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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03 09:46 수정 : 2017.09.03 09:49

쿠트스마트의 노동자가 맞춤 정장 주문 정보를 표시하는 모니터를 앞에 두고 작업하고 있다. 이 회사는 빅데이터와 자동화 기기를 활용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맞춤 정장 대량생산을 구현했다.

중국 맞춤 정장 생산업체 ‘쿠트스마트’
물류·유통 건너뛴 C2M 모델 현실로
지능형 생산공장의 성공주자 떠올라
마윈 알리바바 회장 등 줄줄이 방문

빅데이터 활용 2~3초마다 패턴 찍어내
신체 치수, 세부 디자인 등 정보 담겨
수익성 개선되고 임금도 덩달아 올라
중간관리자 감축 등 난제도 수두룩

쿠트스마트의 노동자가 맞춤 정장 주문 정보를 표시하는 모니터를 앞에 두고 작업하고 있다. 이 회사는 빅데이터와 자동화 기기를 활용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맞춤 정장 대량생산을 구현했다.
[토요판] 르포

중국 ‘스마트팩토리’를 가보니

중국 칭다오의 한 시골 마을에 있는 맞춤 정장 생산업체 쿠트스마트. 이 회사는 빅데이터를 통한 공장 스마트화로 소비자의 개별주문을 대량생산해낸다. 이 공장에선 단 하루에 각기 다른 정장 4천벌이 태어난다.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온 ‘꿈의 공장’은 인류에게 어떤 미래를 열어줄까.

이 여행은 온라인 주문서 작성으로 시작한다. 어린아이가 동화책을 한장 한장 넘기듯 순차적으로 모니터에 나타나는 정장 디자인을 고르면 된다. 비즈니스, 파티, 캐주얼, 이탈리아 스타일이 당신을 기다린다. 다소 까다로운 신체 사이즈를 기입하는 항목이 나오지만 당황할 필요는 없다. 직원이 방문해 치수를 꼼꼼히 재준다. 시간이 없다면 버스가 찾아간다. 이 버스에는 8개 카메라의 자동 신체 사이즈 측정 장비가 딸린 암실이 있다. 2초 만에 모든 스캔이 끝난다.

신청서 제출 버튼을 누르는 순간 당신은 한 장의 빅데이터 카드로 변신해 맞춤 정장 제작 여정을 떠난다. 이 카드는 중국 칭다오의 한 공장에서 재단, 봉제 등 300개 공정의 지휘자로 변신한다. 일주일이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고급 맞춤 정장을 품에 안을 수 있다. 가격이 걱정된다고? 입에 옷핀을 문 채 줄자로 당신의 신체 사이즈를 재고, 원단에 초크칠을 하며, 낡은 가위로 원단을 자르며 애써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내느라 제작에 몇 개월 걸리는 고급 정장 매장에 비하면 4분의 1 가격이다.

칭다오의 이 공장으로 직접 찾아가는 여정은 온라인 주문 방식과 달리 쉽지 않았다. 시내에서 50㎞ 이상 떨어지기도 했지만, 출퇴근 시간만 되면 서울 면적의 18배에 이르는 이 땅에 도심 인구 500여만명이 차를 몰고 시내로 나와 도로를 거대한 주차장으로 만들어버리는 탓이다. 교통지옥을 뚫고 1시간4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맞춤 정장 생산업체 쿠트스마트(Kutesmart·이하 쿠트) 본사다.

4천명이 며칠 걸릴 일을 700명이 하루에

쿠트는 정보통신기술(ICT)과 빅데이터를 결합해 자동화한 지능형 생산공장, 곧 스마트팩토리를 구축해 시투엠(C2M. Customer to Manufacture) 생태계를 형성했다. 시투엠은 소비자와 제조업자가 직접 연결돼 맞춤 생산을 하는 시스템이다. 최근 몇년 동안 마윈 알리바바 회장과 장루이민 하이얼그룹 회장 등 중국 1만5천개 주요 기업 회장과 임원이 쿠트를 방문했다. 연간 수십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중국의 ‘슈퍼갑’ 기업들이 왜 한적한 시골 마을을 찾는 걸까?

10만㎡ 면적의 공장에 발을 들여놓자, 인간의 모습을 닮은 로봇들이 작업장을 바삐 움직이는 스마트팩토리의 판타지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눈앞의 현실은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노동자 700명과 낡은 재봉틀, 실타래 등이었다. 공장 입구 양옆 사무실에 놓인 컴퓨터와 재봉틀 위의 개인용 정보 단말기(PDA) 모양 기계들이 첨단 느낌을 주는 거의 유일한 장치다.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공장 안내에 나선 브랜드홍보부 주이다오안 경리가 입을 열었다. “공장을 견학하는 사람들은 처음에 많이 실망한다. 그런데 공장을 전부 둘러보면 다들 스마트팩토리에 놀란다. 인공지능이라도 인간의 영역은 존재한다. 물리적으로 모든 것을 기계로 대체할 수는 없다.”

쿠트가 하루에 생산하는 정장은 4천벌. 다른 기성복 업체와 구분되는 건 4천벌이 전부 다르다는 점이다. 공장 노동자 700명이 재단사 4천명이 며칠씩 걸릴 일을 단 하루에 끝내는 셈이다. 대량생산 시대를 거치면서 옷은 제조업자가 임의로 선택한 몇가지 디자인을 공장에서 찍어내면 고객이 수동적으로 구매하는 방식으로 소비되어왔다. 이 과정에 고객이 개입할 틈은 없다. 디자인은 제조업자가, 가격은 유통업자가 결정한다. 쿠트는 이런 상식을 아예 지워버렸다.

쿠트의 맞춤 정장 주문용 앱을 통해 고객이 자신의 기호에 맞는 정장 스타일을 고르는 모습.
“시투엠은 미래의 대표적인 사업모델이다. 오늘날 소비자는 자신의 개성을 살리되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제품을 원한다. 시투엠은 이런 소비 트렌드에 맞춘 제품을 대량생산할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는 현재의 전자상거래에 개입하는 도매업자와 물류·유통업자를 건너뛴다. 물론 소매업자도 없앤다. 소비자와 제조업자가 직접 만나기 때문에 고가의 제품을 낮은 가격에 제공할 수 있다.” 주이 경리의 이런 설명 배경에는 빅데이터와 정보통신기술이 결합된 쿠트의 스마트팩토리가 자리잡고 있다.

공장 입구에 전체 시스템을 관리하는 제어실이 있다. 공장의 두뇌 역할을 한다. 제어실은 소비자의 주문을 접수하면 효율성을 최대로 살려 업무를 배분한다. 예컨대 소비자 2명의 신체 치수가 달라도 원단이 같으면 한데 묶어 패턴을 짠다. 수작업으로 하루 4천벌의 패턴을 짜려면 2천명이 필요하지만, 쿠트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2~3초에 한개씩 패턴을 찍어낸다. 이미 수집된 유형 이외의 신체 치수 정보가 들어오면 빅데이터 자료에 축적된다.

원단 창고에는 원단 수천개가 두루마리로 분류돼 있다. 기성복 의류업체와 달리 맞춤 정장을 생산하다 보니 원단 종류가 많다. 각 원단에는 코드화된 꼬리표가 달려 있어 분량이 특정 수준 이하로 줄면 경보음이 울리고 해당 원단 업체가 자동 납품하게 돼 있다. 패턴을 짜고 원단이 결정되면 재단실 노동자들의 손이 바빠진다. 그렇다고 가위를 들지는 않는다. 광둥성의 한 업체와 합작해 개발한 자동재단 기계가 스마트팩토리 네트워크로 들어온 패턴 수치대로 오차 없이 원단을 자른다. 기계가 원단을 20초가량 한차례 훑고 지나가면 4~5벌의 패턴이 천 조각으로 남는다.

“빅데이터 카드는 옷의 신분증”

이제부터 이 공장의 ‘보스’는 고객의 빅데이터가 담긴 가로 5㎝, 세로 8㎝ 카드다. 파편화된 천 조각은 한데 묶여 빅데이터 카드를 붙인 상태에서 자동으로 공장 곳곳 생산라인을 돈다. 카드에는 고객 신체 치수, 세부 디자인, 선호 스타일, 정장에 새길 자수 모양 등 모든 정보가 들어 있다. 각 생산 담당 직원이 자신에게 도착한 빅데이터 카드를 모니터에 갖다 대면 필요한 공정과 고객의 요구사항이 뜨고 이에 맞춰 업무를 처리한다. 봉제라인의 경우, 카드 정보가 모니터에 입력되면 수십개의 실 가운데 공정에 필요한 색상의 실이 자동으로 작업자에게 전달된다.

주이 경리는 “빅데이터 카드는 옷의 신분증이다. 개인의 취향까지 알 수 있다. 생산 과정의 시작부터 끝까지 따라다닌다. 한편으로 이 공장의 지휘자이기도 하다. 이곳에 노동자 700여명이 있지만 지시하는 관리자는 한명도 없다”고 말했다.

정장 한벌이 나오기까지 300여 공정을 거쳐야 한다. 사람 손을 거쳐야 하는 작업도 있다. 자수를 새기는 바느질과 품질 검사다. 고급 정장은 반드시 전문가가 바느질을 처리한다. 기계 바느질과는 입체감과 정교함에서 차이가 난다. 품질 검사는 하루 4천벌을 전수로 진행한다. 기성복은 샘플을 한두벌 뽑아 검사하지만 맞춤 정장은 전부 다르다 보니 전수검사가 불가피하다.

쿠트스마트의 스마트팩토리에서 패턴에 맞춰 재단된 천 조각들이 고객의 빅데이터 카드를 부착한 채 생산라인을 이동하고 있다.
뿔뿔이 흩어져 제작된 상의와 하의는 품질검사를 마친 뒤 자동으로 2층 출하 공장으로 옮겨진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벌의 상하의는 한곳에서 만난다. 상하의에 부착된 빅데이터 카드 때문이다. 주이 경리의 설명이다. “배송을 제외하면 제작 기간은 사흘을 넘지 않는다. 맞춤 정장 주문 제작은 유럽과 미국 등 전세계 어디도 우리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공장화된 곳은 쿠트가 유일하다. 일부 대형 맞춤 정장 제작 업체는 우리한테 의뢰해 생산한다.”

쿠트가 스마트팩토리를 구축한 시기는 2003년. 칭다오 토박이 장다이리(61) 쿠트스마트그룹 회장은 1995년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공장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쿠트는 2003년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자 대대적인 혁신 작업에 착수했다. 오이엠 생산을 하며 축적한 200만 고객 정보와 1천만개 이상의 패턴 모델, 3만개 유형의 원단, 수만개의 디자인을 빅데이터화해 생산공정을 간소화·표준화·자동화했다. 복잡한 의류 생산공정을 쿠트의 알고리즘으로 단순화한 것이다. 장다이리 회장은 “2003년부터 14년 동안 지속적으로 시스템을 보완하고 업그레이드했다. 지금까지 투자금은 수백억원이지만 기간을 따지면 금액 자체는 얼마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사고와 마인드”라고 말했다.

스마트팩토리 전환 이전에는 하루에 기성복 200~300벌을 생산했으나, 스마트팩토리 도입 후 맞춤 정장 4천벌 생산이 가능해졌다. 현재 쿠트 매출의 80%는 미국, 유럽,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나온다. 쿠트가 스마트팩토리로 전환한 뒤 첫 고객은 마이클 블룸버그 당시 미국 뉴욕시장이었다. 중국 지난대학 경영대 연구조사에 따르면, 2015년 쿠트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5% 늘었다.

쿠트의 성장 비결 중 하나는 완벽한 재고관리다. 옷은 대표적인 저임금 노동을 통한 대량생산 업종이다. 공급 물량만큼 팔리지 않으면 재고가 쌓인다. 쿠트는 소비자로부터 주문과 함께 비용을 받은 뒤 생산하기 때문에 재고가 없다. 재고관리 비용이 들지 않다 보니 생산성과 효율성이 동시에 높아진다.

노동시간 줄고 임금도 올랐지만…

가오위슈(42)는 오늘도 오후 5시 퇴근한 뒤 집에서 12살 아들과 무엇을 하며 저녁시간을 보낼지 즐거운 고민 중이다. 현재 쿠트의 생산공정을 총괄하는 그는 쿠트 창업 때부터 지금까지 22년째 근무하고 있다. 2003년 스마트팩토리 전후로 쿠트의 변화상을 누구보다 잘 안다. 가오위슈는 스마트팩토리가 저녁이 있는 삶과 임금 상승을 안겨줬다며 만족해했다. “스마트팩토리 이전에는 10시간 이상 일했다. 지금은 효율성이 높아져 하루 6~8시간 일한다. 급여도 20% 이상 올랐다.”

가오위슈는 스마트팩토리 도입 전에는 관리자 지위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빅데이터 카드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임금도 많아졌고 일도 편하지만 당신 일자리가 서서히 위협받는다고 생각지 않는가”라고 묻자, 그는 “그런 일은 없다. 나도 관리자였지만 관리자가 필요 없다고 일을 그만두는 것은 아니었다”고 답했다.

쿠트는 스마트팩토리로 변신하며 중간관리층 100여명의 인력을 감축했다. 현재 쿠트 직원은 3200명이다.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지만, 그 영역이 서서히 침식당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공장 스마트화에 성공한 기업들이 잉여 인력에게 밥숟가락을 쥐여줄 거라는 순진한 기대를 하기는 힘들다. 가오위슈는 로봇과의 경쟁에서 언제까지 미소지을 수 있을까.

칭다오(중국)/글·사진 김정필 <이코노미 인사이트> 부편집장 fermata@hani.co.kr

※자세한 내용은 <한겨레>가 내는 국제경제 월간지 <이코노미 인사이트> 9월호 표지 기사를 참조하세요. 2010년 5월 창간한 <이코노미 인사이트>는 독일의 <슈피겔>과 <차이트>, 중국의 <차이신 주간>, 프랑스의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등 유력 주간·월간지와 제휴한 매체입니다. 유럽과 중국의 시각으로 본 세계 경제 동향을 깊이 있게 전달함으로써, 미국 중심의 시각과 차별화한 분석을 제시합니다. 이와 함께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국제 성장전략 컨설팅 기업 '프로스트앤드설리번' 등이 제공하는 세계 시장 동향 분석, 국내 전문가들이 쓰는 문화콘텐츠산업 분석 등도 싣고 있습니다. <이코노미 인사이트>의 주요 기사는 정기구독자가 아니더라도 누리집(www.economyinsight.c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쿠트스마트의 장다이리 회장은 “스마트팩토리 구축에서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사고와 마인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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