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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9.09 19:22 수정 : 2016.09.09 20:58

[토요판] 뉴스분석
세월호 정보공개소송 2년 이야기

하승수(오른쪽 둘째)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과 당원들이 지난 3월23일 오후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하 운영위원장이 청와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소송 판결 결과에 항의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법원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 보고·지시 사항에 대한 청와대의 공개 거부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연합뉴스

▶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떤 내용이 대통령에게 보고됐고, 대통령은 어떤 지시를 내렸을까. 진실 규명의 핵심인 ‘그날의 청와대’에 접근하고자 2년 넘게 진행 중인 소송이 있습니다. 소송 과정에서 청와대가 정보를 은폐하고 사법권력이 추인하는 양상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2018년 2월까지 정보공개가 이뤄지지 않으면 박근혜 대통령 퇴임에 맞춰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돼 ‘15~30년 비공개’ 자물쇠가 채워질 수도 있습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300명이 넘는 목숨이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사라졌다. 몇 달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진실 규명의 전망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세월호 참사 당일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린 최고 권력기관은 청와대라는 사실이다. 당시에도 ‘대통령이 최초 보고를 받은 후 7시간 동안 뭘 했나’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청와대가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을 통해 밝힌 내용은 ‘당일 오전 10시에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첫 서면보고를 한 이후 모두 21차례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보고받은 대통령이 지시를 했다’는 것이었다.

청와대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밝히려고 해도 청와대에 남아 있을 관련 기록이 공개되어야 했다. 그래서 녹색당 차원에서 정보공개청구를 해보기로 했다. 2014년 8월18일 청와대를 상대로 처음 공개 청구한 정보는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은 대통령에게 어떤 내용을 보고했고,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여기에 대해 어떻게 지시했는지’였다.

청와대의 답변은 전부 ‘비공개’였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청와대의 정보목록 등을 추가로 청구했다. 정보공개법에 따르면 모든 기관은 정보목록을 작성해서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 청와대에서 쓰는 예산에 대해서도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그 모든 청구에 대해 비공개로 일관했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행정소송뿐이었다. 소송을 제기한 것은 2014년 10월10일이었다. 이때만 해도,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이 사건을 ‘어느 정도는’ 제대로 다뤄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대통령의 지시는 아예 기록이 없다?

이 소송은 처음부터 시간과의 싸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18년 2월이 되면 청와대는 세월호 관련 기록을 포함한 중요한 자료들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되면, 최대 15년에서 30년까지 비공개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진실 규명은 더욱 어려워지고, 소송 자체도 의미를 잃게 된다. 그래서 2018년 2월 전까지 최종 판결을 받아내야만 했다.

소송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청와대는 철저하게 시간끌기 전략으로 나왔다. 소송을 제기하면, 피고 쪽에서는 답변서를 정해진 기간 내에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는 정부법무공단을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해 답변서 제출 기한을 연장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법원은 그것을 순순히 받아줬다. 청와대는 소장을 접수한 지 4개월이 지난 2015년 2월에야 답변서를 제출했다. 본격적인 변론은 그 후에나 시작됐다.

몇 차례 변론이 열리고 공방을 주고받던 중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청와대는 처음에는 ‘정보가 공개될 경우 대통령과 보좌기관들의 업무에 현저한 지장이 초래된다’는 이유로 비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소송 과정에서 청와대는 말을 바꾸어, ‘세월호 참사 관련해서 대통령에게 구두로 보고한 부분들이 있는데, 구두보고한 부분에 대해서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지시를 할 때에는 100% 구두로 했기 때문에 아무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21세기 국가에서는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청와대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대통령이 평소 사용하는 업무전화기를 통하여 참모진에게 지시하거나 보고받는 경우, 그리고 직접 면전에서 구두로 지시하거나 보고받는 경우에 그 통화나 구두 내용은 별도로 녹음하거나 녹취하지 않는 것이 업무의 관행이나 형태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제왕적’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왕조차도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꼼꼼하게 다 기록했는데, 대통령의 지시 내용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부3.0’을 한다면서, 조선시대보다도 못한 기록관리를 하고 있었다. 우리의 후세들은 배가 침몰해서 300명이 넘는 생명이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뭐라고 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것이다. 청와대는 돈이 없어서 그 흔한 녹음기조차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런 후진적인 기록관리 실태에 대해서는 기록관리학계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에 알렸다. 그러나 만들지도 않았다는 기록을 공개시킬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소송의 초점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보고했다는 기록으로 옮겨졌다. 청와대 쪽의 주장에 따르면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이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에게 서면보고한 건수는 11건이라고 했다.

법원의 명령도 무시하는 청와대

소송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재판부는 정보공개법에 따른 ‘비공개 열람·심사’를 하겠다고 청와대 쪽 변호사에게 통보했다. ‘비공개 열람·심사’는 재판부만 비공개로 정보를 본 다음, 해당 정보가 공개 대상인지 비공개 대상인지를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대개 비공개 열람·심사를 하겠다고 하면 공공기관은 여기에 응한다. 그런데 청와대는 법원이 여러 차례 ‘재판부만 자료를 볼 테니 제출하라’고 해도 거부했다. 심지어 명령을 내려도 거부했다.

이 정도면 재판부가 청와대에 대해 불이익을 줘야 한다. 법적으로도 재판부의 명령에 응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서울행정법원 담당 재판부는 청와대가 법원의 명령을 노골적으로 거부하는데도 판결을 내리지 않고 계속 소송을 끌었다.

마지막에는 너무 노골적으로 판결을 회피하는 것 같아서 원고인 내가 법정에서 화를 내기까지 했다. “도대체 재판을 이렇게 질질 끄는 이유가 뭐냐?”고 큰 소리로 따졌다. 놀란 법정 경위가 다가와서 나를 진정시킬 정도였다. 그렇게 화를 낸 후에야 재판부의 배석판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음 변론기일에 결심하고 판결을 선고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1심 판결선고 날짜가 잡혔다. 2016년 3월23일로 판결선고가 잡혔으니 소송을 제기하고 나서 무려 1년5개월이 지난 후였다.

청와대에서 재판부의 명령조차도 거부했으니, 당연히 승소판결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보공개소송에서 비공개 사유에 대한 입증책임은 피고, 즉 청와대에 있기 때문이다. 입증책임이 있는 청와대가 재판부의 명령도 거부하고 입증도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3월23일 내려진 1심 재판부의 판결은 ‘원고 일부 승소’였다. 소송을 제기하게 된 핵심인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에게 서면보고한 내용’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정보목록, 예산집행 관련 정보)은 ‘원고 승소’였다. 그런데 가장 핵심인 ‘세월호 관련 서면보고 내용’은 ‘원고 패소’였다. 정보가 공개되면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현저한 지장이 초래된다는 것이 판결 이유였다.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재판부의 선고를 듣고 법원 앞에서 기다리던 기자들 앞에 서서 판결 요지를 설명했다. 기자들도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1심 판결이니, 항소심에서 다시 다퉈보자고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의 ‘신종 재판지연’ 수법

항소심 첫 번째 변론기일은 지난 8월30일 오후에 열렸다. 재판이 열리기 전 청와대는 이상한 신청서를 서울고등법원 담당 재판부에 제출했다. ‘사실조회신청서’라는 제목의 문서에서는 ‘법원이 미국대사관, 독일대사관, 일본대사관에 그 나라의 대통령 기록 관련 법령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조회해서 회신을 받아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신청이었다. 청와대는 최고 권력기관이고, 대한민국 대사관에 자기들이 직접 지시를 하든 부탁을 하든 해서, 외국 법령을 번역해 달라고 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굳이 법원을 통해서 ‘사실조회신청’이라는 형식으로 대한민국 대사관에 공문을 보내고, 답변을 받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외국의 법령이 어떻게 되어 있든, 판결은 국내법을 갖고 내리는 것인데 왜 이런 신청을 굳이 했을까?

이 의문은 법정에 갔을 때 풀렸다. 서울고등법원 담당 재판부는 청와대의 사실조회신청을 받아들이면서, 그다음 변론기일을 “추후에 지정하겠다”고 했다. 내가 “왜 다음 재판기일을 잡지 않느냐”고 따지자, 재판장은 “몇 달은 걸릴 테니까 나중에 지정하겠다”는 이유를 댔다. 사실 외국 법령은 백번 양보해도 부수적인 참고사항일 뿐이었다. 나는 “사실관계에 관한 사실조회신청도 아닌데 그것을 핑계로 재판을 이렇게 지연시켜도 되느냐”고 항의했다. 재판부는 그저 “재판부는 변론기일을 나중에 지정할 수 있다”고 우길 뿐이었다.

한마디로 시간을 끌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청와대는 대한민국 대사관에 사실조회신청을 하겠다면서 시간을 끌고, 재판부는 그것을 용인해준 것이었다. 너무 화가 나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동료 변호사에게 전화를 해 하소연했다. 그랬더니 위안부 협상 관련 정보공개소송에서도 청와대가 이런 식의 사실조회신청을 했고 재판부가 받아줬다고 한다. 청와대의 신종 ‘재판지연’ 수법인 셈이다.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이런 속셈을 재판부만 모른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이날 법정을 나오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도대체 이런 사법부를 믿고 소송을 제기했다니. 소송을 한 것 자체가 후회스러울 지경이었다.

청와대가 소송을 지연시키는 목적은 너무나 분명하다. 2018년 2월이 될 때까지 최대한 소송을 지연시켜서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15~30년 동안 공개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사건만 보면, 한국의 사법부는 수십년 전으로 후퇴한 듯하다.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노골적인 소송지연 행위를 봐줄 이유가 없다. 서울고등법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1심 재판부가 청와대의 노골적인 자료제출 거부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관련 자료를 비공개할 수 있도록 판결한 것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약자에게는 추상같은 법원의 권위가 권력 앞에서는 무뎌지다 못해 비굴해지는 것인가.

너무나 슬프고 억울한 것은, 300명이 넘는 목숨이 스러져간 사건에 대해서까지 이렇게 진실을 은폐하는 것이 가능한 사회에서 내가 살고 있고,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진실을 밝혀라

소송 과정에서의 얘기를 이렇게 상세하게 공개하는 것은 이제 재판만으로는 문제를 풀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사법부를 신뢰할 수 없다.

그래서 청와대에 직접 요구한다. 청와대는 밝혀야 한다. 2014년 4월16일 청와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대통령에게 무엇을 보고했고 어떻게 지시를 받았나. 청와대에서는 기록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고, 예산을 어떻게 쓰고 있나. 도대체 무엇을 숨기려고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소송을 지연시키고 있는가.

진실을 밝히지 않고서 그냥 넘어갈 수 있으리라는 오산을 청와대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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