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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정대회 참석차 아일랜드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달 25일 더블린에서 전용차량을 타고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엔 가톨릭교회에서 드러난 어린이 성 학대를 항의하는 펼침막이 보인다. 더블린/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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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보수파의 공격, 위기의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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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정대회 참석차 아일랜드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달 25일 더블린에서 전용차량을 타고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엔 가톨릭교회에서 드러난 어린이 성 학대를 항의하는 펼침막이 보인다. 더블린/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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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가톨릭 교회의 한 대주교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퇴위를 요구하는 성명을 내면서 가톨릭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에 반발하는 보수파의 공세라는 분석이 많다. 가톨릭계는 재혼 부부의 영성체 허용과 동성애자 포용 등 ‘성’ 문제를 둘러싸고 날카롭게 맞서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나타났던 분열상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까.
지난 3월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77) 대주교는 로마 교외에서 기자와 저녁을 먹었다. 이탈리아 공영방송 라이(RAI)의 교황청 담당 기자인 알도 마리아 발리(60)의 집에서였다. 파스타와 생선요리, 화이트 와인을 앞에 두고 비가노는 가톨릭 교회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쏟아냈다. 그게 시작이었다. 프란치스코(81) 교황을 겨냥한 보수적인 고위 성직자와 몇몇 언론인, 보수 매체들의 ‘공모’는 5개월 동안 진행됐다. 8월 발리의 집에서 두번째 저녁 식사를 할 때는 비가노가 낼 성명의 내용을 의논했다. 마지막으로 비밀장소에서 만날 때, 비가노는 성직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나타났다.
보수 성직자-언론 공모
지난달 22일 아침, 비가노는 교황에 비판적인 블로그를 운영하는 마르코 토사티(70)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토사티는 1981년부터 교황청 관련 기사를 보수 매체에 써 왔다. 비가노의 손에는 성명 초안이 들려 있었다. 두 사람은 3시간 동안 어깨를 맞대고 성명서를 다듬었다. 그런 뒤 토사티가 최종본을 발리를 비롯해 ‘선택된 기자들’에게 보냈다. 그리고, 비가노는 잠적했다.
성명은 나흘 뒤인 26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판해 온 이탈리아의 <라베리타>, 미국의 <내셔널가톨릭레지스터> <라이프사이트뉴스> 등 보수 매체들에 일제히 실렸다. 미국 포덤대학의 종교문화센터장인 데이비드 깁슨은 “미국 보수 정치권이 하는 짓을 연상시킨다. 각본이 똑같다”고 말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보수 언론 <폭스뉴스>가 한통속이 돼 서로 이용하는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는 얘기다. 토사티는 “(성명의 배후에) 보수의 음모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성명서는 가톨릭 교회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비가노는 11쪽짜리 성명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어도어 매캐릭(88) 전 워싱턴 대주교의 성범죄를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고, 베네딕토 16세(91) 전 교황이 매캐릭에게 내린 징계도 풀어줬다고 주장했다. 매캐릭은 지난 7월 미사를 돕는 복사와 신학생을 성추행한 의혹이 새로 불거져 추기경단에서 물러났다. 비가노는 자신이 2013년 6월 교황에게 매캐릭에 관한 두툼한 서류가 있다고 알려줬다고 했다. 그는 성명에서 “부패가 교회의 최상층부까지 이르렀다”며 “마피아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는 ‘공모된 침묵’을 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황은 실수를 인정하고 자신이 선언한 무관용 원칙에 따라, 매캐릭의 학대 사실을 은폐한 추기경과 주교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고 그들과 함께 퇴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회에 “동성애 네트워크”가 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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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수단(성직복)에 세월호 추모 리본을 단 모습. 서산/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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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쪽 난 가톨릭 교회
관례적으로 종신인 교황에게 퇴위하라고 대주교가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교회의 내분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교황 쪽 성직자들은 비가노의 주장이 근거가 없다면서 성직자들의 성범죄로 곤경에 처한 교황을 흔들어대는 보수파의 공격으로 여긴다. 지난달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배심은 70년 동안 300명의 성직자들이 어린이 1000여명을 성적으로 학대했고, 교단은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를 은폐했다는 보고서를 냈다. 피해 사실에 대한 진술을 꺼리는 피해자 등을 고려하면 실제 피해자는 수천명에 이를 것으로 봤다. 교황청은 “부끄럽고 슬프다”고 했다. 지난 5월에는 필립 윌슨(67) 오스트레일리아 애들레이드 대주교가 어린이 성학대를 은폐한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칠레 주교단 34명은 성범죄 은폐 책임을 이유로 사직서를 냈다. 교황의 측근으로 교황청 재무원장을 맡았던 조지 펠(76) 추기경도 어린이 성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범죄를 은폐했다는 주장이 터져나온 것이다.
교황에 반대해 온 성직자들은 비가노의 주장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그 중 한 명인 대니얼 디나르도(69) 미국주교회의 의장은 “(비가노 대주교가) 제기한 질문은 증거에 기반한 확실한 대답을 필요로 한다. 대답이 없으면 결백한 이들은 거짓 고발로 더렵혀지고, 죄인은 과거의 죄를 되풀이할 것”이라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 선출된 뒤 양쪽의 암투는 교황청 안에서 조용히 진행됐다. 아주 일부 고위 성직자들만이 교황과 교황의 가르침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었다. 비가노의 성명은 끓고 있던 보수파의 증오를 폭발시켰다. 언론들은 “내전”이라고 표현한다. 교황청의 한 고위 성직자는 <로이터>에 “보수주의자들이 전쟁을 선포했다”고 말했다.
비가노 대주교, 보수 매체에 성명
성범죄 은폐 주장 ‘교황 퇴위’ 요구
“보수주의자들이 전쟁 선언했다”
보수 성직·언론인 등 정기 회의도
재혼자 영성체 허용·동성애자 포용
프란치스코 교황에 보수파 반발 커
퇴위한 교황을 교황으로 따르기도
‘가톨릭 통합’ 교황에게 큰 도전
최초의 남미 출신이자 예수회 출신인 ‘아웃사이더’ 교황에 대해 가톨릭 보수 매체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과 전쟁 중이다. 그가 이기면 교회는 붕괴할 것이다”는 등의 주장을 펴 왔다. 영국의 한 성직자는 지난해 <가디언> 기자에게 익명을 요청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교황)가 죽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성직자들이 만나면 베르골리오(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름)가 얼마다 끔찍한지 얘기한다. 그는 칼리굴라(로마의 폭군 황제) 같다. 말을 가지고 있으면 말도 추기경으로 만들 것이다.” 보수적인 레판토재단 이사장인 로베르토 데 마테이는 “‘전통주의자들’의 모든 매체가 비가노의 편지를 퍼뜨리고 있다. 그들이 기다려왔던 목소리이기 때문”이라며 “비가노는 (그 집단의) 리더가 아니다. 기존의 목소리에 하나를 더한 것이다”고 말한다.
‘성’을 둘러싼 내전
보수 성직자들과 언론인들, 학자들은 교황을 비판하는 컨퍼런스를 정기적으로 열어왔다. 반교황파의 선두에 선 인물이 미국 출신의 레이먼드 버크(70) 추기경이다. 그는 이탈리아 <라레푸블리카>와의 인터뷰에서 “교황 퇴위 요구는 합법적이다. 직무를 수행하는데 큰 실수를 범한 성직자한테는 누구든 그런 요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적 원한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11월 교황청 최고법원인 대심원장이던 버크를 몰타기사단 담당 추기경으로 발령냈다. 좌천이었다. 버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끄는 교회를 “방향타를 잃은 배”에 비유하기도 했다.
버크는 미국의 극우·보수 정치인들과도 친분이 있다. 2014년 교황청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 스티브 배넌(64)을 초대해 화상연설을 하도록 했다. 극우인종차별주의자인 배넌은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백악관 수석전략가 직책을 맡아 ‘트럼프의 오른팔’로 불린 인물이다. 배넌은 화상연설에서 “2차대전은 유대-기독교도와 무신론자의 대결이었다. 지금은 이슬람 파시즘에 대한 전지구적 전쟁의 초기 단계다. 매우 잔인하고 피비린내 나는 충돌이다. 이 방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새 야만에 맞서 우리의 믿음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2500년 동안 우리가 물려받은 모든 것이 뿌리 뽑힐 것”이라고 했다.
보수파는 교회에 맞게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보는 반면, 개혁파는 세상에 맞게 교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보수파는 이혼과 동성애 등 ‘성’과 관련된 문제를 두고 교황과 첨예하게 부닥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6년 4월 권고문 <사랑의 기쁨>을 냈다. 260쪽짜리 문서에서 8장의 각주 351이 논란이 됐다. 각주는 “어떤 경우에는 성체성사의 도움을 포함할 수 있다. 그래서 사제들에게 고해실은 고문실이 아니라 주님의 자비를 만나는 곳이 돼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다”고 했다. 재혼한 부부도 교회의 도움을 받아 신의 은총 아래 살 수 있다는 대목에 각주로 붙은 이 구절은 재혼자도 영성체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연 것으로 해석됐다. 보수파는 재혼 부부나 동거 커플에게 영성체를 주는 것을 정당화한다며 반발했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는 복음의 가르침에 따른 혼인의 불가해소성(한번 맺은 관계를 취소할 수 없음)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버크 추기경은 “교황이 교정을 받아야 한다”고 비난했다.
교황이 즉위 첫해에 브라질 세계청년대회에 참석하고 로마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만일 동성애자가 선한 의지를 갖고 하느님을 찾는다면, 내가 어떻게 그를 심판할 수 있겠는가?”라며, 동성애자 사제에 포용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보수파의 불만을 샀다. 보수파는 동성애가 성직자 성범죄의 핵심 원인라고 보고 있다. 반면, 개혁파는 사제와 신자의 권력 관계, 비밀주의 등이 성범죄를 부른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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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퇴위를 요구한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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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재연
지난해 8월 보수적인 성직자와 학자 등 62명은 공개서한을 통해 “교황이 결혼과 도덕적 삶, 영성체 등과 관련해 7가지 이단적 요소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런 비난은 14세기 때 요한 22세 교황(재위 1316~1334)의 반대파가 그를 이단이라고 비난한 이후 처음이다.
프란시스코 즉위 이후 가톨릭의 분열상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후의 모습에 비견되기도 한다. 당시 요한 23세 교황(재위 1958~1963)은 “교회가 세계로 창문을 열어야 한다”며 공의회를 소집했다. 공의회는 라틴어로만 올리던 미사를 현지어로 할 수 있게 했고, 사제가 제단을 바라보고 올리던 미사도 신자들을 보고 하도록 하는 등 교회의 현대적 개혁을 추구했다. 하지만 보수파는 라틴어 미사 폐지에 거세게 저항했다. 일부는 공개적으로 교황청을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부하는 이들이 ‘전통주의자’들이다. 지금도 라틴어 미사를 고집한다. 버크 추기경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1978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재위 1978~2005)의 선출과 함께 반격에 나섰다. 보수적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감독하는 신앙교리성(CDF)과 함께 성직자와 신학자들에게 엄격한 규율을 부여했다. 신앙교리성이 1990년에 출판한 <진리의 선물>은 교황의 가르침에 대한 ‘의지와 지성의 복종’을 규정하고 있으며, 의견이 다른 신학자들도 이견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했다. 뒤를 이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재위 2005~2013)도 매우 보수적이어서 ‘신의 로트와일러(독일산 맹견)’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였다.
교황은 어떻게
이런 흐름을 되돌린 프란치스코 교황을 보수파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일부는 ‘명예교황’으로 생존해 있는 베네딕토 16세를 자신의 교황으로 여긴다. 베네딕토 16세는 1415년 그레고리오 12세 교황(재위 1406~1415) 이후 598년만에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스스로 퇴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생전 퇴위 가능성을 만든 베네딕토 교황이 아니었다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퇴위를 요구한 비가노의 성명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며 “베네딕토 교황이 일부 전통주의자들한테 저항의 상징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했다. 명예교황은 교황청 문제에 발언하지 않고 은둔자로 살고 있다. 이탈리아 상원의장을 역임한 마르셀로 페라는 “그(베네딕토)의 존재는 또다른 길도 가능하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고 말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비가노의 성명에 대해 “단 한마디도 않겠다”고 했지만, 가톨릭여성포럼(CWF)은 3만여명이 서명한 공개서한에서 “사랑하는 교회를 에워싼 고조되는 위기로 우리의 마음은 미어지고, 믿음은 시험에 들게 됐다”며 직접적인 대답을 교황에 요구하고 있다. 교황의 전기 <위대한 개혁가>를 쓴 오스틴 아이브레이(52)는 “내 생각으로는, 교회의 영적 지도자로서 그(교황)는 교회를 통합시키는 하나의 과정이 되도록 인도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는 큰 도전이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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