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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01 09:58 수정 : 2018.09.02 16:04

[토요판] 뉴스분석 왜
아시안게임 대표팀 병역혜택 논란

한국 축구대표팀 손흥민이 27일 오후(현지시각)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브카시 패트리어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8강전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은 황희찬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왼쪽). 야구대표팀 오지환이 28일 낮(현지시각) 자카르타 글로라 붕카르노(GBK) 야구장에서 열린 한국과 홍콩의 경기에서 몸을 풀고 있다. 자와바랏주·자카르타/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할 경우 남자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병역특례를 두고 축구대표팀 손흥민과 야구대표팀 오지환이 논쟁의 장으로 불려나왔다. 두 선수의 대표팀 차출과 병역면제 등을 둘러싸고 네티즌들이 엇갈리는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되풀이되는 병역특례 논란을 살펴봤다. 정치가 스포츠를 도구화했던 시대의 사고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손흥민을 야구팀 대주자로 선발하지?” “일본 야구팀을 응원하긴 처음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 중인 축구대표팀의 손흥민(26·토트넘)과 야구대표팀의 오지환(28·엘지)을 바라보는 네티즌의 시선은 극단적으로 갈렸다. 손흥민에 대해서는 종목을 바꿔서라도 금메달 따기가 훨씬 쉬운 야구팀으로 뽑아야 했다는 식의 우호적인 반응이 감지된다. 그러나 오지환에 대해서는 독설이 많았다. 선동열 야구대표팀 감독도 선수 선발과 관련해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두 선수를 향한 다른 잣대

이번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한국 남자 선수들은 39개 종목 453명이다. 기왕에 올림픽 1~3위나, 아시안게임 1위를 차지해 병역을 해결한 선수를 제외한 남자 선수들이 상당수는 금메달을 따기 위해 전력을 다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손흥민과 오지환이 아시안게임 병역혜택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둘이 국내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축구와 야구의 스타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에 많이 노출돼 있는 만큼 영향력도 크고, 팬들의 관심이나 질타도 많이 받는다. 실제 이번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유도나 레슬링 등 격투기나 체조와 럭비, 정구나 핸드볼 등 비인기 종목 선수 가운데 누가 병역혜택을 받고 안 받는지를 챙기는 팬은 없다.

야구의 경우 주로 한국과 일본, 대만 등 동북아 3국이 다투고, 다른 종목보다 메달 따기가 쉬운 단체종목이다. 이번 대회의 경우 일본이 실업 선수를 내보냈고, 대만도 실업과 프로 선수를 혼합한 형태로 팀을 구성한 반면 한국은 프로에서 우수 선수를 모두 합류시켰다. 이런 까닭에 상무나 경찰청 지원 등 다른 방식으로 병역을 해결하면서 선수생활을 이어나갈 기회가 있었음에도,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올인한 듯한 의혹을 산 오지환한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됐다.

아시안게임이 전 세계 최고의 선수의 대결인 올림픽이나 종목별 세계대회처럼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무대는 아니다. 일본 축구대표팀의 경우 2020 도쿄 올림픽을 대비해 젊은 선수를 키운다는 전략 아래 이번 대회에 21살 이하의 연령층으로 팀을 구성했다. 손흥민, 황의조, 조현우 등 23살 이상 와일드카드 3명까지 호출해 최강 전력을 구성한 한국 축구대표팀과는 출발선이 다르다. 유럽의 프로축구팀들이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도록 소속팀 선수를 보내줄 의무가 없다. 아시안게임 축구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인정한 A매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시안게임은 아시아에서 열리는 지역대회의 위상일 갖고 있을 뿐이다. 이런 까닭에 아시안게임보다는 훨씬 우승하기도 힘든 종목별 세계대회 1위에게 병역특례(=병역 면제. 법적 용어로는 대체복무)를 적용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아시안게임 우승 병역혜택 두고
축구대표팀 손흥민, 야구 오지환
둘러싼 네티즌들의 엇갈린 반응
스포츠 병역특례 논란 커져

정치가 스포츠와 병역 결부시킨
‘국위선양’과 엘리트 체육 산물
“특혜시비 없애려면 대안 찾아야”
“병역특례보다 특권 향한 반감”

장익영 한체대 교수(스포츠사회학)는 “인기 종목과 비인기 종목별로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에 대한 팬들의 감정이 각각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야구에서는 선수 선발 등 공정성에 대한 불만이 제기됐다. 지금의 상황은 병역특례 제도를 문제 삼기보다는 공정성이나 반특권을 중시하는한 시대적 흐름이 반영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사실 운동 선수들만 병역혜택을 보는 것은 아니다. 병역법에는 현역과 보충역을 구분하고 있고, 현역을 충당하고 남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일정 자격 요건을 갖춘 이에게 대체복무를 허락하고 있다. 전문연구, 산업기능, 승선근무예비역, 공중보건의사, 공익방역수의사, 병역판정검사의사, 공익법무관, 예술·체육 요원 등 다양한 부문이 지정돼 있다.

운동 선수들은 올림픽 1~3위나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가 될 경우 예술·체육 요원에 자동 편입돼 현역 복무를 대신하게 된다. 이 가운데 예술계 특례자는 주로 음악과 무용 전공자에서 많이 배출되는데, 이들은 정부가 지정한 국제 콩쿠르나 경연대회에서 1~2등을 차지하거나 국악 등의 국내 대회 1위를 차지할 경우 혜택을 받는다. 4주간의 군사훈련을 마친 뒤 소속된 악단, 극단, 발레단 등에서 34개월 동안 활동하면 병역을 마친 것으로 본다.

인기-비인기 종목 선수들의 희비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실이 병무청에 요구해 받은 자료를 보면, 2009년부터 올해 5월31일까지 약 10년간 병역특례에 따른 각 부문별 대체복무 요원 숫자는 총 12만5805명이다. 이 가운데 예술·체육요원은 449명으로 전체의 0.35%밖에 되지 않는다. 전문 자격증을 보유하고 방산업체 등에 근무하는 산업기능요원(8만1657명), 이공계 박사급 전문연구요원(1만8398명), 공중보건의사(1만3049명) 등이 압도적으로 많다. 예술·체육요원은 449명 가운데 예술요원을 뺀 순수 체육 병역특례자는 더 작은 규모여서 전체의 0.2% 안팎으로 추산된다.

그럼에도 운동 선수들이 병역특례의 대표적인 수혜자로 비쳐지는 것은 손흥민을 비롯해 추신수, 박찬호 등 유럽과 미국의 빅리그에서 뛴 슈퍼 스타들의 대중 영향력 때문이다. 이들 초특급 선수들은 국제대회 입상으로 예술·체육요원에 편입되는 순간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린다. 천문학적인 연봉을 21개월간(육군 현역 복무기간) 중단 없이 챙길 수 있고, 경력 단절로 인한 기량저하 등의 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 몸값은 더 올라간다. 반면 이들과 비슷하거나 더 많은 노력을 해 국제무대 정상에 오른 비인기 종목의 체육요원들은 병역혜택과 포상금 외에 특별한 보상은 없다. 실업팀 소속으로 연봉을 받는 것 외에 추가적인 혜택은 없다.

운동 선수들의 병역면제 혜택 등 한국의 독특한 정부 보상 시스템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류태호 고려대 교수(체육학)는 “스포츠도 이제는 선수 개인이 선택하고, 자기 결정에 대한 책임이 따르는 시기로 변화하고 있다. 특혜 시비를 없애기 위해서는 병역면제보다는 정상적으로 병역을 수행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역 복무를 대체하게 하는 병역특례 규정은 1973년 도입됐다. 압축성장 시대 잉여 병력자원을 산업·연구 영역에 투입했고, 이공계와 자연계의 우수 인력이 현역 입영으로 인한 학위 과정 단절 없이 연구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예술·체육요원도 생산직은 아니지만 국위선양이나 문화창달이라는 사회문화적 가치 창출에 기여한다는 명목으로 병역특례 혜택을 받았다. 예술·체육인들의 국제 대회에 입상하면서 국민에게 자긍심과 기쁨을 선사한 일은 많다.

하지만 정권이 체육을 정치 도구화 한 것도 사실이다. 국가는 가장 동원하기 쉬운 자원인 운동 선수를 모아, 집중적인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올림픽 메달 등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내도록 도왔다. 긴 시간과 엄청난 재원, 창조성 등이 필요한 기초과학이나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세계 최고를 배출하는 것보다 코리아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훨씬 빠른 길이 스포츠였다. 정부가 ‘체육에 소질이 있는 학생은 학업성적에 관계 없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체육특기자 제도를 도입해 학원을 엘리트 선수의 충원의 전진기지로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1970년식 국위선양이나 대중의 스포츠 열기를 이용한 스포츠 정치는 한계에 이르렀다. ‘한 나라의 권위나 위력을 널리 떨치게 한다’는 뜻의 국위선양 또한 서로 협력해 조화로운 세상을 일궈가야 하는 세계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조어다. 선수나 지도자, 각 종목의 지상 목표는 그동안 국제대회 메달 획득에 쏠렸다. 유소년 육성이나 자발적인 클럽 활동을 통한 생활체육의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소수 정예의 선수만 발굴해 키운 결과, 엘리트 스포츠는 일부 인기 종목을 빼 놓고는 선수를 충원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병역특례라는 키워드로 설명될 수 있는 화려함 뒤에 움튼 엘리트 스포츠의 위기다.

병역특례 뒤의 ‘스포츠 정치’

김대길 축구 해설위원은 “스포츠 종목 메달로 병역혜택을 주는 것은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다. 아예 국제대회가 없어 병역혜택을 기대할 엄두도 못내는 선수들도 있어 합리적이지도 않다. 일반인들도 30~40대에 사회에 자리 잡고 안정을 구하듯, 운동 선수들은 자기 기량의 절정의 시기인 20대에 삶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필요할 경우 입영을 30대 중반까지 연기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입영할 경우 21개월의 경력단절이 운동 선수한테 치명적이라고 하지만,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에서 특혜를 준다는 시비가 불거질 수도 있다. 매우 제한된 숫자지만, 올림픽 입상이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지 못하더라도 선수들은 국가대표 경력 등을 활용해 국군체육부대에서 운동할 수 있는 길이 있기는 하다.

류태호 교수는 “운동 선수의 병역특례 문제는 너무 복잡하고 풀기 어렵다. 그런 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누가 병역혜택을 받으니 좋고, 누가 받으니 나쁘다라는 감정적 차원의 선수 옹호나 비난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번 기회에 운동 선수 병역면제에 대한 한 차원 높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면 국가가 규정한 병역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누릴 수 있는 병역면제 혜택을 오지환이 누리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가 일부 네티즌의 뭇매를 맞는 것은 본질적으로 병역특례 제도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손흥민의 군입대 공백을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소속팀 국가의 영주권 획득, 국외여행 기간연장 신청 등 다양한 방법이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도 마찬가지다. 손흥민의 경우 부모와 해외에서 체류한 기간이 5년이 넘기 때문에 정부 의지만 있다면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상관없이 37살까지 입영 연기가 가능하다. 마침 2022년까지는 육군의 복무기간이 현행 21개월에서 18개월로 줄어들게 되고, 병력수급 계획에 따라 대체복무에 대한 논의는 더 활발해질 조건이 됐다.

대한민국 헌법 39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정하고 있다. 누구도 회피할 수 없다. 운동 선수들이 받고 있는 병역특례는 매우 특별한 사례이며, 그것이 운동의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 또 선수가 병역을 수행해야 한다면 절정의 시기에 선수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특정한 선수를 비난하거나 옹호하는 것과는 다르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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