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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25 09:27 수정 : 2017.06.25 10:14

와이티엔(YTN)에서는 2008년 ‘낙하산 사장 반대’ 싸움을 하다 해고된 6명 가운데, 노종면·조승호·현덕수 기자가 아직 회사로 돌아오지 못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와이티엔지부 제공

[토요판] 뉴스분석 왜?
YTN 새 사장 공모와 ‘방송개혁’

와이티엔(YTN)에서는 2008년 ‘낙하산 사장 반대’ 싸움을 하다 해고된 6명 가운데, 노종면·조승호·현덕수 기자가 아직 회사로 돌아오지 못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와이티엔지부 제공

지난달 보도전문채널 <와이티엔>(YTN) 조준희 사장이 임기 10개월을 남기고 전격 사퇴했습니다. 조 사장은 ‘낙하산’ 인사 의혹, 공정보도, 해직자 복직 등을 둘러싸고 구성원들과 갈등을 빚어왔습니다. 조 사장이 물러나고, 와이티엔 노사는 주주·사원·시청자 의견을 고루 반영할 수 있는 ‘사장후보추천위원회’를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일련의 상황은 안팎에서 ‘방송개혁의 신호탄’으로 환영받았습니다. 사장 공모 절차가 시작되고, 해직 3천일을 넘긴 노종면 기자가 응모한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와이티엔에 다시 손팻말 시위가 등장하고 사내 게시판에는 슬픔과 분노에 찬 글이 줄을 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대단한 일 한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 이제 보니 알겠다. 여태 해온 일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와이티엔노동조합 발간 포토 에세이 <삼천일> 중) 9년 전, 시작은 그랬다.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대통령 선거 캠프 특보 출신을 언론사 사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원칙을 실천에 옮긴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몰랐다. 실천의 대가로 현직 기자들이 경찰에 체포·구속되고, 해고되고, 그러한 비상식적 상황이 3천일 이상 이어질 것이라고는. 2008년 해고된 6명 가운데 노종면·조승호·현덕수 기자는 여전히 회사 밖에 머문다.

해직 사태 9년째에야 봄다운 봄을 맞았다.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에 참여한 전국언론노동조합 와이티엔지부(노조)는 ‘해직자 복직’과 ‘사장 선임 절차 개선’을 강하게 촉구했다. “사장 지원서 쓰셨어요?” 박진수 노조위원장의 물음에 조준희 당시 사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2015년 기업은행장 출신인 조 사장이 방송사 사장으로 선임되자 그 배경에 큰 관심이 쏠렸으나, 선임 과정이 불투명한 탓에 ‘낙하산’ 의혹을 벗지 못했다. 이날 조 사장은 “다른 공공기관 사례를 살피겠다”는 등 노조의 요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와이티엔의 주요 주주는 한전케이디엔(KDN)·한국마사회·한국인삼공사 등으로, 소유구조상 공영 성격이 강하다.

오랜 공정방송 투쟁이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와이티엔 이사회는 사장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 운영을 정관에 포함시켰다. 조 사장과 노조가 ‘보도국장 임면동의 협약’을 맺었다. 이는 사장이 일방적으로 보도국장을 임명하는 대신, 사장이 지명한 보도국장 내정자가 보도정책·운영방침을 구성원에게 공표한 뒤, 임명 찬반 투표를 하는 제도다.

2008년의 불행을 되풀이하면 안 된다

하지만 얼마 뒤 조 사장이 해직자 복직 협상 조건으로 퇴직금 누진제 폐지를 언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내 여론이 들끓었다.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었다. 와이티엔 구성원들은 공정방송 투쟁을 위해 싸웠던 모든 이들의 ‘명예회복’을 바랐다. 해직자 복직은 시혜나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과 상식을 제자리에 되돌려놓는 일과 같다. 노조는 즉각 반발하며 5월10일 조 사장 퇴진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구성원 100여명이 사장 퇴진을 요구했다. 5월19일, 조 사장은 전격 사퇴했다.

조 사장이 물러난 뒤, 방송개혁을 향한 항해에 순풍이 이는 듯했다. 회사 기획조정실에서는 노조의 의견을 반영해 사추위원 5명(주주 추천 몫 4명, 사원 추천 몫 1명) 구성에서 주주 몫 1명을 시청자 의견 대변 몫 1명으로 교체한 안을, 지난 2일 열린 이사회에서 제출했다. 이사회에선 이를 승인했다. 사흘 뒤 누리집을 통해 새 사장 공개 모집을 알렸다. 공모서에 심사 기준으로 “언론관, 경영능력, 회사 발전 전략·비전, 도덕성, 정치적 중립성”을 명시했다. 사추위가 이런 기준에 따라 서류·면접 심사를 거쳐 2~3배수의 사장 후보를 이사회에 추천하면, 이사회가 1명을 선정하기로 했다. 비슷한 시기, “조건 없는 해직자 복직 협상도 시작”했다(와이티엔 보도자료).

개혁이 ‘가시밭길’로 제 모습을 드러낸 건, 서류접수 마감일인 16일이다. 이날 오전으로 예정되어 있던 노사 간 해직자 복직 협상이 취소됐다. 사실상 최종합의를 위한 자리였지만 노조 쪽에서 거부했다. 김호성 총괄상무가 사장 응모 여부에 대한 노조의 물음에 답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1994년 창립 멤버로 와이티엔에 합류한 김 상무는, 노종면 기자보다 10여년 앞서 초대 노조위원장을 역임했다. 2012년엔 부장 5인 성명을 발표하며 해직자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가 비보도 부서에 배치되는 등 좌천성 인사를 겪었다. 하지만 조준희 사장 시절 미디어사업국장·기획조정실장을 지냈고 지난 4월 조 사장이 주재하는 이사회에서 차기 총괄상무로 내정됐다. 당시부터도 사내에는 김 상무의 사장 응모설이 돌기 시작했다. 애초 노조는 김 상무가 사장에 응모할 계획이라면, 5월31일로 예정된 임시주총을 연기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임시주총에서 그를 이사로 선임하면, 그가 사추위 운영 방안과 구성 등을 지휘하는 위치에 서기 때문이다. 노조가 그의 응모를 경계한 건 “경기의 ‘심판’이 돌연 ‘선수’가 되는 사태를 막자”(박진수 위원장)는 이유에서다. 김 상무는 ‘불출마에 가까운’ 답변을 내놨고, 노조는 그를 믿고 사추위 구성과 해직자 복직 협상에 참여했다. 김 상무는 예정대로 열린 임시주총에서 이사로 선임됐고, 사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지난달 조준희 사장 전격 사퇴 뒤
사추위 구성, 새 사장 공모 진행
해직자 복직 협상도 급물살 중
김호성 총괄상무 지원 사실 밝혀

일주일간 구성원 80여명 글 쏟아져
23일 오전 김 상무 전격 사퇴
“미래 향한 몸부림이 사퇴 이끌어
차기 리더십은 구성원 마음 새겨야”

노조는 김 상무의 응모 사실이 알려진 16일 저녁 김 상무의 응모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해직자 복직 협상도 중단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김 상무가 복직 협상을 자신의 사장 선임에 유리한 ‘성과물’로 내세우는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취지에서다.

김 상무는 사장 지원을 결심한 계기로, 노종면 기자의 사장 응모를 내세웠다. 구체적으로는, “노 기자가 사장으로 선임됐을 경우를 우려하는 직원들의 반응”(김 상무)이다. 그는 16일 사내게시판에 올린 ‘출사표’에서 “해직자 복직, 낙하산 사장 근절, 보도국장 임면 시스템 구축”을 선결 과제로 꼽으면서도, 19일 입장문에서는 다음처럼 썼다. “노종면 후배의 출마 선언 이후 많은 사람들이 저를 찾아왔다. 문자를 보냈고 전화를 걸어 왔다. 조직의 분열과 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총의를 따라 조직의 분열 위기를 막고, 통합의 숙제를 풀겠다는 일념으로 나선 것이다.”

이에 앞서 노 기자는 11일 노조에 사장 공모 지원 뜻을 전하며 “저의 결심이 촛불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지 쉼 없이 자문하며 공모 절차에 임하겠다”고 했다. 또 “노조의 요청을 받거나 상의한 적도 없다. 일부 해직자의 권유를 받고 혼자 고민해 결심했다”고 했다. 사장 공모에서 탈락할 경우, 복직하지 않을 의사도 밝혔다. 노조에서는 노 기자 지지 여부 등을 공식 발표하지 않았으며, 해직자 복직 협상은 별도로 마무리한다는 생각이었다.

지난 16일 김호성 총괄상무의 사장 응모 사실이 알려진 뒤 와이티엔 구성원들은 그의 사퇴를 촉구하는 손팻말 시위를 벌였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와이티엔지부 제공

“선배는 촛불입니까, 바람입니까?”

김 상무가 응모 사실을 밝힌 뒤 사내 여론이 다시 들끓었다. 21일 김 상무와 가까운 관계의 최고참급 기자 3명이 사내게시판을 통해 “김 상무의 사장 입후보 적절성 여부를 묻는” “전체 정규직 사원 대상 무기명 비밀투표를 하자”고 제안한 일은 구성원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들은 김 상무의 응모를 둘러싼 갈등을, 개혁을 둘러싼 구성원 간 의견 차이로 틀 짓고자 했다. “공정방송과 경영 안정은 사원들의 일치된 지향점”이나, “이를 실현하는 방법과 속도 면에서 의견이 달라 혼란과 분열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와이티엔 사정을 잘 아는 한 언론계 관계자는 “(노조가) 김 상무를 ‘적폐’라고 낙인찍은 건 옳지 않다. ‘온건파’에 가깝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수 구성원의 생각은 달랐다. 원칙의 문제였다. “혼란과 분열”의 책임은 김 상무, 그리고 그의 출마를 이끈 집단에 있다고 판단했다. 김 상무가 조준희 사장 체제에서 맡은 역할에 대해선 해석의 여지가 있더라도, 그의 사장 응모 행태만큼은 사장 선임 절차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노종면 기자는 사장 후보직에 ‘응모’했을 뿐, 복직조차 하지 못한 상태다.

“‘샤이 김호성’의 다수는 개혁의 대상이죠. 노종면을 두려워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나요? 대부분 (공정방송 투쟁에) 입 닫는 대가로 자리를 잘 보존한 사람들일 겁니다.” 1994년 공채 2기로 입사해, 보직 부장을 맡고 있는 ㄱ기자의 말이다. 그는 21일 서울 상암동 와이티엔 사옥 1층에서 김 상무의 사퇴를 촉구하는 손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밥 좀 먹고 해라.” 입사 동기인 ㄴ기자가 지나다가 발을 멈추고 말을 건넸다. “밥이 넘어가겠냐.” ㄱ기자는 “후배들에게 ‘(윗선에) 까불면 저렇게 (해직)된다’고 세뇌시켜온 사람들은 다 물러났으면 한다”고 했다.

마침내 김 상무는 23일 사장 응모 뜻을 전격 철회했다. 이날 오전 8시40분께 그가 사내게시판에 올린 사퇴문은 딱 세 문장이었다. “사장후보직 사퇴합니다. 믿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제 탓입니다.” 김 상무가 응모 사실을 밝힌 뒤 지난 일주일 동안 사내게시판에만 80여명이 실명으로 김 상무의 사퇴를 촉구하는 글을 올렸다. 김 상무의 선택을 직간접적으로 찬성하는 의견은 글 3건, 7명에 불과했다. 와이티엔의 정규직 사원은 600여명이고, 이 가운데 360명이 노조원이다.

구성원들은 분노와 함께 슬픔과 실망의 정서를 감추지 못했다. “노조위원장이 들고 있는 피케팅 속 이름이 배석규·조준희 전 사장이 아니고 정말 김호성인가? 잘 알면서도 다시 한번 크게 눈을 뜨고 확인합니다. (…) 광화문광장에서 촛불 든 모습이 어색하지 않던, 우리와 그저 비슷했던 선배. 그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선배가 하신 말씀입니다. ‘바람이 불어도 촛불은 꺼지지 않더이다.’ 선배는 촛불입니까, 바람입니까.”(ㄷ기자)

김 상무를 “선배라고 부르는 게 어색한” 후배·경력기자 집단의 메시지도 특기할 만하다. 김 상무는 자신의 출마가 와이티엔의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다. 후배들 또한 와이티엔의 ‘미래’를 위해 그가 물러나길 바랐다. “조금이라도 세상을 더 따뜻하게 바꿔보기 위해서, 더 공정하게 바라보기 위해서, 발제하고, 기사 쓰고. 저도 입사 초기엔 저랬던 거 같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입사했는데, 꿈의 문턱조차 가보지 못했습니다. (…) 와이티엔에는 혁신이 필요합니다. 작은 변화로는 죽도 밥도 안 됩니다.”(ㄹ기자) 2015년 종합편성채널 출범 4년차, 와이티엔의 시청률은 지상파·종편·보도전문채널 총 9곳 가운데 9등으로 떨어진 뒤 등수를 회복하지 못했다.

“낮은 연차의 구성원들이 애절하고 절절했다. 자괴감을 토로하고, 이대로 가면 안 된다고 호소했다. 김 상무 개인의 결단도 있지만 후배들의 이런 미래를 향한 몸부림이 사퇴를 이끌어냈다고 본다. 사장이 누가 되든 와이티엔의 차기 리더십은 이런 구성원들의 마음을 새겨야 한다.”(박 위원장)

방송개혁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23일로 와이티엔 해직 사태는 3183일을 맞았다. “아빠가 해고됐는데 우리가 이렇게 많이 먹어도 돼?” 2008년 해직됐다 2014년 복직한 우장균 기자가 전한 아들의 말이다. ‘3183일’은 아빠를 울린 이 중학생 아들이 23살 청년이 된 시간이다. 그사이 쉼 없이 이어진 ‘공정방송 되찾기’ 싸움은, 회사 안에서나 밖에서나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일’이 되었다. 비상식이 ‘실체’이자 ‘실세’가 되어 밥벌이를 쥐고 있다는 이유로, 침묵마저 방조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암흑기였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자들.” 와이티엔에서 2008년 ‘낙하산’ 사장 반대 싸움을 했지만, 해고를 비켜간 이들을 부르는 말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는, 회사 밖 동료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 즉 상식과 원칙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장 공모를 두고 겪은 진통에서 새삼 드러난 것은 이러한 일이 방송개혁의 출발점이 될지언정 완성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더 넓고 깊은 범위의 방송개혁을 향한 절박한 희망을 확인했다. 언론인으로서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방송개혁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와이티엔이 묻는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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