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지방경찰청 중부경찰서 김아무개 경위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민간 정보원 ㄱ씨가 15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도중 사진 촬영에 응했다. ㄱ씨는 신분 노출을 꺼려 뒷모습을 찍었다. 사진 허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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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보안계 경찰의 정보 유출 사건
▶ 현역 장교들에게 금품을 주고 얻은 군사기밀을 국내외 업체에 빼돌린 혐의로 방위산업체 임원이 최근 처벌받은 적이 있습니다. 비슷한 일이 경찰에서도 벌어질 뻔했습니다. 한 경찰이 중요 공안사건 수사자료와 탈북자, 국정원 수사요원 정보 등을 민간인에게 유출해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경찰 보안수사대에서 벌어졌던 일인데요. 공안사건을 담당하는 보안수사대 조직특성상 외부 감시가 이뤄지기 어려워 직원들의 일탈행위가 나오기 쉽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돈 버는 방법 좀 연구해봅시다. 당신이 중국 정보기관에 아는 사람 많잖아요. 북한과도 연락이 닿고요. 저 경찰 곧 그만둘 거예요. 같이 사업 좀 해봅시다.”
사업가 ㄱ씨가 전 인천 해양경찰청 보안계(현 인천 중부경찰서 보안과 근무) 김아무개(45) 경위가 한 얘기라며 전한 말이다. 지난해 5월 김 경위는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 인근에서 자신에게 이런 제안을 했고 그 이후로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고 ㄱ씨는 주장한다.
“워낙 황당한 소리라서, 그때는 농담하는 건지 뭔지 모르겠고 해서 그냥 듣고 넘겼어요. 근데 나중에 김 경위가 저에게 외장하드 하나를 건네는 겁니다.” ㄱ씨는 이 외장하드에 북한이탈주민(탈북자) 100여명의 정보를 포함한 중요 수사자료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자료의 용량은 100GB(기가바이트)가 넘어 보였다.
“정찰총국 김○○ 접근해 팔아먹자”
간첩사건 등 주로 공안사건을 수사해온 인천 지방경찰청 소속의 한 형사가 탈북자 수사 정보와 각종 국가기밀 문서가 담긴 외장 하드디스크를 빼돌리려 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고발을 당해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사업가 ㄱ씨가 지난 2일 김 경위를 고발한 이 사건에 대해 인천지방검찰청 공안부가 수사에 착수했고,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해 형사1부 소속 검사 한명이 추가로 투입됐다. 김 경위는 출국 금지된 것으로 알려졌고, 인천경찰청은 김 경위를 대기발령 조처했다.
ㄱ씨는 중국과 북한에 정보를 건네고 돈을 받으려고 김 경위가 의도적으로 유출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김 경위는 외장하드 유출은 단순 실수라며 맞서고 있다. 누구 말이 사실일까. 아직은 검찰 수사 단계여서 사건의 실체는 안갯속에 있다. 다만 분명한 건 이 정보들은 탈북자와 국가정보원 요원의 신상정보 등이 담겨 있어 외부로 유출될 경우 문제가 커졌을 것이라는 점이다. 국가정보망이 내부에서부터 구멍이 뚫린 것일까.
김 경위는 <한겨레>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고, 인터뷰에 응한 ㄱ씨는 이번 사건이 ‘국가기밀 유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ㄱ씨가 김 경위와 처음 만난 건 2013년 8월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ㄱ씨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사업가이면서 동시에 국정원과 경찰 보안수사대 등의 의뢰를 받아 첩보활동 등을 하는 역할을 해왔다. 공안수사기관들은 관행적으로 ㄱ씨 같은 민간인을 휴민트(인적정보자산)로 활용해 수사 정보나 증거들을 수집하고 사례비를 지급한다.
ㄱ씨가 김 경위를 처음 만났을 때 김 경위는 인천 해양경찰청 보안계 소속 경사였다. 국정원 요원들이 ㄱ씨를 김 경위에게 소개했다고 한다. 2013년 말께 김 경위가 ㄱ씨에게 한국인 사업가가 북한 보위부와 연계해 대북 무역사업을 하는 것 같다며 수사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김 경위가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2013년 12월쯤인가 본격적으로 부탁을 해왔어요. 제가 수사에 참여하면서 수사 속도가 빨라졌어요. 평양에서 중국으로 발송한 화물을 중간에서 빼돌려 경찰에 넘겨줬는데, 그 덕분에 간첩 혐의자 신상이 파악됐어요. 김 경위가 무척 좋아했어요.”
ㄱ씨는 2013년 말부터 불거진 ‘서울시 공무원 간첩증거조작 사건’을 통해 자신의 정보력이 한 차례 더 빛을 발하자, 김 경위가 자신을 더 믿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ㄱ씨는 중국 공무원에게서 ‘증거가 조작됐다’고 확인한 정보를 2013년 말 국정원과 김 경위 등에게 알렸다. ㄱ씨의 말대로 지난해 2월 중국 당국은 위조 사실을 한국 사법부에 통보했다. 국정원 대공 수사요원들은 큰 타격을 받았지만, ㄱ씨의 정보력이 더욱 신뢰를 얻게 된 계기였다. 김 경위는 ㄱ씨와의 끈을 계속 유지했다. 그러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침몰 사고가 벌어지고 얼마 안 된 시점에서 ㄱ씨는 김 경위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해양경찰청을 해체한다고 발표하자 김 경위는 경찰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정부에 대한 불만이 많았어요. 박근혜 대통령을 대통령이라고 안 부르고 ‘1번님’이라고 지칭할 정도였지요. 김 경위는 저에게 경찰을 그만둘 테니 같이 사업(정보 브로커)을 하자고 했어요. 제가 중국 공무원과 인맥이 두터우니 북한 쪽과도 선이 닿을 거라고 본 거죠. 당시 김 경위가 수사하던 한국인 사업가가 있었어요. 그를 관리하는 자가 북한 정찰총국(대남·해외 공작업무를 총괄)의 김○○이었는데 그에게 정보를 팔면 될 거라고 구체적으로 제안하기도 했어요. 김 경위가 김○○의 중국 전화번화도 제게 줬어요.”
김 경위는 해경 조직이 해체되지 않으려면 잠적한 유병언(구원파 리더로 지난해 7월22일 주검으로 발견)을 해경이 검거해야 한다고 말해왔다고 한다. ㄱ씨는 김 경위와 함께 유병언의 중국 밀입국 시도를 적발하려 했지만 잘 안됐다고 말했다.
“유병언 검거에 실패한 뒤 해경 보안계는 거의 실의에 빠진 분위기였어요. 사무실 가보면 간이침대 같은 데에서 낮에도 잠을 자고 있더군요. 그래서 제가 ‘중국에서 가져온 북한 정보들이 많으니 그것으로 또다른 수사를 잘 해보라’고 권했지요.”
지난해 8월15일 김 경위는 ㄱ씨에게 ‘경비실에 외장하드를 맡겨두었으니 북한 정보를 담아서 (김 경위에게) 건네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외장하드를 받아 집으로 돌아온 ㄱ씨는 뜻밖의 내용을 확인하게 됐다. “빈 하드디스크인 줄 알았는데 국가의 온갖 중요 정보들이 들어 있었어요. 이 정보들이 중국을 거쳐 북한에 들어가면 큰일 나겠다 싶었어요.”
<한겨레>가 확보한 검찰 수사자료를 보면, 김 경위의 외장하드 안에는 탈북자들의 얼굴 사진,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개명한 이름, 탈북자 한국 거주 주소, 국정원 합동신문센터가 진행한 탈북자 조사 내용, 조사 담당자 이름, 일선 경찰서 보안과 경찰 이름과 연락처 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한국 수사기관의 디지털 포렌식 수사 기법, 주요 공안사건 수사 보고서(2013년 월북한 탈북자 이혁철 사건 등), 미 육군 군사정보단 수사관 이름과 연락처, 전쟁시 경찰 정보관 연락망 개선 방안(2급비밀 분류 자료), 국정원 요원의 얼굴이 담긴 사진, 서해안 열상감시장비(TOD) 촬영 사진 등 국가 안보와 관련된 자료도 있었다.
보안수사 민간정보원 ㄱ씨인천경찰 김아무개 경위 고발
“함께 정보 브로커 사업 하자며
탈북자 등 주요 수사자료 담긴
100GB 되는 외장하드 건넸다” ㄱ씨가 받은 외장하드엔
탈북자들의 얼굴사진과 주소,
국정원 요원 얼굴의 사진,
주요 공안사건 수사보고서,
서해 열상감시장비 사진까지 실수로 보기엔 치밀하게 수집한 흔적 ㄱ씨는 김 경위가 유출한 자료를 자신의 컴퓨터에 보관했다고 한다. 김 경위가 범죄를 실행에 옮기기 전 증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그는 주장했다. 김 경위가 준 외장하드를 포맷하고 원래 주기로 약속한 북한 관련 첩보만 그 안에 담아 건넸다. “김 경위에게 바로 전화가 오더라고요. 제게 ‘하드디스크 내용을 봤느냐’고 묻더군요. 저는 안 보고 바로 지워버렸다고 했어요. 그러자 안타까운 목소리로 저더러 ‘지워지면 안 되는 내용이니 복원해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김 경위에게 돌려줬던) 외장하드디스크를 다시 건네받았어요. 국가 중요 기밀이 담긴 자료들인데 김 경위가 직접 복원하지 않고 저더러 다시 복원하라는 겁니다. 외장하드 안에 있는 것을 저보고 살펴보라는 말로 이해했어요.” ㄱ씨는 김 경위에 대한 심증을 굳혔다. 지난해 10월께부터는 경찰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더 자주 하고, 자신이 언제 그만두면 되느냐고 ㄱ씨에게 노골적으로 물었다고 한다. 김 경위는 최근 부동산 관련 투자에 실패해 빚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ㄱ씨는 전했다. 해양경찰청이 해체된 뒤 김 경위는 인천 중부경찰서 보안과로 발령받았다. ㄱ씨가 김 경위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것은 지난 2일이다. 이에 앞서 ㄱ씨는 지난달 8일 인천지방검찰청에 인천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 직원 네명을 별도의 건으로 고발했다. ㄱ씨는 이들 경찰이 경찰관 신분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고 공금을 유용했다며 고발장을 냈다. 지난해 12월 간첩수사 등 대공업무를 담당하는 보안수사대 직원들이 중국 출장 중 공금으로 접대 여성이 있는 유흥주점에서 술을 먹고 ㄱ씨에게 중국 현지 식당의 가짜 영수증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게 ㄱ씨의 주장이다. 그러자 김 경위가 ㄱ씨에게 전화해 고발 취하를 종용했다. “김 경위가 과거 자신의 동료였던 비위 경찰들을 두둔하고 사건을 덮으려는 모습을 보여 실망했어요. 이런 경찰들이 더이상 국가 안보를 담당하는 보직에 있어선 안 된다고 판단했어요. 김 경위까지 검찰에 고발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김 경위는 가만두면 안보의 근간을 뒤흔들 대형 사고를 칠 위험도 있었고요.” 인천경찰청은 김 경위에 대한 감찰에 착수했고 검찰은 김 경위를 수사중이다. 김 경위는 경찰에 “ㄱ씨에게 전해진 하드디스크 안에 어떤 것이 들어 있었는지 모르고, 북한 관련 동향을 수집하려고 ㄱ씨와 정보를 거래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유출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 경위가 단순 실수를 저질렀다고 보기에는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먼저 김 경위가 자료를 오랜 기간 치밀하게 모은 흔적이 보인다는 점이다. 하드디스크 안에는 김 경위가 맡은 사건의 수사자료 외에도 다른 사건의 수사기록들이 함께 들어 있다. 경찰 내부 전산망에 접속해 휴대전화 카메라로 컴퓨터 화면에 올라온 수사기록을 찍는 방식으로 자료를 수집했다. 탈북자나 피의자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전산프로그램에 입력한 뒤 수사기록을 조회한 듯 보인다. 이밖에도 경찰 2급비밀로 분류된 자료와 일선 경찰서 보안과 직원의 휴대전화 번호도 경찰 내부 전산망으로 조회한 뒤 사진으로 찍었다. 김 경위가 전화번호를 유출한 한 일선 경찰서 보안과 직원은 전화통화에서 “김 경위의 이름을 지금 처음 듣는다. 아무 안면이 없는 사람이 왜 내 전화번호를 수집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한 김 경위가 실수로 하드디스크를 ㄱ씨에게 건네줘 정보가 유출된 것이라면, 김 경위가 ㄱ씨에게 내용을 봤느냐고 확인한 것도 상식 밖이다. 다만 김 경위가 정보를 수집하고 유출한 것이 맞다 하더라도 ㄱ씨의 주장처럼 정말 중국 혹은 북한으로 팔아넘기려던 의도가 있었는지 입증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ㄱ씨의 주장 말고는 김 경위의 유출 의도를 입증할 만한 단서를 검찰이 확보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김 경위가 구체적으로 북쪽과 연락을 시도한 정황도 없는 상태다. 일선 경찰 사이에서는 김 경위가 해양경찰청에서 인천지방경찰청으로 보직을 이동하면서 일종의 ‘업무 밑천’을 마련하고자 따로 정보를 수집해 보관한 것이 아닌가 추정하기도 한다. 한 경찰 관계자는 “부서 이동을 하게 되면 자신이 맡던 사건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수사 기밀을 편법으로 따로 보관하는 경찰들도 있다”고 전했다. 이런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검찰이 김 경위에게 국가보안법이 아닌 형법(공무상 비밀누설죄)을 적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감시 사각지대 놓인 보안수사대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과 별도로 경찰당국이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여기고 관련자 문책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안수사대 출신 한 전직 경찰은 “경찰 부서 중 외부감시망에서 가장 비껴 난 곳이 보안수사대다. 국가 안보와 관련한 수사부서라는 이유로 활동 보고가 투명하지 않다. 과거와 달리 국가보안법 사범은 줄었는데 수사부서와 인력은 그대로다. 전문 수사인력이 보안수사대에 잘 가려 하지도 않는다. 조직이 나태해지기 쉽고 일탈 행위가 일어나기 쉬운 환경이다. 민간 정보원을 고용하지 않았는데 아무 이름만 보고서에 올려놓고 특수활동비를 빼돌리는 경찰도 최근 있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김 경위에게 수차례 연락했지만 그는 15일 “검찰 수사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답변을 드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검찰 수사 추후 결과에 대해 물으면 성심껏 답변하겠다”는 문자를 보낸 뒤 더이상의 회신을 하지 않았다. 인천경찰청 관계자는 <한겨레>에 “ㄱ씨가 정보 협력 과정에서 돈을 너무 밝히는 등 질이 좋지 않다”며 고발의 순수성이 의심된다는 취지의 설명을 했다. 그러나 ㄱ씨는 “지난 10개월 동안 중국에서 인천경찰청 보안수사대의 온갖 심부름을 다 했지만 수고비로 받은 돈은 70만원뿐이다. 돈을 밝히는 사람으로 나를 모는 건 악의적인 모함이다. 고발 직전만 해도 나를 칭찬했던 사람들”이라고 반박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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