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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미씨의 9주기였던 지난해 3월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본관 인근에 마련된 반도체 산재 사망자 추모 공간. 한가운데 황유미씨의 영정 사진이 놓여 있다. 반올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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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반도체 노동자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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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미씨의 9주기였던 지난해 3월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본관 인근에 마련된 반도체 산재 사망자 추모 공간. 한가운데 황유미씨의 영정 사진이 놓여 있다. 반올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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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숨진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반도체 공장의 직업병 문제가 알려지고 황씨의 죽음도 산업재해로 판정됐지만, 삼성은 여전히 반도체 노동자들의 질병이 직업병이 아니란 태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공정에 사용된 화학물질이나 작업환경 정보도 공개하지 않습니다. 감춰진 일터에서, 반도체 노동자들은 과연 안전할까요? 최근까지 삼성의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다는 이를 만났습니다.
황유미씨는 2007년 3월6일 2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2005년 6월)을 받은 지 1년9개월 만이었고,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2003년 10월)한 지 3년5개월 만이었다.
반도체 공장의 직업병 문제를 세상에 처음 알린 황씨의 죽음 뒤 다시 10년이 지났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결성된 시민단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반올림)이 지금까지 받은 피해 제보만 370여건이다. 그중 230여명이 삼성전자의 반도체·엘시디(LCD) 부문 노동자였다. 79명이 세상을 떠났으나 겨우 14명이 산재 인정을 받았다. 유미씨를 잃은 아버지 황상기씨는 10년째 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그의 싸움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삼성은 공정에 사용된 화학물질이나 작업환경 정보를 충분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의 죽음 이후 10년 동안 이 세계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2010년부터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해온 김수미(가명·25)씨는 지난해 4월 회사를 그만뒀다. “더 있다간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지난달 28일 만나 들은 그의 증언을 토대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의 ‘안전보건 관리 실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놈의 냄새
2010년 8월부터 5년8개월 동안 김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의 ‘오퍼레이터’였다. 오퍼레이터는 모두 여성이었고 김씨는 ‘5라인’에 배치됐다. 5라인의 동료 오퍼레이터는 모두 100명이었다. 그들은 4개 조로 나뉘었다. 각조는 각각 새벽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밤 10시에 시작해 새벽 6시까지 8시간씩 6일 동안 일하고 이틀 쉰 뒤 근무 시간대를 바꿨다.
그들은 출근하면 방진복으로 갈아입고 반도체 웨이퍼 25개가 든 상자를 이곳저곳에 놓인 설비에 부지런히 넣고 뺐다. 웨이퍼는 반도체의 원료인 실리콘으로 만든 원판 모양의 결정체다. 불량 웨이퍼가 나오면 현미경으로 검사하고, 에러가 나면 엔지니어를 호출했다. 뛸 때도 잦았다. “단순 작업이지만 사람에 따라 화장실 갈 여유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방진복을 벗고 입는 시간도 식사 시간(50분)에 포함됐다. 5분 거리의 식당까지 다녀오려면 20분 정도밖에 여유가 없었다. 밥을 아예 안 먹는 경우가 많았다. “언니들 연락해보면 지금도 밥 잘 안 먹어요. 퇴근하고 다 폭식하죠.” 근무시간 8시간은 대체로 준수됐다. 잔업은 아주 가끔만 했다.
고약한 약품 냄새 맡아가며
5년8개월 기흥공장에서 일했다
입사 4개월째 몸이 이상해졌다
5년째엔 혈액 수치도 낮아졌다
연기 가득해 대피해도 ‘풀냄새’
대피지시도 없다 “기다려봐라”
직업병 언급 단 한번도 없어
다들 어쩔 수 없이 다닌다
김씨는 5라인에서 '포토' 공정을 맡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밀한 집적회로를 반도체 웨이퍼에 새겨넣는 일이다. 김씨는 웨이퍼 운반 상자를 넣고 뺄 때마다 고약한 약품 냄새를 맡았다고 했다.
“(설비의) 문이 열리면 냄새가 확 올라와요. 진한 초콜릿에 휘발유를 섞어놓은 듯한 냄새인데, 그래서 최대한 안 맡으려고 ‘이렇게’ 빼요.”
김씨는 고개를 한쪽 방향으로 틀어 아예 뒤로 돌린 채, 양손으로 무언가를 넣고 빼는 포즈를 해 보였다.
“또 설비에서 상자를 뺄 때 밀폐포장이 돼서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뻥 뚫려 있는데 웨이퍼가 한 장씩 끼워져 있어요. 방금 용액이 묻어서 나온 거잖아요. 이걸 들고 이동하는 동안에도 냄새가 나요. 웨이퍼 아이디(ID) 확인할 때도 수시로 꺼내야 하는데 그때도 그렇고.”
포토 공정에선 피아르(PR)액과 현상액, 아세톤, 시너 등이 쓰인다. 피아르액은 네댓개의 화학물질이 섞인 혼합물로,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유미씨의 백혈병이 직업병으로 인정되는 과정에서 2009년 서울대 산학협력단은 피아르액에서 벤젠을 검출한 바 있다. 삼성은 벤젠 검출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김씨를 함께 만난 임자운 반올림 활동가(변호사)는 “삼성 쪽은 모든 화학물질이 설비 내에서 투입되고, 설비마다 국소배기장치가 있어서 작업자들이 화학물질에 직접 노출될 일이 없다고 설명한다. 김씨의 얘기는 삼성은 주장과 실제는 다르다는 뜻”이라 했다. 원래대로라면 냄새가 다 빠질 때까지 설비의 문이 잠겨 있어야 하지만, 인위적으로 시스템을 느슨하게 작동시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임 변호사는 “냄새가 다 빠지길 기다리면 너무 늦고, 그런 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 업무량을 넘어서다 보니 설비의 잠금장치(인터록)를 일부러 풀어둔다는 얘기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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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기흥공장 반도체 생산 라인에서 직원들이 모니터로 제품 설계도를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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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불순이 시작됐다
입사 4개월 뒤부터 김씨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생리불순이었다. 두달에 한번, 석달에 한번으로 간격이 점점 늘었다. 의사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라 했다. “주기적으로 생리를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계속 상태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의사는 경구 피임약을 치료용으로 처방해줬다. 상태가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불안해진 김씨는 주변 동료들의 상태를 묻고 다녔다.
“열명 중 거의 아홉명이 생리불순이었어요. 그런데도 쉬쉬해요. 이게 (심야근무가 포함된) 근무교대 때문이냐, 아니면 화학물질 때문이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는데, 딱 거기까지였어요. 다들 더 나서려 하지 않았어요.”
사고도 있었다. 김씨가 신입이던 2011년 봄 포토 라인 작업자 전체가 대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김씨의 기억에 5년8개월의 재직 기간 중 가장 심한 냄새가 나던 때였다. 주황색 가스가 작업장 안에 가득 찼고 냄새는 강렬했다. 가스의 색과 냄새가 점점 짙어졌다. 엔지니어도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 갑자기 다들 알아서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회사의 상황 판단과 지침이 없으니까 각자 알아서 나간 거예요. 작업자들이 예민하게 굴면 직장(조장)님도 어쩔 수 없거든요. 뒤늦게 ‘방송 좀 이따 나올 테니까 일단 다 나가 있어’ 그러죠.”
방송은 냄새가 빠지고 작업자들이 공장 안으로 복귀한 뒤에야 나왔다. “‘풀 냄새’라는 거예요. 밖에서 잔디 깎는 냄새가 유입된 거라고요. 누가 봐도 약품에서 난 연기와 냄새인데. 그때 ‘아 진짜 이 회사… 이건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풀 냄새’라는 사내방송 외에 회사 쪽의 설명을 듣거나 어떤 조처가 취해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김씨는 기억했다. 임 변호사는 “황유미씨 사망과 관련한 2009년 서울대 보고서에도 고농도 가스 누출 때 작업자 대피를 안 시킨 기록이 감지시스템에 남았단 내용이 있다. 2011년에도 마찬가지였던 걸로 보인다”고 했다.
포토에서 ‘식각’으로
2013년 7월 5라인이 사라졌다. 신규 설비 도입 등의 이유로 라인은 이따금 생기고 없어졌다. 5라인 작업자들은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김씨는 8라인으로 전배(전환배치)됐다. 8라인에선 '식각' 공정을 맡았다. 웨이퍼의 표면을 집적회로 모양대로 미세하게 깎아내는 일이다.
“전배 하면서 좀 나아지길 바랐지만 바뀐 게 없었어요. 최신 설비라는데 냄새 나는 것도 똑같았고요. 그런 역하고 메스꺼운 냄새를 매일 맡아야 했어요.”
김씨의 몸은 더 안 좋아졌다. 생리통도 심해졌고, ‘타이레놀’을 달고 살았다.
8라인에선 대피도 잦았다. 3년 동안 6~8회쯤 됐다. 냄새가 나면 엔지니어가 와서 원인을 찾는데, 그 와중에도 별다른 조처가 없었다. ‘기다려보라’고만 했다. 누가 봐도 상태가 심해져서야 대피했다. 누가 대피를 지시하지도 않았다. 공장 한구석에 모여 있을 뿐 다들 머리가 아프다면서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봤다. 누출 지점을 찾는 엔지니어는 아예 마스크를 내리고 냄새를 맡았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보면 작업중지권이란 게 있어요.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선 재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을 때 작업의 재개 여부를 노조 대표가 참여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결정해요. 그게 아니더라도 이런 경우 대피와 복귀는 회사가 책임지고 해야 하는 거죠. 단지 냄새가 빠졌다고 다시 들어가라는 건 이상한 거예요. 왜 누출이 됐는지 파악하고, 안전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임 변호사가 말했다.
김씨의 기억엔 안전교육도 허술했다. 한달에 한번 하는 교육은 온라인으로만 진행했다. 작업장 내 이곳저곳 놓인 모니터에 프로그램을 띄워놓고 지나갈 때마다 ‘클릭’했다. 60쪽을 넘기면 ‘수료’가 뜬다. “쓸데없는 교육”이었다. 제대로 된 오프라인 교육은 2011년 초 입사 직후와 퇴사 직전 한차례씩뿐이었다. 그외 한달에 한차례 하는 월례회나 근무조 교대 때 하는 ‘5분 미팅’ 중 짧게 치르기도 했다. 월례회 때 김씨는 작업장 내 설치된 각종 경보의 종류와 의미를 물으려 했지만 “엔지니어들 영역인데 여직원이 그런 것까지 알 필요 있느냐”는 답을 들었다.
“가장 어이가 없던 건, 삼성에서 잘못을 인정한다(2014년 5월 반도체 피해 노동자들에 대한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의 공식 사과)고 한 뒤 취한 행동이에요. 외부에서 뭔가 검사하러 많이 왔었어요. 그룹장이 ‘언제 검사 오니까 교육받았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답하라’는 게 교육이었어요. 그거 대비한다고 직원들 퇴근 후에 남겨놓고 중요한 부분만 외우라고 시켰어요. 상황 대처법이나 에탄올 영어 약자 같은 걸 단답으로 외웠어요.”
“직업병 발병 사업장이란 사실이 언급되거나 하진 않았나요?” 임 변호사가 물었다.
“그 회사 다니는 5년8개월 동안 발생 사례 같은 건 전혀 이야기되지 않았어요.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임 변호사는 “김씨가 일한 포토 식각에서만 산재 인정자의 절반이 나왔다. 사망자가 나왔으니 여긴 중대재해사업장에 해당한다. 공장 안에서도 특히 더 위험한 공정이니 앞선 직업병 발생 사례에 대해 작업자들에게 충분히 알리고 주의를 환기했어야 맞다”고 했다.
건강이 더 악화되다
김씨는 입사 5년차인 2015년 큰 병원으로 가 특수건강검진을 받았다. 의사는 혈액 관련 수치가 매우 낮게 나왔다며 검사를 자주 받아보라 권했다. 가슴에서도 혹이 발견돼 추가 진단이 필요했지만 비용이 부담돼 따로 검사를 하진 않았다. 김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선 확실히 몸이 나아졌다. 회사 때문에 몸이 안 좋았다는 게 확실해진 것”이라 했다. 김씨는 회사에 남은 동료들이 “몸이 힘들지만 어쩔 수 없이 다닌다”고 했다.
“저도 (병이) 잠재돼 있다 나중에 어찌 되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 들어요. 1년 정도, 조금만 일하고 나왔으면 정말 좋았을 것을. 근데 다들 어쩔 수 없이 다녀요. 다른 데 가면 이 정도 월급 받기 힘들고 고교 졸업하고 배운 첫 일이기도 하니까요.”
김씨가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한 기간은 2010년 8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5년8개월 동안이다. 이 기간 중 삼성은 대표이사가 사과하고(2014년 5월), 자체 보상을 실시하고(2015년 9월 이후) 재발방지 대책을 내놨다(2016년 1월). 하지만 그런 일이 이뤄지는 동안 김씨와 동료들은 특별한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 권오현 대표의 사과가 있던 때 김씨의 ‘조장 언니’가 라인 직원들의 질병 상황을 하얀 종이에 적어 갔을 뿐이다. 그 조사 결과가 누구한테 보고됐고 그로 인해 무슨 조처가 있었는지, 김씨와 그의 동료들은 알지 못한다. 김씨가 그나마 기억해낸 변화라곤 “마스크가 더 얇은 걸로 바뀌었다”는 것뿐이었다.
2009년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내부를 직접 조사한 백도명 서울대 교수는 2일 “변한 게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문제가 일어났을 때 제대로 된 사업장이라면 원인을 확인하고 이를 작업자에게 알려주고, 모니터링을 해서 안전한지 본 뒤 재가동해야 한다. 작업자와 관리자, 안전보건책임자 각자의 역할을 적시한 매뉴얼도 있어야 하지만 2009년에도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상황인 것 같다”고 했다.
노상철 단국대 교수(산업의학)는 “문제의 핵심은 간단하다. 삼성의 접근 방법이 매우 폐쇄적이란 거다. 삼성 내부에도 반도체 건강연구소가 있어 전문가들이 일하고 있다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객관적으로 보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떤 형태이든 외부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게 개방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초 삼성은 반올림과 가족대책위원회 쪽, 외부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옴부즈만위원회(위원장 이철수 서울대 교수)를 만드는 등의 안을 뼈대로 하는 재발방지안에 합의했다. 반올림 쪽은 당시 “이만큼만이라도 제대로 실행된다면 극도로 폐쇄적인 삼성전자 안전보건 관리를 외부의 독립적 시선으로 지켜볼 ‘틈’을 처음으로 만들게 된다”고 평했다. 하지만 위원회 활동은 아직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지 못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옴브즈만위원회를 통해 이미 외부전문가에 문호를 열어놓고 종합진단을 벌이고 있다. 결과를 기다려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반도체 문제는 전세계 어느 라인에서도 명확히 드러난 적이 없는데 계속 이슈가 된다. 어느 정도 인식의 문제다. 객관적으로 사안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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