안 해주더라. ‘악’ 소리도 못 내보고 당할 뻔했다. 살아남기 위해 트위터를 시작했다.”

-이 시장의 트위터를 보면 좀 표현이 지나쳐 보일 때가 있다. ‘세월호 실소유주가 국정원이라고 확신한다’고 쓴 것 등이 그렇다.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도 당했는데.

“내가 좀 직선적이고 다혈질인 건 맞다. 빙빙 돌려 거짓말하기 싫다. 이런 성격이 단점이 아닌 장점이 되도록 잘 활용하려 한다. 세월호-국정원 관련 발언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국가정보원을 사랑하는 모임’이라고 국정원 퇴직자들이 날 고소했더라. 국가기관이 나서 고소하기 뭣하니까 이런 식으로 한 거다. 내가 의혹 제기의 근거(국정원의 기획조정실장이 이사장을 맡고 국정원 현직 직원들이 운영하는 투자기관 양우공제회가 선박사업에 투자했고 세월호도 투자 대상일 수 있다는 주장)를 제시했기에 명예훼손이 될 수 없다. 내가 무혐의 처분을 받을 것을 뻔히 알면서 고소한 것 같다. 국정원의 모략 행위는 계속 감시할 거다. 2012년 내 형에게 국정원 김 과장이란 사람이 찾아와 ‘이재명 주변에 간첩이 30명이나 된다. 곧 구속될 거다’고 말하고 갔다고 들었다.”

-이참에 종북에 대한 견해를 밝혀보면 어떤가?

“북한은 내가 가장 중시하는 민주주의 가치를 제대로 지키지 않기에 결코 그 체제에 동조할 수 없다. 국가가 민중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고 특정 가문과 소수 집단에 장악되어 있는 체제, 국가 권력을 3대째 세습하는 것은 당연히 비판해야 한다. 계획경제나 사회주의 이런 거 반대한다. 나는 그냥 민주주의자다. 특정 집단이 사회의 부와 기회를 독점하고 있는 것을 고치려는 거다. 내가 진보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불합리한 것을 합리적으로, 비상식적인 것을 상식적으로 바꾸려는 것뿐이다. 나는 이 과정이 우리 사회의 기본 질서를 확보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내 정치적 성향은 보수라고 생각한다. 보수의 가치가 질서 아닌가.”

-이 시장을 보면 굳이 안 나서도 될 분야까지 나서 논쟁을 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가수 유승준의 귀국 문제까지 나서서 비판할 필요가 있나. 유승준이 성남시로 이사 오겠다는 것도 아닌데.

“사회 기득권층이 병역기피 문제를 가볍게 여기는 것에 대해 쓴소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회 공동체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공동체의 의무를 저버리고 탈출한 사람이 병역의무가 지워지는 기간이 다 끝나니까 다시 오겠다고 하는 건 우리 5천만 공동체를 우롱하는 거라고 봤다. 국가 공동체를 지키고 무질서를 바로잡는 건 성남시장으로서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의 책 <싸가지 없는 진보>를 읽어봤나?

“좌파들은 ‘우리가 잘났으니까 너희가 따라와’라는 태도를 갖고 있고 그게 중도층에 거부감을 준다는 것을 지적한 것으로 안다. 강 교수의 지적에 공감한다.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와 태도로 말해야 한다.”

-이 시장도 싸가지 없는 진보처럼 비칠 수 있다. 트위터 글을 보면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모습보다 본인 주장이 더 많아 보이는데.

“(다소 표정이 굳어지며) 그건 좀 억울한데? 나는 트위터 팔로어(이 시장을 친구 맺은 사람)보다 내가 팔로잉(이 시장이 친구 맺은 사람)하는 사람이 더 많다. 다른 사람들 글도 리트위트(공유) 많이 하고, 페이스북의 ‘좋아요’ 버튼도 많이 누른다. 나도 싸가지 있으려 노력한다.(웃음)”

-너무 싸우는 이미지라고 생각하지 않나? 광범위한 대중의 공감을 얻기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정치인들이 대개 ‘우아’ 모드를 좋아하지만 그러면 제 역할 다 못한다.(웃음) 용서와 화해 이런 것만 해선 안 돼. 잘못된 걸 지적하고 진상규명과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어차피 내가 대통령 되려고 정치를 시작한 사람도 아니다.”

“정청래 의원은 내 작은 칼과 달리
큰 칼 차서 휘두를 때 조심해야
아무나 다치기 쉽고 효율 떨어져
사람들 공감얻는 게 중요한데
그래도 당의 징계는 지나쳐”

“종북으로 부당한 공격당하다가
살아남기 위해 트위터 시작
‘싸가지 없는 진보’ 평가는 억울
팔로어보다 팔로잉이 더 많은데
나도 싸가지 있으려 노력한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어린 시절 왼쪽 팔을 다쳐 6급 장애인이 됐다. 그가 22일 오전 인터뷰 도중 양팔을 펴 보이고 있다. 왼팔이 오른팔만큼 펴지지 않는다. 성남/김경호 선임기자
‘부라보콘 130원’ 시절의 폭력적 일상

이재명 시장에게 최근 ‘공갈 사퇴’ 발언이 내홍으로 이어진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청래 의원에 대해 물었다. 이 시장은 정청래 의원 논란과 관련해선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처음에는 곤혹스러워했다. 이 시장을 좀더 설득해 답변을 들었다.

“나라면 정 의원처럼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칼을 휘두를 때는 조심해야 한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칼은 작은 칼이라 막 휘둘러도 된다. 반경이 크지 않으니까. 그런데 칼이 커지면 휘두를 때 조심해야 한다. 아무나 다치기 쉽고 효율도 떨어진다. 정 의원은 (당 최고위원으로서) 좀 큰 칼을 차고 있어 나와 다르다.”

-정 의원이 잘못했다는 말인가?

“내가 남 얘기 할 처지는 아니다. 다만 내가 한양 도성 내에 있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는 거다. 정치라는 건 상대가 있고 동료가 있는 거다. 목소리만 크다고 되는 게 아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느냐가 중요하다.”

-당이 정 의원 징계하려는 건 어떻게 생각하나?(새정치연합은 26일 정 의원에 대해 당직 자격정지 1년을 결정했다.)

“너무 과하다. 정 의원이 당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등 물의를 일으킨 건 아닌데 제재까지 하겠다는 건 아예 언로를 막겠다는 거다.”

인터뷰 후반부에는 그의 인생 역정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들었다. 이재명 시장은 어린 시절 7남매가 성남시 단칸방에서 살 정도로 집이 가난했다. 초등학교 졸업 뒤 공장에서 일한 ‘소년 이재명’은 공장 관리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 다니던 공장의 관리자가 고졸인 것을 보고, ‘나도 고졸이 되면 관리자가 될 수 있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내가 1970년대 중반부터 공장에서 일했는데 그때 아동들에게 주는 일당이 100원부터 시작했다. 그때 부라보콘(해태제과 아이스크림)이 130원이었다. 내가 이걸 왜 기억하냐면, 그때 고참 관리자가 졸병들 싸움시켜서 지는 놈이 고참의 아이스크림을 사와야 했다. 일당보다 더 큰 돈이 나가는데 얼마나 억울한가. 이를 악물고 싸웠다. 나도 공장의 관리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공장 관리자가 되려는 목표를 그는 초과 달성했다. 소년 이재명은 1978년 독학으로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1981년 학력고사를 보고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다. 아동 노동을 하던 때의 폭력적인 일상이 실제로는 노동법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때문이란 것을 대학 진학 후 깨달았다.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곧바로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 이명박 전 대통령도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고 자주 얘기했는데 이 시장도 그렇다. 한편으로 그런 이야기들은 식상해 보이는데.

“어려웠던 가정 형편을 이야기한 건, 자꾸 병역면제 받은 부분을 갖고 공격당하기 때문이었다. 열다섯살 때(1978년) 야구 글러브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는데 프레스에 왼쪽 팔을 찍혀 크게 다쳤다. 그것 때문에 병역면제 받았고 지금도 6급 장애인이다. (두 팔을 양옆으로 벌리면서) 팔이 잘 안 펴져. 이걸 설명하다 보니 옛날얘기를 하게 된 거다. 또 세척공장에 다니기도 했는데 그때 내 후각의 50% 정도는 기능이 상실됐다. 다른 사람 방귀 냄새를 못 맡아 편하다.(웃음)”

시의료원 설립 운동하다 시장 돼 해내

-인권변호사 활동을 하다 정치인이 된 계기는 뭔가?

“2004년 3월28일 오후 5시를 잊지 못한다. 성남시는 공공의료가 부족했다. 2002년부터 시립의료원 설립 운동을 했다. 경로당 찾아다니며 어렵게 시립의료원 설립조례 주민 발의를 했다. 일년 이상 걸린 일이었는데 시의회 의원들이 47초 만에 부결시켜버리더라. 당시 방청하던 사람들이 울고 시의회 책상으로 뛰어올라가고 도망가는 의원들 잡으러 쫓아다녔다. 나는 특수공무집행방해·재물손괴·치상 등의 이유로 수배됐다. 2004년 3월28일 수배 중에 성남 주민교회 지하실에 숨었는데, 그때 보건의료노조 간부였던 선배(정해선)와 밥을 먹었다. 서럽더라. 울면서 ‘그냥 내가 시장이 되어 직접 시립의료원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2005년부터 조직활동을 시작했고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떨어졌다가 2010년 당선됐다.”

2011년 12월 성남시는 옛 시청사를 헐고 시립의료원 건립을 시작했다. 이 시장은 시립의료원 착공 순간을 시장이 된 뒤 가장 뿌듯했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그때 정해선 선배(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부위원장)를 불러서 함께 ‘발파식’을 했다. 부둥켜안고 또 울었다. 오후 일정 다 취소하고 정신을 잃도록 막걸리를 마셨다. 나는 성남시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교육 공공성 강화, 의료 공공성 강화, 안전 공공성 강화. 이 공공성 강화 3종 세트를 반드시 완수할 거다. 복지는 물론 기본이다.”

이 시장과 인터뷰를 마치며 ‘정치인으로서 행복하냐’고 물었다. “행복하다. 시민운동(성남 참여연대) 할 때는 연 예산 3000만원과 실무자 한 명으로 일해야 했다. 지금은 예산 2조4000억원과 정규 공무원 2600명과 함께 성남시를 발전시키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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