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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26 19:35 수정 : 2015.06.28 21:27

마이크로소프트가 최근 공개한 증강현실 기기 ‘홀로렌즈’를 머리에 쓴 사용자가 집 거실에서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하고 있다. 홀로렌즈를 이용하면 허공에 자신이 원하는 물체를 만들어 띄울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제공

[토요판] 뉴스분석, 왜?
차세대 플랫폼 가상현실(VR) 혁명

▶ 허공에 띄운 화면 속 상대방과 영상통화를 하는 모습은 <아이언맨>이나 <덴마> 같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만화에 종종 등장합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단지 상상에 불과한 일이 아닙니다. 곧 가상현실(VR) 기기를 통해 현실이 될지도 모릅니다. 가상현실 기기가 보급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회적 변화는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변화보다 훨씬 혁명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 앞에 어떤 미래가 다가와 있을까요?

일본 <엔에이치케이>(NHK)가 2007년에 방영한 애니메이션 <전뇌코일>은 ‘증강현실’을 소재로 했다. 2026년의 근미래 일본의 지방도시 다이코쿠시의 아이들은 모두 ‘전뇌안경’을 쓰고 다닌다. 이 안경을 쓰면 증강현실 시스템인 ‘전뇌세계’에 접속할 수 있다. 안경을 쓴 아이들은 눈앞 허공에 잡지나 영화 화면을 띄워놓고 보거나 부모와 영상통화를 하고,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동물을 애완동물처럼 데리고 다닌다. 가상의 빛을 무기처럼 사용해 총싸움을 벌이듯 놀기도 한다. 물론 전뇌안경을 벗으면 이 모든 것은 사라진다. 사용자가 바라보는 사물과 관련된 정보나 가상의 물체를 현실세계에 덧입혀 보여주는 것이 바로 증강현실이다.

허공에 가상현실 띄우는 ‘홀로렌즈’

이 만화는 애초 2012년 4월 구글이 발표했다 올해 초 판매를 중단한 ‘구글안경’(구글글래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종종 인용됐다. 구글안경은 안경을 쓴 사용자의 시야 안에 작은 화면을 띄워놓고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보여준다. 사용자는 자신이 보고 있는 상황을 녹화하거나 시야 한쪽 구석에 화면을 띄워놓고 영상통화를 하고, 갈래길이 나왔을 땐 내비게이션을 띄워 목적지를 찾는다. 구글안경은 발표 당시 아이폰이 처음 소개됐을 때만큼 화제였다. 한데 올해 이것과는 차원이 다른 증강현실 기기가 등장했다. 주인공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홀로렌즈’다.

홀로렌즈 역시 구글안경처럼 머리에 쓰는 형태다. 한쪽 눈만 살짝 가리는 구글안경과 달리 양쪽 눈앞을 몇 겹의 투명한 유리가 덮고 있다. 겉보기엔 구글안경보다 조금 더 크고 복잡해 보이지만, 이 기기가 구현하는 일은 구글안경에 견줘 훨씬 혁명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연 ‘빌드 2015’ 행사에서 홀로렌즈를 시연한 영상을 보면, 홀로렌즈를 쓰고 무대에 등장한 이는 애니메이션 ‘전뇌코일’의 아이들과 비슷한 일을 해낸다. 영화 화면을 한쪽 벽에 띄워놓고 보다가 다시 화면을 벽에서 떼어내 자신의 바로 옆 공중에 띄워놓고 집안을 돌아다닌다. 허공에 떠 있는 화면은 이 사람을 따라다닌다. 그러다 그는 허공에 뜬 채 자신을 따라다니던 화면을 다시 방의 다른 쪽 벽면에 붙이곤 벽 전체로 화면의 크기를 키운다. 순식간에 이 벽은 대형 영화 스크린이 된다. 물론 전뇌안경처럼 홀로렌즈를 쓰지 않은 사람에겐 화면이 보이지 않으며 모든 과정은 간단한 손동작만으로 이뤄진다.

홀로렌즈가 하는 일은 사용자가 바라보는 실제 공간에 가상의 물체를 만들어 띄워놓고 이 물체와 사용자가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단순히 시야 한쪽에 필요한 정보를 띄워놓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가상의 물체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영화나 티브이 화면을 원하는 곳에 원하는 크기로 띄울 수 있고, 개발 중인 새 제품의 3차원 디자인을 만들어 이리저리 돌려볼 수 있다. 모델하우스에선 건축 조감도를 만들어놓고 방문객들이 확대해 보거나 아직 지어지지 않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

물런 이런 가상의 물체를 마치 그곳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사물은 우리가 눈의 위치를 조금만 바꿔도 모양이 달라진다. 책을 예로 들면, 눈의 위치에 따라 측면의 제목이 보이기도, 사라지기도 한다. 때문에 가상의 사물이 우리 눈에 자연스럽게 보이게 하려면 우리 눈의 위치가 고개나 몸 전체의 미세한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상황을 기계가 실시간으로 확인해 그에 맞게 가상 사물의 모습을 바꿔야 한다. 이 속도가 늦으면 가상 사물이 자연스럽게 보일 리 없다. 그래서 더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여러 시연 영상을 보면, 홀로렌즈를 착용한 이는 눈앞에 놓인 오토바이의 디자인을 바꾸거나 허공에 인체모형을 띄워놓고 강의를 하고, 거실 탁자 위에 성을 쌓아놓고 게임을 한다. 모두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 오직 홀로렌즈를 착용한 이에게만 보이는 가상의 사물들이다.

허공에 잡지나 영화 띄워 보거나
가상의 동물 애완동물처럼 다뤄
안경을 벗으면 모든 게 사라진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가상현실
올해 가상현실 기기 개발 ‘봇물’

‘카드보드’, ‘오큘러스 리프트’ 등
스마트폰 활용한 1만원대부터
실시간 반응 몰입감 높인 기기도
“모바일 이을 차세대 플랫폼”
만화 속 미래 10년 안에 현실 된다

더 이상 멀미나 메스꺼움은 없다

증강현실을 포함해, 넒은 의미에서 이 가상현실을 만드는 기기들은 인간이 외부환경과 상호작용하기 위해 사용하는 감각기관을 속이는 일이다. 청각이나 후각, 촉각을 속이는 기기들도 개발 중이거나 일부 상용화돼 있지만, 감각기관 중 가장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시각이 중심이다. 시각만 속여도 인간은 자신이 다른 곳에 있다고 느낀다. 가상현실 기기들도 그래서 주로 머리에 쓰는 디스플레이(HMD)의 형태로 발달해왔다.

올해는 특히 시각을 속이는 가상현실 기기들이 새로 쏟아진 해다. 구글은 올해 초 ‘카드보드’라는 이름의, 골판지로 만들어 스마트폰을 장착해 쓰는 가상현실 체험 기기를 선보였다. 위아래로 긴 스마트폰 화면을 옆으로 눕힌 뒤 화면을 좌우로 나누고, 각각 왼쪽 눈과 오른쪽 눈에 맞춘 화면을 광각렌즈를 통해 보는 원리다. 스마트폰엔 기기의 회전이나 움직이는 속도, 지자기 감지장치(센서)가 달려 있는데, 카드보드용으로 만들어진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앱)들은 이 감지장치를 이용해 사용자가 고개를 돌리는 방향에 맞춰 그에 맞는 화면을 보여준다. 사용자는 이를 통해 가상의 공간에 들어와 있는 듯 느낀다.

1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직접 만들 수 있는 구글의 카드보드는 제품이라기보단 일종의 ‘규격’이다. 삼성이나 엘지 같은 회사들이 만든 ‘기어 브이아르(VR)’나 ‘지(G)3 브이아르’ 같은 제품들도 이 카드보드를 기반으로 해 만들어진, 스마트폰을 부착해 이용하는 기기다. 단지 골판지나 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틀’에 불과하다보니 구글의 카드보드는 1만~2만원대의 매우 저렴한 제품들이 나와 있다.

일반 소비자용 가상현실 헤드셋 ‘오큘러스 리프트’
스마트폰을 이용하지 않는, 가상현실 체험 전용으로 만들어진 기기는 오큘러스 브이아르와 소니 등이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3월 페이스북이 우리 돈으로 2조원이 넘는 금액에 인수한 오큘러스 브이아르는 내년 1분기에 출시하겠다며 일반 소비자용 가상현실 헤드셋 ‘오큘러스 리프트’(사진)를 선보였다. 오큘러스 브이아르는 2013년 이후 오큘러스 리프트의 개발자 버전만을 공개해 왔지만 상용 버전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1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제품 발표회에서 공개된 오큘러스 리프트는 앞이 막힌 잠수경처럼 생겼다. 전면엔 작은 엘이디(LED)들이 점점이 박혀 있는데, 사용자의 앞쪽에 감지장치를 세워 이 엘이디의 움직임을 통해 사용자의 머리 위치를 파악한다. ‘별자리 추적 시스템’이라 이름 붙인 이 기능을 이용해 오큘러스 리프트는 구글 카드보드 기반의 가상현실 기기와 달리 사용자가 앉거나 서 있는 등의 동작까지 구분한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또 ‘오큘러스 터치’란 이름의 컨트롤러도 소개했는데, 양손에 하나씩 쥐는 이 컨트롤러에도 엘이디가 박혀 있어 사용자의 양손 위치도 알 수 있게 했다. 오큘러스와 함께 가상현실 체험기기를 개발 중인 소니 역시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 ‘프로젝트 모피어스’란 이름의 기기를 내년 상반기에 출시할 예정이다.

곳곳에서 가상현실 기기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제작비용이 싸진 덕이다. 오큘러스 리프트의 경우 창업자인 파머 러키가 2012년 크라우드펀딩 서비스인 ‘킥스타터’를 통해 모은 자금으로 초기 버전을 개발했는데, 가격이 우리 돈으로 30만원 남짓에 불과했다. 미국의 브이피엘(VPL)이란 회사가 1989년 6월 내놓은 가상현실 체험기기인 ‘아이폰 모델1’은 당시 1천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렸다. 기술의 발달로 기기 제조비용이 놀랄 만큼 떨어지면서 가상현실 기기가 본격적으로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기술의 발달도 가상현실 기기의 보급을 촉진하고 있다. 가상현실을 실재처럼 느끼는 몰입감을 높이려면 보여지는 화면이 얼마나 실재와 유사한가가 관건이다. 시야각, 해상도, 반응속도 등이 특히 중요하다. 실제 우리 눈이 보는 것처럼 넓은 범위를 한번에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해상도가 높아 인공의 화면이라 느끼지 않아야 하며, 고개를 돌릴 때 보여지는 사물의 변화 등이 빠르고 자연스러워야 한다. 반응속도의 경우 우리의 뇌가 바뀐 시각정보를 인지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인 0.02초보다 더 늦어지면 우리의 뇌는 이상을 느껴 현기증이나 구역질이 날 수 있다. 이 때문에 아직 구글의 카드보드를 기반으로 한 가상현실 체험 앱은 장시간 사용이 어렵다. 반면 홀로렌즈 등 전용기기들은 반응속도가 거의 실시간이라는 게 체험한 이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빌드 2015’ 행사에서 홀로렌즈를 체험한 이민석 국민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이전엔 화면에 보이는 그래픽 오브젝트들이 머리의 움직임을 충분히 잘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이질감이 느껴졌고 이 이질감은 오래 착용했을 때 멀미나 메스꺼움을 유발하는 요인이 됐다. 하지만 홀로렌즈는 이런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사고현장 있는 듯’ 저널리즘서도 활용

이런 가상현실 기기는 머지않아 본격적인 대중화의 길을 걸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맥월드’에서 아이폰을 처음 발표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07년의 일이다. 한국에선 2010년께부터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5년여가 흐른 지금은 스마트폰이 거의 모든 사람에게 필수 소지품이 됐다. 지난해 오큘러스 리프트를 인수한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는 “모바일이 현재의 플랫폼이라면, 차세대 플랫폼은 가상현실”이라고 했다. 홀로렌즈나 오큘러스 리프트 같은 가상현실 기기들이 스마트폰과 같은 필수품이 되는 미래가 머지않은 것이다. 우리에게 컴퓨터 운영체제인 윈도로 알려진 마이크로소프트도 이 때문에 최근 태블릿 컴퓨터인 ‘서피스’와 홀로렌즈 같은 하드웨어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가상현실 기기들은 흔히 생각하는 게임이나 성인물, 교육용 말고도 쓰기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다. 브렌던 이리브 오큘러스 최고경영자는 오큘러스 리프트 공개 행사에서 “바로 거기 있도록 하는 마법을 실현할 것”이라 했다. 사용자가 현장에 있는 듯 만들어주는 가상현실의 ‘마법’은 저널리즘 분야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 ‘가상현실 저널리즘’의 개척자로 불리는 노니 데라페냐(52) 엠블러매틱그룹 대표는 지난 4월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에서 열린 온라인저널리즘 국제심포지엄에서 가상현실 체험기를 활용해 사용자가 사건 사고의 현장에 있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게 하는 가상현실 저널리즘을 소개했다. ‘프로젝트 시리아’란 이름의 프로그램에서 사용자는 폭탄 테러가 발생한 시리아의 주택가 내 테러 현장 한복판에 있게 된다. 테러 현장과 지나는 사람들, 차량이 가상현실로 만들어지고 여기에 실제 현장의 사진이 덧입혀졌다. 사용자는 현장의 상황에 한층 더 몰입할 수 있게 된다.

건설이나 의학 분야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 3차원 건축설계 프로그램을 이용해 건물을 설계한 뒤 그 안에 직접 들어가보거나, 다른 형태로 리모델링했을 때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등을 쉽게 알 수 있다. 건물이 실제 세워질 곳에 가상으로 건물을 만들어 주변 풍광과 비교해가며 설계를 고치는 일도 가능하다. 의학 분야에서도 이미 여러 용도로 활용중이다. 미국 워싱턴대 하버뷰 화상센터에선 화상 환자들을 치료할 때 눈밭으로 뒤덮인 가상현실을 보면서 치료를 받게 한다. 화상 환자는 상처를 자극하면 사고 당시를 떠올리게 마련인데, 그와 반대되는 차가운 환경에 놓여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하는 것이다. 뇌졸중 환자에게 가상현실을 경험하게 해서 죽어 있던 운동 뉴런을 재생시키는 일도 이뤄진다.

가상현실이 대중화되는 시기는 머지않았다. 불과 수년 만에 거의 모든 이들이 스마트폰을 지니게 됐듯, 머리에 홀로렌즈 같은 가상현실 기기를 착용한 이를 거리에서 쉽게 볼 날이 올지도 모른다. 만보기나 내비게이션, 스톱워치, 알람시계 같은 기기들이 스마트폰 등장 이후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듯, 티브이나 모니터, 3차원 프린터 같은 기기들이 가상현실 기기의 대중화로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삼성전자나 엘지전자 같은 대기업들이 스마트폰 개발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새 가상현실 기기를 선보이며 광고 경쟁에 열을 올릴 수도 있다. 적어도 10년 안에는, 머리에 쓰는 형태의 디스플레이가 지금의 스마트폰을 대체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 사람들이 많다. 애니메이션 <전뇌코일>이 그린 새로운 세계는 이미, 우리 코앞까지 다가와 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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