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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02 19:48 수정 : 2015.10.03 14:07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있는 가수 싸이의 집 앞에서 미술관 겸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레지던시 작가인 현대미술가 신제현(33)씨가 손팻말을 든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뉴스분석 왜?
싸이와 테이크아웃드로잉

▶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를 겪었지만 우린 아직 임차상인의 생존권이라 할 영업권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법정 임차기간을 최소 5년으로 확정했을 뿐입니다. 재건축 등의 이유로 세입자를 내쫓는 일은 여전히 비일비재합니다. 가수 싸이 건물의 세입자로 알려진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도 가게 문을 연 6개월 뒤부터 이런 분쟁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들은 오로지 ‘가진 자’인 싸이의 ‘아량’에 기대어야 하는 형편입니다. 우린 왜, 항상 이런 식일까요?

지난달 30일 눈에 띈 기사 하나. ‘싸이, 추석 당일도 세입자 시위 “다 포기하고 싶다”’. ‘강남 스타일’로 일약 국제적 유명세를 얻은 가수 싸이(박재상·37)가 자기 소유 건물의 세입자들이 추석날 아침부터 집 앞에서 시위를 해 괴로워했다는 보도다. 연예 소식을 주로 다루는 매체가 썼다. 세입자들은 추석 당일 아침과 밤 10시에 싸이의 집 앞에서 시위를 했고, 싸이 매니저가 경찰에 문의했지만 합법적으로 신고된 시위라 어쩔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 싸이는 동네 주민들이 피해받는 상황에 괴로워하다 “이대로 다 포기하고 싶다.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추석 당일에 집을 나갔다는, 다소 비장한 기운이 감도는 내용이다. 기사는 싸이가 2012년 2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 건물을 매입하면서 건물에 입주한 카페 주인에게 법원 조정 결정을 근거로 건물을 비울 것을 요청했지만 카페 주인이 반발해 갈등이 극대화된 상황이라 전했다. 그러면서 해당 건물이 재건축을 앞뒀고 카페를 제외한 나머지 층의 임차인들은 건물을 비운 상태라고 썼다. 마치 고액 보상을 바란 악질 세입자가 건물을 새로 짓겠다는데도 나가지 않고 버티는 듯한 인상이다. 댓글도 싸이를 응원하는 내용이 많다. 그런데 정말, 이런 상황일까?

세번째 건물주로 그가 오다

기사에 등장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이하 드로잉)을 지난달 30일 찾아가 봤다. 카페 앞에 세워진 현판엔 ‘드로잉은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것을 지어내고 만들어낼 수 있는 무한한 땅’이라고 적혔다. 알 듯 모를 듯 한 말. ‘드로잉’이 들어선 건물은 남산으로 이어진 비탈진 땅에 지어졌다. 남쪽에서 보면 6층 건물이지만, 건물이 기대선 이태원로 쪽에선 위쪽 두 층만 보인다. 그 두 층을 드로잉이 쓴다. 카페 전면 유리엔 9월28일부터 정상영업을 하고 있고, ‘싱글러브유 - 오이맛사지’ 전시회가 진행중이란 안내문이 붙었다. 카페 1층 내부엔 으레 있어야 할 탁자와 의자 대신 복잡한 물건들로 가득했다. 강한 원색으로 칠해진 금속 구조물들이 이곳저곳에 놓였고, ‘ㅊ이 우리집 앞에 피었습니다’, ‘제조렙: 사선에 대하여’ 같은 의미를 짐작하기 힘든 글귀가 벽면에 쓰여 있었다. 선반엔 예술 관련 서적들이, 그나마 카페의 꼴을 갖춘 2층엔 ‘답변서 프로젝트’를 비롯한 미술 작품들이 설치돼 있었다. 1·2층, 옥상을 연결하는 계단과 층계참은 ‘싱글러브유 - 오이맛사지’의 전시물로 꾸며졌다.

저녁엔 카페 2층에서 ‘안산 순례길’이란 이름의 프로젝트 발표회가 열렸다. 지난 5월 초 이틀간 시민 100여명이 단원고를 포함한 경기도 안산의 다양한 곳을 돌며 벌인 퍼포먼스다. 발표회는 내년에도 이 프로젝트를 이어가겠다는 일종의 결의대회였다. 심보선 시인을 비롯한 안산순례길개척위원회가 벌이는 사업인데, 드로잉이 이들에게 장소를 제공했다. 드로잉의 디렉터인 최소연(47)씨는 이들에게 “재난 현장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인사했다. 재난을 기억하려는 이들과, 재난을 당한 이의 만남이다. 최씨가 말한 ‘재난’은 한 주 전이었던 지난달 21일을 포함해 올 들어 세 차례 맞닥뜨려야 했던 명도집행을 이른다. 입주 계약을 하고 불과 6개월 뒤인 2010년 10월부터 이들이 겪어야 했던 건물주들과의 분쟁 과정도 재난이었다. 이들의 세번째 건물주가 싸이다.

최씨와 드로잉 운영진에게 이곳은 미술품을 전시하는 카페 이상의 의미가 있다. 순수미술을 전공한 최씨는 2001년부터 시작된 ‘접는 미술관’ 프로젝트로 알려진 설치미술가이자 전시기획자다. 접는 미술관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 다른 나라에서 약탈한 문화재를 전시하는 서양의 유명 미술관의 본질을 주목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사업이다. 최씨는 미국 뉴욕, 오스트레일리아 브리즈번, 프랑스 파리 등에서 미술관을 ‘접는’ 퍼포먼스를 벌였고 서울에서도 전시했다. 취지에 동감한 이들이 모여 커뮤니티가 형성됐고 새로운 미술관, ‘동네미술관’을 만들자는 취지의 운동으로 발전했다.

최씨는 “기존 미술관의 미술품은 전시되고 판매되거나 창고에 박히는, 세 가지 경로를 따라갈 뿐이다. 우리의 관심 대상은 완성된 미술품이 아니라 창작하는 행위, 생산하는 행위다. 그림, 조각, 설치미술을 하는 이들이 갖는 생각의 초안(드로잉)에 관심이 있다. 그걸 꾸준히 수집하고 소개하는 역할을 해보자, 전시만 할 게 아니라 소비되게 하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06년 서울 삼성동에 있던 비영리법인 ‘접는 미술관’의 사무실 40평 중 30평을 카페로 만들어 6개월 동안 운영하며 모니터링했다. 최씨가 강의를 나간 성균관대 학생들과 현대미술가들이 함께 동네 전체를 일종의 전시장으로 탈바꿈시킨 ‘명륜동에서 찾다’ 프로젝트가 그해 문화예술위원회가 수여하는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다. 공동작업의 결과물인 상금 3천만원의 용처는 분명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을 독립시키는 것. 2007년 발굴할 만한 ‘동네 콘텐츠’가 많을 것이라 생각된 서울 성북동에 드로잉 1호점을 열었다. 카페가 아닌, 새로운 방식의 미술관으로 홍보했다. 의자나 탁자, 조명, 장식물 등 카페의 필요 물품을 여러 현대미술 작가들과 함께 만들었다. 조각가가 만든 테이블과 타이포그래퍼가 디자인한 메뉴판이 카페에 놓였다. 드로잉은 작가들에게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두달 동안 카페를 전시공간으로 내주고 작품 제작비용도 지원한다. 카페 안엔 작가가 읽던 책들이 놓이고 작가가 듣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저 카페인 줄 알고 찾은 손님들은 체류(레지던시) 중인 작가의 창작 과정을 접하고 작가와 대화를 나누며 현대미술을 가깝게 느낀다. 한 작가의 체류 기간인 두달 동안 평균 1만명의 ‘관객’들이 다녀갔다. 독특한 협력방식이 주목을 받았고, 1년 뒤인 2008년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으로부터 입점 제의를 받아 드로잉 2호점이 만들어졌다. 동네마다 서로 다른 운영진이 운영하는, 다양한 문화를 담는 드로잉으로 확장해 가자는 구상이 시작됐다.

‘추석날 괴롭다며 집 나간’ 싸이와
분쟁 중인 한남동 건물 세입자
미술관 본질 보자며 시작한 운동
동네미술관으로 발전했지만
6개월만에 쫓겨나게 되었다

예술가들 모여 만든 문화공간
유동인구 많아져 내쫓기기 일쑤
“여기마저 없어지면 안 된다”
선진국은 최소 9년 이상 보장
왜 건물주 아량에 기대야 하나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실내. ‘너무해 비인간적 강제집행’ 등이 적힌 손팻말이 창가에 세워져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월세, 700만원과 5천만원 사이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시작됐다. 한 장소에서 5년 이상 드로잉을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유동인구가 늘면서 건물주가 월세를 큰 폭으로 올리거나 임대차계약을 연장해주지 않은 것이다. 성북동의 1호점도 명도소송을 당해 쫓겨나야 했다. 동네에 터 잡은, 동네미술관으로 발전시키겠단 구상을 해가던 운영진에겐 난감한 일이었다.

싸이의 건물이 된 드로잉 한남점은 그래서 더 특별했다. 2010년 4월 계약 당시 건물주였던 일본인은 “일본에선 원래 그렇게 한다”며 선뜻 ‘임차인이 원하는 경우 해마다 계약을 연장한다’는 특약을 해줬다. 이 건물 4~6층을 쓰다 4층만 쓰게 된 직전 임차인인 고깃집 주인도 15년 동안 계약을 해왔다고 했다. 이번엔 제대로 된 동네미술관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로잉은 고깃집 주인에게 권리금 6천만원을 주고, 각종 비용 4억여원을 들여 한남점을 열었다. 당시엔 이태원 상권이 한남동까지 확장되지 않을 때였다. 비슷한 시기 인근에 ‘공간 해밀톤’(2009년 10월), ‘꿀’(2010년 4월) 같은 복합문화공간들도 들어섰다.

하지만 문제는 6개월 뒤부터 시작됐다. 드로잉 입점 때 30억원가량이었던 건물 가격이 68억원으로 급격히 오른 것이다. 1980년대부터 건물주였던 일본인은 한 주류수입회사에 건물을 팔아버렸다. 바뀐 주인은 건물을 새로 짓겠다는 이유로 세입자들에게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건물주가 바뀌더라도 기존 계약이 보호받게 된 건 2013년에야 가능해졌으니, 당시로선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았어도 억울하지만 바뀐 주인의 뜻을 따라야 했다. 재건축을 이유로 한 건물주의 계약갱신 거부도 법적으로 유효했다. 건물주가 낸 명도소송 결과는 1년 뒤 나왔다. 2011년 12월 법원은 2년 뒤인 2013년 12월말까지 건물을 비울 것을 명했다. 한남점을 연 지 3년도 안 돼 쫓겨나게 됐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한데 건물을 새로 짓겠다며 세입자들을 내쫓은 건물주는 법원의 조정 결과가 나온 두 달 뒤 건물을 팔아버렸다. 싸이는 2012년 2월 자신의 아내와 공동명의로 이 건물을 78억원에 매입했다.

새 주인이 된 싸이는 건물을 새로 짓는 대신 드로잉이 있는 자리에 대기업 계열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입점시키려 했다.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제안한 월세는 여섯 층을 다 쓰는 경우 5천만원, 두 층을 쓰는 경우 2천만원이었다. 드로잉이 내는 월세(700만원)의 7배가 넘었다. 싸이는 앞서 법원의 조정 결과를 따를 것을 드로잉에 요구했고, 드로잉은 새 건물주가 재건축 의사가 없으니 재건축을 전제로 한 조정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건물을 새로 짓는 것도 아닌데 왜 나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드로잉이 건물을 비우지 않자 싸이는 법률 대리인을 통해 명도단행가처분을 신청했고 드로잉이 집행정지 명령을 신청해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올해 3월부터 지난달 21일까지 세 차례 명도집행과 집행정지가 반복됐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물리적 충돌로 양쪽은 서로를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했다. 신제현, 권준호 등 드로잉과 함께 작업해온 작가들도 고소당했다. 그사이 싸이의 소속사인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가 이 둘을 중재해 작가들의 레지던시가 계획된 올해 11월말까지 강제집행을 중단하기로 했지만, 이 약속도 결국 틀어진 셈이다. 싸이가 집을 나가며 괴로워했다는 이날의 시위는 이런 분쟁 과정의 일부였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괴물

드로잉과 비슷한 시기 인근에 들어선 문화공간들은 이미 이곳에서 사라졌다. 흔히 젠트리피케이션이라 일컫는, 문화예술가들이 공간을 활성화해놓으면 대기업 계열의 프랜차이즈가 비싼 월세를 미끼로 공간을 잠식해버리는 상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난한 예술가들은 서울 홍대에서 서교동으로, 합정동으로, 다시 문래동으로 끊임없이 밀려난다. 그래서 드로잉 같은 공간이 작가들에겐 절실하다. 지난 10년 동안 드로잉을 통해 지원받은 예술가는 50명이 넘는다.

지난해 케이블채널 스토리온의 ‘아트 스타 코리아’ 우승자였던 현대미술가 신제현(33)씨도 지난 4월부터 두 달 동안 드로잉에 머물며 ‘한남 사운드’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의 체류 기간을 전후해 두 차례 강제집행이 있었다. 그는 드로잉 내 집기를 자신의 작품과 연결하고, 창문 등에 그림을 그려넣는 방법으로 강제집행에 ‘저항’했다. 철거 용역들이 들이닥쳤을 때 철거를 할 수 없도록 드로잉과 독립된, 자신의 작품을 이용한 것이다. 그는 “지난주 철거용역과 경찰, 드로잉 대책위 사람들 100여명이 이곳에 모여 싸우고 있는 상황을 보고 있자니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실제 어마어마한 돈을 버는 사람은 따로 있고 그 사람은 편히 자기 삶을 즐기고 있는데 엉뚱한 이들만 고생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동안 일부러 빨지 않고 입고 있는 옷이 있는데 싸이 쪽에 선물로 보낼까 한다. ‘니네가 편하게 앉아서 돈 벌 때 난 냄새나는 옷 입고 버텼다’는 의미”라고 했다. 드로잉의 메뉴판 겸 소식지를 만든 디자이너 권준호(34)씨도 드로잉의 상황을 글로 쓴 것 때문에 싸이의 법률대리인에 의해 1천만원짜리 명예훼손소송을 당했다. 그는 “드로잉은 문화예술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알려진, 안정된 공간이다. 여기가 이렇게 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가진 자가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마저 없어지면 더 열악하게 작업하는 예술가들은 쉽게 쫓겨나는 걸 당연히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용산참사 등을 경험했고 몇차례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한국에선 아직 생존권이나 마찬가지인 임차상인의 영업권이 건물주의 재산권에 견줘 소홀히 다뤄진다. 반면 선진국들의 상황은 대체로 이보다 낫다. 드로잉의 첫번째 건물주인 일본인이 그랬던 것처럼, 일본에선 원칙적으로 임차인이 원하는 경우 무기한 계약을 갱신할 수 있게 돼 있다. 프랑스는 최소 9년 이상 임대차 기간을 보장한다. 기간 안에 계약갱신을 거절하면 고액의 금전으로 보상해야 한다. 독일(10년), 영국(15년)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들도 임차인들이 영업에 필요한 시설물 설치비용과 영업망 형성을 위한 영업비용 등 제반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있도록 장기 임대차를 보장하고 있다.

최씨는 “드로잉은 이곳을 찾는 관객들과 예술가들이 네트워킹을 하며 새로운 장을 형성해가는 일종의 공적 공간이다. 이런 공간조차 건물주의 눈치를 봐 가며 임대료가 싼 곳을 찾아 옮겨다녀야 한다. 왜 우리는 가진 자들인 건물주의 아량에만 기대어야 하는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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