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22일 오후 서울 신촌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윤도흠 당시 신경외과 교수(현 병원장)가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박아무개씨의 허리 부위를 찍은 자기공명영상(MRI) 필름(왼쪽)과 2011년 12월 박씨가 병무청에 제출한 필름을 비교하며 “동일인을 찍은 것으로 판단하며, 허리 디스크가 맞다”고 설명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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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박원순 아들 병역비리 논란
▶ 만 4년째 재임중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임기 내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이미 한차례 공개 검증을 통해 의혹을 불식했는데도 말이죠. 세브란스병원과 서울지방병무청, 검찰 등이 모두 아니라고 하는데도 의혹 제기자들은 막무가내입니다. 영국으로 유학 간 박 시장의 아들을 당장 데려오라고 난리입니다. 전문가인 의사들까지 가세해서 의혹 확산에 불을 지핍니다. 정치인들 중 자녀가 군 미필인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들은 왜 유독 박 시장을 물고 늘어지는 걸까요. 이들의 의심은 과연 합리적일까요?
지난 6일 19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가 열린 서울 태평로 서울시청.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서울시 국정감사장에서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이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을 문제 삼았다. 신상진 새누리당 의원은 박 시장에게 “떳떳하면 다시 한번 (아들) 사진을 찍고 마무리를 깨끗하게 한 후 시정에 전념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도 “(박 시장) 본인만 옳다고 하면 의혹만 증폭된다”며 박 시장 아들의 재신검을 요청했다.
같은 날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장에서도 새누리당 의원들은 박 시장 아들의 일을 문제 삼았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박 시장 아들이) 20세 때 찍은 구강 사진을 보면 스무살 청년의 치아 상태로 볼 수 없다. 영국에 있어 조사를 받을 수 없다고 하는데, (검찰이) 불러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1일 열린 서울고검과 서울중앙지검 국정감사 때도 김도읍 새누리당 의원은 “(박 시장이) 아들을 빨리 데리고 와서 법정에서 검증 절차에 응해야 한다”고 했다.
박 시장은 지난해 영국 유학을 떠난 아들을 둘러싼 이런 의혹 제기에 대해 “이미 여섯번이나 국가기관에서 혐의가 없다고 밝혔다.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국가기관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라 반박했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3년 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공개 검증’을 통해 해프닝으로 마무리된 문제가 다시 쟁점화하는 것이다. 실제 법원과 검찰, 병무청이 거듭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 분야 전문가라는 의사들까지 논란에 가세하며 불씨를 키우고 있다. 대체 이들은 왜 아직도 박 시장 아들의 문제를 도마에 올리는 걸까.
2011년의 해프닝
박 시장은 2011년 10월26일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야권 단일후보로 당선됐다. 박 시장의 아들은 선거가 있기 전 그해 8월29일 공군에 입대했지만 ‘대퇴부 말초신경 손상’을 이유로 나흘 만에 귀가조치됐다. 박씨는 아버지가 보궐선거에서 당선되고 두달 뒤인 12월27일 병무청 재검을 통해 4급 공익요원 판정을 받았다. 최초 의혹 제기자들은 이 재검을 문제 삼았다.
당시 무소속 국회의원이던 강용석씨가 의혹 제기에 앞장섰다. 강씨는 박씨가 다른 사람의 자기공명영상(MRI) 필름을 제출해 4급 판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듬해인 2012년 2월1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씨의 엠아르아이 사진을 공개한 강씨는, 이후 박씨의 여자친구 실명까지 공개하는 등 공개 신체검사를 압박했다. 공개된 엠아르아이 사진을 보고 일부 의사들이 강씨 주장에 동조했고 의사 6천여명이 가입된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이 “엠아르아이의 주인공은 중등도 이상의 비만 체형을 가진 30·40대 이상 연령대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혀 논란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논란이 확대되자 전의총 소견 표명 다음날인 2012년 2월22일 박 시장의 아들은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이 병원 의사들과 서울시 출입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 신체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 알려진 것과 달랐던 건 엠아르아이 사진이 아니라 박씨의 체형이었다. 강씨가 키 173㎝에 몸무게 63㎏ 가량의 마른 체형이라고 했던 박씨는 176㎝에 80.1㎏의 ‘비만’이었다. 검사를 주도한 윤도흠 신경외과 교수를 비롯한 의료진은 “(재검용으로 제출했던) 박씨의 엠아르아이 사진과 오늘 세브란스병원에서 촬영한 사진을 판독한 결과 동일인이라고 결론 냈다”며 “강 의원이 (바꿔치기 의혹의 근거로) 제시한 사진과도 같다”고 밝혔다.
앞서 감사원 누리집에 ‘강씨 주장이 사실이라 확신한다’고 글을 올린 한석주 세브란스병원 소아외과 교수는 이날 기자회견에 나와 “실수였다는 걸 인정한다”며 사과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촬영한 엠아르아이 사진을 넘겨받은 병무청도 이날 입장문을 내어 “병역처분 변경 시 확인한 엠아르아이와 비교한 결과 동일인의 것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주된 의혹 제기자였던 강씨도 이날 임기 3개월여를 남겨두고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기자회견을 지켜본 기자들은 “결국 이 난리통 끝에 알게 된 건 박 시장 아들이 비만이라는 사실뿐”이라며 자조했다. 박씨의 병역 비리 의혹을 둘러싼 논란은 그렇게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했다.
국감장서 연이어 쏟아진 의혹제기3년 전 의료진·기자들 참관해 검증
“실수 인정”, “사과”, “사퇴”했지만
문제 제기하는 이들 아직도 여전
왜 이들은 이 문제에 집착하나 의혹 제기자들은 ‘대리 신검’ 주장
일부 의사들 “비리 가능성 100%”
메르스 때 발족한 의사단체도 가세
결국 ‘거대한 공모극’이라는 주장
박 시장 반감이 이성을 가린 걸까 매수에 매수…거대한 사기극? 하지만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은 이상하리만치 집요했다. ‘사회지도층 병역비리 국민감시단’이란 단체는 공개 신검이 있던 그해 11월 이른바 ‘대리 신검’ 의혹을 제기하며 박 시장의 아들을 병역법 위반 혐의로 다시 검찰에 고발했다. 세브란스병원 신검 때 박 시장이 자신의 아들이 아닌 다른 인물을 대리인으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이듬해 5월 박씨를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여러 의사에게 감정을 받아본 결과 공개된 자료가 박 시장 아들 자료가 맞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의혹 제기자들은 멈추지 않았다. 박 시장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은 박 시장이 재선에 도전한 지난해 상반기에 또 불거졌다. 특히 양승오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암센터 핵의학과장 등 일부 의사들이 가세하면서 논란은 점차 확산해갔다. 박 시장은 결국 이들 중 양씨 등 7명을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죄로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했고, 선관위는 다시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당선 뒤 박 시장이 고소를 취하할 뜻을 밝혔지만 검찰은 계속 수사를 이어가 지난해 11월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양씨 등은 1심인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공판이 이어질 때마다 일부 인터넷매체 등을 중심으로 보도가 이어졌고 동조자들 사이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들만의 논란’에 기름을 부은 건 <문화방송>(MBC)이다. 양씨 등에 대한 재판이 이어지던 지난 8월13일 “시민 1천여명으로 구성됐다”고 주장하는 ‘(박 시장의 아들) 박○○ 병역법 위반 고발 시민모임’이란 단체가 박씨를 또다시 검찰에 고발했다. 엠비시는 이를 보도하면서 박 시장 쪽 반론을 싣지 않은 채 허위사실공표죄로 재판에 넘겨진 양씨의 주장만 인용했다. 방송에 등장한 양씨는 박씨의 엠아르아이 사진이 “20대에선 불가능한 골수 패턴”이라 했다. 박씨 일로 의원직을 사퇴한 강용석 변호사도 양씨의 변호인이 돼 다시 논란에 가세했다. 지난달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변호인으로 출석한 강씨는 취재진에게 “주변 의사들이 사진을 겹쳐보면 다르다고 한다. 동일인이라는 사람은 ‘박원순빠’인 의사들뿐 ”이라며 공개 신체검사가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자 박 시장도 대응에 나섰다. 관련 의혹을 제기한 누리집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이용자 16명과 함께 양씨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보도한 엠비시의 해당 기자와 보도 책임자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것이다. 고발된 일베 이용자들은 박 시장과 아들이 병역 비리를 은폐하고자 박 시장이 아들을 죽이거나 아들이 자살할 것이라는 등의 내용을 누리집에 올렸다. 박씨의 일은 이런 상황 끝에 결국 국감장에서 거론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2011년 12월 병무청의 재검을 문제 삼던 이들은 이제 2012년 2월에 이뤄진 공개 신검이 조작됐다고 한다. 당시 박 시장 쪽이 공개 신검을 세브란스병원 쪽에 요청한 것은 당시 신검을 주도한 윤도흠 교수가 척추질환 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신검엔 이환모 정형외과 교수, 이승구 신경영상의학과 교수 등이 참여했고 박씨가 병원을 찾아 몸무게와 키를 측정하고 엠아르아이를 촬영한 뒤 귀가하는 전 과정을 서울시 출입기자단 대표 4명이 지켜봤다. 2011년 재보궐선거 때부터 박 시장을 취재해와 박씨 얼굴을 알고 있는 참관 기자 중 한명은 지난달 말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박씨 본인이었고, 엠아르아이 촬영하는 것까지 확인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의혹 제기자들은 세브란스병원의 방사선 기사가 매수됐고 대리인이 박씨와 동시에, 혹은 그 이전에 세브란스병원에서 엠아르아이를 촬영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박씨가 재검용 엠아르아이를 촬영한 병원도 매수했고, 신분증을 위조해 병무청 검사까지 대리인이 대신 받게 한 것이라 한다. 상식적으로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런 의혹 제기가 힘을 받는 것은 적지 않은 의사들이 가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이제 엠아르아이 사진에 나온 체형이 아닌 나이를 거론한다. 양씨는 연령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골수신호강도나 석회화 현상 등을 들어 “20대엔 절대 나올 수 없는 사진”, “병역 비리 가능성 100%”라고 강한 어조로 자신의 주장을 편다. 이런 주장이 의사들 사이에서 지지를 얻으며 동조세가 확산한 것이다. 양씨 등을 변호하는 차기환 변호사는 지난 2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의사들 사이트인 ‘메디게이트’에서 박씨를 소환해 재검해야 한다는 의견이 152로 반대 6보다 압도적”이라 했다. 다음날 이 숫자는 410 대 20으로 바뀌었다. 의료혁신투쟁위원회(의혁투)라는 의사단체도 이런 주장에 앞장선다. 의혁투 최대집 대표는 지난 8월10일 기자회견을 열어 박씨가 공군에 입소하면서 찍은 엑스레이와 재검을 위해 제출한 엠아르아이 사진, 지난해 7월 영국 출국에 앞서 비자 발급을 위해 찍은 엑스레이 등을 판독한 결과 “다른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의혁투는 아시아근골격회에 질문서를 보내 ‘동일인이 아니다’라는 소견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생각하기 쉽지 않은 ‘대리 신검’ 주장을 이젠 의사들이 주도하다시피 하고 있다. ‘박 시장이 병역비리 저질렀으면 좋겠다’ 의혁투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 6월 박 시장을 “허위사실에 근거해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며 검찰에 수사 의뢰하면서 만들어진 단체다. 박 시장이 35번째 메르스 확진 환자인 삼성서울병원 의사가 시민 1500여명과 접촉해 대규모 메르스 확산 우려를 낳고 있다며 기자회견을 연 직후다. 의혁투는 “35번 환자는 분명 5월30일에만 해도 증상이 경미하고 자택격리 조처가 없었음에도 박 시장이 마치 증상이 심하고 자택격리가 이뤄진 것처럼 주장해 국민적 불안을 야기했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관련 정보를 비공개하고 늑장대응을 한 정부에 대해 국민적 불만이 확산되고 있던 때여서 박 시장의 이런 조처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박 시장은 자신의 최고 지지율을 경신하며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1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박 시장은 의혁투의 고발이 있고 난 뒤 서울시 의사회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기자회견에서 시의 의도와 달리 메르스 전염이 의사와 병원의 부주의 탓이라는 오해가 야기됐을 수 있다. 당사자와 의료진의 마음에 상처가 됐다. 심심한 유감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의혁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박 시장 아들의 병역 의혹을 문제 삼으며 대립을 이어갔다. 의사들 사이에선 조금씩 이런 움직임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에 거주 중인 혈액종양내과 전문의인 박효종 박사는 양씨가 주장하는 골수신호강도에 따른 연령 추정이 의학적 근거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최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예외는) 100명 중의 하나, 많이 늘려 잡아도 1000명 중 하나는 되는데, 양 박사는 1000만명 중 하나밖에 안 되는 가능성이라 했다. 나이가 들수록 뱃살이 찌는 일반적 경향이 있는 건 맞지만 20대 특정인이 뱃살이 많이 쪘다고 해서 20대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양승오가 틀렸음을 계속 알려서 보수 우파의 피해 규모를 최소화하려는 게 내 목적이었지만 이젠 거짓선동과 싸우는 게 주목적이 됐다. 이중잣대, 거짓선동, 음모론은 좌우를 막론하고 추방해야 한다”고 했다. 한 의사단체의 전직 간부는 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그렇게 많은 국가기관이 연루돼 대리 신검에 가담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맞는 생각인가. 심평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 데이터를 조작하고, 서울지방병무청에서 대리 신검을 하고. 그게 대체 합리적인 의심이 맞냐는 거다. 의사들은 몇가지 소견을 가지고 의학적으로 맞지 않다고 하는데 그건 불가능한 게 아니라 확률적으로 적은 것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메르스 사태 때 의사들이 고통을 많이 받았는데 그게 박 시장에게 투사되는 게 아닌가 싶다. 박 시장이 기자회견에서 (35번 환자에 대한 내용을) 사실과 다르게 공표하면서 35번 환자였던 의사가 파렴치한이 되지 않았나. 이 때문에 이 문제에 관심 갖는 의사 대다수는 ‘박 시장이 병역 비리를 저지른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의사들 사이에서 생겨난 박 시장에 대한 반감이 병역 비리 의혹에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직업적 분노가 합리적 이성을 가려버린 것인지는 앞으로 진행될 재판 과정을 지켜봐야 알 수 있을 듯하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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