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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05 14:24 수정 : 2019.10.06 12:34

[토요판] 뉴스분석 왜
재활치료 할 곳 없는 장애아동들

재활치료 필요한 장애아동 7만여명
병원 이곳저곳 돌며 대기만 1~3년
한곳에서 2~6개월만 치료해줘

문재인 정부 “공공병원 짓겠다”
현재 병원 3곳·센터 6곳 추진 중
성남서 주민 발의 공공병원 추진도

부모들 “공공어린이재활병원 늘려야”
전문가들, 어린이 재활 수가 개선도

지난 2일 두살 이은형(가명)양이 서울 서초구 서울특별시어린이병원 재활의학과 작업치료실에서 삼킴 능력 회복을 위한 연하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중증 뇌병변장애를 앓아 꾸준한 재활치료가 필요하지만 생후 2년 사이 네곳의 재활병원을 3~4개월씩 옮겨다녀야 했다. 사진 서울특별시어린이병원 제공

▶사는 지역에 필요한 병원이 없거나 적어서 서울이나 경기도 같은 대도시로 나가야 하는 이들이 있다. 수십년 전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전국에 7만여명 있는 19살 미만 뇌병변, 발달 장애(지적·자폐) 아동들 중 상당수가 어린이 재활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 이 병원 저 병원을 수개월씩 찾아다니고 있다. 사는 곳을 떠나 떠돌다보니 ‘재활 난민’이란 단어까지 나온다. 장애아동을 위한 재활병원은 왜 부족한 것일까.

“정말 힘든 나날들이에요. 대기하는 아이들이 많아 재활병원의 치료 시간이 잘 잡히질 않아요. 기약이 없어 비용이 많이 드는 사설 재활센터에 가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 민재 같은 아이들이 제때 치료받을 수 있도록 지금보다 병원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민재 엄마)

세살 김민재(가명)군은 뇌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채 세상에 나왔다. 신생아 때부터 뇌손상으로 경기(경련 증상)를 많이 했던 김군은 올해 세살이 되었지만 목을 가누는 것이 아직 힘들다. 인지가 더디다보니 말을 배우는 것도 어렵다. 입으로 음식을 삼키기 어려워 아침에 일어나면 배에 연결된 호스를 이용해 우유를 먹는다. 중증 뇌병변 장애인 김군은 작업치료·물리치료 등 재활치료를 꾸준히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김군이 치료받을 수 있는 재활병원은 충분치 않다. 충북 청주에 사는 김군은 태어난 뒤 청주 ㄱ대학병원과 ㄴ재활요양병원에서 각각 3개월과 6개월 치료받았지만 얼마 뒤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은 당장 급한 급성기 치료만 해준 뒤, 밀린 환자가 많아 더이상 재활치료는 어렵다고 했다. 병원에선 끝을 알 수 없는 재활치료를 김군에게 계속해주기엔 대기 환자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어린이 재활치료 환자는 건강보험 수가(의료서비스의 대가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의료기관에 제공하는 금액)가 낮고, 장기 환자는 수가를 더 적게 보전받기 때문에 대부분의 재활병원은 당장 급한 치료가 끝나면 몇개월 뒤 치료를 중단한다. 장애아동 부모들은 이 문제를 의료법상 진료거부로 관할기관에 신고도 해봤지만 제대로 해결된 적은 없었다. 물리치료 등 꾸준한 재활치료가 필요했던 김군은 다른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송아무개(40)씨는 아들을 데리고 수도권에 있는 병원을 찾았다. 재활병원 여러 곳에 대기를 걸어두고 빈자리가 나면 입원하거나 외래 진료를 받았다. 하지만 한 병원에서 짧게는 2개월, 길게는 6개월 치료받을 뿐이었다. 서울 은평구 ㄷ재활병원 3개월, 경기 용인 ㄹ어린이재활병원 3개월, 경기 광주 ㅁ재활병원 4개월, 경기 양평 ㅂ재활병원 3개월 이런 식이었다. 김군은 결국 3년간 병원 여섯곳을 수개월에 한번씩 옮겨다녀야 했다. 현재 송씨는 김군과 김군의 누나를 데리고 친정인 경기 광주에 머물며 인근 재활병원을 이용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수개월만 치료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송씨는 다른 재활병원에 대기를 걸어놓았다. 직장 때문에 청주에 머무르는 김군의 아버지는 ‘기러기 아빠’가 됐다. 송씨는 “갓 태어난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몇년간은 한 병원에서 계속 재활치료를 받았으면 좋겠다”며 “청주에도 재활병원이 있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나가야 했다. 다른 병원에 가도 또 수개월 지나면 나가야 했다. 나가기 전 미리 다음 병원을 알아봐 대기를 걸어놔야 하는 현실”이라고 했다.

장애아동을 위한 나라는 없다

사는 지역에 어린이 재활병원이 충분치 않아 병원이 많은 수도권으로 이동해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며 수개월씩만 제공되는 재활치료를 이어가야 하는 장애아동들이 있다. 이들을 지칭하는 ‘재활 난민’이란 단어까지 나왔다. ‘재활 난민’들은 주로 꾸준한 재활이 필요한 장애 유형인 뇌병변 장애와 발달장애(지적·자폐)를 앓는 아이들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등록장애인 기준으로 19살 이하 장애인 중 뇌병변 장애와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이들은 전국에 7만2409명이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당장 급한 치료인 급성기 치료가 끝나도 꾸준한 재활치료가 필요하다. 이 아이들이 한 병원에 오래 머물며 맘 편히 재활치료를 받을 수는 없는 걸까.

지난 3월, 10여년간 어린이 재활치료를 지속했던 민간병원이 일부 운영을 중단했다. 동국대 일산병원은 재활의학과 소아 낮병동(1일 6시간 이상 집중 치료) 운영을 중단하고 외래 진료도 줄였다. 물리치료, 작업치료 같은 어린이 대상 재활서비스를 확 줄인 것이다. 이 병원에 1년 이상 치료를 대기하던 장애아동과 보호자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이 병원은 어린이 재활치료로 유명했지만, 병원은 경영난이 닥치자 낮은 건강보험 수가로 수익이 나지 않는 어린이 재활치료를 줄인 것이다. 장애아동 부모 40여명은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병원 앞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민간병원이 아닌 공공병원도 어린이 재활치료는 의료 서비스의 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쉽지 않다. 어린이 공공병원인 서울특별시어린이병원은 장애아동 재활치료를 하지만 인력 부족에 허덕인다. 어린이 재활치료는 재활치료사가 아이와 일대일로 맞춤형 치료를 하기 때문에 품이 많이 들고 섬세한 치료를 해야 한다. 병원에는 재활의학과 전문의,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 23명의 재활 전문 인력이 있지만, 대기 환자가 줄을 섰다. 병원은 최소 35명 이상의 재활치료 인력이 확보되어야 한다며 최근 서울시에 인력 확충을 요구한 상태다.

민간병원은 경영난으로 재활치료를 줄이고, 공공병원도 재활치료 인력이 부족하니, 뇌병변 장애나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다. 보건복지부 정책 용역 과제 ‘뇌성마비 등 장애아동의 재활의료 전달체계 구축 방안 연구’(가톨릭대 산학협력단, 2016)를 보면, 18살 미만 뇌성마비(뇌병변의 한 종류)와 발달지연 환자 중 재활치료를 받는 환자는 34.9%뿐이라고 했다.

장애아동이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은 적고, 그마저 일부 지역에 몰려 있다. ‘어린이재활의료 확충 방안 연구’(가톨릭대 산학협력단, 2017)에는 현재 어린이가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전국 총 223곳 있다고 집계된다. 하지만 이 중 수도권에 96곳(43%), 경상도에 62곳(27.8%)이 몰려 있다. 전국 각지의 장애아동들은 수도권으로 이동해 재활병원을 알아볼 수밖에 없다.

이정은 ‘협동조합 함께하는연구’ 연구원은 “의료기관에서 수익성이 낮은 소아 재활치료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해 장애아동 재활치료에 미충족 의료 수요가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민간병원에 의존하고 있는 어린이 재활치료 공급 체계에서 공공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기 성남시에서 성남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 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 ‘건강복지광장’이 8월2일 성남시청 앞에서 “성남시에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설립하라”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건강복지광장 제공

“우리 손으로 짓겠다” 나선 시민들

이처럼 재활치료가 필요한 장애아동과 그 부모의 고통이 심하다보니,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 국정과제로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지역별로 9곳을 짓겠다고 약속했다. 3년 뒤 현재 보건복지부는 3곳의 공공어린이재활병원과 6곳의 공공어린이재활센터(입원 불가, 외래 중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충남권(대전)·경남권·전남권에는 병원을 세우고, 전북권·강원권·경북권·충북권에는 각 1~2개씩 모두 6곳의 센터를 짓기로 했다. 수도권과 제주권은 새로 짓지 않고 기존 병원을 공공재활의료기관으로 지정해 지원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시민사회에서는 “9개 병원을 세우기로 했던 당초 공약이 3개 병원과 입원이 불가한 6개 센터로 후퇴했다”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 성남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짓는 조례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성남 시민단체 ‘건강복지광장’ 등은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정 청구를 위해 8월22일부터 3개월 동안 주민 서명을 받고 있다. ‘건강복지광장’은 8월2일 성남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역에 어린이재활병원이 없어 먼 곳의 병원을 전전하는 어린이 ‘재활 난민’들이 있다. 아이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대기하고, 병원에서 수익성이 없다고 받아주지 않는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성남 시민들은 2006년 직접 조례를 발의해 시립 공공병원인 성남시의료원을 세운 경험이 있다. 김미희 민중당 경기도당 보건복지위원장은 “정부가 수도권에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세우지 않는다고 결론 냈지만, 경기도 자체 연구로는 재활치료가 필요한 경기도권 장애아동이 2만여명 있다. 이들을 위한 공공병원이 꼭 필요하다”며 “공공의료에 대한 시민의식이 높은 성남에서 전국 최초 시립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공공병원 늘면 ‘병원 전전’ 나아질까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이 늘어나면 사는 곳을 떠나 여러 병원을 전전해야 하는 ‘재활 난민’ 문제가 완전 해결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세우더라도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건강보험 수가 개선이 함께 돼야 한다고 말한다. 어린이 재활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수가가 낮으면 공공병원이 문을 열어도 안정적인 의료 질이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린이 재활치료를 하는 민간병원이 줄어드는 주된 이유도 건강보험 수가가 낮아 치료해도 제대로 보전받지 못하니, 재활치료를 꺼리는 것이다.

최권호 경북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건강보험 수가가 개선되지 않으면 공공병원도 의료 질을 담보할 수 없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병원이 어린이 재활치료에 적극 임할 수 있도록 어린이 재활치료의 건강보험 수가를 개선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일부 학회에서는 어린이 재활치료 수가를 현재보다 30~40% 높여야 한다고 말하고, 시민사회에서는 어린이 재활치료에 가산을 주는 방식의 ‘소아 가산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태어난 뒤 5개월을 인큐베이터에서 지낸 중증 뇌병변 장애인 두살 이은형(가명)양은 재활치료를 이어온 1년6개월가량의 기간에 거친 병원만 네곳에 달한다. 현재 치료받고 있는 공공병원인 서울특별시어린이병원에서도 3개월 치료가 전부이며, 오는 11월 치료가 끝난다. 어머니 김아무개(37)씨는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이 많이 생기면 좋겠지만 몇 개월씩 단기간 병원을 전전하는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며 “한 병원에서 길게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나온다. 논문 ‘뇌병변 소아·청소년 재활치료 활성화를 위한 정책 방안 연구’(단국대·2018)를 보면, 140명 장애아동 보호자(82명)와 재활치료사(58명)에게 한 설문조사에서 ‘건강보험 수가 개선이 필요한가’ 질문에 “매우 그렇다” 52.9%, “그렇다” 38.6%로 긍정 응답률이 91.5%였다. 또한 ‘병원 난민(재활 난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묻는 질문에 보호자의 42.7%는 권역별 어린이재활병원 설립을 선호했고, 치료사의 37.9%는 어린이 재활치료의 보험 수가 현실화가 먼저라고 꼽았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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