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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13 16:43 수정 : 2019.07.14 09:38

[토요판] 뉴스분석 왜?
솜방망이 가정폭력처벌법

베트남 아내 무차별 폭행 남편
“다른 남자도 마찬가지” 뻔뻔
기소율 10.6%, 구속 0.8% 그쳐

현행범이어도 가해자 체포 소극적
피해자가 집에서 나가는 경우 많아
접근금지 위반해도 과태료만 부과

지난해 10월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 규탄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국가의 가정폭력에 대한 강력 대응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당시 서울 강서구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한 여성이 이혼한 전 남편에게 흉기로 찔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여성은 경찰 신고는 물론 여섯 번의 이사와 휴대전화 번호 변경 등으로 가해자 접근을 차단하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살해당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아내와) 언어가 다르니까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하니까 그것 때문에 쌓이고 한 건 있는데, 다른 남자들도 마찬가지일 거 같은데….”

두 살짜리 아들이 보는 앞에서 베트남 출신 아내(30)를 심하게 폭행한 남편 ㄱ(36)씨가 지난 8일 구속되기 전 취재진을 만나 한 말이다. ㄱ씨는 지난 4일 전남 영암군의 집에서 아내를 주먹과 발, 소주병 등으로 마구 때렸다. 3시간가량 맞은 아내는 온몸에 멍이 들고 갈비뼈 등이 골절돼 전치 4주 이상의 상처를 입었다. 그의 무차별 폭행이 담긴 동영상이 온라인에서 퍼지면서 사회적 공분이 일었지만 정작 ㄱ씨는 태연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여성학 박사)은 “우리나라에서 가정폭력은 경찰에 신고해도 엄벌하지 않는다는 경험이 수십년간 쌓이면서 가해자는 두려움이 없다. ㄱ씨의 발언에서 그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말했다.

남편에게는 경고도 하지 않았다

1998년 7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가정폭력처벌법)이 시행된 지 20여년이 지났다. 가정폭력을 신고하는 피해자는 늘었지만 경찰의 초기 대응이나 가해자 처벌은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 자료를 보면 경찰에 접수된 가정폭력 112신고 건수는 2013년 16만272건에서 지난해 24만8660건으로 늘었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공적 도움을 요청하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의미다. 하지만 가정폭력으로 처벌되는 사례는 소수다. 지난해 신고된 가정폭력 사건(24만8660건) 가운데 가해자가 검거된 비중은 16.8%(4만1720건)에 그쳤다.

특히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가해자를 제재하지 않고 피해자만 분리하는 데 대해 분노한다.

“경찰이 출동했을 때 남편의 협박, 폭력 등으로 옷이 찢어지고 머리는 산발이고 등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경찰은 크게 심각하게 보지 않는 듯했다. 나 보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라고 하더니 쉼터로 가고 싶은지, 남편을 고소할 것인지 물었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한마디 경고조차 하지 않았다.” “맞은 나는 밖에서 이렇게 갈 데도 없는데 왜 내가 집에 못 들어가냐, 저 사람을 나오게 해줘라, 차라리 저 사람한테 찜질방을 가서 자라고 해라, 난 집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이게 그 법(가정폭력처벌법)으로 안 된다더라. 당장 나는 집에 들어가고 싶은데 집에를 못 들어간다는 거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경찰의 가정폭력 사건 대응 실패와 개선방안’ 연구에 참여한 피해자들의 진술이다.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폭력이 발생하면 경찰이 응급조치로 ‘가해자·피해자를 분리’하도록 규정한다. 문제는 격리당할 대상을 가해자로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해자가 피해자와의 분리에 동의하지 않으면 경찰은 피해자가 주거지가 아닌 다른 장소로 옮기도록 한다. 때린 사람은 당당히 집에 머무는 데 맞은 사람은 집 밖으로 내몰리는 셈이다. 정현미 이화여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경찰이 가해자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제 없이 피해자만 분리한다면 공적개입은 적절하지도 정당하지도 않게 된다.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한 피해자는 지원요청을 결국 포기할 것이다. 가해자가 원칙적으로 주거를 떠나도록 ‘가해자에 대한 퇴거명령, 체류금지 및 접근금지’가 포함된 처분을 응급조치에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정법률상담소의 ‘가정폭력피해자의 대응방식 변화와 법제 개선’ 심포지엄)

가정폭력처벌법에 가해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다는 근거조항이 없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체포가 가능하지만, 가정폭력처벌법상 응급조치 유형에는 체포가 명시되지 않아 활용도가 낮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나라에서는 가정폭력 가해자를 원칙적으로 현행범으로 체포해 피해자 보호와 재범률 감소에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23개 주에서는 가정폭력이 발생하면 경찰이 주공격자가 누구인지 파악해 체포하도록 하는 ‘의무체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또 법원이 주거 퇴거나 접근금지 등 임시조처를 결정할 경우 가해자가 이를 위반해도 과태료가 최대 500만원에 그쳐 실효성이 떨어진다. 지난해 10월 일어난 ‘강서구 가정폭력 살인사건’의 가해자도 주거 퇴거 조치를 당했지만 2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가정폭력 방지 대책’을 발표하면서 응급조치 유형에 ‘현행범 체포’를 추가하고, 임시조치를 위반할 경우 징역 또는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모두 법률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라 법무부는 개정안을 마련 중이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해 11월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현행범 즉시체포, 접근금지 위반 시 징역형’ 등을 담은 가정폭력 방지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우리나라에만 있는 반의사불벌죄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비판도 끊이질 않는다. 검찰의 가정폭력사건 처분현황을 보면, 기소율은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가정폭력처벌법 시행 초기인 1998년 후반에는 기소율이 31.8%로 높은 편이었지만 점차 낮아져 10%대 중반을 유지하더니 지난해에는 더 떨어졌다. 12일 대검찰청의 ‘2018년 가정폭력 처분현황’ 통계를 보면, 지난해 가정폭력범죄 처분 건수는 3만9188명인데 기소율은 10.6%(4168명)에 그쳤다. 기소되더라도 구속기소 비율은 0.8%(294명)에 불과하고 대부분 약식재판(6.7%·2618건)이라 벌금형으로 마무리된다.

이처럼 기소율이 낮은 이유는 가정폭력처벌법의 입법목적(제1조)이 ‘가정의 평화와 안정’으로 규정돼 있어 합의를 유도하는 장치, 즉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음)를 마련해뒀기 때문이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다고 밝히거나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표시를 철회하면, 가해자는 보호관찰·상담 등 가정보호사건으로 넘겨지거나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리된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가해자 처벌 여부를 피해자의 의사에 맡긴다는 것은 피해자의 용서만 있다면 가정폭력은 처벌하지 않아도 되는 범죄로 본다는 국가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라며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가정파탄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가 가정폭력 가해자의 처벌을 희망하면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지 않아 결국 가정이 파탄났다’는 식의 비난이 쏟아진다는 것이다.

이승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형사법제연구실장은 “피해자 보호보다 가정 보호를 더 중시한 초기의 입법목적은 삭제하고 피해자 인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정폭력처벌법이 변화할 필요가 있다. 해외사례를 보더라도 우리나라처럼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입법 목적으로 두고 가정폭력 사건을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한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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