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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22 09:37 수정 : 2019.06.22 10:28

[토요판] 뉴스분석 왜
구룡산 지키기 나선 시민들

2003년 이후 두꺼비 생태계로
주목 받아온 청주 구룡산
두꺼비 덕에 마을공동체 만들어져

내년 7월 사유지들 용도제한 풀려
시는 아파트 포함 ‘민간공원’ 추진
주민은 녹지부족 이유 개발 반대

청주 구룡산 두꺼비들의 지킴이인 ‘두꺼비순찰대’ 대원들이 19일 구룡산 인근의 대표적인 두꺼비 산란지인 ‘농촌방죽’에서 양서류의 서식 환경을 살펴보고 있다. 청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도시개발에 맞서 두꺼비 서식지와 산란지를 지켜온 청주 구룡산 인근 주민들이 다시 ‘두꺼비산’ 지키기에 나섰다. 도시공원 일몰제가 1년 앞으로 다가오자, 청주시가 구룡산 일부의 개발을 허용하고 나머지를 보존하는 민간공원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003년 이래 인연을 쌓아온 구룡산 두꺼비들과 마을공동체들은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까?

이곳 사람들의 ‘두꺼비 사랑’은 유별나 보였다. 지난 19일 오전에 찾아간 충북 청주의 구룡산 인근 산남동 법조타운 길에서 먼저 두꺼비 조각상이 눈에 띄었다. 두꺼비로, 두꺼비아파트, 두꺼비빌딩 같은 도로명과 건물명도 쉽게 볼 수 있다. 근처에 두꺼비생태공원과 두꺼비생태문화관이 있다. <두꺼비마을신문>은 10년 넘게 발행되고 있다. 이날 오전 생태문화관에선 탐방활동을 나온 어린이들에게 두꺼비 생태 교육이 한창이었다. 문화관에서 만난 주민들은 “여기서 살다 보니 이제는 개구리, 맹꽁이, 두꺼비 울음소리를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발 163m의 야트막한 구룡산은 2000년대 이후 들어선 많은 아파트와 건물에 둘러싸여 바짝 뒤로 물러섰지만 여전히 두꺼비의 생명력이 살아 있는 산으로 여겨진다.

요즘 이곳에서 두꺼비와 구룡산을 지키자는 목소리가 높다. 두꺼비 모습의 구룡산 그림과 “구룡산을 구해줘!”라는 글귀가 담긴 팻말을 든 1인 시위는 지난 4월12일 이래 날마다 이어지고 있고, 서명운동과 금요일 촛불문화제도 계속되고 있다. 구룡산 일부를 아파트 단지로 개발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유별난 두꺼비 사랑

구룡산 두꺼비와 사람들의 인연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야트막한 산자락에 다랭이논들이 많았다는 이곳은 팽창하는 도시 외곽에 있는 흔한 택지개발 예정지역이었다. 그런데 두꺼비가 택지개발 계획과 주민들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그해 3월 구룡산 자락의 다랭이논들과 아래쪽의 ‘원흥이방죽’(방죽은 농업용수를 담아두는 작은 저수지) 사이에서 알을 낳으러 방죽 쪽으로 가는 두꺼비들의 신기한 모습이 한 시민에게 포착됐다. 이 얘기를 전해 들은 청주 환경단체 ‘생태교육연구소 터’를 중심으로 ‘두꺼비 살리기’의 작은 행사들이 잇따라 열렸다. 당시 ‘터’의 사무국장이던 박완희 청주시의원은 “정말 소박한 행사들이었는데, 마침 5월에 새끼 두꺼비들이 떼 지어 산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방송에까지 보도되면서 전국적 관심사가 됐다”고 회상했다.

산에서 200~300m 떨어진 원흥이방죽은 산에 살던 두꺼비들이 3월이면 알을 낳는 산란지다. 5월 무렵엔 여기서 올챙이를 거친 새끼 두꺼비들이 서식지로 이동한다. 두꺼비들은 마리당 6000~8000개 알을 낳는다. 택지개발 계획에서 원흥이방죽은 매립될 예정이었다. 환경단체들이 앞장섰고 여러 갈등을 겪다가 2004년 원흥이방죽은 보존하고 그 일대에 생태공원을 조성하는 쪽으로 타협안이 마련됐다.

이후에 두꺼비와 주민들의 삶에는 여러 변화가 있었다. 결국에 건물들에 둘러싸인 원흥이방죽에서는 두꺼비들이 점차 줄어들었다. 그럴수록 주민들은 생태 복원에 더욱 매달렸다. “두꺼비 산란지를 지키려는 많은 노력이 이어졌다. 아파트협의체가 생태 보존에 큰 관심을 기울였고 ‘두꺼비친구들’이라는 사단법인이 만들어졌고 <두꺼비마을신문>도 창간해 부수를 늘리며 발행되고 있다.” 박 의원은 “환경변화에 민감한 환경 지표종으로 꼽히는 양서류가 구룡산 사람들의 생태마을 공동체를 일궈준 셈”이라고 말했다.

해마다 봄철엔 생명 탄생의 순간을 지키려는 노력이 이어진다. 2015년 3월 출범한 ‘두꺼비순찰대’에는 100명 넘은 주민들이 소셜미디어로 소식을 전하며 활동하고 있다. 순찰대는 서식지와 산란지를 오가는 두꺼비들의 로드킬을 막기 위해 봄철이면 또 다른 산란지인 ‘농촌방죽’ 등지에서 안전한 이동로를 만들어주고 농수로에 빠진 두꺼비를 구조하는 활동을 벌인다.

평범한 주민이었다가 열성 순찰대원이 된 최영자(44)씨는 “올봄에도 새벽에 찾아간 농촌방죽 부근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아기 두꺼비들이 떼 지어 산으로 이동하는 걸 봤다”며 “가슴 벅찬 감동이자 장관”이라고 말했다. 군에 입대한 큰아들은 잠시 활동을 쉬고 있지만 최씨 가족 5명이 모두 열성 순찰대다. 그는 “산란하러 내려오는 어미 두꺼비도 경이롭지만 올챙이 티를 갓 벗고 비 오는 날을 기다렸다가 일제히 길에 나서는 아기 두꺼비들의 집단이동은 정말 뭉클할 정도”라고 말했다.

두꺼비 마을로 널리 알려진 청주 구룡산 인근 주민들은 구룡산 공원의 일부를 아파트 단지로 개발하겠다는 시의 발표에 반발해 구룡산 살리기 운동을 펴고 있다. 한 시민이 19일 두꺼비생태공원 앞에서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청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트러스트 운동 3차례 추진

도시개발로 줄어들었던 구룡산 두꺼비들의 산란 활동은 몇 해 전부터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한다. 두꺼비순찰대 최씨는 순찰대의 관찰일지를 보여주며 “올해 농촌방죽에서 순찰대원들이 본 두꺼비들만 125마리였다. 지난해보다 많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산란을 위해 일부러 만들어준 여러 연못에서도 두꺼비들이 조금씩 늘어났다는 보고도 이어졌다. 이날 낮 순찰대원들과 함께 농촌방죽을 찾은 박완희 시의원은 “원흥이방죽이 어렵게 살아남았지만 이후에 산란하러 오는 두꺼비는 크게 줄었다. 두꺼비들이 대체 산란지로 스스로 찾아낸 곳이 바로 구룡산 반대편에 있는 이곳 농촌방죽이었고 그러면서 개체 수가 늘어나 원흥이방죽 쪽 산란지들에도 두꺼비들이 다시 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도시개발로 흔들린 구룡산 생태계가 균형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그는 “생태가 균형을 찾아가는 중에 구룡산을 다시 민간공원으로 개발하겠다니 답답하다”라고 말했다.

이번엔 산란지가 아니라 서식지인 구룡산이 위기에 처했다. 이런 상황은 일찌감치 예고된 ‘도시공원 일몰제’에서 비롯했다. 1999년 헌법재판소가 사유지가 도시계획시설에 묶여 재산권을 침해받으며 땅 주인들이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미집행 도시계획시설’(학교 부지, 도시공원 등으로 지정만 하고 조성하지 않은 채 놔둔 장소)의 사유재산 제한에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20년의 경과 기간을 거쳐 2020년 7월부터 미집행 도시공원의 사유지들은 용도 제한에서 풀리게 됐다. 전국에서 크고 작은 많은 도시공원이 사라지거나 줄어들 수 있는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구룡산의 상당수 지역도 이런 사유지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다급하게 사유지 일부를 매입하고 나섰지만 예산은 턱없이 모자란다. 이 때문에 일부 지자체들이 선택한 방안이 ‘민간공원특례사업’이다. 개발사업자가 대상 토지를 사들여 30% 이내를 개발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지자체에 기부채납하게 하는 방식이다. 청주시는 최근 구룡산을 이런 민간공원특례사업 대상으로 지정했다.

대책위 사람들은 이날도 오후 5시께부터 시내 거리에서 서명운동에 나섰다. 서명운동 자리에서 만난 오동균 신부(청주산남교회, 구룡산살리기시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구룡산은 인근 주민만이 아니라 녹지가 부족한 청주 지역을 위한 도심 숲”이라며 “여러 방안을 함께 모색할 수 있는데 시가 개발 방식만을 고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민들은 4월부터 2개의 대책위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구룡산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시민들은 이미 구룡산 일부를 매입해 보존하자는 ‘트러스트 운동’(훼손 위기에 처한 자연이나 문화유산을 모금·기부·증여 등으로 기금을 확보해 보전하자는 시민운동)의 경험이 있다. 2009년엔 원흥이방죽으로 물이 흘러드는 길목의 포도밭을 시민들이 6000만원을 모아 사들였다. 2013년엔 구룡산 기슭에 단독주택 단지가 들어서려 하자 주민들이 나서 일부 땅을 사들였고 이를 시에 기부채납해 생태 완충지대를 만들기도 했다. 신경아 사무처장은 “트러스트 1호, 2호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태적 가치가 높은 농촌방죽 중심의 땅 15만여㎡를 사들이자는 트러스트 3호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3호 목표액은 100억원에 이른다. 사회공헌기금을 활용한 일본 ‘도요타의 공원’ 등 사례들처럼 대기업이 모금에 참여하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하지만 갑자기 구룡산의 민간공원 개발문제가 ‘발등의 불’로 떨어지면서 지금은 본격적인 모금 운동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신경아 처장은 “모금 목표액이 비현실적이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외국 사례를 보면 충분히 가능한 규모”라고 말했다. 3호 트러스트엔 현재 작은 기업들이 다수 참여했는데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모아 전해준 것을 합해 모금액은 4500만원을 넘어서고 있다.

19년간 손 놓은 일몰제 갈등

도시공원 일몰제로 인한 갈등은 전국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뒤늦게 정부는 지난달 28일 도시공원에 묶인 국공유지(26%)의 해제를 10년간 유예하고, 지방자치단체가 매입에 쓰는 지방채 이자 지원율을 최대 70%까지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들에서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지자체, 시민, 토지소유주 간에 갈등과 분쟁도 잇따르고 있다.

청주시 쪽은 민간공원특례사업이 불가피한 대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청주시 공원조성과 관계자는 “도시공원 대책을 두고 지난해부터 의견수렴을 거쳤는데 구룡공원의 경우엔 단일안이 마련되지 않아 시가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생태계에 민감한 지역은 개발지역에서 제외하고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현재로썬 민간공원특례사업이 ‘공원을 최대한 보존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현재 청주시는 국공유지와 시가 매입할 예정인 땅을 제외한 나머지 토지 가운데 30% 이내를 아파트 등으로 개발하고 나머지 70% 이상을 지자체에 기부채납할 개발사업자의 사업신청을 오는 26일까지 받고 있다. 신청이 마감되면 심사를 거쳐 7월 중에 사업자를 선정하고 특례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구룡산 주민들의 반발은 다른 지역에 비해 강한 편이다. 구룡산대책위는 “정부와 지자체가 지난 20년 동안 대책을 내놓지 않다가 이런 혼란을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신경아 사무처장은 “도시공원과 녹지서비스는 시민의 당연한 권리인데 도시공원 30%를 개발해 훼손한다는 것은 지금도 도시공원이 부족한 청주 지역에서 시민 권리를 30% 더 빼앗겠다는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두꺼비마을신문> 초대 편집장을 지낸 이광희 전 충북도의원은 “구룡공원 문제는 생태보전의 상징 지역에서 일어나는 개발주의와 생태공동체 간의 상징적인 싸움”이라고 말했다.

1년여 앞으로 다가온 도시공원 일몰제 발효를 앞두고 법 개정을 통해 문제를 풀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2020 도시공원 일몰제 대응 전국시민행동’에 참여하는 환경운동연합의 맹지연 처장은 “재산권 침해 논란을 빚는 대지나 개발 압력이 높은 토지를 우선 지자체가 매입하고 나머지는 ‘도시자연공원 구역’으로 묶도록 하는 법 제도를 마련해 혼란을 해소해야 한다”며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법 개정운동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청주/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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