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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25 10:02 수정 : 2017.03.26 10:44

2013년 여름 함안보 하류인 경남 창원 의창구 동읍 본포교 근처 강변에 녹조가 넓게 퍼져 있다. 최근 정부는 4대강 수질개선을 위해 댐·저수지·보를 동시 개방하겠다고 발표했다. 창원/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토요판] 뉴스분석 왜? ‘공약 파괴’ 전직 대통령에게 띄우는 편지

2013년 여름 함안보 하류인 경남 창원 의창구 동읍 본포교 근처 강변에 녹조가 넓게 퍼져 있다. 최근 정부는 4대강 수질개선을 위해 댐·저수지·보를 동시 개방하겠다고 발표했다. 창원/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한겨레> 정치부의 윤형중 기자는 지난 10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파면 결정을 지켜보며 다소 씁쓸했다고 합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공약파기의 책임을 묻기 위해 단단히 벼르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주요 공약의 이행과 파기 과정을 세밀하게 추적한 책 <공약파기>를 지난 13일 출간한 윤 기자가 두 전직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에게 공개편지를 썼습니다. 윤 기자는 자신의 저서에 편지를 동봉해 두 전직 대통령의 자택으로 발송했습니다. 그들은 과연 답신을 할까요.

이명박 전 대통령께

요즘 세간의 관심이 박근혜 전 대통령께 쏠려 있으나, 최근 정부는 당신과 관련된 중요한 결정을 하나 내렸습니다. 바로 환경부·국토교통부·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20일 발표한 ‘댐-보-저수지 연계 운영 방안’이라는 연구용역 결과입니다. 이 결과에 따라 정부는 4대강 수질개선을 위해 댐·저수지·보를 동시 개방하겠다고 합니다. 당신이 공약에도 없던 ‘4대강 살리기 사업’에 22조원을 투입해 꽉 막아버린 물줄기를 이제는 뚫겠다는 결정입니다. ‘한반도 대운하’라는 실패한 공약에 대한 당신의 집착이 결국 아까운 혈세를 분별없이 낭비하고도 환경에 큰 부담을 주는 재앙을 가져왔습니다.

저는 공약 연구를 하면서 ‘대통령 이명박’을 다시 봤습니다. 당신이야말로 공약 분야의 ‘선구자’라는 것을 새삼 재발견했습니다. 비꼬는 말이 아닙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쟁취 이후 탄생한 6명의 대통령 중에서도 당신은 독보적입니다. 대부분의 공약에서 목표를 구체적인 ‘숫자’로 제시한 대통령은 당신이 유일합니다. 대표 공약인 747(연간 경제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을 비롯해 일자리 300만개를 새로 만들어 고용률을 70%로 만들고, 청년 실업자는 35만명(2007년 기준)에서 절반으로 줄이며 정부 재정은 매년 20조원 절감해 균형재정(수입만큼만 지출해 적자나 흑자가 나지 않는 상태)을 달성하고, 심지어 통신비·기름값 등 6대 부문 생활비를 148만2000원(2006년 4인가구 기준)의 30%인 44만원을 매달 절감시켜 주겠다고도 약속했습니다. 영어로 수업하는 교사를 매년 3000명 신규 배치하고, 교통사고 사상자를 매년 10%씩 줄이며 지방교부세율을 현행 19.24%에서 2%포인트 이상 증액하고, 공공기관의 중소기업 물품 구매를 연 100조원으로 늘리겠다고도 약속했습니다. 퇴임 연도엔 합계출산율을 1.5명으로 올리고, 아토피(피부 질환의 일종)를 퇴치하겠다는 ‘깨알’ 공약들도 넘쳐납니다. 덕분에 이 공약들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 누구도 이견을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증명됩니다. 당신에 반해 후임자인 박 전 대통령은 숫자에 상당히 인색했습니다. 저는 차기 지도자들이 당신을 본받아 자살률, 출산율, 가계부채, 비정규직의 숫자와 처우, 소득 대비 주거비용, 노인빈곤율, 근로시간 등 우리 사회의 각종 지표들을 어느 수준으로 개선할지 구체적인 숫자로 공약했으면 합니다.

공약을 분석하면서 당신이 얼마나 꼼꼼한 분인지도 다시 확인했습니다. 당신은 2008년 9월9일 생방송 프로그램에서 “나 자신은 반값등록금 공약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은 정말 기이했습니다. 등록금넷이라는 시민단체 연합이 매년 3월마다 ‘반값등록금 집회’를 열며 “반값등록금 공약을 이행하라”고 외쳤고, 2011년엔 이 집회가 촛불집회 이후 최대 규모로 커졌습니다. 그런데 당신 공약집을 살펴보니, 진짜로 반값등록금 공약이 없었습니다. 많은 언론이 ‘등록금 집회’를 보도하면서 ‘반값등록금은 대통령의 공약이었으나, 집권 이후 추진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는데도 말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선 다소 오해가 있었습니다. 당신의 선거 캠프에 ‘등록금절반위원회’가 있었고, 후보로 선출된 이후에도 당시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의 지도부는 대학의 장학금을 조금 확충하는 수준의 법안을 가지고 “우리가 반값등록금 법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야당이 방해하고 있다”고 부르짖었습니다. 당신이 간판에는 반값등록금이라고 써붙였지만, 공약집에는 쏙 빼놨던 것이죠. 마치 양고기를 판다는 간판을 내걸고서 실제로는 개고기를 팔았다는 중국의 고사인 양두구육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어느 언론이나 전문가도 냉장고 안(공약집)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깝긴 합니다.

제가 편지를 드리는 김에 한가지 요청사항을 전하겠습니다. 2015년 2월에 출간한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수정해서 재발간해주시기 바랍니다. 무례하게 들릴지 모르나 충심으로 드리는 고언입니다. 수정할 부분은 663~670쪽, 679쪽, 748쪽, 756쪽입니다. 당신께서는 회고록을 통해 “주택담보대출을 확대하는 정책은 추진하지 않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도 지속적으로 좁혀졌다”, “국내 기업 모두가 반대하고 나섰지만, 우리 정부는 2009년 4월1일부터 위피 의무 탑재 제도를 폐지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50~60%에서 70%로 규제를 완화한 총부채상환비율(DTI),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조정이 바로 주택담보대출을 확대하는 정책이었습니다. 또한 당신의 임기 동안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127만원에서 141만원으로 늘어난 반면에 정규직 임금은 210만원에서 253만원이 되어 임금격차가 83만원에서 112만원이 됐습니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소득 비중은 60.5%에서 55.7%로 낮아졌습니다. 이 숫자는 민간기관이 아닌 통계청의 공식 조사(경제활동인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입니다.

회고록의 특성상 근거나 출처를 제시하지 않고 간략하게 한마디씩 치적을 자랑하는 표현들이 많은데, 독자들이 하나하나 사실을 검증하기 어렵다고 해서 태연하게 거짓말을 해선 안 됩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명예와 품격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초판에 나온 내용 중 사실과 다른 부분은 수정하시고, 개정판에서 무엇을 수정했는지 공개하시기 바랍니다. 대통령의 회고록은 단순한 출판물이 아닌 역사의 기록입니다. 역사 앞에서 솔직하고 떳떳해야 합니다.

국민연금바로세우기국민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기초연금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장애인연금법 개악 반대' 기자회견에 참가해 손피켓을 들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박근혜 전 대통령께

당신이 청와대를 떠나 자택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었을 때,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틀 전 탄핵 반대 시위에서 세 사람이나 사망했는데도, 자제를 요청하는 발언이나 국정농단에 대한 사과는 없었습니다. 그 대신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라는 헌재의 파면 결정에 대한 불복 발언만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게 나라냐”고 자조하게 만든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당신한테서 사과를 받고 싶어합니다. 그건 많은 분들이 요구하니, 저는 당신께 좀 다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다름 아닌 ‘공약 역주행’에 대한 사과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선거에서 공약이 있는 이유는 정치를 통해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보통 공약에는 ‘문제’와 ‘해결책’이 함께 담깁니다. 만일 정치인이 공약에 담긴 해결책을 실행하지 않거나, 미진하게 실천해 약속한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그건 공약의 미이행 혹은 파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약의 관점으로 당신의 대통령직 수행을 살펴보면, ‘공약파기’란 말로는 좀 부족해 보입니다. 당신은 공약에서 제시한 해결책을 실천하지 않은 것을 넘어서 공약의 배경이 된 사회문제를 악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사용한 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지만,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당신은 어떠한 비판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검찰을 이용해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사건을 은폐·축소했고, 성완종 리스트, 정윤회 십상시 문건 등의 충격적인 사건에서도 검찰에 명확한 수사지침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면서 담뱃값을 기습적으로 올리고,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했고, 누리과정을 두고 지방교육청과 갈등했으며, 할머니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졸속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를 강행했습니다. 당신이 임기 동안 추진한 굵직한 정책들은 대부분 공약에 일언반구도 없는 것들입니다.

오히려 당신이 공약집에서 주요하게 내세운 내용들은 대부분 지키지 않았습니다. 야당보다 더 전향적인 친서민 정책으로 보였던 경제민주화 공약들은 당신의 임기 동안 사실상 금기어였습니다. 경제민주화 공약은 세부적으로 보면 18개 실천과제가 있었는데, 이 중 이행된 것은 네개 정도에 불과합니다. 경제민주화 공약 중에 ‘국민연금 등 공적연기금의 독립성 보장과 의결권 강화’, ‘재벌에 대한 사면권 엄격 제한’ 등은 실소를 자아낼 정도로 반대로 행사됐습니다.

당신은 다른 공약들 중에서도 기초연금과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부담 공약을 가장 먼저 파기했습니다. 이후 일련의 공약파기들을 미리 예고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세대갈등을 부를 정도로 당신에게 몰표를 줬던 고령층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당신은 여당과 야당의 대표였던 김무성, 안철수 의원을 참 홀대했죠. 두 분은 당신의 공약이었던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와 공직후보자 완전개방형 국민경선제를 추진하다가 “安, 또 철수?”(<조선일보> 2014년 4월9일 1면 헤드라인), “30시간의 법칙”(김무성은 대통령과 갈등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발언을 30시간 이내에 번복한다는 의미)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신들의 정치인생에서 가장 심한 조롱을 당했습니다. 이들이 이런 조롱을 받은 이유는 다름 아닌 당신의 공약을 추진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멈춰 세운 당신은 아무런 정치적 타격도 받지 않았죠.

당신의 역주행은 노동 분야에서 도드라졌습니다. 당신의 노동 공약은 크게 6가지였는데, 하나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택배와 대형화물차 기사,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골프장 캐디 등 특수고용직에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을 적용하겠다는 공약은 임기 초에 잠시 추진된 적이 있었지만, 이 공약의 법제화를 막은 이들은 권성동, 김진태, 김회선 등 당시 여당의 법사위 국회의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왜 공약 만들 때는 아무 말도 없다가, 대통령이 공약을 이행하려 하니 막은 걸까요? 지금도 당신의 지킴이를 자임하는 김진태 의원이 그때처럼 당신의 뒤통수를 치지는 않을지 걱정됩니다. 최저임금법을 위반하면 시정조치 없이 바로 벌금이나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공약이나, 반복적으로 최저임금법을 위반하는 사업장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겠다는 약속이 지켜졌다면, 한달에 100만원 남짓 버는 저소득 노동자에게 10만~20만원의 추가 소득을 안겨줬을 것입니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이들에겐 그 돈이 있으면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당신은 노동 공약을 하나도 이행하지 않으면서 비정규직을 더 불안정하고 열악한 지위로 내모는 정책을 ‘노동개혁’이란 이름으로 추진했습니다. 마치 잠시 달콤하지만, 그 맛에 취하면 구조적으로 노예가 되는 ‘약탈적 대출’과 같은 정책이었죠. 가수 겸 배우인 임시완씨가 정부의 노동개혁 방송광고에 출연했다가, “무지해서 일어난 일이다. 꼭 사과를 드리고 싶다. 나만의 장그래(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이름)가 아닌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할 생각이다”라고 사과를 한 이유도 당신 때문이었죠.

당신은 확실한 국가책임 보육을 공약하고서 두번의 보육대란을 일으켰습니다. 한번은 누리과정 예산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공약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했고, 다른 한번은 전업주부에게 어린이집 이용시간을 줄이는 ‘맞춤형 보육정책’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차별한 전업주부의 출산율은 2015년을 기준으로 2.12명으로 맞벌이의 0.7명보다 3배 이상 높습니다. 당신의 저출산 대책은 사실상 전업주부에게 이제 아이를 그만 낳으라는 신호였죠. 저출산 대책이 아닌 출산제한 정책인 셈입니다.

당신은 2012년 7월10일 대선 출마선언을 하면서 “저는 그동안 정치를 해오면서, 저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한번 드린 약속은 반드시 지켜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공약이란 프레임으로 바라보면, 당신이 어떻게 ‘신뢰의 아이콘’이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제가 약속한 것들을 대부분 지키지 않아 정말 죄송합니다. 국민들께 사과드립니다”라고 말씀하셔야 합니다. 그게 제가 국정농단이 아닌 공약파기와 역주행에 대한 사과를 받고 싶은 이유입니다.

‘차기 대통령’께

공약을 선거의 액세서리로 여기지 마세요. 당선되고 나면 당연히 안 지켜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두가지만 제안합니다. 당신의 임기 반환점까지 공약 중에서 어느 정도까지 이행할 것인지 미리 약속하세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어느 수준으로 책임질지, 추가로 무엇을 할지도 정했으면 합니다. 다른 한가지는 일년에 한번씩 부처별 공약이행 정도를 국민들에게 보고하시기 바랍니다. 각 부처가 매년 초에 하는 ‘업무보고’의 방향을 대통령에서 국민으로만 바꾸면 됩니다.

국민들에게서 부여받은 공적인 권한을 사적인 이익을 위해 악용하지 않는 것을 넘어 진정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 피부에 와닿는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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