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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18 19:43 수정 : 2017.08.19 09:06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지음, 메이 옮김, 봄날의책, 2017

책의 지은이 아서 프랭크는 서른아홉에 심장마비로 거리에서 쓰러졌는데, 15개월 뒤엔 고환암에 걸렸다. 내 친구는 12년 동안 우울증의 손아귀에서 가쁘게 삶을 이어가던 중 자궁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식도까지 전이되었단다. 동행한 나는 “그렇게 멀리요?”라고 물었다. 의사는 말했다. “자궁에서 식도가 서울 부산 거리는 아닙니다.”

그간 그녀는 우울증보다는 암이 낫다고 ‘노래를 불렀었다.’ 우울증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이다. 우울증은 ‘죽어가는’ 몸이고, 말기 암은 ‘죽을지도’ 모른다.

<아픈 몸을 살다>는 고통이 앎의 수원임을 증명한다. 한 문장도 놓칠 부분이 없다. 독자의 삶만큼 읽을 수 있다. 나는 김광석의 노래 “매일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를 타인과의 헤어짐으로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어제 나의 몸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내 몸과 다시는 만날 수 없구나였다.

“경험은 살아야 하는 것이지 처리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25쪽) “질병은 누군가에 맞선 싸움이 아니라 길고 고된 노력이다. 어떤 사람은 살아서 승리하고 어떤 사람은 죽어서 승리한다.”(143쪽) “아픈 사람들은 이미 아픔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 문제는 나머지 사람들이 질병이 무엇인지를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 책임감이 있느냐다.”(202쪽)

원제는 ‘몸의 의지로’(At the will of the body)이다. 나는 의지라는 말을 싫어한다. 대개 신경정신과 계통의 질병인, 의지가 고장 난 병에 걸린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치료는커녕 숨 쉬는 것도 귀찮은데…. 침대가 생활의 전부인 ‘베드 아일랜드’(bed island)에서의 인생이라면? 그런 의미에서 우리말 <아픈 몸을 살다>는 원제보다도 책의 주제를 잘 전달하고 있다.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윤리 중 하나는 고통받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나는 내 몸의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나도 지병이 있는데, 이전의 사고방식은 ‘다 나은 다음에 책 쓰기, 여행, 운전 배우기, 운동을 하자’였다. 아픈 시간은 삶의 대기실, 의미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몸이 가르쳐 주었다. 병은 낫지 않았다. 도대체 완치는 누가 만든 말인가. 죽을 때까지 재발되지 않을 뿐 어떤 병도 완치되지 않는다.

세상은 아픈 사람과 안 아픈 사람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완벽하게 건강한 몸은 없다. 아픔의 차이가 사람의 차이다. 이 차이는 위중 여부가 아니다. 아픈 사람마다 증상과 기능이 모두 다르다. 앞에 쓴 심장마비, 고환암, 우울증, 자궁암이 다른 질병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문제는 같은 병도 증상이 다르며, 정반대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점이다. 같은 사람도 매분마다 증상이 다르지 않은가.

아서 프랭크는 차이가 인식되어야 돌봄이 가능하다고 본다. ‘암 환자에게 해주기 적당한 말’은 없다. ‘암환자’는 포괄적인 실체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느낌표는 필자). 의학이 환자를 분류하는 데 사용하는 일반적인 진단 범주는 질환(disease)에 쓰이는 것이지, 질병(illness)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하지만 아픈 사람을 상대하는 사람들은 차이와 독특성을 인식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차이를 파악하려면 아픈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75쪽). 치료와 돌봄은 다르다. 돌봄…. 내가 엄마를 간병할 때 가장 많이 한 말(짜증)은 “엄마, 정말 원하는 게 뭐야?”였다. 그녀가 원하는 가제의 촉감을 찾기 위해 몇 종류의 가제를 샀는지 모른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이 책은 번역서 같지 않다. 번역(메이), 표지 디자인(김효은), 추천사(김영옥, 전희경)가 본문보다 심오하다. 특히 번역은 원래 능숙한 한국어 사용자가 쓴 문장 같다. <아픈 몸을 살다>는 아서 프랭크의 첫 번째 저서로, <몸의 증언>(최은경 옮김, 갈무리, 2013)도 권하고 싶다. 위에 언급한 이들은 모두 페미니스트다.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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