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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22 20:47 수정 : 2016.07.22 20:51

[토요판] 뉴스분석 왜?
삼성서울병원의 대리수술 사건

삼성서울병원은 지난해 늦장 대응 등 초동대처 부실로 국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 최대 발생지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데 이어, 이번에는 대리수술이라는 또다른 불명예에 휩싸이게 됐다. 지난해 6월 메르스로 폐쇄된 병원 출입구 앞으로 의료진이 마스크를 쓴 채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살면서 ‘원’자 들어가는 두 군데를 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법원과 병원. 그곳에선 지식의 비대칭성이 권위를 낳고 그 권위가 인간에 대한 무례를 낳는다. 아들뻘 되는 판검사에게 법정에 선 남루한 죄수복이 모멸당하거나, 몇 시간을 기다렸다가 1분 만난 의사에게 질문 하나 했다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 뭔 말이 많냐’는 면박을 받는 일은 허다하다. 그들에게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은 요즘 말마따나 ‘개돼지’인지도 모를 일이다. 특진비는 다 챙기면서 정작 수술은 아랫사람한테 시키는 한 대형병원의 유명 의사를 취재했다. 그에게 환자는 무엇일까.

‘명의’로 알려진 삼성서울병원의 한 산부인과 교수가 자신이 집도하기로 한 수술 3건을 환자와 보호자 몰래 후배 의사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해외 학회 참석차 출국했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병원 쪽은 뒤늦게 이러한 대리수술 정황을 파악한 뒤 징계위원회를 열어 해당 의사에 대해 중징계(무기정직) 처분을 내렸다. 대리수술을 시킨 교수는 토론자로 해외 학회 참석이 예정돼 있었으면서도 수술 날짜를 잡아 환자들에게 특진수술비까지 챙겼다는 비난마저 사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해 늦장 대응 등 초동대처 부실로 국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 최대 발생지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데 이어, 이번에는 ‘의사 바꿔치기’ 대리수술이라는 불신에 휩싸이게 됐다.

수술은 후배가, 특진수술비는 내가?

<한겨레>가 입수한 삼성서울병원의 ‘수술환자 리스트’를 보면, 이 병원 산부인과 김아무개(56) 교수는 지난 8일, 오전과 오후 난소암 수술과 자궁근종 수술, 자궁적출 수술 등 모두 3건의 수술을 맡는 것으로 돼 있다. 김 교수는 2014년부터 관련 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등 난소암 치료의 권위자로 최근에도 언론 인터뷰에 등장한 이름난 의사다.

이날 김 교수의 수술 시간은 오전 8시와 오후 1시, 3시30분. 그러나 김 교수는 하루 종일 수술방에 나타나지 않았다. 수술 당일부터 일본에서 열리는 ‘부인과종양학회 학술 강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날 오전 9시30분 비행기를 타고 출국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 대신 3건의 수술을 떠맡은 건 펠로(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임상강사) 2년차 의사 ㅂ씨였다. 졸지에 집도의가 국내 최고 수준의 명의에서 2년차 전문의로 바뀐 것이다.

병원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ㅂ씨는 이날 2건의 오후 수술은 무리 없이 진행한 반면, 오전 난소암 수술에선 어려움을 느껴 산부인과의 다른 교수를 호출했고 그 교수의 도움으로 수술을 마쳤다고 한다. 다행히 수술은 큰 탈 없이 이뤄졌지만, 수술 의사가 바뀌는 과정을 환자와 보호자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김 교수가 환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수술이 있은 지 1주일이 지난 13일께 회진 때였다. 김 교수는 이 자리에서 수술이 잘됐다는 얘길 했다고 한다.

<한겨레> 취재 과정에서 대리수술 사실을 알게 된 한 보호자는 취재진과 한 통화에서 울먹이기도 했다. 한 환자의 보호자는 지난 19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김 교수님으로부터 수술 의사가 바뀐다는 얘길 미리 들은 적이 없다. 김 교수님에게 수술을 받기 위해 한참을 걸려서 입원을 한 거고 100만원 넘는 특진수술비(선택진료비)도 더 냈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김 교수님이 수술을 한 걸로 알고 있었다”고 했다. 환자들이 전문성 높은 의사에게 진료받는 대가로 지급하는 비급여 항목(국민건강보험 비적용)인 특진수술비는 통상 일반수술비보다 5~6배 많은 편이다.

뒤늦게 김 교수의 대리수술 사실을 인지한 병원 쪽은 13일 곧바로 자체 조사를 벌여 해당 사실을 최종 확인한 뒤 김 교수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김 교수에 대해 외래진료 및 수술 중지 결정을 내린 징계위는 20일 오전 무기정직 처분을 최종 통보했다. 병원 쪽은 <한겨레>에 대리수술 사실을 인정했다. 병원 관계자는 “사안이 심각하다고 보고 김 교수에 대해서 곧바로 인사상 조처를 취했다”며 “이 과정에서 김 교수가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직접 사과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병원 안팎에선 김 교수의 대리수술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돈다. 병원 쪽이 신속한 대응에 나선 것도 ‘빈번한 대리수술로 병원 내에서 말이 많았던 김 교수에 대해 더는 방어해줄 수 없다고 판단한 것 아니겠냐’는 것이다.

<한겨레> 취재 결과, 일본부인과종양학회 주최로 8일부터 10일까지 돗토리현에서 열린 학회에 김 교수는 9일(토) 오후 ‘난소암 연구의 새로운 조류’ 세션 토론자로 지정돼 있었다. 대부분의 학술대회가 강연자와 토론자 선정 등을 위해 개최 두세달 전 기획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김 교수의 학회 참가가 갑작스럽게 이뤄진 것으로 보긴 어렵다. 8일 수술 일정을 잡기 전에 이미 학회 일정이 예정돼 있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결과적으로 자신이 물리적으로 집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수술 일정을 잡았다는 얘기가 된다. <한겨레>는 김 교수의 해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연락을 취했으나 닿지 않았다.

수술방 CCTV 설치 의무화해야

법조계에선 담당 주치의가 환자에게 수술 의사의 변경을 미리 알리지 않았다면 사기죄 성립도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산업보건전문의인 박영만 변호사는 “대리수술은 일종의 민사상 계약불이행에 해당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수술 일정을 잡고 이를 알리지 않았다면 사기죄로 볼 수 있다”고 짚었다.

실제 김 교수의 대리수술과 유사한 사건에 대해 사법당국이 사기죄를 적용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1999년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은 외국출장을 이유로 특진환자의 수술을 후배 의사에게 맡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 경희의료원장 유명철씨에게 상습 사기죄를 적용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지정진료(특진) 의사는 수술을 주도적으로 집도하고 대리수술의 경우 사전에 환자 등에게 그 사정을 알려야 한다”며 “대리수술 결과가 잘됐더라도 수술에 참여한 것처럼 서명한 것은 환자를 속인 것”이라고 밝혔다.

유 전 원장의 경우처럼 삼성서울병원 3건의 수술 기록지에도 집도의가 모두 김 교수로 돼 있었다. 이에 대해 병원 쪽은 “수술 기록지는 수술방을 잡는 예약 시점부터 전산으로 기입을 하는데 이번 건의 경우는 산부인과 소속 직원이 수술방을 잡는 과정에서 주치의였던 김 교수를 집도의로 기입했다. 대리수술 사실이 드러난 이후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명한 뒤 실제 수술을 한 의사로 집도의 명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사후 사실 확인에 따라 수정했다는 설명이지만 김 교수의 대리수술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끝까지 기록상 집도의는 김 교수로 남았을 것이란 얘기다. 의사들에 대한 징계를 관할하는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관계자는 “자신이 수술하지 않았음에도 수술 기록지를 자신이 집도한 것으로 기재했다면 이는 명백한 의료법 위반 사항으로 보건복지부 징계 사안”이라고 했다.

현재 대리수술을 지시한 의사들은 의료법이 아닌 사기죄 등으로 처벌받는다. 현행 의료법에 대리수술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의사면허가 없는 자가 무자격 시술을 하면 불법이지만, 의사면허가 있는 자에게 대리수술을 시킬 경우 제재할 규정 자체가 없다. 2014년 서울 강남 유명 성형외과에서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가 대리수술을 하다 의료사고를 낸 적이 있다. 병원장에게 사기 혐의 또는 부작용 고지 불이행, 응급의료장비 위반을 적용한 것도 법규 미비 때문이었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유명 의사
수술 당일 학회 참석차 일본 출국
전문의 2년차가 대리수술 3건 해
수술기록지는 본인 수술했다 작성
병원 “환자 사과 뒤 무기정직 처분”

의료법상 대리수술 처벌 조항 없어
피해 입어도 사기죄로 고소 이뤄져
정의당 윤소하 의원 “개정안 발의”
한 현직의사 “나도 대리수술 당해”
의료계 전반 만연한 비리 근절 시급

의사들은 대리수술이 특정 과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서울시내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한 전문의는 “대리수술은 사실 새로울 게 없는 비리다. 오래전부터 관행적으로 이뤄져왔다. 가장 심한 건 물론 성형외과와 정형외과지만 다른 과라고 크게 다르진 않다”고 했다. 또 “새로운 장비를 많이 사용하는 성형외과와 정형외과에서 의사 대신 의료장비 기술자가 수술을 한다든지, 마취과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가 마취를 하는 일은 너무도 비일비재하다”고 덧붙였다. 경기도의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한 의사는 “내가 치질 수술을 받을 때도 담당 의사에게 ‘제발 당신이 수술을 해달라’고 신신당부할 정도였으니 말 다 한 거 아닌가”라며 “그가 실제로 수술을 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씁쓸해했다. 그는 “수술 후 두통이 심해서 알고 보니 마취과 전문의가 아닌 레지던트가 마취를 잘못한 후유증이었다”며 “의사도 대리수술을 당하는데 일반 시민들은 오죽하겠냐”고 했다.

대리수술의 철저한 차단이 힘든 것은 수술 절차의 맹점 때문이다. 보호자가 접근할 수 없는 수술방에서 환자 마취 이후 은밀하게 이뤄지는 탓이다. 내부고발이 아니라면 기록상으로도 대리수술이 이뤄지는지 파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대리수술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수술방에 폐회로티브이(CCTV) 설치를 의무화하자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 배경이다.

더불어 대리수술 근절을 위해선 대리수술과 수술 기록지 허위 작성 등에 대한 처벌 규정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21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환자의 동의 없이 수술 의사가 바뀌었다는 것은 의료윤리에 어긋나는 심각한 범죄행위다. 이번 사안뿐 아니라 해당 병원 전체 수술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겨레> 보도 이후 복지부에 실태조사를 요구할 생각이라는 윤 의원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대리수술에 대한 처벌 조항 등을 신설한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포커스뉴스>의 조아무개 기자가 지난 13일 저녁 출고한 삼성서울병원 대리수술 관련 첫 기사. 20분 만에 인터넷과 회사 누리집에서 삭제됐다. 조아무개 기자 제공

첫 보도 인터넷신문 기사 삭제되기도

한편, 삼성서울병원의 대리수술이 세상에 알려지는 과정에서 사건을 처음 인지한 한 인터넷언론사가 보도를 하고도 곧바로 기사를 삭제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민영통신사를 표방한 인터넷언론 <포커스뉴스>의 조아무개 기자는 삼성서울병원의 대리수술 의혹에 대한 제보를 받고 지난 3일 저녁 6시22분께 첫 기사(단독-삼성서울병원 유명교수 ‘대리수술’ 정황 포착)를 출고했다. 그러나 기사는 20분 만에 인터넷에서 사라졌다. 조 기자는 “회사에 ‘어찌된 거냐’고 물었더니 한 간부가 ‘삼성의 분기별 광고집행 건이 있기 때문에 내렸으니 이해해달라’고 하더라”고 했다. 첫 기사 이후에 준비했던 후속 기사가 게재도 되지 못한 채 삭제되자 조 기자는 결국 사표를 냈고 곧바로 수리됐다.

김종수 <포커스뉴스> 편집국장은 2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그 기사와 관련해서는 조금 더 판단이 필요해서 내린 거다”라고 설명했다. 후속 기사가 게재도 안 된 채 삭제됐다는 주장에 대해선 “퇴사한 사람의 일방적 주장이고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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