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건국대 집단 폐렴 수수께끼
▶ 건국대 동물생명과학대에서 발생한 집단 폐렴과 관련해 방역당국이 역학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아직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사고를 미생물이 외부 환경으로 유출돼 일어난 재해인 ‘바이오해저드’일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동물생명과학대 실험실에선 어떤 물질을 가지고 어떤 실험을 했던 걸까요? 그 실험은 과연 안전했던 걸까요? 실험실 안전관리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었던 걸까요? 베일에 가려진 실험실 속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같은 실험실에서 근무한 13명 가운데 9명이 폐렴에 걸렸다. 발병률은 69.2%에 이른다. 바로 옆 실험실에선 12명 가운데 8명(66.7%)에게 폐렴이 발병했다. 모두 52명(6일 현재)이다. 폐렴 환자가 집단적으로 발생한 서울 건국대학교 동물생명과학대에선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건국대 동물생명과학대에서 폐렴 환자가 최초로 발생한 날은 지난달 19일이다. 학교 당국이 학내 구성원들에게 보낸 자료를 보면 20일부터 24일까지 각각 1~4명까지 발병하던 환자 수는 25일과 27일 사이에 9~10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건국대학교병원은 27일 원인 미상의 호흡기질환자 3명이 발생했다고 보건당국에 보고했다. 건국대 생물안전위원회는 이날 오후 5시 긴급회의를 열어 ‘건물 폐쇄’를 결정했지만 실제로 건물 폐쇄가 ‘완료’된 것은 이튿날 낮 12시께였다. 건국대는 “건물 폐쇄는 총장 재가 사항이라 다음날 아침에 결재가 날 때까지 기다렸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12시간 이상 폐쇄 조치가 미뤄지면서 해당 건물을 드나드는 이들은 완벽하게 통제되지 못했다.
52명 집단폐렴 발병한 건국대가장 많은 의심환자 발생한 곳은
동물생명과학대 503·504호 실험실
고농도 유해물질 노출됐을 가능성 국내 대학 실험실 안전관리 부실
실험실 말고 공부할 곳 없는 현실
만성적 위험에 노출된 대학원생들
“25년 전 캐나다보다 못한 수준” 비상시 탈출도 어려운 실험실 흉부방사선 검사 결과 폐렴 소견이 확인된 의심환자 52명은 현재 7개 의료기관에 분산돼 치료를 받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들을 대상으로 세균 7종, 바이러스 9종에 대한 유전자검사를 진행했으나 특이 소견은 발견되지 않았다. 발병 위험요인 및 전파 경로 규명을 위해 환자-대조군 조사 등의 역학조사도 아울러 실시하고 있다. 병원체 및 환경 조사에서도 특이사항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역당국은 현재까지는 전염성이 없는 것으로 보고, 곰팡이나 화학물질 등 실험실의 환경적 요인에 의해 발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국대 내부에선 이번 집단 폐렴 사태를 일종의 ‘바이오해저드’(biohazard, biological hazard 생물재해)로 분석하는 시각도 있다. 미생물이나 생물로부터 파생된 물질이 외부 환경에 유출되어 일어나는 재해를 말하는 바이오해저드는 주로 의학 연구 등을 하는 실험실이나 병원에서 병원성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유출되는 사고를 일컫는다. 동물생명과학대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건국대 관계자는 “곰팡이든 화학물질이든 굉장히 고농도의 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바이오해저드라 부를 만하다”며 “고농도가 아니라면 같은 건물을 드나들던 52명이 동시에 집단 폐렴에 걸린 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짚었다. 그는 또 “동물생명과학대 실험실은 연구시설 안전관리 등급이 낮아 생물안전에 위협적인 실험 자체를 할 수 없는 곳이다. 만약 고농도의 물질을 사용했다면 그것 자체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는 “현재 가능성으로 거론되는 곰팡이균으로도 폐렴이 일어날 수 있다”며 “바이오해저드로 볼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역학조사 결과를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3~7층의 근무자들이 감염된 것을 볼 때 공조시스템을 통해 전파됐을 수도 있다”고 했다. 연구시설 안전관리 등급이란 2005년부터 시행된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연구실 안전법) 등에 따라 대학이나 연구기관 내 실험실의 안전도를 1에서 4까지 나눈 것을 말한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실험에서 다루는 유전자변형생물체나 유해요인의 위험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3, 4등급 시설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 허가를 받아야 운영할 수 있다. 건국대 동물생명과학대 실험실의 경우 안전관리 2등급으로 신고 대상 시설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의심환자는 모두 동물생명과학대 건물 3~7층에서 상시적으로 근무한 이들로 석·박사 대학원생이거나 연구원들이다. 방역당국은 건국대의 폐렴 환자가 주로 면역유전학실험실, 동물영양학자원실험실, 가금학실험실 등 실험실 3곳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은 확인했지만 아직 명확한 원인은 찾지 못했다. 환자는 11개 실험실에 걸쳐 있지만 주로 503호(9명)와 504호(8명), 708호(708, 708-1, 708-2, 708-3 도합 12명) 실험실 근무자들에게 피해가 집중됐다. 503호는 동물자원과학과 응용분자미생물학실험실로 김아무개 교수 지도로 사료생물공학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고, 504호는 같은 과 동물영양생리 및 단백체실험실로 이아무개 교수의 지도 아래 동물 영양생리와 대사내분비, 동물 단백체에 대한 실험이 진행됐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김 교수는 “실험 내역에 대해 질병관리본부에 자료를 제출하고 설명했다. 역학조사 결과를 기다려달라”며 말을 아꼈다. 이 교수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질병관리본부의 김영택 감염병관리과장은 “해당 실험실들에선 동물사료 개발과 관련해 생물학적 연구를 수행한 걸로 알고 있다. 발생 원인을 심층조사하기 위해 연구노트 등을 제출받아 분석하고 있다.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구체적인 연구 내역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한 건국대 관계자는 “폐렴 환자를 치료한 대학병원 쪽에서도 ‘위험한 실험을 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낸다고 들었다. 학교가 이 부분에 대해서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했다. 폐렴 발병과는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집단 발병 사태가 벌어질 당시 건국대 실험실에는 연구용으로 분양받은 메르스 병원균이 밀폐된 채로 보관 중이었다. 대학 내 실험실에서 중대사고가 발생함에 따라 연구실 안전에 관한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도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미래부 관계자는 “학교 쪽으로부터 집단 폐렴 발병 사고에 대한 보고를 받았고 현재 매년 진행돼온 해당 실험실에 대한 안전점검과 정밀안전진단 결과를 검토하고 있다. 역학조사 결과를 본 뒤 연구실 안전법 등 관련 법규에 대한 위반 정황이 있다면 사고조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했다. 이공계열의 ㄱ아무개 교수는 비단 건국대뿐만 아니라 국내 대학 실험실의 안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학교를 방문한 해외 학자들이 대학 실험실을 둘러보고 적잖이 놀란다. 대학원생들이 별다른 보호장구도 없이 실험을 하는데다 실험도구들로 공간이 비좁아 비상시에 탈출이 어려운 실험실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교수는 “예전에 비해 실험도구들의 안전장치가 잘 갖춰져 있고 생물안전등급(Biosafety Level·미생물이 갖는 위해 정도에 따라 등급을 정하고 실험 내용에 따라 밀폐수준을 판단하는 기준)에 따라 보호장구를 갖추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노출됐을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면서도 “별도의 공부 공간이 없는 대학원생들이 실험실에서 공부하고 거의 살다시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해요인에 만성적으로 노출됐을 가능성은 있다”고 했다. 긴급샤워기 설치도 어려워 실험실에 상주하면서 일상적인 위험에 노출된 채 연구를 하는 대학원생들의 열악한 조건에 대해선 정부에서도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미래부 연구환경안전팀의 이태준 사무관은 “대학으로 현장 지도점검을 나가면 가장 많이 적발되는 게 실험실에 실험도구들이 쌓여 있어 유사시 대피가 어려운 점과 실험실에서 생활하는 대학원생들이 ‘노 드링크, 노 푸드’가 원칙인 실험실에서 음식까지 먹는다는 점”이라며 “안전교육을 강화하라고 지침을 내리지만 결국 대학의 시설투자와 관련된 부분이라 개선이 쉽지 않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대학 내 실험실 안전 실태가 25년 전의 서구 수준도 못 된다고 개탄한다. ㄱ아무개 건국대 교수는 “1990년대에 유학을 갔던 캐나다 대학 실험실에는 유해물질 등이 피부에 접촉됐을 때 사용하는 긴급샤워기(urgent shower)나 구급함이 구비돼 있었다. 그걸 우린 이제야 도입하고 있는 거니 말 다 한 거 아닌가”라고 했다. 미래부 관계자는 “전국 대학 실험실에 긴급샤워기나 안구세척기 등은 기본적으로 설치하도록 권고하는데 오래된 대학 건물들 같은 경우는 배수시설이 마땅치 않아서 설치 자체가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대학 실험실습실 환경을 안전하게 개조하는 데 투입했던 1606억원의 예산을 내년도 예산안에서 전액 삭감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을 때 마련됐던 예산이 1년 만에 사라진 셈이다. 정부는 그 대신 ‘실험실 기자재 확충사업’이라는 성격이 다른 사업에서 안전환경 조성사업비를 떼어 쓰도록 했다. 기자재 확충사업 예산은 250억원 규모여서 전국 대학의 안전도를 높이기에 부족하다는 현장의 지적이 많다. 3일부터 사흘째 신규 환자가 발생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5일에는 건물 폐쇄와 함께 중단된 동물생명과학대 학부 수업이 다른 단과대학 건물을 이용해 재개되는 등 집단 발병 사태는 수그러드는 모양새다. <한겨레>는 집단 폐렴 발병 원인과 실험실 안전관리와 관련해 건국대의 입장을 듣기 위해 담당자에게 여러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남겼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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