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대통령 개헌안 ‘사법부 독립’ 미흡
▶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한 ‘6월 지방선거와 동시 개헌’이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일단 무산됐다. 개헌 시기를 둘러싼 논란으로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대통령 개헌안은 권력 분산과 지방자치 강화 등에 있어 대체로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촛불로 탄생한 정부가 내놓은 안으로서는 미흡한 대목도 적지 않다는 평이다. 그중 하나가 사법부 독립으로, 특히 대법원장 문제가 핵심이다.
사법부 공식 기구로 출범한 전국법관대표회의 첫 회의가 지난달 9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렸다. 법관대표회의는 사법행정권의 남용 방지 등 법원 민주화와 관련해 주목받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날 첫 회의에 참석해 전국 각 법원에서 참석한 판사들과 악수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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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권한 대폭 줄였으나
대법관추천위 등에 대통령 지분
“사법 독립 갈 길 멀어” 지적 유신부터 대통령이 대법원장 임명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 맞물려
정치권력의 사법통제 수단 작용
“법원에 선출권 돌려줘야” 견해 “개인적으로 친분도 없는 저를 각하께서 대법원장 후보의 한 사람으로 생각해주시는 것만도 영광이며, 임명받는다면 최선을 다하여 임명권자와 국민에게 봉사하겠습니다.” “과거에 각하를 잘 보좌하지 못한 데 대하여 반성하고 앞으로는 새로운 각오로 대통령을 보좌하겠습니다.” 1981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한 직후 대법원장 후보에 오른 두 사람이 청와대 비서관들을 만나서 한 말이다. 전자는 당시 대법원 판사였던 유태흥(2005년 사망·이하 호칭 생략)이며, 후자는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있던 김영준(2013년 사망)이었다. 대통령 전두환의 지시에 따라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인 우병규와 정무1비서관 박철언, 민정비서관 손진곤이 대법원장 후보를 사전 면담한 자리에서 나온 발언이었다.(박철언,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2005) 박철언은 12·12 쿠데타(1979)로 전두환 세력이 헌정을 중단시킨 뒤 만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법사위원으로 참여하고, 뒤이어 바로 전두환 정권의 청와대 정무1비서관에 기용된 실세였다. 1980년대 내내 권력의 중심에서 일한 그는 각종 기록을 꼼꼼하게 남겼으며, 이를 바탕으로 회고록을 썼다. 정치권력이 사법부를 얼마나 유린하고, 법조계 고위인사들은 어떻게 굴종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인 만큼 박철언 회고록을 더 살펴보자. 대법원장 후보를 정무수석실에서 면접 1981년 4월1일 서울 사직동 자택에서 박철언 일행을 만난 유태흥은 “분단국의 현실에 비추어 사법부의 수장은 정치적, 공안적 사건에서는 정부에 협력해야 하고, 일반 사건에서는 양심적으로 소신껏 독립적으로 심판해야 합니다. 국민에게 봉사하는 법조의 구현을 위해서는 사법부 혁신, 법조 민주화가 되어야 하나, 재임용 과정에서 국가관이 희박하고 품위가 바르지 못한 사람은 제외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 비서들은 다음날인 4월2일 김영준을 아예 청와대 정무1수석실로 불렀다. 이 자리에서 김영준은 “사법부의 독립도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난 이후에 있을 수 있으며, 정부와 협력하고 국민의 신망을 받을 수 있도록 법조 쇄신이 되어야 합니다. 대임이 주어진다면 법관과의 평소의 지면을 토대로 대화하고 그들을 참여시킴으로써, 유사시에는 압력과 청탁의 방법이 아닌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정부에 협력토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두 후보 모두 ‘충성 서약’을 했지만, 전두환은 며칠 뒤 유태흥을 대법원장에 임명했다. 유태흥은 권력과의 ‘밀약’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그는 1985년 민주화 시위 학생을 풀어주던 인천지법 판사 박시환을 영월지원으로 내쫓았으며, 이를 비판하는 다른 판사를 군산지원으로 인사발령 냈다. 당시 정권의 사법부 인사 개입은 대법원장에 그치지 않았다. 대법원장이 제청하도록 돼 있는 대법원 판사 후보를 청와대가 직접 면접했다. 박철언 등은 서울 하얏트호텔 로열스위트룸에 방을 잡아놓고는 대상자들을 한명씩 불렀다. 나름대로 취한 “최대한의 예우”였다. 청와대 비서관 면담을 통과한 13명은 유태흥의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한 다음날 그가 제청하는 형식을 취해서 대법원 판사에 임명됐다. 대법원장에 대한 대통령 권력의 직접적인 면접이 언제까지 이뤄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박근혜 국정농단 수사와 법조인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일부 드러났듯 이러한 권-법 유착과 거래가 단지 과거의 일이었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법원 쇄신을 바라는 소장 판사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국회의 견제도 만만치 않지만, 정권의 의지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사법부 장악이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자기 성향에 맞는 사람으로 ‘골라서’ 임명하고, 대법관 임명제청권 및 일반 법관에 대한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대법원장은 ‘알아서’ 정권 입맛에 맞출 수 있다. 대통령으로서는 대법원장만 틀어쥐면 사법부에 대한 통제를 쉽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26일 발의한 헌법 개정안에서 사법부 관련 부분의 핵심은 제왕적 대법원장의 인사권 내려놓기다. 대법관에 대한 제청은 대법관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치도록 했으며, 일반 법관에 대한 인사권도 반드시 법관인사위원회의 제청을 받은 뒤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받도록 했다. 대법원장이 갖고 있던 권한을 민주적으로 분산하는 내용이다.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권은 존치됐다. 대법원장에게 인사권이 없으면 대법원장을 누가 뽑든 정치권력의 사법부 통제는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논리가 밑바탕에 깔렸다. 정치권력이 설령 자신들과 코드가 같고 권력지향적인 인물을 대법원장에 임명하더라도 그 대법원장이 각급 법원을 좌지우지할 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판단이다. 그러나 이번 개헌안에서 대법원장의 힘이 현재에 비하면 매우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대법관추천위원회(위원 9명 중 3명은 대법원장 몫)나 법관인사위원회 구성에서 대법원장의 입김이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 만들어지는 대법관추천위원회도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인물이 다수를 점하게 돼 있다. 대법관추천위원은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추천해 모두 9명으로 구성되는데, 국회 몫의 일부는 여당 추천이기에 적어도 9명 중 4~5명은 확실한 대통령 편이다. 여기에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 몫 대법관추천위원 3명도 대통령과 간접적으로 통할 수 있다. 결국 대법관 구성은 정권 성향에 따라 구성될 가능성이 높고, 그 경우 ‘좋은 대법원장’과 신뢰받는 사법부의 존재는 대통령의 선의에 의존하게 된다. 이 때문에 이번 개헌안과 관련해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참여연대는 개헌안 발표 뒤 낸 논평에서 “대법관추천위원회 구성이나 대법원장 임명 관련 대통령의 인사권을 과감히 축소하지 않고 보도자료에도 명료하게 언급하지 않은 것은 사법부의 독립과 관련해서 우려스럽다”며 “사법부의 정권에 대한 예속을 막을 방안을 보다 진취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는 “삼권분립을 생각한다면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과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은 동등한 위치다. 다시 말해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의 자격으로 대법원장을 임명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서울신문> 시론, 2018. 4.9)고 밝혔다.
김외숙 법제처장(오른쪽)이 지난 3월26일 대통령 개헌안을 국회에 송부하려고 국회 입법차장실을 방문해 진정구 차장(왼쪽)에게 대한민국헌법 개정안을 제출하고 있다. 가운데는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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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가운데)이 지난 3월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권력구조를 포함한 대통령 발의 개헌안 3차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조국 민정수석, 김형연 법무비서관.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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