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국회의원 면책특권 제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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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앉아 있다. 조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대법원 양형위원 가운데 성추행 전력 인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으나 동명이인으로 드러나 면책특권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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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 방송사 고위간부의 성추행 전력을 거론했다가 추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에 대한 논란이 또다시 빚어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면책특권을 폐지하거나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이에 대해 더민주 등 야당은 권력 견제를 위해 면책특권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면책특권이 왜 번번이 논란이 되는지, 외국에서는 어떻게 운영되는지, 대안은 없는지 알아봤다.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헌법 45조) 이른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에 관한 조항이다. 헌법 제44조 불체포특권(① 국회의원은 현행범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 ② 국회의원이 회기 전에 체포 또는 구금된 때에는 현행범인이 아닌 한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 석방된다.)과 함께 국회의원에게 주어지는 대표적인 권한이다.
면책 및 불체포 특권을 규정한 조항은 간단하지만, 내력은 민주주의 역사 그 자체다. 1215년 영국 귀족과 런던 시민들이 힘을 합해 투쟁한 결과 왕의 전제권력을 견제하는 ‘대헌장’이 승인됐지만, 이후에도 왕들은 의회를 무시하는 등 전제정치를 계속했다. 툭하면 의회를 해산하거나 비판적인 의원들을 옥에 가두었다.
의원의 신분 보장을 위한 첫 투쟁은 1397년에 있었던 토머스 핵시 사건이었다. 하원의원이었던 핵시는 국왕 리처드 2세의 방탕한 생활과 재정 낭비를 정면으로 비난하는 청원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에 격분한 왕은 그를 반역죄로 몰아 재판에 부친 뒤 의원직과 재산을 박탈하고, 사형까지 선고받게 했다. 그러자 동료 의원들이 탄원서를 내는 등 들고일어나 사형 집행을 저지했다. 1399년 리처드 2세를 몰아낸 헨리 4세는 리처드 2세의 조처가 “의회의 법과 관례에 어긋났다”며 핵시를 사면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영국 의회는 의회에서의 토론과 발언이 위협받지 않을 권리를 요구했지만, 왕들은 지키지 않았다.
검찰, ‘통일 국시 발언’ 유성환 구속
16세기 이후 토지 귀족인 젠트리와 상공인 중심의 시민계급이 성장하면서 의회는 왕권과 정면충돌하게 된다. 1629년에 있었던 존 엘리엇 사건이 대표적이다. 1624년에 의원으로 선출된 엘리엇 경은 첫 의회 연설에서부터 ‘의회의 특권과 자유’를 요구하는 등 왕권신수설을 신봉하는 찰스 1세와 맞섰다. 1626년 왕의 오른팔이었던 버밍엄 공작이 이끄는 내각의 실정 등을 비판했다가 왕에 의해 런던탑에 투옥됐다. 하원은 이에 맞서 업무 거부 운동을 벌였다. 며칠 뒤 찰스 1세는 엘리엇을 마지못해 석방했다. 엘리엇은 석방된 뒤에도 왕의 과세권과 시민에 대한 인신구속을 제한하는 내용의 권리청원(1628년)을 주도했다.
의회의 각종 제동에 화가 난 찰스 1세는 1629년 의회의 휴회를 명했지만, 엘리엇 등 의회 투사들은 의장을 강제로 의장석에 앉힌 뒤 왕의 불법적인 과세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찰스 1세는 이에 의회를 해산하고, 엘리엇 등 주동자들을 런던탑에 가뒀다. 엘리엇은 감옥에서 숨졌으나, 절대왕권에 맞선 의회의 투쟁은 청교도혁명(1642년)과 명예혁명(1688년)으로 결실을 맺었다. 1689년 영국은 마침내 ‘권리장전’(Bill of Rights)을 채택했다. 왕이 통치하는 시대를 끝내고 의회가 중심이 되는 근대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의회 안에서 말하고 토론하고 의논한 내용으로 의회 아닌 어떤 곳에서도 고발당하거나 심문당하지 않는다”(권리장전 제9조)는 의원의 면책특권은 새로운 의회제도를 떠받치는 핵심 중 하나였다.
이후 면책특권은 다른 나라에도 전파됐다. 미국은 1771년에 채택한 연방헌법에서 “양원의 의원은 원내에서 행한 발언 또는 토의에 관하여 원외의 어떠한 장소에서도 신문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문화했다. 영국의 권리장전 내용과 거의 같다. 프랑스 역시 1789년 혁명 때 국민의회가 선포한 칙령에서 의원의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명시했다.
‘권리장전’ 때 확립된 면책특권
왕권에 맞서 싸워 얻어낸 성과
‘의회 투사’ 엘리엇 경 목숨 잃어
‘임시헌법’부터 도입됐으나
국시발언 파동 등 정권마다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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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7월 민주통일당 김영삼 총재(당시)와 김동영 의원(당시·오른쪽)이 유성환 의원(당시)을 서울구치소에서 면회하고 있다. 유 의원은 1986년 10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통일이 국시라고 발언했다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수감되었다. 유 의원은 1992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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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1919년 임시정부의 ‘대한민국 임시헌법’ 때 면책특권이 명시됐으며, 1948년 제헌헌법에도 거의 그대로 실렸다. 그러나 면책특권은 70년 가까운 우리 헌정사에서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때로는 면책되기는커녕 국회 발언으로 구속되거나 심지어는 의원직을 잃기도 했다. 면책특권을 둘러싼 대표적 논란은 ‘유성환 국시 발언 사건’이다. 야당인 신민당 소속이었던 유 의원은 전두환 정권 때인 1986년 10월 대정부질문 때 ‘우리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지금 보면 너무나 당연한 내용인데도 당시 정권은 발칵 뒤집어졌다. 결국 검찰은 발언 30분 전에 유 의원이 기자들에게 질의서를 배포한 것은 면책특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유 의원을 구속 기소했다.
대법원은 1992년 이 사건에 대한 판결에서 면책특권에 대한 중요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즉, ‘면책특권은 국회의원의 직무상 발언이나 표결뿐 아니라 여기에 부수하여 행해지는 행위까지도 포함해서 적용되어야’ 하며, 어떤 게 부수행위인지 여부는 “구체적인 행위의 목적, 장소, 태양 등을 종합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보도자료 제공은 시간이 근접한데다가 장소도 국회의사당 내 기자실이며, 목적에서도 보도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기에 면책특권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사건 발생 6년 만에야 내려진 결론이었다.
그러나 이른바 ‘안기부 엑스파일’에 나오는 떡값 검사의 이름을 밝힌 ‘노회찬 발언 사건’(2005년)으로 면책특권의 범위는 다시 줄어들었다. 당시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의원은 법사위에서 폭로 발언을 하면서 보도자료와 함께 자신의 홈페이지에도 이 내용을 올렸다. 검찰은 홈페이지에 올린 것은 면책특권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대법원은 2011년 판결에서 ‘보도자료는 무죄, 홈페이지 게재는 유죄’라고 판결했고, 노 의원은 의원직을 잃었다. 노회찬 판례에 대해서는 1992년 대법원 판례의 취지를 축소시키고, 언론 환경의 변화를 외면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무책임 발언에 면죄부 준 ‘허태열 판례’
면책특권과 관련해서 중요한 판례로 남은 또다른 사건은 2003년 ‘허태열 사건’이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소속의 허 의원은 2003년 11월 국회 예결위에서 “김성래 썬앤문 부회장이 노무현 정권의 실세였던 이호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에게 정치자금으로 95억원을 줬다”고 주장했다. 발언의 내용은 특별검사 수사 결과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이 비서관은 허 의원을 상대로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2007년 “발언 내용이 직무와 아무 관련이 없음이 분명하거나 명백히 허위임을 알면서도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등까지 면책특권의 대상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면서도 “허위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면책특권의 대상이 된다”고 판결했다. 즉, 국회에서의 발언이 비록 거짓이더라도 이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면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세가지 사건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보호받는 면책특권의 기준은 어느 정도 정리됐다. 첫째는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 등 회의 석상에서 하는 발언은 내용이 진실이든 허위이든 상관없이 보호받을 수 있다는 부분이다. 발언자가 허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부러 발언했다는 것을 제3자가 증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발언 내용을 미리 보도자료로 국회에서 제공하는 것은 괜찮지만, 이를 홈페이지나 블로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올리는 행위는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조응천 의원의 법사위 발언은 면책특권의 대상이다. 더구나 조 의원은 이튿날 발언 내용이 잘못됐다는 것을 안 직후 곧바로 자신의 잘못을 사과했기에 정치적으로도 오래갈 사안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보다는 그동안 있었던 허위 폭로, 묻지마 폭로들이 더 문제다. 박원순 서울시장 장남의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했다가 사실무근으로 드러난 18대 국회 때의 강용석 의원(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씨가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연임 로비에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던 19대 때의 강기정 의원(민주당), 2014년 고 노무현 대통령과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이 함께했던 사진이라며 폭로했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조원진 의원(새누리당)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문제 발언은 국민들의 정치 혐오 감정을 더할 뿐 아니라 현재와 같은 면책특권을 그대로 두는 게 맞느냐는 의문을 제기해왔다.
특히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의 사례를 들어 우리도 면책특권을 축소하자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미국은 1970년대 초반 연방 대법원의 판례를 통해 의원들의 활동을 입법활동과 정치활동으로 나눈 뒤 순수 입법활동에 대해서만 면책특권을 보장하고 있다. 또 독일의 경우는 아예 법에서 ‘비방적인 모욕’은 면책특권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우리의 헌법에 해당하는 독일 기본법 제46조는 면책특권을 규정하면서 “그러나 이는 비방적인 모욕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아니한다”고 밝히고 있다.
“발언 당시 허위인 줄 몰랐다면
거짓 발언도 면책특권 대상”
대법원 판례로 폭로성 발언 계속
면책권 축소는 민주주의 위협이나
무책임한 거짓 폭로 대책은 필요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부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책특권 폐지나 축소는 안 된다는 의견이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모든 사회적 이슈가 국회라는 공론장에서 가감없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100% 확인된 진실만 오갈 수는 없는 법”이라며 “일부 실수가 있다고 해서 면책특권을 손보자는 것은 의원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결국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학자인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도 “개헌을 하기 전에는 불가능한데도 면책특권을 고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슈를 돌리는 등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민주화와 상관없이 면책특권은 권력 견제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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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당시)이 2006년 2월23일 오후 국회 예결위에서 천정배 법무부 장관에게 삼성에서 뇌물을 받은 검사들이 삼성과 관련한 수사를 공정하게 진행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는 앞서 2005년 8월 법사위에서 삼성한테 떡값을 받은 의혹이 있는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하고 이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그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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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사례 역시 맥락과 역사를 따져보면 우리와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경우, 입법활동과 정치활동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실제로는 의회라는 공간에서 이뤄진 발언과 행동은 모두 입법활동의 일환으로 간주하는 등 대체로 면책특권의 적용 범위를 넓게 해석하고 있다.(이상경, 미국의 국회의원 면책특권의 내용과 시사점, 2012년) 독일은 기본법 제정 과정에서 정치적 투쟁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단서조항이 도입됐지만, 대신 교섭단체에서의 발언, 즉 의원총회 등 정당활동까지도 면책특권이 보장된다.
하지만 면책특권을 방패로 삼아 벌이는 무책임한 거짓 폭로와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 등에 대해서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창렬 교수는 “면책특권은 헌법 사항이기에 법을 고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발언이 거짓으로 드러났는데도 합당한 사과와 반성을 하지 않는 의원에 대해서는 국회 윤리 차원에서 엄중하게 다뤄야 한다. 그러면 의원들이 조심하게 되고, 국회의 품격도 올라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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