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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06 09:29 수정 : 2016.11.06 09:38

[토요판] 뉴스분석 왜?
영남대 전신 대구대 설립자 손자 최염

독립운동가인 최준이 해방 후 전 재산으로 설립한 대구대는 자신의 의사에 반해 청구대와 통합돼 1967년 영남대라는 이름으로 박정희에게 바쳐졌다. 최준의 손자인 최염 경주 최씨 중앙종친회 명예회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30여년 전 박근혜 이사 측근들에 의해 저질러진 영남대 사학비리의 확장판”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1일 오후, 최 명예회장이 서울 종로구 운니동 경주 최씨 중앙종친회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 징치되지 않은 비리는 반복됩니다. 1988년 최태민 아들이 벌인 비리가 2016년 최태민 손녀의 비리로 부활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반강제로 상납받은 영남대에서 ‘박근혜 그림자’인 최태민의 의붓아들 조순제는 부정입학과 법인 재산 팔아치우기 등 비리를 주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최태민의 손녀 정유라는 이화여대 특혜 입학, 학사과정에서 각종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습니다. 30여년 전 마치 지금의 최순실 사태를 예고한 듯한 최태민 일가의 영남대 사학비리를 취재했습니다.

“지금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1980년대 영남대학교에서 이미 예고됐습니다. 당시 박근혜씨가 영남대 이사로 학교를 장악했던 8년여 동안 최태민 일가는 학교 운영을 좌지우지하면서 법인 재산을 팔아치우고 부정입학을 주도하는 등 불법을 일삼았어요. 그 중심에 최순실의 의붓오빠 조순제 등 4인방이 있습니다.”

대구대학 설립자 고 최준 선생의 손자 최염(83)씨의 어조는 느리지만 분명했다. 1일 <한겨레>와 만난 그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30여년 전 박근혜 이사 측근들에 의해 저질러진 영남대 사학비리의 확장판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독립운동가인 최준이 해방 후 전 재산을 들여 설립한 대구대는 자신의 의사에 반해 청구대와 통합돼 1967년 영남대라는 이름으로 박정희에게 바쳐졌다. 최준 선생으로부터 거저로 학교 운영권을 넘겨받은 삼성 이병철 회장이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궁지에 몰리자 대구대를 헌납하라는 이후락의 강요를 받아들인 데 따른 것이었다.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원칙을 세우고 소작인에게 8할을 받던 소작료를 1600년대부터 절반만 받는 등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으로 불린 경주 최씨 가문의 수난은 그렇게 시작됐다.

서울 종로구 운니동 종친회 사무실에서 3시간 동안 이뤄진 인터뷰에서 중앙종친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최씨는 고령의 나이에도 박근혜 측근들이 저지른 사학비리를 소상히 기억하고 있었다. 최 명예회장은 “박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자신을 찍어준 국민들에 대한 도리”라며 “그 시작은 권력을 이용해 상납받은 영남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부터”라고 주장했다.

구국봉사단, 영남대, 육영재단 큰일 도맡아

박정희 사후 6개월 만인 1980년 4월24일, 박근혜는 소리 소문 없이 영남대 이사장에 취임했다.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이사장 취임을 반대하는 학생들과 교직원의 시위 때문에 7개월 만에 평이사로 돌아가지만 박근혜는 여전히 실권자로 통했다.

-박근혜가 영남대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뭐죠?

“정관 개정이죠. 허허. 1981년 영남학원 이사회는 ‘교주 박정희 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하여’라는 전무후무한 설립 목적을 담은 정관을 개정했어요. 사립학교라도 일단 설립되면 공익법인인 까닭에 특정한 개인이 주인일 수 없어요. 대한민국의 어떤 사립학교도 ‘교주’란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박근혜와 그 측근들은 죽은 박정희, 돈 한 푼 낸 적이 없는 박정희를 ‘교주’라는 희한한 말로 정관에 못박은 것이죠. 대학 사유화죠.”

-이때 이사진 구성은 모두 측근들이었나요?

“그랬어요. 대구엠비시(MBC) 사장 한준우, 경남기업 사장 신기수, 류준, 유연상 등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육영재단과 정수장학회 이사들이었고 유연상은 박근혜의 사촌 형부였어요.”

측근들은 이사진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박근혜의 그림자’로 불리던 최태민의 흔적도 영남대에서 발견된다. 영남대 비리로 시끄러울 당시 학교를 좌지우지해온 4명이 그들이다. 영남학원 산하의 영남투자금융 회장 김정욱, 동 전무이사 조순제, 영남의료원 부원장 손윤호, 재단 사무부처장 곽완석를 두고, 당시 영남대에는 ‘박근혜와 4인방’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다. 1988년 영남대에 대해 이례적으로 이뤄진 국정감사에서 영남대 교수협의회 이성대 교수는 “총장이 재단에 일일이 문의해서 박근혜 이사와 4인방의 명령을 받아 움직였다”고 증언한 바 있다.

“특히 조순제씨는 최태민의 다섯번째 부인 임아무개씨가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입니다. 최태민의 의붓아들인 셈이죠. 임씨를 엄마로 둔 최순실씨와는 의붓남매 사이가 됩니다. 손윤호 부원장은 조씨의 외삼촌입니다. 공식 의사집행구조 위에 군림했다는 ‘영남대 4인방’에 최태민과 직간접으로 이어진 사람이 둘이나 된 것이에요.” 최 명예회장의 말이다.

조순제가 영남대에서 실세로 통했을 정황은 다른 경로로도 확인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된 정두언 전 의원은 최근 <허핑턴 포스트>에 연재한 회고록에서 조순제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과거에 문공부 장관 비서관도 지낸 조순제는 박희태, 최병렬과 동년배 지기라고 알려져 있다. 똑똑한 사람이었다. 최태민은 공식적으로 아들이 하나도 없었다. 다 딸이었다. 데리고 있는 아들이라고는 의붓아들 조순제밖에 없다.”

정 전 의원은 최태민에게 공식적인 아들이 없었다고 했지만, 안기부가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9~1990년 사이에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최태민씨 가계도를 보면 최씨가 모두 다섯명의 부인을 뒀고 3남6녀가 있는 것으로 돼 있다. ‘구국봉사단부터 영남대, 육영재단까지 큰일을 도맡아 한 사람’이 조순제라는 점은 최태민이 3명의 친아들보다 의붓아들인 조순제를 더 신뢰했다는 분석을 낳는다.

-최태민 측근 4인방이 학교에서 벌인 일들은 무엇이었나요?

“먼저 꼽을 수 있는 건 부정입학이었습니다. (당시 영남대 교수협의회가 밝힌 자료를 내보이며) 4인방의 주도 아래 학교는 1987년 8명, 1988년 21명 등 모두 29명을 총 4억3천만원을 받고 부정입학시켰어요. 한 학생당 최고 2천만원을 냈는데 지금 화폐가치로는 2억원에서 3억원이 될 정도로 큰돈이었습니다. 대기 합격자가 나올 경우 앞순번에게 연락을 하는데 일부러 거주지가 아닌 본적지로 하여 고의로 연락을 못 받게 하거나 돈을 낸 부정입학자를 대신 입학시키는 수법을 썼다고 합니다. 당시 조씨의 아들도 그렇게 입학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한겨레>가 1993년 보도한 교육부의 사립대 부정 편입학 학생 학부모 명단을 보면 조순제씨도 자녀를 부정입학시킨 인물로 등장하더군요. 당시에 검찰 수사가 이뤄졌었죠?

“당시 검찰이 밝힌 바에 따르면 부정입학으로 거둬들인 돈은 모두 3억9천만원인데, 교비로 쓴 것은 3500만원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런 부정입학이 재단의 압력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것입니다. 장부상으로는 재단전입금이 잡혀 있었지만 실제 재단은 학교에 한 푼도 내놓지 않았거든요. 재단 이사진은 총장에게 부정입학을 해서 돈을 마련하라고 강권했어요. 검찰 수사를 받았다가 무혐의로 풀려난 당시 김기택 총장은 박근혜가 실질적 이사장으로 모든 업무 결정을 했고 박근혜가 임명한 김정욱, 조순제, 손윤호, 곽완석 등 4인방이 박근혜의 지시를 따랐다고 진술한 걸로 알고 있어요. 조씨는 교직원들의 퇴직금을 무단으로 영남투자금융 기금으로 전용한 의혹도 받았고요.”

영남대 전신 대구대 설립자 손자
최염 경주최씨 종친회 명예회장
“박근혜 영남대 장악한 80~88년
최순실 게이트의 30년 전 예고편
최태민 의붓아들 조순제 등 전횡”

“조순제, 법인재산 헐값 매각 주도
리베이트 최태민에게 흘러갔을 것”
최순실에게 밀린뒤 2007년 반격
조순제, “박근혜는 나의 꼭두각시
최태민 엉망인 사람” 녹취록 나와

후계구도 밀린 뒤 박근혜 폭로 기자회견

1987년 연말 대선 승리로 들어선 노태우 정권은 1988년 대대적인 사학비리 수사를 진행한다. 대구지검 특수부는 1988년 11월3일 영남대 전 총장 김기택씨와 전 사무부처장 곽완석씨 등을 조사한 뒤 영남대가 1987년에 8명, 1988년에 21명 등 학생 29명을 총 4억3천만원의 기부금을 받고 부정입학시킨 사실을 밝혀냈다.

재단에 미운털이 박힌 김기택 총장은 곧바로 재단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았다. 김 총장은 당시 영남대의 부정입학 등 비리와 관련해 속칭 ‘4인방’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담화문을 발표한 뒤 물러났다. 2011년 별세한 김 전 총장의 유족은 “학교에 대한 애정이 무척 많았던 아버지를 위해 가족이 뜻을 모았다”며 장학금 1억원을 영남대에 기탁했다. ‘교주’ 일가로부터 총장직에서 쫓겨났지만 학교를 위해 한 푼도 내지 않은 ‘교주’ 일가와는 다른 애교심을 보인 것이다. 김기택 총장은 김수남 현 검찰총장의 부친이다. 지난해 12월 김수남 총장이 검찰총장으로 하마평에 오를 때, 언론에선 박근혜 대통령과 부친의 구원(?)을 들어 낙마 가능성을 점치는 의견도 있었다.

-검찰 수사에 앞서 사립대학으로선 이례적으로 국정감사까지 받을 정도로 비리가 심각했는데 당시 국정감사에서 최준 선생이 대구대에 기부한 선산 등 부동산을 헐값에 매각한 내용도 문제가 됐죠?

“당시 통일민주당의 김동영 의원이 영남대 이사장인 조일문씨에게 따졌었죠. 조순제 등이 주도해 할아버지가 대구대에 기부한 울주 선산 10만평과 경주 불국사 앞 1만2천평을 1987년께 팔아버렸거든요. 경주 불국사 앞 땅은 온천이 나오는 지역이라 당시에도 시가 100억원대가 될 거라고 했는데 호텔업자에게 11억원에 팔았더라고요. 그것도 계약서상에는 4억원에 거래가 된 걸로 나와요. 다운계약서를 쓴 거죠. 울주군 선산은 평당 4만~5만원 하는 걸 780원에 팔았어요. 문중 묘가 있는 땅까지 설립자인 저희와 아무런 상의도 없이 매각한 거죠.”

-리베이트가 있다고 보시나요?

“저흰 매각 과정에서 리베이트로 돈을 받았고 이게 최태민에게 흘러갔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돈이 지금 최순실 재산의 한 부분이 된 거라고 봅니다.”

당시 매각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조일문 전 영남대 이사장은 지난달 8일 9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일문 전 이사장은 함경남도 영흥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광복군 제2지대 제3구대 강남분대에서 전방공작과 적 후방 공작활동을 전개한 공로로 1977년 박정희로부터 건국포장을 받기도 했다. 박정희와 동갑내기인 조 전 이사장은 광복군 출신으로 만주군 장교 출신을 교주로 모시는 학교의 이사장을 지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최태민의 의붓아들로, 영남대의 박근혜 측근이었던 조순제씨는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최태민의 비리를 폭로하는 진정서를 냈다. 사진은 진정서와 함께 제출된 조순제의 칠필 메모. <한겨레> 자료사진
1988년 국정감사와 검찰수사로 부정입학 등의 학내 비리가 드러나고 이에 따른 학원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자 박근혜 이사는 ‘영남대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고 선언한 뒤 학교를 떠났다. 영남대 비리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오른 것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였다. 당시 박근혜 후보의 아킬레스건인 최태민 일가의 비리를 폭로한 것은 얄궂게도 최태민의 의붓아들 조순제였다. 박근혜 당시 후보가 자신을 모른다고 하자 조순제는 한나라당에 최태민 일가의 전횡을 고발하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사진). 최태민이 친딸인 최순실을 후계자로 삼은 데 따른 복수심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경선 막바지 조순제는 ‘이런 사람은 안 됩니다’라는 제목으로 박근혜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에서 조순제는 “수백억원대 재산가로 알려진 최태민의 친인척들이 박근혜와 최태민이 만나기 전까지 가난했다”며 “박 전 대표(박 대통령)는 최 목사 유족의 재산 형성 과정을 모를 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잘못되면 책임 전가는 쉽게 하더라”

2008년께 사망했다는 조씨의 녹취록이 지난달 30일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녹취록에서 조씨는 “(우리 어머니와 최태민이 결혼한 건) 내가 초등학교 때다. 이 사람(최태민)도 엉망인 사람인데 우리 모친 만난 덕에 인간 된 거지”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박 대통령은) 100% 자신의 꼭두각시였다”며 “업무에 대한 것도 나하고 쏙닥거리면 그게 한 글자도 다름없이 그대로 되어버린다. 대신 잘못되면 책임전가하는 것은 쉽게 하더라”고 말해 지금의 상황과 놀랍도록 흡사하다는 인상을 줬다.

“박근혜의 영남대 비리를 폭로한 엠비가 정권을 잡은 뒤 2009년에는 교육부가 새로운 영남대 재단 이사를 선임하면서 박근혜 당시 의원에게 이사 4명(전체 7명)의 추천권을 줬어요. 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얼마 전까지 영남대 대외협력부총장을 지냈고 현재 박정희새마을연구원 원장을 하고 있는 최외출(59) 새마을국제개발학과 교수가 영남대 총장을 노리고 있다는군요.” 최 명예회장은 한숨을 쉬었다.

현재 최외출 원장은 유엔 인사가 연루된 유령 사단법인을 차려 국가 예산을 착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가 관여한 박정희새마을대학원은 해외에서 온 유학생들에게 장학금에다 생활비 등 1년에 최대 3877만원에 이르는 지원을 한 것으로 드러나 ‘돈잔치’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31일 ‘영남대 학생 시국선언단’은 경북 경산시 영남대 정문 앞에서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했다. 30여년 전과 달라진 건 없다.

글·사진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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