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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미국 플로리다주의 시월드 올랜도에서 ‘샤무 - 하나의 바다’ 범고래쇼가 벌어지고 있다. 돌고래쇼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변모시킨 시월드는 17일 범고래쇼 폐지와 번식 중단이라는 혁신적인 조처를 내놓았다. 올랜도/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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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시월드의 범고래쇼 중단 발표
▶ 돌고래 전시공연 산업의 선두두자인 미국 테마파크 ‘시월드’가 17일 ‘범고래쇼’를 폐지하고 번식 프로그램을 중단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2010년 시월드 조련사가 범고래 ‘틸리쿰’의 공격을 받고 숨진 이후, 전세계에서 돌고래쇼 반대운동이 확산된 결과다. <한겨레> 토요판 생명면은 틸리쿰 사건을 파헤친 다큐멘터리 <블랙피시> 제작진과 조련사 인터뷰(2013년 5월18일치 11면)와 시월드 올랜도 범고래쇼 분석(2014년 10월11일치 16면) 등을 통해 이 문제를 다뤄왔다.
‘틸리쿰 효과’.
미국의 생태사학자 제이슨 라이벌은 범고래 ‘틸리쿰’이 부른 돌고래 해방운동의 확산을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범고래는 야생에서 대왕고래까지 잡아먹는 포악성 때문에 ‘살인고래’(killer whale)라고도 불리는데, 실제로 틸리쿰은 세 건의 인명사고에 연루된 에이(A)급 살인고래다. 그러나 두 살 때 아이슬란드 앞바다에서 잡혀와 콘크리트 풀장에 갇힌 틸리쿰의 고통은 전세계적인 돌고래 전시공연의 반대운동을 이끌어냈다.
틸리쿰은 지금 무기력증에 빠져 죽어가고 있다. 조만간 숨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발표가 이달 초 나왔다. 이런 가운데 17일 세계 최대의 돌고래쇼 테마파크인 시월드가 범고래쇼인 ‘샤무 - 하나의 바다’의 폐지와 범고래 번식 프로그램의 중단을 발표했다.
세계 최대의 돌고래쇼를 포기하다
시월드의 이번 결정은 급작스럽게 발표됐다. 조엘 맨비 시월드 최고경영자(CEO)는 17일 미국 일간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기고를 통해 범고래쇼 폐지와 번식 프로그램 중단의 배경을 밝혔다. 맨비는 이 글에서 시월드가 개장한 1964년과 달리 지금은 대중의 인식이 바뀌었다면서 이번 조처가 동물복지 흐름에 서 있음을 강조했다. 그가 쓴 다음 문장은 시대 변화를 받아들일 줄 아는 기업가의 용기를 보여준 것이라 기록해 둘 만하다.
“시월드가 개장한 지 반세기가 지났다. 범고래는 지구에서 가장 인기있는 해양포유류가 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시월드에 와서 범고래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역설에 부닥쳤다. 우리 테마파크에 와서 범고래를 본 사람들이 점점 더 범고래가 사람의 손에 길러져선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시월드는 세 가지 혁신적인 조처를 내놓았다. 첫째, 범고래쇼인 ‘샤무 - 하나의 바다’를 폐지하기로 했다. ‘샤무 - 하나의 바다’는 자체 제작한 음악과 영상으로 ‘샤무’라고 불리는 범고래와 인간이 뮤지컬처럼 함께 펼치는 세계 최대의 돌고래쇼다. 인형으로도 제작돼 팔리는 얼룩 점박이 돌고래 ‘샤무’는 디즈니랜드의 캐릭터들과 쌍벽을 이루는 미국 문화의 아이콘이다. 시월드 샌디에이고(캘리포니아주)의 범고래쇼는 내년에, 샌안토니오(텍사스주)와 올랜도(플로리다주)에서는 2019년에 공연이 폐지된다.
둘째, 범고래 번식 프로그램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고래 및 돌고래의 야생포획이 금지되어 있고 반대 여론 때문에 야생포획 개체의 수입도 불가능했다. 이에 따라 그간 시월드는 인공수정 등 자체 번식 프로그램을 통해 공연용 범고래를 생산해왔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번식 프로그램을 중단하겠다는 것이어서, 신규 범고래 도입과 생산을 멈춤으로써 돌고래 전시를 포기하겠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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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제공 용도로 주로 이용된 범고래 ‘틸리쿰’은 대부분의 시간을 좁은 내실에 갇혀 지냈다. 시월드 올랜도 메인 공연장 안쪽의 내실에서 조련사들이 공연에 나서지 않는 범고래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올랜도/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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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드가 범고래쇼 폐지와
범고래 번식 프로그램 중단 발표
33년간 수족관에서 고통받았던
틸리쿰의 고통이 만들어낸 개가 이번 발표는 돌고래 해방운동의
역사적인 이정표로 받아들여진다
마지막 돌고래쇼 시장은 동아시아
“제돌이 등 야생방사는 시월드의
조처를 있게 한 사건 중 하나” 수족관에서 ‘정자공급’ 임무 수행 이번 조처를 부른 것은 현재 시월드 올랜도의 좁은 콘크리트 풀장에서 갇혀 죽어가고 있는 틸리쿰이다. 틸리쿰은 아이슬란드 앞바다에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살다가 두 살 남짓이던 1983년 공연용으로 그물에 잡혔다. 캐나다 밴쿠버섬의 시랜드에서 묘기를 부리다가 1992년 미국 플로리다주 시월드 올랜도에서 새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다른 범고래처럼 길들여지지 않아 공연에는 제한적으로 나갔고, 그러다 보니 동료와도 어울리지 못하는 외톨이였다. 틸리쿰은 주로 좁은 내실에 갇혀 인공수정을 위한 ‘정자 공급’ 임무를 수행했다.(그의 정자는 무려 21개의 ‘갇힌 삶’의 탄생에 동원됐고, 지금까지 10마리의 자식이 수족관에 남아 있다.) 이미 두 건의 인명사고에 연루됐던 그는 2010년 시월드 올랜도에서 조련사 돈 브랜쇼의 머리 가죽을 벗기고 갈비뼈를 부러뜨리는 중상을 입혀 숨지게 했고, 이 사건은 시월드가 선두에 선 돌고래 전시공연 산업의 어두운 면을 전세계에 공론화시켰다. 2013년 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블랙피시>가 개봉되면서 논란은 심화됐고, 시월드는 관람객이 감소하면서 주가가 곤두박칠쳤다. 지난해 10월 캘리포니아주 해안위원회는 범고래의 수족관 내 교배를 중단하지 않으면 시월드의 재건축 계획을 승인하지 않겠다며 압박을 가했고, 11월에는 수족관 내 교배를 금지하는 법률이 미국 하원에 제출됐다. 틸리쿰의 저항이 나비효과를 부른 것이다. 틸리쿰은 지금 길이 6.7m, 몸무게 5400㎏의 35살 수컷이다. 야생에서 범고래의 자존심은 칼처럼 높이 솟은 등지느러미에 있다. 그러나 틸리쿰의 등지느러미는 엎어진 컵(∩)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다. 이 같은 등지느러미 함몰은 수족관에 살면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틸리쿰의 것은 유난히도 많이 휘어 있다. 2010년 사망사고 이후 틸리쿰은 간간이 쇼에 나서기도 했으나, 대중의 이목 때문에 주로 내실에 갇혀 지냈다. 지난 9일 시월드는 “틸리쿰의 무기력증이 심해지고 있다”며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폐렴약을 투여해도 듣지 않는 상황이라 편안하게 보살피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시월드는 밝혔다. 고래보호단체 ‘고래와 돌고래 보전협회’(WDCS)의 통계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세계 수족관 12곳에서 범고래 56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이 중 절반인 28마리를 시월드가 소유하고 있다. 시월드 올랜도에 7마리, 샌안토니오에 5마리, 샌디에이고에 11마리가 산다. 스페인 로로파크의 5마리도 시월드 소유다. 시월드는 범고래를 원래 서식지로 야생방사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대다수가 수족관 탄생 개체들이기 때문에 야생적응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시월드 소유 범고래 중 틸리쿰과 카티나 등 5마리만 야생에서 잡힌 개체들이다. 반면 일부에서는 바다에 울타리를 치는 등 야생에 가까운 환경을 만들어주고 범고래들이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지내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물을 인도적으로 대하려는 사람들’(PETA)은 이날 “감옥 같은 물탱크 대신 범고래들이 사육되는 공간에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으로 만들어줘야 한다”며 야생 바다에 대안적인 보호시설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큰돌고래 쇼’는 언급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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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고래 틸리쿰과 시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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