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윤석열, 7년만에 총장으로 대검 복귀
‘국민과 함께 하는 검찰’ 비전 제시
전 검찰총장들과 검사들이 말하는
‘윤석열호’ 성공하기 위한 요건들
살아있는 권력 수사, 중립성 시험대
“또다른 적폐 안되게 과거와 단절”
특수부 외에 형사·공안 두루 챙겨야
수사 지휘·감독권 적절한 행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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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지난 25일 청와대 본관에서 임명장을 받은 뒤 열린 환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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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법을 설계도로 그리면 검찰조직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총장이 있다. 총장은 검찰사무를 총괄하고, 검찰공무원 지휘·감독 권한을 갖고 있다. 반면 책임의 짐도 무겁다. 총장은 조직 내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 소재를 불문하고 혼자 사퇴하는 것으로 책임을 떠안는 관행이 있다. 검찰조직에서는 최고 지위이지만, 검찰청이 법무부 소속 외청이므로 법무부 장관의 지휘·감독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검찰총장을 지낸 ㄱ변호사는 “법무부 장관과 총장 중 한 자리를 선택하라면 총장”이라고 말했다. 실질적 권력이 총장에게 있다는 의미다.
25일부터 윤석열 검찰총장(이하 총장)의 임기가 시작됐다. 2012년 7월25일 대검 중수1과장을 끝으로 대검찰청을 떠난 지 정확히 7년 만에 총장이 돼 대검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정권이 두 차례 바뀌었고, 윤 총장의 삶도 롤러코스터를 탔다. 잘 나가던 특수부 검사에서 권력에 맞선 수사로 좌천됐다가, 기수를 깬 파격 발탁으로 검찰 최고 수장 자리에 올랐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 2년 동안 서울중앙지검에서 ‘적폐 수사’를 지휘해온 윤 총장이 임기(2년)를 마칠 때까지 어떤 리더십으로 검찰을 이끌어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 총장은 인사청문회 모두발언과 취임사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검찰’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전 검찰총장 4명과 총장을 가까이에서 보좌했던 전·현직 검사들로부터 ‘윤석열호’가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들을 들어봤다.
“수사는 능력이 아니라 타이밍이 핵심”
윤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2017.5~2019.7)으로 있으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뇌물 사건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등 적폐 수사를 지휘했다. 박근혜 정부 말에 맡았던 최순실 국정농단 특별검사 수사까지 포함하면 전 정부 수사는 윤 총장 손에서 시작돼 그의 손에서 끝났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적폐 수사가 2년 가까이 진행되자, 문재인 정부 반대 진영에선 과도한 전 정권 수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과 송인배 전 청와대 비서관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 손혜원 의원 땅 투기 의혹 등 현 정권을 겨냥한 수사들은 언론의 취재 중심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나 있는 서울동부지검·서울남부지검으로 이첩되면서 형평성 시비도 제기됐다. 수사와 공소 유지 때문에 특수부 한 부에 검사가 20명(통상 5명 안팎)이 될 정도로 서울중앙지검이 비대해지자 검찰 개혁에 역행한다는 시선도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대부분 과거에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아 지금까지 넘어오거나, 사안이 중대한 수사들이다. 그냥 넘어갈 수도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검찰 안팎에선 문재인 정부 중·후반기에 검찰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명박 정부 말 측근 비리 및 민간인 사찰 사건, 박근혜 정부 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등에서 보듯, 권력 주변에 있던 인물들이 정부·여당의 힘이 떨어지는 집권 중·후반기에 제보 형식 등으로 입을 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검찰이 정부 공약 사항인 적폐 수사에 방점을 두면서 정부·여당과 갈등이 거의 없었지만, 현 정부에 부담되는 권력형 비리 사건이 터지면 자칫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 총장 출신 ㄱ변호사는 “말이 중립이지 중립만큼 어려운 게 없다. 어느 쪽도 승복을 안 한다. 그래서 명함에 (어느 쪽 편도 아니다는 취지에서) ‘대한민국’ 검찰총장이라고 박고 다녔다”고 말했다.
역대 검찰 수사를 보면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의 대형범죄를 수사할 때는 특히 그 권력이 ‘살아 있을 때’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2003년 대선 정치자금 수사,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수사, 2013년 국정원 정치 개입 수사 등이 대표 사례다. 윤 총장은 이들 수사에 모두 참여했다. 대검 중수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사는 능력이 문제가 아니다. 검사들은 시키면 다 잘한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역대 검찰은 정부에 부담되는 사건 수사는 꺼리다가, 그 정부가 바뀌면 수사에 나섰다. 그런 과정이 쌓이면서 신뢰를 잃었다. 또 다른 적폐가 되지 않으려면 과거와 단절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검찰총장 임명식에서 “(윤 총장은) 권력형 비리에 대해서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그런 자세로 엄정하게 처리해 국민들 희망을 받으셨다. 그런 자세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돼야 한다. 우리 청와대든 또는 정부든 또는 집권여당이든 만에 하나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 엄정한 그런 자세로 임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서 청와대 민정수석과 법무부장관, 검찰총장이 서로의 권한 범위를 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라도 직접 소통을 삼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법무부장관은 검사 인사 때 총장 의견을 들어 대통령에게 제청하고, 구체적 사건과 관련해서는 총장만을 지휘·감독할 수 있다. 민정수석은 조국 전 민정수석이 문재인 정부 초기 “민정수석은 검찰 수사를 지휘해선 안 되며, 검사 인사도 검증만 할 뿐”이라고 밝혔다시피 검사 인사 권한도, 검찰 수사에 개입할 권한도 없다. 총장 출신 ㄴ변호사는 “민정수석과 검찰총장, 법무부장관이 서로 직접 소통하는 일은 가능한 줄여야 한다. 바람직하지도 않다. 직접 말을 하다 보면 서로 지켜야 할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업무상 논의할 일은 법무부 검찰국장을 통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말도 한번 걸려져서 서로 조심한다. 검찰국장은 민정수석의 부하인 듯, 법무부장관의 부하인 듯, 총장의 부하인 듯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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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오른쪽)이 지난 25일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뒤 환담을 하러 인왕실로 이동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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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특수부만 챙긴다?
윤 총장이 적폐 수사를 지휘하는 과정에서 특수부 검사들을 지나치게 챙긴다는 불만이 검찰 내부에서 심심치 않게 나왔다. 고소·고발 사건이나 경찰 송치 사건 등 민생 사건을 다루는 형사부 검사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하는데, 사회적 관심도가 높은 수사를 한 특수부 검사들이 인사에서 좋은 자리를 챙긴다는 이야기다. 이런 불만은 검찰 내부에서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윤 총장이 특히 그런 경향이 심하다는 것이다. 공안부 검사들 역시 ‘공안통을 홀대한다’는 서운함이 있다. 서울의 한 부장검사는 “갑판에는 특수부만 올라 주목을 받고, 배 밑에선 특수부 이외 검사들이 열심히 노만 젓는다는 말들을 한다”고 했다.
총장 출신 ㄷ변호사는 “총장 임기 중에 법무부장관을 지낸 한 선배가 보자고 해서 만났다. 그 선배가 ‘검찰은 두 개의 날개가 있다. 오른쪽은 공안, 왼쪽은 특수다. 두 개의 날개를 살려줘야 잘 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총장이 특정 계통의 검사들만 챙기지 말고 두루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윤 총장은 지난달 중순 총장에 지명됐을 무렵부터 형사부 검사들을 만나 근무 고충과 개선점, 검찰 조직 및 제도의 보완점에 관한 의견을 두루 들었다고 한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윤 총장은 취임하면 당연히 조직 전체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실세 총장’이 오면서 윤 총장이 수사의 지휘·감독 권한을 어느 정도 행사할지도 관심거리다. 총장의 하명 사건을 처리하던 대검 중앙수사부가 2013년 폐지되면서 검찰의 무게중심이 상당부분 총장에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옮겨갔다.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이 중수부 폐지 이후 주요 사건을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한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에 주요 피의자가 출석하는 사실을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알기도 했다. 이때문에 총장이 자신의 측근을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나 주요 부서 부장으로 앉혀 서울중앙지검장을 견제하기도 한다.
일선 수사 지휘·감독 권한은 검찰총장 스타일에 따라 크게 다르다. 대검찰청 반부패부를 통해 일선 수사의 지휘·감독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도, 일선의 자율권을 최대한 살려 권한 행사를 자제할 수도 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서울중앙지검장은 압수수색 범위 같은 수사 과정의 세부사항을 지시하는 역할이고, 총장은 보고를 받고 큰 틀에서 조언 정도를 하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총장 출신 ㄹ변호사는 “과거 대검 중수부가 수사할 때 수사기획관한테는 결과만 보고하라고 했다. 총장이 중간 과정을 사사건건 알아서 무엇을 하겠는가. 다만 최종 판단과 결정은 내가 내렸다”고 말했다. 지방검찰청의 한 차장검사는 “과거에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한 대기업 관련 사건에서 피의자들 중 두 명은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고 총장에게 보고했는데, 그 총장이 ‘전원 불구속 기소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특수부장이 항의성으로 퍼져버리니까(일을 진행하지 않았다는 뜻) 결국 총장이 특수부장 판단대로 하라고 하더라. 총장이 일선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만 하려고 하면 사고가 난다”고 말했다.
‘국민’ 24차례 언급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 검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파워검찰>(2004년 출간)은 1976년 미국 록히드의 일본 정계 금품 로비 의혹 수사를 개시할지를 놓고 고민에 싸인 검찰 지휘부 회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일본 검찰 수뇌 회의는 검찰청 최고의사결정기관으로 정계 관련 중요 사건 수사 방침을 결정할 때 반드시 열렸다. 결론은 다수결이 아닌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전원이 의견을 일치할 때까지 조율해야 한다. 수사 전망 논의가 이어질수록 분위기는 비관적이었다. 그때 일본 검찰 이인자인 도쿄고검 검사장 가미야 히사오가 입을 열었다. “수사가 난관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검찰이 망설이면 앞으로 검찰은 20년간 국민 신뢰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가미야의 말을 후세 다케시 검사총장이 받았다. “책임은 모두 내가 진다. 마음껏 수사해라.” 이 회의에 참석했던 당시 법무성 형사국 참사관 홋타 쓰토무는 이렇게 회고했다. “가미야 검사장의 침통한 말을 들었을 때 오히려 길이 훤히 열리는 느낌이었다. 결국 국민의 검찰로 어떻게 신뢰를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윤 총장은 25일 취임사에서 “우리가 행사하는 형사 법집행 권한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으로서, 법집행의 범위와 방식, 지향점 모두 국민을 위하고 보호하는 데 있습니다.…여러분에게, 경청하고 살피며 공감하는 ‘국민과 함께하는 검찰’이 되자고 강력히 제안합니다. 그리고 저는, ‘국민과 함께하는’ 자세로 힘차게 걸어가는 여러분의 정당한 소신을 끝까지 지켜드릴 것을 약속합니다”라고 말했다. 윤 총장은 취임사에서 ‘국민’이란 단어를 24차례 썼다. 국민의 신뢰 회복이 검찰 개혁의 출발이라는 그의 인식이 읽힌다. ‘국민과 함께하는 검찰’이라는 윤 총장의 비전은 2년 뒤 어떻게 평가받을까?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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