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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27 20:09 수정 : 2015.11.29 09:52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선친 김용주의 친일 문제를 다룬 <한겨레> 8월1일치 토요판 커버스토리. 김무성 대표는 해당 기사가 근거로 내세운 일제 강점기 <매일신보>와 ‘전선공직자대회’ 기록이 허위라고 주장하며 <한겨레>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토요판] 뉴스분석 왜?
김무성, <한겨레>에 1억원 손배소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아버지 김용주의 친일 논란에 대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기자회견과 자료 배포를 통해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서더니, 마침내 <한겨레>를 상대로 1억원이라는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김용주의 친일을 입증하는 자료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자식으로서 그저 인정하고 넘어가면 문제삼는 이가 면구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그는 왜 억지를 부리는 것일까? 그 많은 증거들을 무슨 수로 덮으려는 것일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부친의 친일 행적을 보도한 <한겨레>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과 반론보도를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집권 여당의 대표이자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김 대표가 부친의 친일 논란을 정면 대응해 잠재우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겨레>는 8월1일치 토요판에 ‘김용주 아들 김무성’(온라인 제목 ‘‘친일’ 김무성 아버지가 애국자로 둔갑하고 있다)이라는 기사를 실으며, 그 근거로 일제 강점기에 발행되던 <매일신보>기사와 1943년의 ‘전선공직자대회’ 기록을 들었다. 이들 기록을 보면 김 대표의 부친 김용주 경북도회 의원은 “징병을 보낼 반도의 부모로서…귀여운 자식이 호국의 신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받들어 모시어질 영광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소장을 통해 “매일신보는 조선총독부 기관지로 허위·과장 보도는 물론 왜곡·날조까지 일삼았던 신문”이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선공직자대회 기록도 “강제적으로 공직자들을 소집해 이들의 발언을 사전에 조작하여 강압적으로 낭독하게 했음이 확실”해서 ‘신빙성이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한겨레 1, 3, 4면에 A4 용지로 4장에 이르는 분량의 반론보도문을 싣고, 1억원의 손해배상을 하라고 요구했다.

종 울렸는데도 5분가량 더 충성발언

민사소송에 앞서 김 대표는 지난 11월3일 같은 내용으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신청을 냈다. 언론중재위원회(서울 8중재부 중재부장 김수일)는 13일 김 대표와 한겨레 양쪽의 대리인을 불러 조정을 시도했으나 양쪽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려 조정에 실패했다. 한겨레 대리인은 “김 대표 쪽의 주장이 사실관계와 너무나 달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언론중재위원회는 11월18일 ‘조정을 갈음하는 결정’을 내렸으나 한겨레가 20일 이의를 신청함에 따라 최종적으로 언론중재위의 조정은 성립되지 않았다.

언론중재위원회 관계자는 27일 “언론중재위원회의 결정이 무효가 됨에 따라 이 사건은 자동으로 민사소송이 제기된다”며 “언론중재위원회는 김 대표 쪽이 관할 법원을 결정하는 대로 이번 사건 기록 일체를 법원으로 보내게 되며 이어서 민사소송 절차가 진행된다”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의 주장을 요약하면 일제 강점기 <매일신보>와 ‘전선공직자대회’ 기록 둘 다 ‘허위’라는 것이다. 두 기록이 거짓이라면 ‘‘친일’ 김무성 아버지가 애국자로 둔갑하고 있다’는 한겨레 기사도 ‘오보’가 된다. 하지만 두 기록은 역사학자뿐만 아니라 정부의 공식 문서도 인정하는 중요한 사료이다.

매일신보는 조선총독부 기관지로 1910년부터 1945년 해방될 때까지 발행되던 한국어 일간신문이다. 김 대표는 매일신보에 대해 “일제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허위·과장 보도는 물론 왜곡·날조까지 일삼았던 신문”이기에 “결코 신뢰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김무성 대표의 선친 김용주의 친일 발언이 실려 있는 <친일반민족행위관계사료집 Ⅷ> 표지.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기관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펴낸 자료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때 발간된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관계사료집 Ⅷ>을 보면 매일신보를 완전히 다르게 평가하고 있다. “총독 정치의 선전기관과 식민지 언론의 전위 역할을 수행한 이 신문은 일제 식민지 통치는 물론 식민지 언론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29쪽)는 것이다.

또 법원 판결도 매일신보를 중요한 사료로 인정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5부는 2011년 10월 판결을 통해 “매일신보는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이기는 하나 당시 전국적으로 발행되던 일간지로서 일제시대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1차 사료로서 국내외의 역사학자들에 의해 역사연구를 위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고 분명하게 못박고 있다. 당시 재판은 동아일보 설립자 김성수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나자 동아일보 쪽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김 대표의 주장대로라면 집권 여당 대표가 법원의 판결은 물론 이명박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해 발간한 자료집의 논리를 부정하는 꼴이 되고 마는 셈이다. 친일 문제를 파헤쳐온 민족문제연구소 쪽도 “국가기관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인사 1006명의 명단을 발표했을 때도 매일신보를 주요 사료로 삼았다”고 밝혔다. 김 대표 주장대로라면 이완용도 친일파 명단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게 되는 셈이다.

전선공직자대회는 1943년 조선의 공직자 428명이 참가하여 일제의 징병제 시행에 감사를 드리고 미국·영국을 쳐부술 것을 결의한 대회다. 김 대표는 이 대회에 대해 “강제적으로 공직자들을 소집해 이들의 발언을 사전에 조작하여 강압적으로 낭독하게 했음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친일반민족행위관계사료집 Ⅷ>에 실린 이 회의록을 보면 이 대회가 얼마나 자발적으로 열렸는지 드러난다. “1943년 8월 중순 경성부회 의원 약간명이 회합을 할 즈음…모두 열렬한 찬성 아래 전 조선의 걱정을 함께 하는 동지들인 우리 공직자가 한자리에 모여 징병제 실시에 대한 감격을 함께 하고 아울러, 미, 영을 격멸하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않는 결의를 새로이 할 것에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된 것”(552쪽)이라는 경과보고가 있다.

또 당시 공직자들이 얼마나 경쟁적으로 충성을 맹세하는지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사회자가 “시간관계로 한 사람당 15분 이내로” 발언할 것을 요구하는데도 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있었고, 청중들도 박수를 치며 ‘좋았어’라거나 ‘찬성’ ‘잘 알았습니다’ ‘알았다, 알았어’라며 적극적으로 호응을 하고 있다. 특히 김 대표의 부친 김용주 경북도회 의원의 발언은 두드러진다. 이틀에 걸쳐 진행된 이 대회에서 발언자는 모두 16명이었는데, 김용주의 발언이 가장 길다. 15분이 지나 종이 울렸는데도 5분가량 더 충성 발언을 쏟아낸다. 춘천 출신의 공직자도 15분을 넘겼으나 종이 울리자 바로 말을 맺은 것과 비교된다.

‘아버지 친일’ 보도 잘못됐다며
‘한겨레’ 1, 3, 4면에 A4 4장 분량
반론보도 싣고 1억 내라는 요구
언론중재위 조정 성립 안돼
민사소송 절차 진행될 예정

거액 손해배상 소송 낸 것은
선친 친일을 ‘분쟁 영역’으로
넘겨 끌고가려는 의도로 보여
진짜 억울하다면 민사소송 말고
기사 쓴 기자를 검찰에 고소해야

총독부 기관지라 못 믿는다고?

내용도 발언자 가운데 가장 고약하다. 그는 박수를 받으며 등단해 “각 면에 신사(神祠)를 건립하여…일본 정신의 진수에 철저히 젖어들게 할 수 있습니다”라며 “앞으로 징병을 보낼 반도의 부모로서 자식을 나라의 창조신께 기뻐하며 바치는 마음가짐과 귀여운 자식이 호국의 신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받들어 모시어질 그 영광을 충분히 인식하여 모든 것을 신께 귀일하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한다. 더 심한 건 신라시대 화랑 관창과 조선시대 사육신 성삼문의 사례를 들며 “우리는 이처럼 의용충렬한 선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 자손인 자가 분투하여 굳건한 각오를 갖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논지를 편다. 우리 조상들의 충성심과 의기를 오늘에 되살려, 일본 천황을 위해 떨쳐일어나자는 얘기다.

무엇보다도 이 대회 기록에 대해 정부가 낸 사료집은 “한국인 공직자를 비롯한 지배층이 가지고 있는 징병제 인식과 시국 인식, 전쟁관 등이 다양하게 제시돼 있다”며 “친일협력자들이 경쟁적으로 ‘어떻게 영광스러운 황군이 될 수 있는지’ 방법을 제시하고 ‘충량한 황국신민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눈에 보이듯이 소개하고 있는 자료”(26쪽)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니 절차상으로 보면, 김무성 대표는 한겨레 보도를 문제삼기 전에 정부의 사료집이 잘못됐다고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정부가 뿌린 보도자료를 그대로 인용했을 뿐인 기사에 대해, 보도자료는 문제삼지 않고 언론사만 탓하는 꼴이다.

김무성 대표는 왜 이런 억지를 부리는 걸까? 날짜순으로 되짚어보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친일’ 김무성 아버지가 애국자로 둔갑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간 게 8월1일치다. 야당도 “선친의 삶을 미화하지 말라”고 후속 공세를 이어갔다. 김 대표는 8월14일 “대응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기자들이 질문을 계속하자 “그만하자”며 자리를 뜨기도 했다. 9월17일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자료들을 쏟아냈다. 군용기 모금 헌납, 일제강점기 말기의 출정 황군에 대한 감사발송 주도, 징병제 실시 찬양 등이다. 그래도 김 대표 쪽은 별 반응이 없었다. 확전을 원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의사표시다.

그런데 한달여 뒤인 10월25일 태도가 확 바뀌었다. 김 대표는 여의도 식당에서 한 기자간담회에서 “친일이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우리 아버지가 일제 몰래 독립군에 활동 자금도 주곤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날 간담회는 선친 문제가 주제가 아니었고, 기자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불쑥 말을 꺼내더니 점심 자리 내내 아버지 얘기만 했다. 다음날 두툼한 해명 자료를 내더니, 29일에는 김용주 회장이 설립한 경북 포항 영흥초등학교를 방문했다. 취재진 앞에 나서 ‘묻고 싶은 게 있냐’며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0월12일 교육부의 국정교과서 행정예고를 빼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김 대표는 국정교과서 강행의 최선봉에 섰다. “역사학자의 90%가 좌파다”고 규정했다. 또 “좌파들에 의해 아버지가 친일파로 매도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주장을 이어보면 ‘아버지를 친일파로 매도하는 세력은 모두 좌파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마치 해방정국에서 친일파들이 자신을 공격하는 세력을 모두 빨갱이로 몬 것과 똑같은 논리다. 차기 유력한 대권주자로서 장애물을 치우기 위해, 국정교과서 논란의 와중에 선친의 친일 문제를 좌우 논쟁으로 바꿔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그는 질질 시간을 끌고 싶다

그런 큰 그림의 대권 청사진 안에서도 <한겨레>를 상대로 한 소송은 별도의 목적이 있어 보인다. 우선은 1억원이라는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내 기자들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1차적 목적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보다는 선친의 친일 문제를 ‘진실의 영역’이 아닌 ‘분쟁의 영역’으로 넘겨버리려는 것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하다. 민족문제연구소 박수현 연구실장은 “김무성 대표의 소송 논리는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동아일보, 조선일보의 소송 논리와 동일하다”며 “법적인 논리로만 보면 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두 신문사 설립자의 친일 행위가 분명함에도 여전히 다툼이 진행중인 사안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동아일보 설립자 김성수, 조선일보 전 사장 방응모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하자, 후손들이 이를 취소하라며 소송을 냈다. 재판은 6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진행중이다. 김성수의 경우 1심 법원인 서울행정법원이 김성수를 친일로 인정했으나 항소 뒤 재판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서울고법은 사건을 질질 끌었다. 사건은 이 법원 행정6부→행정3부→행정5부→행정7부→행정7부를 거쳐 6번째 재판장에게까지 넘어갔다. 방응모 친일 재판은 대법원에서 4년 가까이 잠자고 있다. 법원이 거대 언론사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어느 전직 대법관은 “법리가 복잡하거나 쟁점이 많은 사건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지만 그래도 1년 남짓이면 다 정리된다. 재판이 2년을 넘기면 그건 그냥 ‘내가 재판장으로 있는 동안은 판결하기 싫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에게 필요한 시간은 2년이면 충분하다. 2017년 12월 대통령 선거 때까지다. 앞으로 2년 동안 선친의 친일 문제에 대해 무수한 질문들이 쏟아질 것이다. 산더미 같은 증거 때문에 답변이 궁색할 터이나, 재판이 진행중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아직 법원의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으니 기다려보자”고 말할 수 있는 도피처가 생긴 것이다.

이에 대해 형법이 전공인 서울대 조국 교수는 “민사소송은 몇 년씩 질질 끌지만 형사법은 국가의 형벌권 위협으로부터 인신을 빨리 해방시켜주는 게 목표라 재판의 진행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며 “김무성 대표가 진짜 억울하다면 신문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낼 게 아니라 기사를 쓴 기자를 검찰에 고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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