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1.18 19:57
수정 : 2012.11.2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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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끝난 에이디티(ADT) 캡스 챔피언십에서 시즌 2승째를 올린 양제윤이 어머니 이윤미씨와 포옹을 하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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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스타]ADT캡스 챔피언십 우승 양제윤
박세리 되고싶어 엄마 졸라 시작
어려운 형편에 프로 포기 생각도
‘올해의 선수상’ 받으며 6억 수입
“기다리다 보니 기회가 오네요”
“너무 예쁜 골프장에서, 서양인들에게 둘러싸여 박수와 환호를 한 몸에 받는 선수가 바로 박세리 언니였어요. 순간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에….”
‘공주병’이 심했던 10살짜리 소녀는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본 박세리 모습에 반해 다짜고짜 부모에게 떼를 썼다.“나 골프 배울래. 가르쳐줘잉.”
골프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양제윤(20·LIG생명보험)의 어머니 이윤미(53)씨는 막내딸의 어리광을 그대로 받아주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이었지만 딸에게 골프채를 사주고, 레슨도 시켜주었다.
그리고 10년 뒤, 엉뚱한 강짜를 부렸던 그 딸은 강자가 우글거리는 한국 여자골프 무대에서 정상에 우뚝 섰다. 대부분의 젊은 여자골퍼들은 아버지가 골프를 잘 치거나,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집안에서 성장하며 골프 선수로 입문한다. 그런데 올 시즌 2승을 거두며 ‘올해의 선수상’(대상)을 받게 된 양제윤은 부모가 골프에 전혀 관심이 없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형편에서 정상에 올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게다가 그는 지금 ‘소녀 가장’ 역할까지 하고 있다.
지난 17일 싱가포르 라구나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끝난 올 시즌 마지막 한국여자프로골프 투어 대회인 에이디티(ADT) 캡스 챔피언십에서 김자영(21·넵스)에게 극적인 막판 역전승을 거둔 양제윤은 우승이 확정된 뒤, 숨죽이며 자신의 경기를 지켜본 어머니의 품에 안겨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어머니 역시 자신의 품에 스며든 딸을 온 힘을 다해 끌어안았다.
“정말 올 시즌을 끝으로 프로선수 생활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말이 프로선수이지, 매번 경기 참가 비용을 걱정해야 했어요. 프로선수 생활을 접고 다른 길로 돈을 벌려고 했는데….”
이제 프로 2년생. 지난해 총상금 7800만원.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며 집안을 이끌게 된 양제윤에게 현실은 너무 버거웠다. 그래서 프로 생활을 접기로 마음을 먹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국가대표 포기하고 프로로 뛰어들었어요. 그러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어요.”
양제윤은 ‘오기’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아마도 본인은 자신이 ‘오기 덩어리’라고 여기는 것 같다.
“전 공을 치기 전에 그림을 그려요. 그리고 그림대로 쳐요. 그림대로 치지 못하면 오기로 쳐요.”
에이디티 대회 우승 역시 오기의 결과였다. 대회 첫날엔 경기 규칙을 잘 몰라 2타를 까먹었다. 마지막 날엔 티샷한 공이 벙커를 만들어 놓은 나무 막대 사이로 파고 들어갔다. 손으로 일부러 끼워 넣으려해도 어려운 자리였다. 또 벌타를 먹었다. 선두 김자영과는 3타 차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양제윤 특유의 ‘오기’는 경기를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다. 14, 16번홀에서 버디를 하며 1타 차로 따라붙자 김자영은 흔들렸다. 그리고 17번 파3홀에서 먼저 친 양제윤이 홀 2m에 붙여 놓았고, 김자영은 아이언 클럽 선택에 혼란이 오며 결국 공을 물에 빠뜨렸다. 지켜보던 양제윤은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이 홀에서 양제윤은 버디를 잡았고, 김자영은 더블 보기를 해 마지막 한 홀을 남기고 두타 차로 역전했다.) 경기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김자영의 실수를 보며 웃는 모습이 화면에 비쳤다”고 하자, “순간 캐디 오빠와 눈이 마주쳤는데, ‘아 이런 것이 골프구나. 기다리다 보면 기회가 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올해 대회 상금만 4억600만원. 여기에 스폰서가 주는 인센티브를 합치면 6억원 정도를 벌어들었다. 평소 말이 없는 양제윤이지만 수다스러울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뿜어낸다.
“제 딸은요, 어리긴 하지만 아주 깊고 멀리 생각해요.”
어머니 이씨는 딸이 자랑스럽다. 그래서 더욱 힘차게 껴안아 준다. 모녀간 사랑이 둘 사이에서 마구 삐져나온다.
싱가포르/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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