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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10 19:21 수정 : 2016.07.14 10:57

[토요판] 뉴스분석 왜?
‘진경준 게이트’의 핵, 김정주 엔엑스시(NXC) 대표

김정주 엔엑스시 대표는 개인이 보유한 주식자산만 3조원대에 이르는 성공한 벤처사업가이지만, 평소에도 티셔츠에 면바지, 낡은 운동화 차림을 즐긴다. 언론이나 공개 석상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업계에선 ‘은둔의 경영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넥슨 제공
▶ ‘진경준 게이트’의 불똥은 넥슨의 ‘뇌물 의혹’ 사건으로 옮겨붙고 있다. 진 검사장 등이 넥슨 쪽으로부터 회삿돈을 빌려 이 회사의 비상장주식을 매입하게 된 배경에 일종의 ‘보험성 거래’가 있지 않았냐는 의혹이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눈길은 넥슨의 창업자인 김정주 엔엑스시 대표에게로 쏠린다. 3조원대 주식자산을 보유한 성공한 벤처사업가임에도, 그간 김 대표는 ‘은둔의 경영자’로 불려왔다. 김정주는 어떤 사람일까?

이른바 ‘진경준 게이트’의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2005년 6월, 넥슨이 진경준 검사장(당시는 평검사), 김상헌 네이버 대표(엘지 법무팀장), 컨설팅 업체에 근무하는 박아무개씨 등에게 자사의 비상장주식 1만주씩을 사도록 하면서 주식 인수자금 명목으로 4억2500만원씩을 빌려주기까지 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진 검사장의 ‘수상한 주식대박’ 사건은 이제 넥슨의 ‘뇌물 의혹’ 사건으로 점차 비화하는 모습이다.

그동안 진 검사장은 넥슨 비상장주식 매입 배경 및 주식 매입 자금 출처와 관련해 거짓말을 이어왔고, 넥슨 쪽 역시 “개인간 거래라서 알지 못한다”며 침묵해왔다.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진 검사장의 금융거래 내역을 살펴 넥슨과 사이에 돈이 오간 사실을 밝혀냈음에도, 넥슨 쪽은 단지 돈거래 사실만 시인했을 뿐이다. 넥슨 쪽의 해명은 이렇다. “퇴직 임원이 주식을 팔겠다고 하는데, 외부 투자회사 등에 넘어가면 조기 상장 등의 요구를 받지 않을까 우려됐다. 그래서 가치 경영에 공감할 수 있는 장기 투자자를 물색했고, 매도자가 주식 대금을 빨리 입금시켜달라고 해 회삿돈을 빌려주게 됐다. 함께 주식을 산 3명 모두에게 똑같이 돈을 빌려줬고, 그해에 모두 갚았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설득력이 매우 떨어진다. 당시 김정주 넥슨 대표 부부의 지분율이 70%에 이르는 데 비해 매물로 나온 지분은 0.7%에 불과했다.

2005년, 진경준 검사장 등 3인에게
비상장주식 넘기고 매입자금도 꿔줘
“매도자 독촉으로 돈 빌려줘” 해명
김 대표 부부 지분율 70% 이르러
경영권 위협 없고 배임 논란 불거져

넥슨을 국내 최대 게임업체로 일구고
3조 자산 보유한 성공한 벤처기업가
진 검사장 등이 주식 취득한 시기는
벤처기업가 병역특례 논란되던 시기
재벌 구태 빼닮은 ‘뇌물 거래’ 의혹

차용증 없이 4억대 자금 빌려줘

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비상장주식을 3만주나 살 수 있게 해줬을 뿐만 아니라 주식 인수에 필요한 자금도 13억원 가까이 빌려준 것으로 밝혀진 만큼, 이번 사건은 넥슨의 뇌물 제공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나중에 다 갚았다고 주장하는 대로라면, 공무원이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가 나중에 문제가 될 것 같으니까 되돌려준 것도 처벌이 안 된다”고 말했다.

넥슨으로부터 회삿돈을 빌려 이 회사의 비상장주식을 매입해 엄청난 차익을 거둔 사실이 드러난 진경준 검사장. 진 검사장이 주식을 취득하던 시기가 때마침 김정주 대표를 비롯한 일부 벤처사업가들의 병역특례 논란이 벌어지던 때와 겹쳐 ‘보험성 거래’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자연스레 관심은 진 검사장 등이 주식을 넘겨받을 당시 넥슨의 대표이사였던 김정주 엔엑스시(NXC·넥슨 지주회사) 대표한테 쏠린다. 넥슨은 진 검사장 등에게 각각 4억2500만원의 주식 인수 자금을 빌려주면서 차용증조차 쓰지 않았고, 이자도 받지 않았다. 이사회조차 열리지 않았다. 당연히 배임 논란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김정주 대표가 퇴직 임원 이름으로 숨겨놨던 주식(차명주식)을 이들에게 ‘보험용’으로 넘긴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과연 이 모든 과정은 김정주 대표의 ‘기획 및 연출’ 작품이었을까? 어쩌면 ‘성공한 벤처사업가 김정주’가 걸어온 길에 그 비밀을 풀 단서가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은둔의 경영자’. 그는 업계에서 흔히 이렇게 불린다. 언론이나 공개 석상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붙여진 별명이다. 평소 복장도 티셔츠에 후줄근한 면바지, 백팩, 낡은 운동화 차림이다. 회사 건물 경비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쫓아내려 했다는 일화까지 있을 정도다. 2009년, 그는 아예 사무실을 제주로 옮겨버렸다.

김정주 대표는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당시로서는 무척 귀했던 개인용컴퓨터를 사준 게 계기가 돼 ‘공돌이’ 길로 들어섰다. 일찌감치 컴퓨터 게임의 재미에 빠진 그는 학교 수업을 빼먹고 교보문고로 게임을 하러 갈 때도 많았다. 당시 교보문고에는 컴퓨터 게임 체험 시설이 있었다. 그는 카이스트 대학원 재학 시절인 1994년, 서울대 입학 동기이자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던 송재경 현 엑스엘게임즈 대표와 공동으로 넥슨을 설립했다.

흥미로운 얘기 한토막도 있다. 김 대표는 송재경 대표와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등과 함께 나란히 카이스트 대학원에 합격했으나 학점 부족으로 제때 대학 졸업을 못해 그해 대학원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그는 1년간 모자란 학점을 따며 남는 시간에 선배 회사들을 둘러보곤 했는데, 당시 경험이 그를 프로그래머 대신 사업가로 나서게끔 했다. 김 대표는 이듬해 카이스트 대학원에 다시 합격해 입학했고, 이해진 의장과 기숙사 같은 방을 썼다. 옆방에는 송 대표와 김상범(넥슨 이사)이 있었다.

그가 넥슨을 설립한 뒤 처음으로 개발한 게 세계 최초의 그래픽 온라인 다중접속게임(MMORPG) ‘바람의 나라’였다. 이 게임은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을 개척하는 동시에 넥슨을 단숨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온라인게임 업체로 만들었다. 넥슨은 이후 ‘메이플 스토리’, ‘피파 온라인 3’, ‘던전 앤 파이터’, ‘서든어택’, ‘카트라이더’ 등을 잇따라 흥행시키면서 국내 최대 게임업체 자리를 꿰찼고, 김 대표는 게임사업으로 가장 성공한 벤처기업가가 됐다.

‘던전 앤 파이터’ 대박으로 위기 모면

창립 10년째인 2004년 넥슨은 한차례 성장통을 겪기도 했다. 내부적으로 그간 이룬 성과를 분배하라는 요구가 빗발친 것이다. 넥슨을 상장시키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김 대표는 회사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고 계속 성장세를 이어가려면 연간 매출이 3000억원을 넘어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김 대표가 회사 보유 현금을 탈탈 털어 위젯(메이플스토리 개발사)을 400억원에 인수해 조기 상장 불가 방침에 쐐기를 박자, 개발자들이 대거 회사를 떠나버렸다.

될성부른 업체를 인수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도 이 무렵이다. 그는 전산학을 전공했고 넥슨 설립 뒤에도 게임을 직접 개발하기도 했으나, 남이 개발한 게임 가운데 괜찮은 제품을 사들이거나 퍼블리싱(유통 대행)하는 과정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뽐냈다. 2004년 위젯(메이플 스토리), 2008년 네오플(던전 앤 파이터), 2011년 제이시이(JCE·룰더스카이) 인수가 대표적이다. 한 예로 네오플 인수가격(3900억원)을 두고 너무 비싸다는 뒷말이 많았으나, 결국 이 업체가 개발한 던전 앤 파이터가 중국에서 대박을 터트린 게 대표적이다.

김 대표는 2006년 넥슨을 지주회사(엔엑스시) 체제로 전환하면서 지배구조를 크게 개편했다. 일본 법인을 본사로 삼으면서 한국 법인을 자회사로 거느리는 방식이다. 이후 그는 게임사업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지주회사 대표를 맡아 글로벌 인수·합병에 집중하는 길을 택했다. 엔엑스시가 인수했거나 투자한 회사는 현재 53곳에 이른다. 전세계 블록조립 장난감(레고) 마니아들이 블록조각을 사고파는 온라인 장터 ‘브릭링크’와 대당 100만원이 넘는 명품 유모차를 만드는 노르웨이 유아용품업체 ‘스토케’ 등 몇 곳을 제외하고는, 무슨 사업을 하는 회사인지조차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가 투자한 회사 중에는 전기차 관련 업체, 강남에 위치한 빌딩 소유 회사, 개인 대상 펀드 회사도 있다. 2015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집계한 ‘한국 50대 부자’를 보면, 김 대표는 주식자산이 2조9241억원으로 8위에 올라 있다.

물론 뼈아픈 실패 사례도 적지 않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의 갈등은 널리 알려진 사례다. 김 대표는 2012년 미국의 세계적인 게임업체 일렉트로아츠(EA)가 매물로 나오자,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손잡고 인수에 나섰다.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김택진 대표를 앞세우고 ‘실탄’을 몰아줬다. 김택진 대표의 엔씨소프트 지분 322만주를 8045억원에 인수하는 방식으로 회사가 갖고 있던 현금을 몽땅 몰아준 것이다. 하지만 일렉트로아츠 창업자 쪽 이사가 막판에 회사 매각에 반대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결국 김택진 대표에게 현금을 쥐여주기 위해 회사 자금을 털어 엔씨소프트 지분을 인수한 상황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김택진 대표와의 관계는 심각하게 틀어졌다. 김 대표는 이후 <한겨레>와 만나 “김택진 대표를 만나고 싶다. 한겨레가 자리 좀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김 대표의 성공 스토리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두 인물이 있다. 아버지 김교창 변호사와 부인 유정현 엔엑스시 감사다. 아버지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고 서울지방법원 판사와 한국회의법학회 회장, 대한공증협회 회장 등을 지낸 기업법 전문가로, 아들의 1호 투자자이자 넥슨 초창기에는 대표를 맡기도 했다. 기업법 전문가인 아버지의 조언을 받아 외부 투자를 최소화한 덕에 지금까지 강력한 지배구조를 유지할 수 있었고, 1998년 구제금융 사태도 끄떡없이 넘길 수 있었다고 김 대표 측근들은 설명한다. 부인도 넥슨 설립 때부터 참여했는데, 오랫동안 경영지원본부장을 맡아 ‘안살림’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은 현재 엔엑스시 지분을 29.4% 갖고 있는데, 주식 가치만 따져도 1조1000억원을 넘는다.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병역특례

이런 배경은 김 대표의 경영 스타일, 나아가 이번 ‘진경준 게이트’가 싹트는 데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평소 김 대표는 재미있다거나 해볼 만하겠다고 생각되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일단 ‘저지른다’는 평을 듣는다. 해외에 나갔다가도 재미있는 아이템을 발견하면 그냥 주저앉아 즐기거나, 때로는 그 회사를 인수해버린다. 그는 회사를 만들거나 인수해서 직원이 30명을 넘으면 단지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무작정 떠난다고 한다. 결국 누군가는 항상 뒤처리를 맡아줘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 역할은 부인이 맡아왔다고 봐야 한다.

자연스레 김 대표와 연결된 모든 사안은 ‘비밀’로 포장되는 경향이 있었고, 이는 경우에 따라 재벌의 구태를 비판하고 나선 벤처기업임에도 다양한 형태의 ‘보험성’ 거래에 나서도록 하는 유인이 됐을 가능성도 크다. 대표적인 게 그의 병역 문제다. 김 대표는 병역특례 혜택을 받았는데, 근무를 자신이 설립한 넥슨에서 했을 뿐 아니라, 남들은 3년이면 끝나는 것을 무려 10년 이상 걸렸다는 미스터리를 안고 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진 검사장이 넥슨의 비상장주식을 취득하던 시기다. 넥슨이 지배구조를 개편해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시점이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취득 시점 직전엔 국내 주요 벤처기업 창업자들의 편법 병역특례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돼 검찰이 대대적으로 수사에 나서던 시점이다. 실제로 당시 일부 벤처기업가들은 비리가 드러나 현역으로 다시 입대하기도 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한 업체 대표는 “그 무렵 김정주 대표도 군대에 다시 갈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아무런 변화 없이 그 시기를 지났고, 지금도 자신의 병역 의무와 관련해서는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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