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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13 15:17 수정 : 2019.04.15 10:07

[토요판] 뉴스분석 왜

공익신고 제보자 보호 위해 도입
변호사 선임 뒤 권익위에 제보해야
홍보부족, 비용부담 탓 이용 저조
공익신고 보상금 활성화 필요
권익위, 변호사 비용 지원 검토
“신고자 신원 궁금해하지 말아야”

▶ 가수 정준영의 카톡방 내용을 한 변호사가 대리해서 신고했다고 했을 때, 처음 알았다. 변호사를 통한 비실명 대리신고 제도가 있었는지. 한 변호사는 자신도 변호사지만, 이런 제도가 있는지 그때 알았다고 했다. 변호사 대리신고 제도는 왜 활성화 되지 못하고 있는걸까. 제도의 도입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정현 변호사가 최초 신고자가 아니라 대리인이라고요?”

“그럼 최초 신고자는 누구인가요?”

“변호사 대리 공익 신고 제도가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지난 3월, 불법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 한 후 유포한 가수 정준영의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을 최초 신고자를 대리해 방정현 변호사가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 신고하자, 많은 사람들이 방 변호사를 최초 신고자로 착각했다. 또 일부 사람들은 최초 신고자가 누구인지, 어떤 경로로 이 카카오톡 대화를 입수했는지, 제보 과정에 대해 집요하게 찾아다니기도 했다. 신고자의 직업을 특정해 보도한 언론도 있었다.

공익신고자의 신분 노출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변호사 대리 비실명 공익 신고 제도(변호사 대리신고)’가 도입돼 반년 가까이 지났지만 이 제도의 이용실적은 미미하다. 그 원인으로는 변호사도 잘 모를 만큼 홍보가 부족한 데다 변호사 선임 비용에 대한 부담이 꼽힌다.

변호사 대리 비실명 공익 신고제도란

공익신고자에 대한 보호는 ‘공익신고자 보호법(공익신고법)’과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부패방지법)’으로 규정돼 있다. 공공 분야는 부패방지법이, 민간 분야는 공익신고자법이 적용된다. 이같은 보호법에도 공익신고자의 신원이 노출돼 피해를 입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이에 신분 노출이 두려워 신고를 주저했던 사람들도 안심하고 공익신고할 수 있도록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신설된 제도가 변호사 대리신고다.

공익신고법(제8조의2)을 보면, 공익신고자는 자신의 인적사항을 밝히지 않고 변호사를 통해 공익신고를 할 수 있다. 신분노출이 걱정된다면 대리신고를 선택한 후 변호사를 선임하면 된다. 선임된 변호사는 신고서, 증거자료, 위임장 등 관련 서류를 준비해 봉인한 뒤 권익위에 접수할 수 있다. 자료 제출, 의견 진술 등 전 과정을 변호사가 대신하는 것이다. 또 사건 기록에도 변호사 이름만 적힌다. 일반 공익신고는 권익위뿐 아니라 경찰 등 다른 기관에도 할 수 있지만, 변호사 대리신고는 오직 권익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제도가 도입된 지난해 10월18일부터 지난달 17일까지 5개월간 권익위가 접수한 공익신고 건수는 모두 1758건이지만 변호사 대리신고는 그 가운데 4건뿐이다. 방 변호사의 공익신고는 변호인 대리신고 제도 도입 이후 4번째 신고였다. 지금까지 변호사가 대리신고한 사건 분야는 △안전 1건 △건강 1건 △소비자 이익 2건이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은 284개 법률에 따라 공익신고 여부를 가르는데, 권익위는 방 변호사가 신고한 사건의 내용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해당된다고 판단했고, 소비자 이익 분야로 분류했다.

그간 공익신고자는 신고 뒤 자신의 신원이 노출돼 각종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3월, 군포시의 한 민간어린이집 교사가 “어린이집이 정원 외 원생을 받고 있다”는 내용으로 시청에 공익 신고를 했다. 그러나 시청의 공무원이 이 신고를 받고 어린이집 원장에게 알렸고, 원장은 공익신고자를 색출해 해고했다. 또 지난 2014년 경기도 시흥의 ‘사무장 병원’을 수사했던 경찰이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과정에서 공익신고자의 신원이 노출되기도 했다. 보도자료에 병원 전 원무부장으로부터 해당 병원의 혐의를 제보 받았다는 내용을 넣은 것이다.

공익신고를 이유로 불이익을 받았을 때는 ‘보호조치’를 신청할 수도 있는데 이 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권익위의 보호요청 접수건수를 보면, 2016년 20건, 2017년 34건, 지난해 61건이었고 올해는 3월말 기준으로 39건에 달한다. 권익위 관계자는 “보호조치가 늘고 있다는 건 그만큼 불이익을 받은 사례가 많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보호조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의미로도 풀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변호사 대리신고가 도입된 것도 공익신고자의 신분 노출 위험을 줄이기 위한 취지이지만 현실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정준영 단톡방’ 사건에서도 보듯이 언론과 대중은 최초 신고자가 누구인지를 색출하는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논평을 내고 “현재 정준영 카카오톡 대화방을 국민권익위에 대리 신고한 방 변호사는 제보자 신변 보호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해 어디에도 신원을 밝힌 바 없다”며 “언론은 공익신고자를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을 취재?보도하는 일을 멈추고 공익신고자를 겁주는 보도는 반드시 삼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영상 불법 촬영·유포 혐의를 받고 있는 정준영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지난달 14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으로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변호사 선임 비용 부담돼

변호사 대리신고의 이용 실적이 저조한 이유로는 아직 제도가 도입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홍보가 부족한 점을 꼽을 수 있다. 또다른 이유로는 변호사 선임 비용에 대한 부담이 있다. 공익신고자 입장에서는 변호사 대리신고를 선택할 경우 최소 수백만원에 이르는 변호사 선임 비용을 1차적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다.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공익신고 보상금액을 높여 공익신고를 할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권익위는 공익신고자의 신고로 공공기관 수입에 도움을 준 경우는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법 시행 초기에는 외부와 내부인의 공익신고가 가능했지만, 보상금을 노리고 신고하는 파파라치성 신고가 많아 2016년 1월부터는 외부 신고자는 보상금 지급에서 제외했다. 대신 내부신고자에 대한 보상을 강화해 그 최대한도를 20억원에서 30억원으로 상향했다. 이 보상금의 요건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제도 개선 등에 도움을 준 경우에는 포상금을 지급한다. 보상금과 포상금 이외에 구조금이라는 것도 있다. 공익신고자 등과 그의 가족이 공익신고 등으로 피해를 받았거나 병원비 등 비용을 지출한 경우 구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공익신고에 따라 실제 지급되는 보상금 규모를 따져보면 변호인 대리신고가 활성화되는 데는 제약이 있어 보인다. 권익위에 따르면 지난해 공익신고 3923건 가운데 보상금이 지급된 건은 277건에 그쳤고, 보상금 지급액수는 건당 평균 799만원(총 보상금액 22억1365만원)이었다.

따라서 보상금 상한액을 폐지하고 정률의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경기도는 1월부터 공익신고자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보상금 상한액을 두지 않는 내용을 담은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대신 공익신고로 재정수입이 발생한 경우, 그 수입의 30%를 공익신고자 보상금으로 주도록 했다. 서울시도 지난 2018년 9월부터 조례를 고쳐 보상금 지급액의 상한을 폐지하고 30% 정률제로 지급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제한적인 보상금 제도로는 해고 등 각종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신고자들에게 결코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유인책이 될 수 없다”며 “보상금 지급액 상한을 폐지할 수 있도록 국회가 조속히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변호사 대리신고 제도를 이용하는 공익신고자를 지원할 수 있는 또다른 방법으로는 공익신고자 지원기금이 거론된다. 2017년 8월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공익신고자 지원 기금을 마련하는 내용의 공익신고자 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안 의원은 “공익신고자가 양심적 선택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최소한의 지원기금이라도 지급해야 이 사회에 더 많은 양심적 공익신고자가 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은정 권익위원장도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권익위도 공익신고자를 위한 공익기금을 마련하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변호사단체와 업무 협약을 맺어 변호사 풀을 만들고 변호사 선임 비용 지원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특히 공익신고자보호기금이 조성된다면 제도가 더욱 탄력적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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