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에 위치한 서울대학교병원 내 어린이병원을 향해 하얀 가운을 입은 의료진들이 걸어가고 있다. 이 병원 소아흉부외과 의사들이 작성한 한 논문이 논란이 되고 있다. 2년 전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사망자 수 조작이라며 ‘연구부정행위’로 결정했고, 얼마 전 서울중앙지법은 진실위의 이 결정이 잘못됐다고 판결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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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서울대병원 논문조작 진위논란
▶ 사망 환자 수를 조작하는 연구부정행위를 저질렀다며 2년 전 소속 대학과 언론에 의해 매도된 한 의사가 학교 쪽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했습니다. 재판부는 당시 언론 보도가 명예훼손이며 대학 연구진실성위원회의 판정도 잘못됐다고 결론지었습니다. 해당 의사는 자신이 병원 내 정치적 갈등의 희생양이라고 항변합니다. 수년 전 대학병원 의사들의 권력 다툼을 소재로 한 드라마 <하얀 거탑>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이곳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지난 8월 한 판결이 세상에 공개됐다. 서울대학교 연구진실성위원회(이하 진실위)가 2년 전 내린 판단이 잘못됐다며 당사자의 명예를 훼손했으니 2000만원을 배상하라는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이었다. 진실위에서 다뤄진 사안이 재판까지 간 사례가 드물긴 하지만, 서울대 진실위의 결정이 재판을 통해 뒤집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학의 연구진실성위원회는 ‘학문의 전당’이라 할 대학의 연구윤리를 수호하기 위한 최종 방어선이다. 그런 진실위의 명예가 실추됐다. 당시 진실위의 결정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이 결정을 뒤집은 판결에 더더욱 의문이 쏠린다. 진실위 판단의 배경에는 서울대병원 의사들 사이 권력다툼이 깔려 있다는 게 원고인 해당 논문 저자의 주장이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2년 전이정렬 교수와 의사 임홍국씨 논문에
“연구부정 있었다”고 내린 판단이
재판부 판결을 통해 뒤집혀 버렸다
‘간접살인’으로도 몰렸던 사안이다 논문에 문제있다고 제보한 이와
논문 책임저자인 이정렬 교수 사이
정치적 갈등이라는 해석이 있다
제보자는 강력하게 반발한다
‘하얀 거탑’ 재판은 2심으로 간다 생존율, 50%대와 83% 사이 서울대 진실위는 2012년 6월 제보를 받아 이 대학 의대 이정렬 교수가 책임저자인 논문 ‘선천성 수정 대혈관 전위증에 대한 양심실 교정술 장기 결과’에 연구부정행위가 있었다고 판정했다. 해당 논문은 2010년 1월 이 분야 가장 권위있는 학술지인 미국 흉부외과학회지(The Annals of Thoracic Surgery)에도 실렸다. 이 논문이 조작된 자료를 근거로 했다는 서울대 진실위의 공식 결정은 2013년 12월5일에 나왔다. 논문이 학술지에 실린 2년6개월 뒤 해당 논문에 연구부정행위가 있었다는 논문 공저자의 제보에 따라 진실위가 가동되고 다시 1년6개월 만에 내려진 결정이다. 진실위의 공식 결정이 있기 이틀 전 <조선일보>는 1면을 포함해 2개 지면을 할애해 이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당시 기사의 제목은 ‘국내 유력병원 의사들 심장수술 생존율 조작’이었다. 부제목엔 ‘50%대 생존율을 83%로 부풀려’, ‘논문 데이터 조작 없었다면 국제 학술지에 실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쓰였다. 권위있는 학술지에 논문을 싣기 위해 생존율을 조작했다는 것이다. 이 기사엔 한 심장학계 관계자의 말이 담겼다. 그는 “문제가 된 논문은 우리나라 심장 의료계가 고전적 수술 방법으로 놀라운 환자 생존율을 보여줬다는 것으로, 논문을 본 의사들의 수술 방법 선택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며 “고전적 수술 방법의 통상적 생존율이 50% 안팎이라 새로운 수술에 대한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데, 생존율 데이터를 아무런 의식 없이 조작한 것은 간접 살인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논문을 쓴 이는 학문적 양심을 저버린 것도 모자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환자들의 생명을 아랑곳하지 않은 ‘살인자’로 간주됐다. 그해는 유명 대학교수나 정치인, 연예인의 논문 표절 같은 연구부정행위가 유독 이슈가 됐던 해였다. 뒤이은 서울대 진실위의 결정은 보도대로 이뤄졌고 파장은 적지 않았다. 당시 논문 조작 의혹에 연루된 해당 병원들은 보도가 나온 뒤 잇따라 해명 자료를 냈다. 이들은 논문 작성 사실을 알지 못했고, 학술연구용으로 단순히 데이터만 제공했다며 앞다퉈 관련성을 부인했다. 연세대의료원 세브란스 관계자는 당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서울대병원 쪽에서 심장수술 데이터를 요청해 자료를 모아서 준 사실밖에 없다”며 “데이터를 해석하는 것은 논문 저자와 책임저자가 한 일이며 그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고 했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도 “학술 차원에서 데이터를 제공했을 뿐 논문 작성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보도대로라면, 논문을 작성한 이는 징계는 물론 의사로서 사회적 명성이나 경력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게 될 상황이었다. 한데, 이 진실위의 결정이 재판을 통해 뒤집어진 것이다. 8명의 새로운 사망자는 누구인가 소송을 제기한 이는 논문 책임저자인 이정렬 교수의 제자이자 제1저자인 서울대병원 소아흉부외과 의사 임홍국씨다. 책임저자가 그야말로 논문 내용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면, 제1저자는 공저자들이 제공한 자료로 논문을 작성하는 실질적인 저자다. 임씨는 “진실위가 비밀유지 의무를 무시한 채 조사 결과를 언론에 유포했다. 이는 중대한 절차상 하자이며, 유포된 내용도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임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서울대의 명예훼손을 인정하고 진실위의 결정이 잘못됐다고 판결했다. 재판부가 판단한 지점은 크게 두가지다. 진실위가 조사 결과를 언론에 유출해 원고의 명예를 훼손했는지, 또 진실위의 결정대로 연구부정행위가 있었는지다. 명예훼손 여부에 대해 재판부는, 진실위가 내부 규정을 어기고 원고인 임씨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봤다. 조사 결과가 당사자에게 통보되기 전 보도된 기사에 진실위 조사 결과가 고스란히 담긴데다, 진실위 관계자가 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이 기사에 포함됐다는 이유에서다. 세부적인 과정은 알 수 없으나 정황상 어떤 식으로든 진실위를 통해 내용이 유출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연구부정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진실위와 다르게 판단했다. 핵심은 사망자 수였다. 해당 논문은 태어나면서부터 심장 대동맥과 폐동맥이 잘못 연결된 환자의 혈관을 바로잡는 고전적 수술과 해부학적 교정술의 성과에 대한 것이다. 논문은 1983년부터 2009년까지 27년 동안 국내 4개 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은 환자 167명의 생존율을 따졌다. 그런데 서울대병원의 사망자가 10명인 반면, 서울대 진실위가 조사 과정에서 새로 집계한 사망자 수는 18명이었다. 이 때문에 진실위는 실제론 사망자가 더 많았는데도 원고가 수술 성과를 부풀리기 위해 고의로 이를 축소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원고가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망자 수를 산정하기 위해 참조한 것은 2008년 2월께 취합된 자료였던 반면, 진실위 쪽이 논문의 연구윤리 위반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자료로 삼았던 것은 2012년 9월께 취합된 자료였다. (중략) 설령 서울대병원의 사망자 수가 실질적으로 18명으로 평가될 여지가 존재하더라도, 원고가 논문을 작성할 당시 사망자 수를 고의로 조작하였다는 점을 인정하기엔 충분치 않다”고 판결했다. 자료를 취합한 시점에 따라 사망자 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사망자 수가 바뀐 것이 고의적 조작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망자 수가 달라지는 걸까. 추가된 사망자 8명은 각각의 사정이 조금씩 달랐다. 환자 ㅅ씨의 경우 자료가 취합된 이듬해인 2009년 6월5일에 사망했다. 서울대병원도 ㅅ씨의 사망 사실을 두달 뒤인 8월26일에야 알 수 있었다. 이때는 이미 논문이 완성돼 학술지 게재가 결정(2009년 8월25일)된 뒤였다. 진실위의 조사 시점인 2012년 9월엔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논문 작성을 위해 자료를 취합할 당시엔 살아 있는 사람이었던 셈이다. ㄱ씨 등 다른 사망자 5명은 자료 취합 당시 원자료에 ‘관련 기록이 유실됨’으로 기재돼 있던 경우다. 당시 유실된 기록은 진실위의 조사 시점인 2012년 9월엔 되살아나 있었다. 이는 서울대병원의 광파일화(전산화) 작업 덕이었다. 흔히 ‘차트’라 부르는, 환자 개개인에 대한 의무기록은 손으로만 작성해오다 1994년부터 전산화에 들어갔다. 워낙 양이 방대하다 보니 2010년까지 80%가량을 완료했지만 이후 예산과 인원이 모자라 작업 자체가 중단된 상태다. 이들 사망자 5명의 기록은 병원 외부의 문서보관소 같은 곳에 보관돼 있다가 2008년 2월 이후 어떤 시점에 전산화된 것이다. 논문 작성 당시 다른 병원에 근무 중이던 임씨는 공동저자이자 서울대병원에 근무 중인 후배에게 부탁해 서울대병원 자료를 받았는데, 임씨가 자료를 건네받을 당시에도 자료가 미비하니 추가로 확인해달라고 후배에게 요청한 사실이 당시 주고받은 메일 기록으로 남았다. 임씨가 자료가 부실한 것을 알고 추가 확인까지 해가며 자료를 확보하려 했지만 당시로선 ㅅ씨를 포함한 이들 6명의 사망 사실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나머지 2명은 사망으로 분류하기가 애매한 경우였다. 환자 ㅇ씨는 기록상 심정지가 발생해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이후 환자가 사망했다는 내용은 임씨의 자료에도, 진실위가 다시 확인한 자료에도 기재돼 있지 않았다. 또 다른 ㅇ씨는 뇌사 상태로 기록돼 있었다. 임씨는 논문에서 이 환자를 생존자로 분류했다. 재판부도 “뇌사가 생물학적 사망과 동일하게 볼 수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는 만큼, 이런 분류를 고의적 조작이라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진실위가 추가한 사망자 8명 모두 임씨의 자료 취합 당시 상황으로선 사망자로 보기 힘들었거나 사망 사실을 알 수 없었던 만큼 임씨가 고의로 사망자 수를 조작하는 연구부정행위를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임씨가 뇌사 등 해당 환자의 상태나 관련 기록의 보관 상황에 관해 논문에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아 진실위가 판단을 잘못하게 한 책임이 있는 만큼, ‘연구 부적절행위’로 볼 여지는 있다고 했다. 서울대 연구윤리지침을 보면, ‘연구부정행위’가 되려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어야 하지만, 중대하지 않은 과실만 있는 경우 ‘연구 부적절행위’로 간주한다. 서울대병원장 되는 걸 막기 위해? 원고인 임씨는 소장에서 이 논문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이 진실위에 이 논문을 제보한 이와 이 논문 책임저자인 이정렬 교수 사이의 정치적 갈등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보자 역시 이 교수의 제자이긴 하나 ‘대학 쪽’과 긴밀히 연결돼 있고, 병원 주요 보직을 맡은 ‘병원 쪽 인사’인 이 교수와 대립하는 관계였다는 것이다. 역시 이 교수의 제자로 제보자와 달리 ‘병원 쪽 인사’라 할 임씨가 대학교수 임용심사를 받게 되자 제보자가 적극적으로 방해했고, 나아가 이 교수가 서울대병원 원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논문을 문제 삼았다는 것이다. 임씨는 5일 “해당 사안을 조사한 진실위 본조사위원회가 확보한 원자료를 봐도 서울대병원의 사망자 수는 18명이 아닌 10명으로 나온다”며 “그런데도 조사위는 이를 18명으로 집계했고 그런 수치가 나오게 된 이유를 내게 알려주거나 추가 답변 요구도 하지 않은 채 결론을 내 버렸다”고 했다. 임씨의 얘기를 들어보면, 관련 전공자들로 구성된 진실위의 본조사위원회 위원 중에도 논문 주제와 관련된 환자 사례를 판별할 수 있는 이는 흉부외과 전공의 자격으로 들어온 외부 인사 정도였다. 그나마도 이 인사는 제보자와 과거 같은 병원에서 근무해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인물로, 제보자가 이 인물을 통해 진실위의 왜곡된 판단을 유도했다는 게 임씨의 주장이다. 실제 조사위에 참여한 한 인사는 “디지털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정확성이 있다 하더라도 사망자 수의 차이가 굉장히 컸다.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면서도 “조사위가 본 데이터 자체에 문제가 있는지는 나로선 알 수 없었다”고 했다. 임씨는 “논문에 쓰인 원자료는 환자 의무기록을 일일이 확인해 논문 주제에 맞는 항목만을 추려내 만든 것으로, 해당 분야 전공자 등 극히 제한된 인사들만 알아볼 수 있다”고 했다. 원자료를 제대로 들여다보면 논문 작성 당시 시점의 사정을 확인할 수 있지만, 그 구실을 해야 하는 조사위원이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재판을 둘러싼 서울대병원과 의대 내 기류는 냉랭하다. 서울대 의대 한 관계자는 “임홍국 선생의 대학교수 임용을 (제보자가) 반대했는데 위에서 이를 밀어붙이니까 (이에 반발해 논문을 제보하면서) 이 사건이 터진 건 맞다. 직접적인 계기는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들 선후배 사제지간이다. 선생님을 클레임(비방)하는 건데 되겠나. ‘내부적으로 해결해라, 밖으로 들고 갈 일이 아니다’라고 했더니 (제보자가) ‘도저히 해결이 안 난다’고 하더라. 결국 못 참고 들고 간 것”이라고 했다. 서울대 진실위에 이 논문을 제보한 이는 지난 3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판결 내용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해당 논문은 사망 여부가 불확실한 환자를 모두 살아 있는 것처럼 처리해 생존율을 높이려 한 악의적인 논문이다. 학계에서도 논란이 돼 다들 아는 내용인데 왜 그런 판결이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서울대병원에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현재 재판은 대학 쪽과 원고 모두 항소를 해 2심이 진행중이다. 진실위가 정말 정치적 갈등에 이용된 것인지, 연구 윤리를 저버린 부도덕한 의사의 일탈인지는 향후 재판에서 판가름나게 된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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