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생산인구 감소·고령화 진행에
정년 60살 이상 연장 공론화
홍남기 “정년 연장 논의 착수하자”
대법원도 “육체노동 연한 65살”
국민연금 수급시기, 노인 기준
상향 조정될지도 주요 관심
청년세대와 일자리 갈등 가능성
대기업 정규직에 혜택 쏠릴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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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65만명인 65살 이상 인구는 2025년이면 1천만명을 넘어설 예정이다. 늘어나는 노인 인구로 복지 지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어 정부는 정년연장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사진은 2016년 2월 서울 마포구 성산동 마포구청 로비에서 열린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사업 통합 모집’ 행사에 참가한 노인들이 취업 상담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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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한 고령화 현상과 생산가능인구(15~64살) 감소를 극복하는 방식은 결국 모두가 더 오래 일하는 방법 뿐일까? 정부가 이달 말 60살 이상 고령 노동자를 재고용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발표하기로 하면서, ‘정년연장’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사람은 모두 공평하게 한살씩 나이 들어 간다. 젊은이건 중년이건 혹은 은퇴연령이건 정년연장 논의에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년연장 논란에 불을 지핀 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그는 지난달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을 만나 “베이비부머 세대가 매년 80만명 정도씩 노동시장을 이탈하고 있는데, 이들의 노후 대책이 미흡해 큰 사회적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정년연장 등 이슈에 대해 폭넓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 2일 <한국방송>에 출연해 “정부 내 인구구조 티에프(TF)에서 정년연장 문제를 집중 논의하고 있으며, 논의가 마무리되면 입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년연장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물론 이달 말 발표하는 정부 대책은 60살 이상 고령 노동자를 재고용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수준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정년연장에 대한 논의의 발판은 마련한 셈이다.
앞서 대법원도 지난 2월 육체노동자 가동연한을 65살로 늘려야 한다고 판례를 바꾸어 파장이 일었다. 대법원은 당시 전원합의체를 열어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60살로 산정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평균 수명의 연장, 급격한 고령화 등을 반영했을 때 노동자들이 평균 60살까지 일한다는 현재 기준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물론 이런 움직임들이 즉각적인 정년연장으로 이어질 거라 보긴 어렵다. 법적 정년은 기업들이 노동자를 최소한 몇살까지는 고용해야 한다고 하한선을 의무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기업 쪽에는 인건비 부담을 안기는 동시에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반면 노동자는 나이를 이유로 더 노동할 권리를 제한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손해배상의 기준을 삼기 위해 육체노동자들이 통상 몇살까지 일하는지 결정하는 판례와, 그 통상의 시점까지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고 법률로 강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정년 60살” 대법원 판례, 법 반영 24년 걸려
정년연장 논의가 시작됐다고 해도, 실제 법이 통과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현재의 ‘60살 정년’은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에 규정돼 있다. 이 법은 2014년에 통과했다.(당시 정년은 57살) 그나마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고려해 시행은 2년 늦춰진 2016년부터였다. 대법원이 이미 1989년에 기존 55살이었던 육체노동자 가동연한을 60살로 연장했던 것을 돌이켜 보면, 대법원 판결과 법 통과에 무려 24년의 시차가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현행 60살에서 65살로 정년을 늘리자는 논의는 이제 걸음마 정도를 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년연장 논의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이유는 뭘까. 아마 한국 사회의 인구구조 변화가 가까운 미래 큰 충격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통계청의 ‘2017∼2067년 장래인구추계’를 보면, 내년부터 2029년까지 10년 동안 65살 이상 고령층은 연평균 48만명씩 늘어난다. 이 기간 한국전쟁 직후 출생한 베이비붐(1955∼63년생) 세대가 급속도로 고령층에 진입한다. 이에 따라 올해 769만명인 노인 인구(65살 이상)는 2020년 813만명, 2024년 995만명 등으로 늘어 2025년이면 1천만명을 넘어설 예정이다. 전체 인구를 나이순으로 줄 세울 때 한가운데 위치한 중위연령은 2017년 42살인데, 2067년이면 62.2살까지 올라간다. 60살 정년을 유지할 경우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은퇴자가 된다는 뜻이다.
고령자 비율이 이렇게 증가하면 복지 지출 부담도 빠른 속도로 커질 수밖에 없다. 다급한 정부가 정년연장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셈이다. 급격한 고령화는 사회적인 부담인 동시에, 개인에게도 고통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2016년 기준 중위소득의 50% 미만을 뜻하는 상대적 빈곤율은 노인인구 경우 43.7%에 달한다. 노후 준비가 부족한 베이비붐 세대가 일자리에서 밀려날 경우 노인빈곤율은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이미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들 가운데 최하위다.
이런 배경을 짚어보면 정년연장과 함께 고민해야 할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년에 즈음한 고령 노동자의 소득 상황이다. 정년으로 근로소득이 끊기는 시점과 국민연금 등 복지혜택을 받는 시점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당초 60살이었던 국민연금 수급 시점은 2013년부터 5년마다 한살씩 상향 조정돼 2033년까지 65살로 올라간다. 60대 전반기 최대 5년에 달하는 ‘소득 크레바스’(절벽, 소득이 끊기는 시기를 의미)를 만나는 셈이다. 하지만 소득 크레바스가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서 정년은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를 의미한다. 이들 나라는 법으로 연금수령시기만 규정하고 있다. 관행적으로 기업들은 그 나이까지 고용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다만 고령화에 따른 기금 운용의 부담 등을 고려해, 두 나라 모두 연금수급 연령(정년)을 최근 몇년사이 이후 65살에서 67살로 상향 조정했다. 미국·영국은 나이에 따른 고용 차별이라는 이유로 정년을 정해놓지 않는다. 일본은 이미 2013년 65살로 정년을 연장한 데 이어, 최근에는 70살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65살로 정년이 연장될 경우 이에 연동해 국민연금 수급 나이를 65살 이상으로 높일지, 아니면 그대로 유지해 크레바스를 없앨지는 사회적 논의 방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노인’의 기준 나이도 관심사다. 현재 고령자에게 지급되는 복지 혜택은 41가지에 달한다. 이 가운데는 초기치매지원 등 50대 초반부터 지원 자격이 되는 것도 있지만, 기초연금·노인외래진료 정액제 등 대부분의 혜택은 65살부터 시작된다. 노인복지법에 규정된 경로 우대 대상도 65살로 규정돼 있다. 이런 노인의 기준은 1964년 법제정 이후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정년이 65살로 연장될 경우, 노인 연령 기준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늘어나는 복지 재원이 부담스러운 정부는 정년연장을 전제로 노인 기준을 상향 조정하고 싶은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 앞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노인 기준을 70살로 올리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운을 띄운 바 있다. 국민연금 제도 개편 과정에서도 수급연령을 67살로 올리는 방안이 제시된 바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인구구조 변화와 복지 제도의 지속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정년 연장 논의와 함께 각 복지 제도의 수급 연령을 조정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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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일 KBS 프로그램에 출연해 “범정부 인구구조 개선 대응 태스크포스(TF)에서 정년 연장 문제를 집중 논의하고 있으며, 논의가 마무리되면 정부 입장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홍 부총리(왼쪽)가 지난 3월20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기 전 김수현 정책실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청와대 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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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고용 영향은 의견 엇갈려
정년연장은 복지 뿐만 아니라 일자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년연장이 세대 간 일자리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첫번째 과제다.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은퇴세대와 청년세대가 경쟁하는 구도를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정년연장이 청년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기존에는 세대 간 주로 차지하는 일자리 영역이 달라, 정년연장이 청년 고용에 직접적인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실증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말 “60살 이상 정년연장이 청년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이 없다고 결론내기엔 이르다”고 분석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년연장이 고용안정성이 높고 임금이 높은 이른바 ‘1차 노동시장’에만 혜택을 줄 가능성도 있다. 석재은·이기주 한림대 교수는 ‘베이비붐 세대와 정년연장 혜택의 귀착’ 논문에서 “베이비붐 세대 가운데 정년연장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비율은 상근·정규직 가운데서도 11.4%에 불과하다”며 “고학력·남성·공공기관 등 안정적인 고용 집단에 효과가 집중돼 격차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정규직 위주인 고용 구조와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급 임금 체계를 손보지 않는 이상, 정년연장의 효과가 ‘대기업 정규직’으로 대표되는 특정집단에 쏠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정부가 제도의 한쪽 주체인 기업을 설득할 수 있는지에도 정년연장의 성패가 달려있다. 정년연장은 기본적으로 고령화에 뒤따르는 사회적 비용을 고령 노동자가 근로소득을 계속 확보하게 해서 해결하자는 것이다. 기업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부담을 나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생산성 향상이 전제되지 않은 가운데 기업의 인건비 부담만 늘어날 경우 기업의 반발이 심해지고 전체 국민 경제에 마이너스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결과적으로 정년연장 논의는 ‘사회적 대타협’에 준하는 과정을 천천히 밟아나갈 가능성이 높다. 앞서 살핀 것처럼 정년연장 논의 속에는 세대 간 갈등 가능성, 노동과 자본의 대립 가능성이 함께 숨어 있다. 또 임금체계 개편과 노동시장 개혁이라는 난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 이에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앞서 ‘합리적 정년연장과 정책과제’ 보고서에서 61~62살에는 주당 4일 수준의 80% 근무로 ‘점진적 퇴직’을 하고, 63~65살에는 ‘정년 후 재고용’ 형태로 주당 3일 수준의 60% 파트타임 근무를 하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제도 변경이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세심하고 점진적인 정책 설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는 장기적인 사회적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과 함께, 시행된지 불과 3년이 지난 ‘60살 정년’ 규정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힘을 쏟는다는 방침이다.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뒤 재취업 시장을 전전하는 50대 ‘신중년’의 취업난이 사회적 문제인 현 시점에, 65살로의 정년연장을 서두르긴 이르다는 것이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부총리가 거듭해서 정년연장을 언급하는 이유는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자는 차원”이라며 “정년연장이 기업에 미치는 부담과 청년층 일자리 감소에 대한 우려 등을 감안하면 정년연장을 위해서는 경노사위 등 사회적 대화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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