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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1 08:57 수정 : 2019.12.01 09:10

문희상 국회의장이 내놓은 강제동원 관련 해법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문 의장은 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 양국의 시민들이 낸 기부금과 성금으로 재단을 만들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방식을 제안했으나, 피해자와 시민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문 의장이 지난 5일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한 연설에서 ‘문희상안’을 밝히고 있다. 국회 누리집

[토요판] 뉴스분석 왜?
강제동원 해법 ‘문희상안’ 논란

강제동원 관련 문희상 의장 새 제안
“한·일 기업 등이 기부금 조성해
피해자 위자료 지급해 해결하자”

빠르면 12월 둘째 주 법안 발의
위안부 관련 일본 돈 60억원은
반대 많아 기금에서 빼기로 가닥

정부안 반대했던 일본 긍정 반응
여야 의원 “현실적인 방안” 평가
피해자들의 강한 반대가 변수
“공감대 더 필요” 전문가 조언

문희상 국회의장이 내놓은 강제동원 관련 해법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문 의장은 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 양국의 시민들이 낸 기부금과 성금으로 재단을 만들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방식을 제안했으나, 피해자와 시민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문 의장이 지난 5일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한 연설에서 ‘문희상안’을 밝히고 있다. 국회 누리집

▶ 문희상 국회의장이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와 관련한 ‘새로운 해법’이라며 이른바 ‘‘1+1+α’안을 내놨다. 일본 쪽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국회에서도 여야 의원들이 문희상안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피해자 및 시민단체들은 강한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있지만, 찬성하는 피해자들도 있다. 자칫 논란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주요 내용과 쟁점을 들여다봤다.

“처음 문희상안의 주요 내용을 보고는 안 굴러가겠구나 생각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관련된 60억원을 기금에 넣겠다는 부분 등 문제 소지가 있는 내용이 많아서 금방 좌초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일본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등 점점 덩치가 커져 빠르게 굴러가고 있다.”(양기호 성공회대 교수)

문희상안이 처음 나온 것은 지난 5일 일본 도쿄 와세다대학 특강이었다. G20 의회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한 문희상 국회의장은 와세다대학에서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 문재인-아베 선언을 기대합니다’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이 연설에서 문 의장은 한-일 관계 악화를 초래한 핵심 사안인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

정부가 내놓은 ‘1+1’안의 변형

와세다대학 구상의 주요 내용은 첫째, “강제징용 피해자와 위안부 피해자 문제 등 한일 사이의 갈등을 근원적이고 포괄적으로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 불법 지배로 인한 여러 피해자의 배상과 보상 문제를 한 법안에 담아서 해결하겠다는 의미다. 둘째는 재판에서 이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고, 이 경우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이 ‘대위변제’되며, ‘재판상 화해’가 된 것으로 법에 명시한다는 것이다. 즉,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재판에서 이길 경우 그 위자료를 일본 기업한테 직접 받는 대신에 새로 조성한 기금에서 받게 되면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이 끝난 것으로 매듭짓겠다는 구상이다. 셋째는 기한을 정해 피해자들에게 배상 신청을 하게 하며, 각 신청에 대해서는 심의위원회가 검증한다는 내용이다.

문 의장이 내놓은 기금 방식은 이렇다. “양국 기업의 기부금으로 하되, 책임 있는 기업뿐만 아니라 그 외 기업까지 포함하여 자발적으로 하는 기부금 형식이다. 양국 국민의 민간 성금 형식도 더하겠다. 또, 현재 남아 있는 ‘화해와치유재단’의 잔액 60억원을 포함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기금을 운영하는 재단에 대해 한국 정부가 출연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만들겠다.” 이른바 ‘1+1+α’안이다. 정부가 강제동원 해법으로 지난 6월에 일본 정부에 제안했던 ‘1+1안’(일본의 전범기업과 청구권 자금의 혜택을 받은 한국 기업의 기부금으로 기금을 만드는 것)에 비해 참여 범위를 넓혔다. 즉, 강제동원과 관련된 기업뿐 아니라 나머지 기업들에까지 기부금을 모금하고, 여기에 양국 시민의 자발적 성금도 보태겠다는 것이다. 또 많지는 않지만, 양국 정부의 돈도 들어가게 된다. 그 점에서는 ‘2+2+α’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재단의 이름은 ‘기억인권재단’으로 하며, 배상 신청 기간은 1년6개월로 한다는 등의 구체적인 내용이 더 밝혀졌다. 강제동원과 관련해 재판을 끝냈거나 진행 중인 약 990명, 소송이 예상되는 약 500명 등 모두 1500명에 대해서는 법원이 판결한 위자료 액수인 1인당 2억원(위자료 1억원+이자 1억원)을 지급한다는 초안의 일부 내용도 나왔다.

이러한 문희상안에 대해 일본 쪽에서 먼저 호의적인 반응이 나왔다. <마이니치> 등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지난 20일 가와무라 다케오 일한의원연맹 간사장한테 ‘1+1+α’안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강제집행 전에 법안이 정비되면 좋겠다”면서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와무라 간사장도 며칠 전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에서도 “(징용 문제를 위한) 해결책은 이 방안뿐”이라며 문희상안을 호평했다.

우리 국회도 문희상안에 대해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된 법안을 제출했던 여야 의원 10명(천정배, 원혜영, 강창일, 김동철, 오제세, 이혜훈, 홍일표, 김민기, 함진규, 이용호)과 문 의장의 간담회(27일)는 이런 분위기를 보여준다. 간담회에서 참석 의원들은 문희상안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법안을 문희상안으로 통합하는 데 동의했다. 이에 따라 국회의장실은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법안을 작성한 뒤 늦어도 12월 둘째 주까지는 이들 의원들과 공동발의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강제동원공동행동, 정의기억연대 대표 등이 27일 국회에서 강제동원 관련 문희상 국회의장안에 반대하는 항의 서한을 문 의장에게 전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대위변제, 일에 면죄부? 창조적 해법? 그러나 피해자들의 반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큰 쟁점은 피해자들에게 기금을 통해 위자료를 지급하는 방안을 둘러싼 논란이다. 과거사 피해자나 관련 시민단체는 이런 방식은 결국 일본에게 과거사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일본제철·미쓰비시·후지코시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27일 국회 앞 기자회견에서 “문 의장의 제안에 따르면 일본 기업은 법적·역사적 책임이 아닌 자발적인 방식으로 돈을 모으고, 심지어 그 돈에 한·일 기업과 국민의 돈까지 교묘히 섞이게 된다. 이는 결코 대법원 판결의 이행이 아니며 가해의 역사를 청산하는 게 아니라 외교적 갈등을 만들 여지가 있는 피해자를 청산하기 위한 방안이다”고 비판했다. 우회적인 방법으로 배상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 제기다.

이에 대해 국회 쪽의 대체적인 견해는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해법이라는 것이다. 최광필 국회 정책수석은 “배상을 거부하고 있는 일본 기업의 자산을 현금화할 경우에 일어날 양국 관계의 파탄은 피하면서 피해자들을 실질적으로 구제하자면 이런 식으로 우회할 수밖에 없다. 직접적인 배상금 지급에 일본 쪽이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는 만큼 일본 기업들이 자발적 기부금 형식으로 돈을 내게 하는 것이다. 우리 기업과 국민들의 돈을 포함하는 것은 우리 국민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우리도 지고 가자는 것이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과거사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일본을 부끄럽게 만들 수 있다. 과거사의 불법적인 부분과 일본의 책임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그것은 이 법안과 별개의 사안이다”고 말했다. 홍일표 자유한국당 의원도 “일본에게 돈 달라는 구차한 얘기를 이제 그만하자는 취지가 국회의장이 대표로 내는 법안에 담겨 있다. 일본 기업이 내는 돈은 사실상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주는 위자료이기 때문에 충분히 명분이 있다. 현실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희상안은 일본 쪽이 받기 쉽도록 정부가 내놓았던 1+1안을 약간 변형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직접 강제하는 대신에 기금을 조성해서 피해자들에게 간접 형식으로 위자료를 지급한다는 발상은 정부안이나 문희상안이나 마찬가지다. 정부안이 구체적으로 나온 적은 없지만, 이 역시 기금에서 위자료를 받을 경우 일본 기업의 배상 의무가 ‘대위변제’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문희상법 찬성하는 피해자도

문희상안의 내용 중에 반발이 가장 심한 것은 화해와치유재단의 기금이었던 60억원을 새로 만드는 기억인권재단의 기금에 넣는다는 부분이다. 윤미향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60억원을 기억인권재단을 만들면서 거기에 기금으로 넣겠다는 것은 모욕적인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위안부 합의를 무효화해야 한다는 거센 요구에 따라 화해치유재단을 겨우 해산했는데, 그 돈을 다시 사용하자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일본 정부 돈 60억원을 우리가 사용하게 되면 결국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인정하게 되기에 이를 기금에 넣어서는 안 된다는 게 위안부 피해자와 시민단체의 요구다. 이에 대해 최 국회 정책수석은 “위안부와 관련된 60억원을 강제동원 피해 보상에 사용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60억원을 기금에 넣자는 것은 일본 정부가 과거사 피해자 배상 및 보상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강제동원법 공동발의에 합의한 여야 의원들의 반대도 많다. 국회의장과의 간담회에 참석했던 강창일 민주당 의원은 “60억원을 여기에 넣는 것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반발뿐 아니라 국민 정서에도 맞지 않는다. 그 돈은 빼는 게 좋겠다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다른 의원들도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으며, 이에 국회의장실은 60억원의 일본 돈은 기금에 포함하지 않는 쪽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희상안에 대한 피해자들의 동의 여부도 중요한 변수다. 정의기억연대와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강제동원공동행동) 등 피해자 단체와 시민사회단체는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자들을 모욕하지 말라”고 외쳤다. 이들은 기자회견 뒤에 문 의장을 만나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도 “문희상 국회의장의 해결안은 ‘국제인권규범’이 정한 반인도적 범죄의 피해자 구제 원칙과 ‘유엔 피해자 권리 기본 원칙’ 등에 배치된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문희상법안에 찬성하는 피해자들도 있다. 지난 26일 서울 종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서 국회의장실이 주최한 간담회에 참석한 일부 인사들은 “문희상 의장의 법안이 처리돼 피해자들의 보상과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촉구한다”는 내용의 청원서를 내기도 했다. 최 수석은 “반대하는 분들도 있지만, 우리가 만나본 피해자 가운데는 빨리 법을 만들어달라고 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8월15일 ‘광복 74주년, 일제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대회’가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일본제철·오른쪽)씨와 양금덕(미쓰비시)씨 등 참가자들이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까지 국제평화행진을 한 뒤 일본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서두르지 말고 의견 수렴해야”

이 밖에도 강제동원 피해자 위자료 지급 대상을 약 1500명으로 한정할 경우에, 수십만에서 수백만명에 이르는 나머지 피해자들과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또, 기억인권재단을 통한 위자료 수령에 동의하지 않고 전범기업이나 일본 정부에게서 배상금을 직접 받기 원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지도 정리가 되어야 한다.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있는 최봉태 변호사는 “기금을 통한 위자료 수령에 동의하지 않는 피해자에 대해 재판으로 구제받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문희상법안이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럴 경우 일본 정부나 기업 쪽이 배상금 문제가 완전하게 끝나지 않을 것을 우려해 재단에 기부금 내기를 꺼릴 가능성이 있다.

결국 문희상안의 성공 여부는 피해자 중심주의, 일본의 역사적·법적 책임 확인 등 기본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60억원을 기금에 넣은 것은 일본 정부가 바라는 바다. 일본은 그것으로 위안부에 대한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고 할 것이다”며 60억원 배제를 강조한 뒤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은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주도하되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책임 문제는 숙제로 남겨두는 게 어설픈 해법보다는 낫다. 자칫하면 위안부 합의보다 못한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기호 교수는 “우회적인 배상 방식에 대해 피해자뿐 아니라 국민들의 동의가 필요해 보인다. 법 통과를 서두르지 말고 공청회 등 의견 수렴 절차를 충분히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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