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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1일 낮 인천 남동구 구월동 한 한식당에서 인천지역 노사 관계자들과 함께 양대 지침(저성과자 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관련 현장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인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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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저성과 해고
▶ 지난주 정부는 저성과 해고,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관한 ‘양대 지침’을 발표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한국노총은 “정부가 기업주들에게 해고 면허증을 쥐여주는 것”이라며 반발했고, 민주노총은 “노동조합이 없는 일터에 재앙을 초래할 것”으로 내다봤다. 직장인들은 출근이 두렵다. 요건을 엄격히 해 남용을 막겠다지만, 누구나 저성과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선 애당초 살아날 방법이 없다.
27년째 외국계 은행에서 일하고 있는 50대 후반의 박기준(가명)씨. 박씨는 재작년 말 억울한 일을 겪었다. 업무평가에서 2회 연속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는 이유로 일종의 징계성 인사를 당한 것이다. 박씨는 최하위 등급을 받기 전 새 거래처 발굴만을 담당하는 팀으로 배치됐는데, 팀의 성격상 성과를 내기 어려운데도 징계성 인사를 한 것은 부당하다는 게 박씨의 주장이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박씨의 구제신청을 받아들여 지난해 2월 ‘부당한 인사발령’으로 판정했다. 박씨의 사례는, 외견상 공정해 보이는 평가제도를 통해서도 충분히 사용자의 의도대로 저성과자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의 저성과 해고 지침(공정인사 지침)이 사용자에게 또 다른 인력 구조조정 수단을 마련해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만한 대목이다.
박씨는 1989년 이 은행에 입사했다. 12년간 개인고객을 대상으로 소매금융 일을 하다 2001년 말부터 기업금융 일을 해왔다. 2005년에 팀장이, 2013년 4월엔 기업금융부 부장이 됐다. 박씨는 기업금융부의 ‘아르엠’(RM·Relationship Manager)이었는데, 한 해 매출액 2000억원이 넘는 기업을 대상으로 각종 금융상품을 파는, 은행의 수익과 직결되는 일을 했다. 기존 고객 관리, 신규고객 유치, 기업여신 분석 등이 임무다. 이 은행 기업금융부엔 30명가량의 아르엠들이 활동하고 있다.
1년 만에 ‘후선’으로
문제는 2013년 8월 박씨가 동료 5명과 함께 신규사업팀에 배치되면서 시작됐다. 박씨는 신규사업팀 배치 전 5개 업체를 관리하고 있었는데, 회사는 박씨의 관리 업체를 모두 다른 아르엠들에게 배정했다. 신규사업팀은 말 그대로 새로운 거래처 발굴에만 매진하라는 것이었다. 박씨가 연말까지 달성해야 하는 이익 목표액은 20만달러(2억4천여만원). 하지만 박씨는 실적을 내지 못했다. 100만달러의 목표액이 설정된 다음해에도 마찬가지였다. 그사이 박씨와 함께 신규사업팀으로 배치된 동료 5명 중 3명은 다른 부서로 갔고 한 명은 명예퇴직했다. 팀에 남은 동료 한 명은 박씨처럼 실적을 내지 못했다. 그사이 새로 팀에 배치된 동료만이 목표액의 0.13%인 미미한 실적을 냈을 뿐이다. 실적이 전무했던 박씨와 동료는 2013년 최종 성과평가와 2014년 중간 성과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인 ‘5D’를 받았다. 박씨는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회 연속 최하위 등급을 받은 박씨와 동료는 신규사업팀 배치 1년 만인 2014년 8월 ‘후선 발령’ 대상이 됐고 두 달 뒤 후선으로 발령됐다.
후선발령은 일종의 대기발령이었다. ‘업무추진역’, ‘관리역’ 등 별도 직책과 목표를 부여받은 뒤 수시로 평가를 받는다. 설정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수당이 절반으로 줄거나 임금 20%가 삭감된다. 목표를 달성해야 현업으로 복귀할 수 있다. ‘무능력자’, ‘낙오자’로 찍힌 채 그야말로 목표 달성만을 위해 피말리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 회사 김아무개 상무보는 박씨의 ‘업무추진역’ 발령장에 “귀하가 성과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음에 따라 또다시 최하위인 5등급을 받게 되었는바, 이는 은행이 기대하는 최소한의 기준에도 도달하지 못한 것이며 대단히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썼다. 이어 “1개월마다 성과 개선의 정도와 내용에 대한 검토가 있을 것이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 관련 준칙에 따라 급여가 조정됨을 알려드리니 성과 달성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적었다. 후선으로 발령받은 박씨는 이내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노동위가 박씨의 후선발령 인사를 부당하다고 판정한 데엔 박씨에게 최하위 등급을 부여한 업무평가가 불공정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실적을 기준으로 한 업무평가는 얼핏 공정해 보였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국내에 한 해 매출액 2000억원이 넘는 기업은 1300여개다. 이 중 주요 대기업 계열사나 관계사, 외국계 회사를 상대로 한 업무는 모두 기존 아르엠들이 맡았다. 신규사업팀은 이들 업체를 피해 새 거래처를 뚫어야 했다. 기존 아르엠들도 신규 업체 발굴 성과가 저조하긴 마찬가지였다. 노동위 판정문을 보면, 신규사업팀이 활동한 기간인 2013년 8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20명 남짓한 기존 아르엠들이 새로 발굴한 업체는 5개에 그쳤다. 하지만 오직 새 거래처를 통해서만 실적을 낼 수 있었던 신규사업팀과 달리 기존 아르엠들은 이미 관리 중인 업체의 재대출 등을 통해서도 실적을 냈다. 조건이 다른 이들을 한데 묶어 평가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불리한 신규사업팀이 최하위 등급을 받은 것이다.
노동위는 “선별적으로 직원을 신규사업팀에 배치한 뒤 불공정한 평가를 기준으로 후선으로 발령한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성과를 높이기 위한 목적보다는 불공정한 평가절차를 거쳐 일종의 인위적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더 크다”고 봤다. 후선발령에 대해서도 “생활상의 불이익이 근로자가 통상 감내해야 할 수준을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이 은행의 후선발령 제도는 박씨의 노동위 판정이 있고 난 두 달 뒤 사실상 폐지됐다.
저성과 징계인사 당한 박기준씨실적기준 평가라 공정해 보여도
조건 다른 이들 묶어 불공정
지방노동위원회에선 “부당” 평가
“인위적 구조조정 수단 악용 소지” 잘못 없고 몸 멀쩡해도 ‘해고’
문제는 인사평가 어떻게 하느냐
고작 1년, 상대평가로 “저성과”
현실엔 이미 저성과 해고 만연
“상시적 집단해고 늘어날 수도” 저성과자 얼마든지 양산 박씨는 왜 애초 신규사업팀에 배치됐을까. 박씨의 노동위 판정 과정을 대리했던 엄지현 노무사는 “새로 부임해 온 임원이 박씨의 업무평가를 저조하게 하더니 이내 신규사업팀에 배치했다고 들었다. 박씨 본인은 사내 권력다툼의 와중에 내쳐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2일 발표한 저성과 해고 지침을 통해 “업무능력 결여, 근무성적 부진 등은 업무명령 위반, 비위행위 등 별도의 징계사유가 없더라도 통상해고 사유”라고 규정했다. 근로기준법상 통상해고는 ‘정당한 사유’, 즉 사회통념상 근로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는 노동자의 중대한 귀책사유가 있어야 한다. 해고에 이를 만한 중대한 잘못으로 징계를 받았거나, 아니면 노동자의 질병·부상 등으로 근로계약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경우 등이 그렇다. 사회안전망이 허술한 한국 사회에서 상대적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다. 한데 정부는 이번 지침을 통해 ‘저성과’를 새로 통상해고의 사유로 인정해준 것이다.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도, 병이 나거나 사고를 당하지 않아도 단지 성과가 낮다는 이유로 해고되는 길이 열린 것이다. 정부는 “저성과자를 해고하려면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거쳐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박씨의 사례처럼 사용자가 평가 환경을 어떻게 조성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저성과자가 양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저성과자를 낳는 평가제도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비유된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는 행인을 붙잡아 자신의 침대에 누이고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행인의 몸을 자르고, 침대보다 작으면 행인의 몸을 늘여 죽였다고 한다. 침대 크기에 꼭 들어맞는 행인은 없었는데, 침대의 크기를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 때문이었다. 실제 국내 기업들의 인사제도는 엄밀한 공정함과는 거리가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501개 국내 대기업 인사 담당자를 설문한 결과를 정리해 지난해 말 펴낸 ‘인사평가제도 현황과 발전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저성과자를 선별하는 기업(70개) 중 1년이란 짧은 기간의 인사평가 결과를 기준으로 한 기업(29개)이 가장 많았다. 1년 단위 평가라면 단 한 번이라도 하위 등급에 머물면 저성과자로 분류되는 것이다. 보고서는 “최소 1년이란 기준이 저성과의 지속성 측면에서 종업원들에게 얼마나 수용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또 평가등급 배분을 강제할당으로 하는, 즉 상대평가로 업무평가를 하는 기업의 비율이 67.1%나 됐다. 상대평가로 저성과자를 가린다면, 절대적 기준에서 성과를 냈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저성과자가 돼야 하는 것이다. 보고서는 “상대평가 방식은 ‘관대화’ 또는 ‘집중화’의 평가오류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지만, 종업원 입장에서는 평가결과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평가의 공정성 측면에서 불만을 야기할 소지가 크다”고 봤다. 조사 대상 기업 중 저성과자 교육 프로그램을 둔 회사는 15.6%뿐이었고, 이 중에서도 교육 프로그램의 기간이 열흘 미만인 경우가 57.4%였다. 정부 지침대로 업무능력이 떨어지면 교육훈련의 기회를 제공하거나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고려해야 하는데, 이보다는 형식적 절차를 마련하는 데에 방점이 찍힌 것이다. 설계는 ‘육성’ 목표는 ‘퇴출’ 정부의 저성과 해고 지침을 신뢰하기 힘든 또 다른 이유는, 이미 저성과를 빌미로 한 부당해고가 현실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대신증권, 케이티(KT) 같은 회사들이 그랬다. 대신증권은 2012년 노골적으로 “설계는 ‘육성’이나 목표는 ‘퇴출’인 상시적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대상자를 저성과자로 분류해 현업에서 배제한 뒤 타 영업점과 본사를 1~2주 간격으로 오가도록 보직을 바꾸고, 등산 뒤 정상에서 인증사진을 찍어 오게 하거나 ‘외부 인사 명함 10장 받아 오기’, ‘길거리에서 전단지 배포하기’ 등을 반복적으로 시켜 자존심을 짓밟았다. 대신증권은 이 프로그램으로 2년여 동안 100여명의 인력을 줄였다. 형식적으론 자발적 퇴직이었다. 민영화 과정에서 꾸준히 인력을 정리한 케이티도 비슷했다. 명예퇴직을 거부한 이들을 ‘부진인력’으로 분류해 퇴출 프로그램을 돌렸다. 거주지에서 먼 곳으로 발령을 내고, 기존 업무와 전혀 관계없는 생소한 일을 배정하고, 단독업무를 맡긴 뒤 목표 달성을 못하면 주의, 경고를 거쳐 징계해고하는 식이었다. 이때 단독업무는 매우 황당한 일이 떨어지기도 했는데, 114 안내원이었던 여성 직원에게 홀로 전신주에 올라가 전화를 개통하거나 인터넷 회선을 연결하게 하는 일 등이었다. 여러 우려와 문제에도 저성과 해고는 앞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정부의 지침이 이미 사용자들에겐 하나의 신호로 받아들여진 탓이다. 최근 민주노총 정책국이 정리한 ‘노동위원회 판정례로 본 일반해고 지침의 위험성’을 보면, 정부가 저성과자 해고 지침인 ‘일반해고 가이드라인’ 도입을 공식화한 지난해 한 해 동안 업무 저성과에 따른 해고로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한 사례가 183건이나 나왔다. 저성과 해고에 대한 구제신청은 2000년대 중반 100건을 넘긴 이래 2014년까지 140여건에 불과했는데, 지난해 큰 폭으로 늘어났다. 정부의 움직임을 보고 사용자들이 기민한 대응을 한 것으로, 향후 지침이 확정되면 비슷한 사례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민주노총은 보고 있다. 박은정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과거 노동위 판정 사례들을 보면, 업무능력 향상 교육이나 대기발령 과정을 통해 사직을 유도, 정식 ‘해고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집단해고 효과를 달성하는 양상이 2009년부터 이미 본격화됐다. 이는 정부가 지침을 확정할 경우 상시적인 집단해고가 늘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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