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정이 지난달 7일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여자아이스하키대회 디비전2 B그룹에서 우승한 뒤 메달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별별 스타 ㅣ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수문장 신소정
세계선수권 우승의 주역
10년간 국가대표 골문 지켜
“팀 없어 일하면서 운동
평창 향해 노력할래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국가대표였다. 이제 대학 졸업반. 지난 10년 동안 국가대표 여자 아이스하키 수문장 자리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물론 본인의 능력이 뛰어났지만 ‘장기 집권’의 배경에는 척박한 한국 아이스하키의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에 작은 꽃을 피우는데 젊음을 쏟아붓고 있는 신소정(23·숙명여대)은 요즘 즐겁기만 하다.
4월7일 스페인에서 열린 국제아이스하키연맹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2 B그룹에서 우승해 단계가 올라갔고, 올해부터 국내 여자 아이스하키 대회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비록 국내 대회에 세 팀이 출전했지만, 이제는 대회가 있는 종목 선수로 존재할 수 있기에 마음이 뿌듯하기만 하다.
“총알처럼 날아오는 퍽(아이스하키 고무공)이 몸을 보호하는 패드에 부딪치는 소리가 좋아서 수문장을 자원했어요”라고 말하는 신소정은 아픈 추억도 많이 갖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2007년 중국 창춘에서 열렸던 아시아경기대회. 중국, 일본, 북한, 카자흐스탄과 한국 등 5개국이 출전한 이 대회에서 4경기 전패를 하는 동안 모두 69개 골을 허용했다. 특히 한 경기에서는 모두 120개의 상대방 소나기 슈팅을 온몸으로 막아냈지만 29골을 내줬다. 경기 내내 ‘퍽’은 한국 수비지역에 있었고, 신소정은 슛을 막기 위해 앉았다가 일어났다를 무한 반복해야 했다. 한골을 넣지 못했다. 1피리어드 중간에 이미 다리가 풀렸던 신소정은 “굴욕스런 경기로 오랫동안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국제무대에서 더이상 주눅이 들지 않는다.
[관련영상] 29골 먹은 골키퍼의 아이스하키 사랑 (한겨레캐스트#88),
지난 30일 안양 실내빙상장에서 만난 신소정은 “아이스하키의 매력은 박진감과 스피드”라며 빙판 사랑을 털어놓았다.
“스키를 좋아하시던 아버지가 권유해 시작한 아이스하키였지만 이제는 평생 직장을 갖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어요”라며 밝게 웃는다.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 실업팀이 한 팀도 없어 신소정은 아이스하키 국가대표를 하면서도 특기자로 대학을 진학할 수 없었다. 일년에 절반은 합숙 훈련을 하면서도 공부를 놓지 않았다. 대학을 일반전형으로 어렵게 입학한 신소정은 안양 한라아이스하키단의 인턴사원으로 일을 배우고 있다. 학창 시절 내내 ‘주경야하’(낮에는 공부하거나 일을 하고 밤에는 아이스하키를 함)한 노력의 결과이다.
신소정과 함께 국가대표로 활약한 주장 이규선(29)은 생활용품 판매점 부점장으로 일하다가 최근 늦깎이 대학생이 됐다. 한수진(26·연세대)은 피아노 전공자로 건반을 두드리다가 스틱을 잡고 휘두른다.
유아체육을 전공해 보육사로 일하는 동료도 있다. 스틱이 부러지면 테이프로 감아 쓸 때도 있고, 카드 할부로 장비를 사고 매달 힘겹게 갚아가는 선수들도 많다.
“어릴 때 꿈은 국가대표선수였어요. 그다음 꿈은 올림픽 출전이죠. 마침 평창에서 겨울철 올림픽이 열려요. 그런데 한국 여자 대표팀이 출전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요. 하지만 노력을 계속할래요.”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수준은 세계에서 26~28위 정도. 아직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많은 단계를 넘어야 한다. 내년 소치 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낸 일본이 부럽기만 하다.
“언젠가는 국민들에게 올림픽 메달을 선물하는 날이 올 겁니다. 그날까지 파이팅!” 신소정이 크게 외친다.
안양/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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