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이재명 현상’ 들여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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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성남시장이 지난 9월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관련 공개변론에 출석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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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국면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대선주자는 이재명 성남시장이었습니다. 다른 주자들이 발언 수위를 두고 조심할 때 그는 대통령의 하야와 탄핵을 과감하게 외쳤습니다. 결국 국회는 그가 말한 대로 탄핵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더불어 그의 지지율은 3%대에서 18%까지 치솟았습니다. 탄핵안 가결 이후 지지율이 다소 떨어졌지만, 여전히 여야 통틀어 3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지율의 급등은 2002년의 노무현 후보를 연상케 합니다. 이재명 시장의 대선 지지율이 앞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를 들여다봤습니다.
이재명(52) 성남시장은 지난 9월6일 “대한민국의 ‘혁명적 변화’를 위해 저에게 요구되는 역할을 다하겠다”며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추석 연휴를 한 주 앞둔 때였다. 추석 차례상 민심을 겨냥했다. 시기적으로는 최적이었다. 장소도 야당 후보에게는 상징성이 높은 광주를 택했다. 그는 전날인 5일 광주트라우마센터(센터장 강용주)와 시민활동가 및 지식인들의 모임인 무등공부방을 방문했다. 이 시장은 광주에서 “5·18 당시 제가 공장 다닐 때는 민주화운동을 하신 분들을 폭도라고 욕했었다”며 “그러나 대학에 진학해 5·18의 진실을 알게 된 뒤로 제 인생을 바꿨다. 잘 먹고 잘사는 게 꿈이었는데, 속은 게 억울하고 미안해서 정의가 살아 있는 세상을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광주로 인해 자신이 거듭났다는 고백이다. 그는 6일 새벽 광주에서 성남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실상의 출마문을 썼다. 글의 제목부터 “광주를 떠나며…대한민국의 ‘혁명적 변화’를 위해 역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달았다. 그는 이 글을 카메라나 마이크 앞에서 낭독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대선 출마의 시기(추석), 장소(광주), 방법(소셜미디어)이 모두 정교했다.
하지만 공을 들인 만큼 이 시장의 지지율이 곧바로 반응하지는 않았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의 9월 첫째 주(5~7일) 조사에서 이 시장은 3.8% 지지율을 기록했다. 반기문(21.1%)과 문재인(17.3%), 안철수(10.3%), 박원순(7.3%), 오세훈(4.4%), 김무성(4.0%)에 이어 7위였다. 같은 기관의 전주 조사에서 이 시장의 지지율은 3.6%였다. 한국갤럽의 조사(9월6~8일)에서도 반기문(27%), 문재인(18%), 안철수(8%), 박원순(6%), 오세훈(5%), 이재명(4%), 손학규(3%) 차례로 비슷하게 나왔다.
정의당 등 왼쪽 표 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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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장의 지지율이 하위권을 벗어나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0월에 본격적으로 터진 최순실 게이트 때부터였다. 리얼미터 10월 셋째 주(17~21일) 조사에서 5.3%를 기록한 데 이어 넷째 주(24~28일)에는 5.9%, 11월 첫째 주(10월31일~4일)엔 9.1%로 올라간 뒤 11월 셋째 주에는 처음으로 두 자리(10.0%)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상승세를 지속해 11월 다섯째 주(28일~12월2일)에는 14.7%의 지지율로 문재인(20.8%)과 반기문(18.9%)에 이어 3강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날(9일)을 전후로 한 12월 첫째 주 조사(5~9일)에서는 이 시장의 지지율이 16.2%까지 치솟았다. 1위인 문재인(23.1%)에 비해선 여전히 뒤졌으나, 2위인 반기문(18.8%)과는 오차범위까지 격차를 좁혔다. 같은 시기 한국갤럽 조사(12월6~8일)에서도 이 시장(18%)은 문재인(20%), 반기문(20%)과 3강을 기록했다.
탄핵이 가결된 이후 이 시장의 지지율은 주춤하거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리얼미터 조사의 경우 12월 셋째 주와 넷째 주에 이 시장의 지지율은 각각 14.9%, 11.9%로 떨어졌다. 하지만 문재인과 반기문에 이은 3위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정치적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여야의 잠재적 대선주자 십여명과의 경쟁에서 두 자리 숫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놀라운 성적이다. 일부에서는 2002년 노무현의 기적, 2012년 안철수 현상에 비교하기도 한다.
과연 2017년의 이재명은 어디까지 갈까. 노무현이나 안철수처럼 신드롬을 몰고 올 것인가 아니면 박찬종, 고건, 정운찬 등의 경우처럼 한때의 반짝 인기에 그칠 것인가.
탄핵안 헌재 간 뒤 떨어졌지만
두자리 지지율로 여전히 3위
한때 18%로 반기문도 위협
19대 대선의 최대 돌풍 예고
아웃사이더·사이다 발언 등
2002년 노무현과 닮은꼴
정통성 약점 이인제와 달리
문재인벽 견고해 고전할 수도
이 시장의 지지율이 급등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과거 대선 때 나타났던 여러 다크호스들과 닮은 점이 많다. 우선 그는 정치적 아웃사이더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과거 민주당의 부대변인과 당내 대선주자 캠프에서 잠시 일한 것을 빼고는 중앙정치 경험이 전혀 없다. 경기도 성남에서 변호사 업무와 함께 시민단체 활동을 하다가 2010년과 2014년 성남시장에 연속 당선된 것이 공직생활의 전부다. 기초단체의 책임자인 시장도 정치인이긴 하지만 여의도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이회창, 노무현, 이명박, 고건, 안철수 등 그동안 대선 때마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인물들도 예외 없이 정치권 바깥에 있었거나 정치권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었다.
이 시장은 게다가 대중들의 요구나 기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순발력을 지닌 아웃사이더다. 이회창, 고건이 주류에 빨리 편입됐거나 주류식의 점잖은 행보를 하는 아웃사이더였다면 이 시장은 매우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비주류다. 그만큼 대중의 이목을 끌어당길 수 있는 자질이 뛰어나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다른 대선주자들과 달리 처음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탄핵을 언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핵심을 찔러 들어가는 그의 말에 대해 대중들은 “사이다 발언”이라고 환호했다. 김능구 <폴리뉴스> 대표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등이 조심스러운 행보를 할 때 이 시장은 국민이 바라는 메시지를 과감하게 던졌다. 이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과감한 행보와 선명한 메시지로 인해 촛불 국면에서 진보 성향의 유권자가 이 시장에게 많이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 12월 첫째 주 리얼미터 조사에서 받은 이 시장의 지지율(16.2%)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10명 중 4명(38.4%)이 정의당 지지자들이었다. 이념 성향에서도 진보(22.5%)가 중도(18.3%)나 보수(8.5%)에 비해 더 많았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문재인 전 대표가 중도적 전략으로 촛불 국면 초반에 신중한 행보를 하면서 진보적 유권자들에게 충분한 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서 왼쪽에 공백이 발생했고, 여기에 이 시장이 깃발을 발빠르게 꽂은 셈이 됐다. 가장 선명한 목소리를 낸 이 시장한테 정의당 지지자와 정치 반감층이 몰려갔다”고 분석했다.
유권자도 공격하는 아웃사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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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 대선주자에서 선두권으로 진입하는 것이나 진보 쪽 지지를 대거 흡수하는 모습은 2002년 노무현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16대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 2002년 초까지만 해도 지지율 1위는 항상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의 이회창이었으며,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에서는 이인제가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다. 2001년 1월1일 한국갤럽이 민주당 대의원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이인제가 43.4%를 차지한 데 비해 노무현은 11.5%에 불과했다. 2001년 초부터 이인제는 민주당에서 부동의 대세였다. 하지만 노무현은 2002년 3월 당내 경선이 시작되면서부터 빠르게 치고 올라갔다. 이 시장도 지난 10월 중순까지만 해도 하위권에서 맴돌았으나, 최근 야권 1위인 문재인 후보를 위협할 정도로 지지율이 수직 상승했다.
선명한 기치와 거침없는 발언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2002년 경선 도중에 이인제가 노무현 장인의 좌익 경력을 폭로하면서 색깔론 공세를 펼치자, 노무현은 “장인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라는 말입니까?”라며 정면 돌파했다. 원조 사이다 발언이었다. 이재명 시장도 지난 9월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 도중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옷에서 좀 떼라’는 한 아주머니의 요구를 받고서는 “어머님의 자식이 죽어도 그럴 겁니까?”라며 “어머니 같은 사람이 나라 망치는 거예요. 사람이 죽었는데 그런 소리를 합니까. 본인의 자식이 그런 일을 당할 날이 있을 겁니다”라고 버럭 화를 냈다. 기존 정치인들은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비판받을 소지가 있는 발언이지만, 지지자들을 단단하게 묶어내는 데는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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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성남시장은 과거 민주당의 부대변인과 당내 대선주자 캠프에서 잠시 일한 것을 빼고는 중앙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아웃사이더다. 이 시장이 9일 오전 국회 본청 중앙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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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성남시장은 제2의 노무현이 될 수 있을까.
이 시장의 지지율이 당분간 하락세의 조정 국면을 맞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대체로 일치한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이 시장의 지지율은 처음부터 올라가더라도 15% 정도가 고점이었다.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율이 20% 정도로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유권자의 35% 정도인 진보 성향 유권자를 야권 대선주자들이 서로 나눠 갖는 구조이기에 야권 내부의 구도에 균열을 내지 못하면 상승은 멈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능구 대표도 “최근 이 시장의 지지율이 답보 내지는 하락하는 것은 촛불 정국 초반에 미적지근하게 대응해 손해를 봤던 문 전 대표가 후반에 강하게 나오면서 방어선을 쳤고, 이로 인해 결국 야권에서의 지지율 경쟁이 문재인-이재명 두 사람의 시소게임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인제 같은 ‘타도 대상’ 없어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이 시장을 “준비된 선동가”라고 표현했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긍정론에 가깝다. 윤 전 장관은 “일부에서는 촛불이 사그라지면 이 시장의 지지율도 꺼질 것이라는 관측이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그를 만나봤더니 말이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더라. 문제의식뿐 아니라 방법론까지 고민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경선 과정을 봐야 하겠지만, 지지도가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능구 대표도 “노무현처럼 승리를 따내기는 어렵더라도 당내 경선에서 토론회 등이 이뤄져서 국민들이 이 시장을 관찰할 기회가 생기면 그의 지지율이 다시 올라갈 수 있다고 본다. 선동력과 순발력이 강한데다가 콘텐츠 준비도 잘돼 있어 토론이 벌어지면 다른 후보보다 득점을 훨씬 많이 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 시장이 처한 상황은 2002년 노무현의 그것과는 달라서 성공신화를 쓰기에는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견해가 많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이 시장에게 결정적인 것은 야권의 1위 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가 타도해야만 하는 기득권 세력이 아니라는 점이다. 2002년에 노무현이 상대했던 이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인제는 당내 기득권이면서도 선명성이나 정통성 면에서 문제가 많았기에 무너지는 것도 쉬웠다. 무너지는 게 선이기도 했다. 하지만 문 전 대표는 친노 패권의 상층부에 있다고 하더라도 정통성을 의심받지는 않는다”며 “이 시장은 앞으로 경선 과정을 뚫고 올라가서 여권의 주자와 본선을 겨루기보다는 야권 내부에서 해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시장의 지지율이 올라갈 때도 내려갈 때도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율은 20% 안팎에서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이 시장이 문재인 벽에 전혀 흠을 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과거 노무현이 이인제 벽을 부수면서 성장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될 때까지는 국민들의 분노를 대변한 이 시장의 지지율이 올라갔다. 이런 추세가 지속하려면 국민들한테 집권 비전과 전략, 주변의 정치세력 등을 보여줘서 믿음을 줘야 하는데 그런 게 약한 것 같다”며 “반문연대를 언급했다가 안희정 충남지사에게 반박을 당하는 등 야당 내부에서도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기에 앞으로 지지율이 더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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