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2시간의 벽’ 언제 깨질까
케냐 킵초게 2시간1분39초 신기록
지난해 선수·환경·기술 최적화한
나이키의 2시간 돌파 실험 당시
2시간25초 기록하며 기대 높여
전문가들 “목표 서면 시간문제”
2075년에나 가능하다는 계산부터
3~4년 안에 깨진다는 예상까지
신기록은 도둑처럼 찾아올 수도
▶ 놀랍다. 1년 전 최적화된 달리기 실험장, ‘브레이킹2’에서 목표한 2시간보다 단 25초 늦었던 엘리우드 킵초게. 그는 올해엔 2시간1분39초라는 세계 신기록으로 42.195㎞의 역사를 새로 썼다. 이런 흐름이라면 인간의 한계라고 불리는 2시간의 벽이 허물어지는 건 시간문제인지 모른다. 과연 ‘브레이킹 2 데이’는 언제일까? 스스로를 ‘얼치기 마라톤 애호가’라 부르고 마라톤 풀코스 완주 기록을 가진 이주현 기자가 가능성과 예상 시기를 살펴봤다.
달리기의 기쁨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며 인간은 달린다.” 달리기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새가 죽을 때까지 날고, 물고기가 죽을 때까지 헤엄칠까? 그 극단의 고통에 인간은 끊임없이 도전한다. 42.195㎞와의 투쟁에서 새로운 기록이 계속 작성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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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의 마라톤 선수 엘리우드 킵초게가 지난 16일 제45회 비엠더블유(BMW) 베를린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1분39초의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한 뒤 승리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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킵초게의 세계 신기록
지난 16일(현지시각) 독일에서 열린 제45회 비엠더블유(BMW) 베를린 마라톤 대회에서 케냐 출신의 엘리우드 킵초게(34)는 세계기록을 무려 1분18초나 단축하며 2시간1분39초 만에 42.195㎞를 주파했다. 2시간2분대를 깨면서 그는 지구 역사상 가장 빠르고 오래 달리는 인간으로 ‘공인’됐다. 1896년 1회 올림픽 우승자(스피리돈 루이스)가 2시간58분50초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마라톤 기록은 경이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셈이다. 달리기에 적합한 기온, 도로의 경사도, 코스의 난이도, 우수한 페이스메이커 기용 등을 종합할 때 베를린 국제 마라톤 대회는 압도적으로 신기록이 쏟아지는 대회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킵초게는 이보다 더 좋은 조건에서 더 빠르게 달린 적이 있다.
2017년 5월6일 글로벌 스포츠용품 회사인 나이키는 이탈리아 밀라노 근처 도시 몬차 포뮬러원 경기장에서 ‘브레이킹 2’(2시간대를 깬다는 의미) 행사를 열었다. 마침 5월6일은 이보다 63년 전인 1954년 영국의 로저 배니스터가 세계 최초로 1마일(1.6㎞)을 4분에 주파한 의미 있는 날. 2시간 안에 풀코스를 달리려면 1마일을 4분35초 안에 달려야 한다(이는 100m를 17.06초에 달려야 한다는 것으로 보통 사람들에겐 전력질주에 해당한다).
나이키는 2시간대 돌파를 목표로 관련 분야 과학자들과 함께 2년간 치밀한 준비를 했다. 나이키가 목표 달성의 핵심 요소로 삼은 것은 △최고의 선수 선발 △효율적인 주행 환경 및 코스 제작 △최적화된 훈련 프로그램 적용 △적정량의 에너지와 수분 공급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운동복과 운동화 제공이라는 다섯 가지였다.
먼저 선수 선발. 트레드밀 테스트, 트랙 테스트, 그간의 경기 기록, 자신감과 열정 등을 감안해 킵초게와 에리트레아의 제르세나이 타데세, 에티오피아의 렐리사 데시사 3명이 선택됐다. 킵초게는 2016년 리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근래 최고의 기록을 유지하고 있었고, 제르세나이는 하프 마라톤 세계기록 보유자로 셋 중에서 달리기 효율이 가장 뛰어났다. 데시사는 보스턴 마라톤에서 2번이나 우승했을뿐더러 몹시 경쟁적이고 투지가 넘치는 선수였다. 이들 셋은 모두 동아프리카 고원지대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3000m가 넘는 동아프리카 고지대는 희박한 공기 탓에 달리기가 힘든 곳이지만, 역설적으로 뛰어난 달리기 선수들을 배출한다. 폐에서 근육으로 산소를 실어나르는 적혈구의 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스포츠정책과학원의 송홍선 스포츠과학연구실장은 “동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은 마르고도 긴 몸매(체질량 지수가 17~18대에 이른다)와 가는 발목, 월등하게 비중이 높은 속근(速筋)이 잘 발달돼 지구력과 스피드에 강하다”며 “어릴 적부터 맨발로 뛰고 달리며 자란 경우가 많아 발 앞꿈치가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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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나이키가 이탈리아 밀라노 근처의 몬차 포뮬러원 경기장에서 연 ‘브레이킹 2’ 행사에서 엘리우드 킵초게 선수가 신고 달린 운동화. 나이키는 ‘브레이킹 2’를 위해 가볍고 탄성이 뛰어난 특수 운동화를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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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도 신중하게 선택했다. 몬차의 기온이 달리기에 가장 적당한 11.6667℃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했고 대회의 상징성과 경사도 등을 감안해 한 바퀴 길이가 2.4㎞인 포뮬러원 경기장을 골랐다. ‘브레이킹 2’를 위한 특수 운동화도 제작됐다. 달리기 효율을 4% 더 높여준다고 나이키가 자랑하는 ‘베이퍼플라이’는 가볍고 탄성이 뛰어난 발포성 신소재로 만들어졌고 가운데엔 탄소섬유판을 곡선 형태로 덧대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했다. 경기 운영도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페이스메이커 없이 선수들끼리 순위 경쟁을 하는 올림픽이나 30~35㎞까지 페이스메이커들을 달리게 하는 국제 마라톤 대회와 달리, 나이키는 30명의 페이스메이커들을 뽑아 6명씩 교대로 끝까지 달리게 했다. 바람의 저항도 세심하게 분석해 페이스메이커들을 화살 모양의 삼각 편대로 달리게 하고 그 뒤에 선수들이 바짝 따라붙어 뛰게 했다. 이렇게 되면 해당 선수는 바람의 영향을 덜 받으며 2.5%의 경사진 언덕을 내려가는 것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한다. 다른 대회에선 선수들이 직접 급수대에 다가가서 음료를 마시지만 ‘브레이킹 2’에선 자전거를 탄 스태프들이 선수들과 속도를 맞추면서 탄수화물·수분이 포함된 ‘스웨덴산 특수 드링크’를 직접 건네 시간을 아꼈다. 대형 전자시계를 단 테슬라 전기차는 대열을 선도하며 정확한 시간을 알려줬다. 나이키는 대회 룰이 다르기 때문에 세계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인간의 한계를 확인하기 위해 일종의 ‘달리기 실험실’을 조성한 것이다. 이런 최적화된 환경에서 킵초게는 2시간25초를 기록했고 제르세나이 타데세는 2시간6분51초, 데시사는 2시간14분10초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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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나이키가 이탈리아 밀라노 근처의 몬차 포뮬러원 경기장에서 연 ‘브레이킹 2’ 행사에서 엘리우드 킵초게 선수(빨간색 옷)가 코스를 달리고 있다. 나이키 누리집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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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안에 가능할 수도”
인간이 2시간을 돌파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1991년 마이클 조이너라는 과학자가 <응용생리학 저널>에 게재한 논문에서 비롯됐다. 그는 최대산소섭취량, 달리기 효율, 젖산역치(운동량을 점증적으로 높일 때 젖산의 혈중 농도가 갑자기 증가하는 지점) 등을 계산해 인간의 최고 기록은 1시간57분58초라고 주장했다. 당시 마라톤 세계기록이 1988년에 작성된 2시간6분50초였으니, 그의 주장은 매우 도발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후 마라톤 기록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1999년 2시간6분의 벽이 허물어졌고, 2003년엔 2시간5분, 2008년엔 2시간4분, 2014년엔 2시간3분이 차례로 깨졌고, 킵초게는 4년 만에 2시간2분을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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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나이키가 이탈리아 밀라노 근처의 몬차 포뮬러원 경기장에서 연 ‘브레이킹 2’ 행사에서 엘리우드 킵초게 선수(빨간색 옷)가 코스를 달리고 있다. 나이키 누리집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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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인간은 과연 언제 2시간을 넘어설 수 있을까? 과연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반드시 달성 가능하다”고 말한다. 송홍선 연구실장은 “목표가 제시되면 항상 그 기록은 깨졌다”며 “킵초게가 2시간25초를 뛰었기 때문에 킵초게 또는 킵초게 아닌 다른 선수가 언젠가는 25초를 단축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 국민체육공단 육상팀 감독은 “반드시, 언젠가는 2시간 이내에 달리는 선수가 나온다”고 단언했다. 그는 그 근거로 하프 마라톤 기록이 58분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코스 절반을 58분대에 뛸 수 있다면 나머지 절반도 58분대에 가능하다”며 “세계 정상급 선수들은 후반전에도 전반전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 여기에 막판 스퍼트가 더해지면 2시간 돌파가 가능하다.”
달리기 선수 출신으로 스포츠·과학 칼럼니스트이자 <인듀어>의 저자인 알렉스 허친슨은 지난 2014년 각종 자료와 전문가들의 인터뷰 등을 종합한 끝에 2시간 이내 완주는 2075년께야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그는 ‘브레이킹 2’ 대회를 앞두고 “킵초게에게 1~10%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 달리기 기록의 역사를 보면, 신기록은 ‘도둑같이’ 찾아올 때가 많다. 스포츠정책과학원의 성봉주 수석연구위원은 “2009년 우사인 볼트가 100m에서 9.5초의 시대를 열었을 당시만 해도 9.5초를 돌파하려면 10년쯤은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며 “신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3~5년 내에 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킵초게 외에도 새로운 기록을 작성할 후보군이 많다는 점도 2시간 돌파 가능성을 높인다. 현재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공식 기록을 보면 전세계 마라토너 1~30위 중 26명이 케냐(14명)와 에티오피아(12명) 출신이다. 나머지 나라는 일본 2명, 미국 1명, 영국 1명 등 4명밖에 없다. 또한 1~9위까지가 모두 2시간4분대에서 다툰다. 성 수석연구위원은 “동아프리카 두 나라에 워낙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몰려 있어 매우 경쟁적인 분위기가 조성된다”며 “이 선수들은 2시간대를 깰 수 있는 저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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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나이키가 이탈리아 밀라노 근처의 몬차 포뮬러원 경기장에서 연 ‘브레이킹 2’ 행사에서 엘리우드 킵초게 선수가 코스를 완주한 뒤 바닥에 누워 숨을 고르고 있다. 나이키 누리집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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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마라톤에 새로운 훈련 방법이 도입되고 있다. 2010년대 이후 초고속 카메라로 선수들의 움직임을 분석한 결과 뛰어난 마라토너들은 앞꿈치를 주로 사용해 달린다는 사실이 새롭게 발견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보통 장거리는 뒤꿈치를 주로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어 마라톤 전용 신발 또한 뒤꿈치 충격을 완화시키는 데 집중했는데, 마라톤에서도 단거리 선수들처럼 앞꿈치가 매우 중요하다는 게 부각된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마라톤 훈련은 장거리 연습을 위주로 했던 것에서 벗어나 단·중거리 훈련을 혼합해 더 빠른 속도에 도전하고 있다. 인간의 근육은 속근(速筋)과 지근(遲筋)으로 이뤄져 있는데, 스피드 훈련을 통해 속근과 지근 사이 중간근육을 속근처럼 쓰는 단련을 하는 것이다. 장비의 발전도 눈부시다. 가벼우면서도 통기성, 충격 완화라는 기능성을 갖춘 운동화들이 100g대 무게까지 제작되고 있어 ‘신발 도핑’ 논란이 벌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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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나이키가 이탈리아 밀라노 근처의 몬차 포뮬러원 경기장에서 연 ‘브레이킹 2’ 행사에서 엘리우드 킵초게 선수가 코스를 완주한 뒤 동료들과 포옹하고 있다. 나이키 누리집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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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초 남았다”
사실, ‘인간의 한계’라는 말은 그 자체로 모순적이다. “인간의 한계를 측정하려면 운동경기나 실험에서 한계에 도달해야 하는데 한계가 도달한다는 것 자체가 한계가 아님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 18세기 말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지옥의 격언>에 나오는 표현대로 어느 정도가 충분한지 알려면 충분하고도 넘쳐야만 알 수 있는데, 한계를 넘으면 죽음이니 한계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 허친슨도 “달리다가 죽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우리의 뇌는 몸이 진짜 한계를 초과하지 않도록 단단히 보호하고 대부분의 경우 보호에 성공한다”고 지적했다.
‘브레이킹 2’에서 2시간25초 동안 달린 뒤 킵초게가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인간의 한계가 있느냐”는 질문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사람들이 2시간 이내로 달리면 죽는다고들 말했어요. 하지만 나는 살아 있잖아요? 이제 세상엔 25초만이 남아 있어요. 단 25초.”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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