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고지방 다이어트 열풍, 어떻게 봐야 하나
▶ 지방은 1950년대부터 공공의 적이었습니다. 20세기 흑사병으로 불리는 비만은 물론 심장질환, 뇌질환의 원인으로 주목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지방을 마음껏 먹으며 살을 뺀다는 고지방 다이어트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기존 다이어트의 범주 밖에 있는 이 방법은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검은 백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 버터 품귀현상이 일어나는 등 반향도 큽니다. 지방의 누명을 풀었다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우려도 나옵니다. 7조원이 넘는다는 다이어트 시장에 검은 백조가 등장한 이유를 살펴봤습니다.
‘검은 백조’(블랙 스완)가 한국에 나타났다. 미국처럼 금융계가 아니라 식품산업계가 무대다. 바로 버터 같은 느끼한 음식을 먹으면서도 살을 뺄 수 있다는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LCHF: Low Carbohydrate High Fat)다. 검은 백조는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빗댄 표현이다. 18세기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 간 백인들이 검은 백조를 발견하면서 ‘백조=희다’라는 경험칙이 무너진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를 예언한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뉴욕대 교수가 이 말을 처음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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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을 하루 열량의 70% 이상 먹으라는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가 버터와 삼겹살 품귀가 될 정도로 대유행을 하게 된 것은 지난 9월 의 ‘지방의 누명’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부터였다. 문화방송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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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방 다이어트를 검은 백조에 비교하는 것은 지금까지 비만의 주범으로 불리던 지방을 먹으면서도 살을 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방식의 다이어트는 삼겹살과 버터 품귀현상처럼 강력한 파급효과를 유발하고 있다. 2009년 닭가슴살 등 육류를 주로 먹어 살을 빼는 ‘황제 다이어트’가 유행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과 비교할 만큼은 못 됐다. 이 정도면 다이어트의 한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도대체 다이어트계의 검은 백조는 왜 등장했을까?
다큐 방송 뒤 고지방식 품목 매출 늘어
원래 지방은 음식의 역사가 아니라 미식의 역사에 더 적합하다. 거위에게 곡식을 억지로 먹여 지방간을 만들어 먹는 프랑스의 푸아그라가 세계 3대 진미로 꼽히고, 중국에서 지방이 주성분인 원숭이 뇌를 고급 푸딩처럼 먹었던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가난한 자의 음식이 ‘생존’이라면 부자의 음식은 구분지어지는 것이었다. 여기에 지방만큼 유용한 존재는 없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이어져온 지방 숭배에 주홍글씨를 찍은 것은 1956년 미국에서였다. 심장마비로 죽는 사람이 빠르게 늘자 미국 정부는 1950년대 대규모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 결과 동물성(포화) 지방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때까지 미국은 ‘고기=힘’이라는 공식을 가지고 있던 육식의 제국이었다. 미국은 1830년대 오하이오 등에서 남는 옥수수를 소에 먹여 살찌운 뒤 철도를 이용해 전국으로 판매하는 자본주의적인 유통망을 갖춘 최초의 나라였다. 고기는 미국인들에게 부의 원천이자 자부심이었다. 그런 나라에서 지방을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최근 들어 관심을 끌고 있는 고지방 다이어트는 비만과 질병의 주범으로 몰렸던 지방을 60년 만에 사면복권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심지어 이 다이어트를 주장하는 쪽에선 지방을 70% 이상 섭취하고, 대신 탄수화물 섭취는 10% 미만(하루 반공기)으로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설탕을 비롯한 과일 등 당도 먹지 않아야 한다. 삼겹살, 연어, 버터, 달걀처럼 맛있는 음식을 얼마든지 먹으면서도 살을 뺄 수 있다는 점에서 파격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곡물이나 과일, 설탕 등으로 섭취하는 탄수화물을 줄이면 우리 몸이 대체 에너지원을 찾아서 지방을 쓴다는 것이다. 먹는 지방은 쌓이지 않을뿐더러 몸 안에 쌓여 있던 체지방이 빠지면서 체중이 줄어든다. 거기에 탄수화물 섭취량이 적어 인슐린 분비가 줄어들므로 당뇨병의 위험도 감소한다.
이 다이어트법이 국내에 알려진 건 과학저널리스트인 니나 타이숄스의 <지방의 역설>이란 책이 4월 출간되면서부터다. 미국 예일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그는 1960년대부터 지방을 모든 질병의 주범으로 몰아온 영양학에 도전장을 냈다. 그의 생각을 9월 중순 <문화방송>이 ‘지방의 누명’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방영하면서 고지방 다이어트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먼저 시장이 움직였다. 이마트가 8~10월 매출을 분석한 결과, 8월19일부터 9월18일까지만 해도 버터 -19.2%, 치즈 -11%, 삼겹살 -7.9% 등으로 뚜렷한 감소세였던 고지방식 품목의 매출은 다이어트 관련 방송이 나온 9월 중순부터 반전됐다. 9월19일부터 10월12일까지 이마트의 버터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41.4%, 치즈는 10.3%, 삼겹살은 7.6% 늘어났다. 일부 지역에서는 버터가 동나기도 했다. 2013년 기준 7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국내 다이어트 시장의 위력을 실감하게 만든 현상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프로그램 방영 한달 뒤인 지난 26일 대한비만학회·한국영양학회 등이 이 다이어트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이들은 “고지방 다이어트가 단기간에는 체중 감량의 효과가 있지만 영양 불균형과 몸의 염증반응을 불러일으켜 결국 중단할 가능성이 높아 장기적으로 체중 감량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고지방 다이어트 지지자는 즉각 반발했다. 과학적 논거를 통해 우려를 표시한 비만학회 등의 지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일부 지지자들은 관련 기사 댓글을 통해 “일부 의사들이 곡물 소비가 줄자 관련 단체와 짜고 이미 스웨덴 등 외국에서도 공식인정한 이 다이어트를 공격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미 살을 많이 뺐다. 흔들림없이 나가겠다”는 다짐도 많았다.
이런 상황은 새로운 다이어트 방법이 등장해 유행처럼 퍼질 때마다 으레 벌어지곤 했다. 고지방 다이어트 이전에도 황제 다이어트, 원푸드 다이어트,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저지방 다이어트, 저인슐린 다이어트 등 온갖 다이어트 방식이 등장했다. 찬반양론도 무성했다. 이 때문에 획기적인 다이어트 방식을 제안한 사람은 돈방석에 앉지만, 이를 따라한 사람은 병원에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공공의 적’ 지방으로 다이어트를?
1일 열량 중 지방 70~75% 먹으면
살이 빠진다는 역설적 ‘광풍’ 불어
버터·삼겹살 고지방 제품 품귀도
전문가 우려에 ‘로비 탓’ 불신 기현상
다이어트는 사실상 전국민의 관심사
잊을 만하면 도발적 방법 등장
질병에 미시적 접근 하는 의학 관행 탓
비만과의 전쟁 벌이는 미국 건강식단
버터·고기 제한, 통곡물 섭취 권장
찬반양론 모두 근거 있어 더 혼란
특정 다이어트 찬반양론이 유행처럼 등장하는 까닭을 환원론에 사로잡힌 현대의학의 구조적 모순 탓으로 꼽는 사람도 많다. 환원론(환원주의)은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개념을 세부적 요인의 관찰 등으로 설명하려는 서구의 실증주의적 경향을 말한다. 질병의 원인을 한 영양소의 문제로 파악하는 경향이 대표적인 환원론이다.
하지만 건강은 전자현미경을 통해 미시적으로 파악한 어느 한 영양소로만 오롯이 설명되지 않는다. 미국 코넬대의 류루이하이 교수는 사과를 예로 들어 환원론의 맹점을 보여줬다. 사과 100㎎의 비타민C는 5.7㎎에 불과하지만 100g의 항산화 효과는 비타민C의 200배가 넘는 1500㎎에 해당했다. 류 교수는 사과 한 개에는 비타민C와 같은 역할을 하는 항산화물질인 카테킨 등의 물질을 비롯해 수천 가지 화학물질이 있고 그 각각이 별도의 대사 시스템을 일으키는 것을 입증했다. 2000년 <네이처>에 실린 이 논문은 인체가 사과를 먹을 때처럼 영양소를 이용하는 과정이 종합적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이처럼 어떤 현상을 한 요소가 아니라 큰 그림 속에서 다양한 요인으로 나눠 설명하는 방법론이 총체론이다. 질병을 영양소 부족으로 설명하는 환원론과 달리, 총체론은 식습관으로 설명하는 특징이 있다. 사과 한 개에 수천 가지의 대사작용이 일어난다는 총체론의 관점에서 봤을 때, 지방 역시 살만 빼주고 다른 영향은 없는 걸까?
이의철 대전 유성선병원 직업환경의학센터 과장은 “환원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고지방 다이어트는 단기적으로 지방을 먹는데도 지방이 빠지는 결과를 보여줄 수 있지만, 몸 전체를 놓고 보면 당분이 사라지는 위기 상황에서 코르티솔 에피네프린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와 우리 몸이 지쳐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저탄수화물 식단을 장기적으로 경험할 경우 사망 위험이 31%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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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방 다이어트법이 국내에 알려진 계기는 미국의 여성 과학저널리스트인 니나 타이숄스의 <지방의 역설>이란 책이 출간되면서부터다. 미국 예일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그는 1960년대부터 지방을 모든 질병의 주범으로 몰아온 주류 영양학에 도전장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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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방 다이어트의 핵심인 고기와 버터에 대한 의구심도 적지 않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제러미 리프킨 교수는 그의 저서 <육식의 종말>에서 미국 제초제의 80%가 육우와 다른 가축 사료에 뿌려지고 있으며 가축이 섭취한 제초제는 고기를 통해 소비자에게 축적된다고 지적했다. 전미과학아카데미연구위원회의 조사를 보면, 미국에서 쇠고기는 살균제 오염 탓에 암을 유발하는 전체 원인 가운데 11%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육식 등이 원인인 대장암 환자가 미국에서는 급증하고 있다. 대장암은 미국에서 폐암에 이어 두 번째로 사망자가 많다.
한국도 위험을 피해갈 수 없다. 한국은 대장암 발병률 1위 국가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 자료를 보면 2012년 기준 한국의 대장암 발병률은 10만명당 45.0명으로 조사 대상 184개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1980년에 견줘 4배 가까이 소비가 늘어난 육류 중심의 식생활 변화로 대장암 환자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장암뿐만이 아니다. 지방 등이 원인인 전립선암에 의한 사망률은 대장암보다 증가세가 가파르다. 지난해 12월 공주대 보건행정학과 임달오 교수 연구팀은 1983년부터 2012년까지 국내 13개 주요 암의 사망률 추이를 분석해 국제학술지 <암 역학>(Cancer Epidemiology)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1983년과 2012년의 연령별 표준화사망률을 비교했다. 그 결과 남성의 경우 전립선암이 30년간 10.5배가 늘어 암사망증가율 1위를 기록했다. 2위 대장암(3.7배)보다 3배쯤 높았다.
고지방 다이어트는 한국인의 질병통계 흐름과 역행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 다이어트에 열광하는 것은 일종의 의도된 착시라는 지적도 있다. 신경외과 전문의인 황성수힐링스쿨의 황성수 박사는 “고지방 다이어트는 콜레스테롤 증가, 혈압 상승 등 많은 이유로 몸에 좋을 수 없다. 입체적으로 생각하면 아주 간단한 사실인데 사람들은 지방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다이어트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는 외국의 흐름과도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전 국민의 3분의 1이 비만인 미국은 비만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심혈관질환의 주범인 마가린 같은 트랜스지방을 퇴출시켰고 학교에서 탄산음료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와 미 농무부가 2011년 건강식단표인 마이플레이트(내 접시란 뜻)를 내놓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식단표는 채소와 과일을 곡식(탄수화물)과 단백질만큼 먹으라고 권하는 것이 특징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고지방 다이어트와 전혀 다르다. 버터는 쓰지 말고 붉은 고기는 1주일에 한번 정도만 먹도록 권한다. 대신 정제되지 않은 통밀과 현미를 하루 칼로리의 30%를 섭취하라고 권한다.
미셸 오바마와 미 농무부가 한국의 고지방 다이어트 추종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곡물 관련 협회의 로비에 당해 이런 주장을 했을까? 이 식단의 이론적 바탕이 된 것은 2005년 하버드 보건대학원이 선보인 음식 피라미드다. 이 피라미드를 한눈에 보기 편리하게 만든 것이 마이 플레이트다. 이 학교는 1980년대부터 12만명의 간호사 집단과 5만명의 남성을 상대로 조사를 해 신뢰도가 높다.
‘모델보다 경험을 믿어라’
하버드대는 이 피라미드를 만들면서 지방은 동물성 지방과 식물성 지방으로, 탄수화물은 정제된 것과 통곡물로 나눴다. 그때까지 지방과 탄수화물을 하나로 좋다, 나쁘다라고 생각하던 관행을 깬 것이다. 하버드대는 동물성 지방은 여러 병을 일으킬 수 있는 반면 식물성 지방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전면적으로 개선할 수 있고 심장을 보호할 수 있다며 섭취를 권장했다. 통밀과 현미 역시 섭취할수록 당뇨병·심장병·변비 등이 개선돼 장기적으로 건강에 이롭다고 지적했다. 하버드대는 매년 피라미드와 접시 모양의 건강 식단을 업데이트하는데 올해도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유행하는 고지방 다이어트에서는 이런 구분이 빠져 있다. 대한비만학회 이사인 오상우 동국대 교수(가정의학과)는 “고지방 다이어트의 핵심은 지방을 무조건 많이 먹는 게 아니라 탄수화물을 관리하는 것”이라며 “탄수화물의 전체적인 양은 줄이되 몸에 좋은 탄수화물의 비율을 높여주는 다이어트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이어트 방식에 고지방 다이어트 같은 검은 백조가 나타난 것은 의학의 발전보다는 다이어트가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다. 자기와의 싸움인 다이어트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블랙 스완> 지은이의 말처럼 상시적으로 검은 백조를 만날 수 있는 설탕과 고기를 즐기는 극단의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도대체 어떻게 하면 정상체중을 유지하며 건강할 수 있을까? <블랙 스완>의 지은이는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모델보다 경험을 믿어라’ ‘부정적 조언에 주목하라’ ‘과도한 낙관을 경계하라’고 충고했다. 마법 같은 다이어트 방식을 경계하고 적게 먹고 부지런히 운동하라는 과거의 경험을 믿으라는 뜻으로 들린다.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참고자료: 콜린 캠벨 <당신이 병드는 이유>, 월터 C. 윌렛 <하버드 의대가 당신의 식탁을 책임진다>, 제러미 리프킨 <육식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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